I Love You (사랑해) / Nikos Ignatiadis & photo by 모모수계
https://youtu.be/uGFvS-sDXVE
영상편집:체칠리아
Nikos Ignatiadis (니코스 이그나티아디스)
Nikos Ignatiadis는 1946년생으로 그리스 아테네 출생.
Greece의 유명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어린 나이 때부터 음악의 길에 들어서 정통 음악 교육을 받았다.
아테네 음악원에서 공부를 마친 후 수 많은 연주회를 가지면서
성공적인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1967년 light music (easy listening genre)에 심취하면서
피아노 연주가로서 뿐 아니라작곡가로서도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1975년 단원 30명의 자신의 orchestra를 창단하였다.
바이든, 한국전 참전용사 5명에 퇴임 전 마지막 명예훈장 수여
이가현 2025.
한국·베트남전 참전 용사 명예훈장 수여
“자유·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싸워야” 당부
AP연합뉴스
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미군들에게 최고 훈격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5명과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2명에 대한 명예훈장 수여식을 개최했다.
한국전쟁에서 싸운 브루노 오릭 이등병은 제2사단 23 연대 G중대 소속으로
1951년 2월 25일 지평리 인근에서 적의 공격을 받고 부상한 동료들을 대피시켰다.
그는 적이 아군 진지를 점령할 때까지도 기관총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 아군이 철수할 시간을 벌었으며,
이후 기관총 옆에서 다수 적의 시신과 함께 전사한 채로 발견됐다.
제2사단 38 연대 I중대에 배속된 와타루 나카무라 일등병은 1951년 5월 18일 풍천리 인근에서
통신선 수리 임무를 자원해서 가던 중 아군 위치를 포위한 적군과 마주했다.
그는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총검을 장착한 뒤 적에게 돌격했으며 혼자서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적군을 여러 개의 벙커에서 몰아냈다.
그는 탄약이 떨어지자 후퇴했다가 탄약을 확보해 다시 공격에 나섰으며 적의 수류탄에 목숨을 잃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카무라 일등병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이후 미국이 구금한
일본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는데도 2차 대전과 한국전쟁에 자원했다고 설명했다.
기관총 사수인 프레드 맥기 상병은 1952년 6월 16일 당완리에서 적진 지를 공격하는 아군을 지원 사격했다.
그는 분대원들이 다치거나 전사하자 남은 분대원들에게 후퇴하라고 지시한 뒤 혼자 남아 부상자 후송을 도왔다.
찰스 존슨 일등병은 1953년 6월 11∼12일 한국에서 제3사단 15 연대 B중대 소총수로 복무하던 중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았다.
그는 포격과 수류탄에 다쳤는데도 자신을 챙기지 않고 더 심하게 다친 이들을 돌봤으며 백병전으로 여러 적을 제거했다.
그는 다친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벙커에서 나와 적과 싸우다 전사했으며
그의 노력으로 10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리처드 카바조스 전 육군 대장(4성 장군)은 1953년 6월 14∼15일 사기막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 중위로 제3사단 65 연대 2대대 E중대를 이끌었다.
그는 중대원들과 적진 지를 공격해 큰 피해를 줬으며, 유엔군 부대가 철수 명령을 받은 뒤에도
혼자 적진을 오가며 부상자 5명을 한 명씩 구조했다.
그는 30여 년을 군에서 복무하다 1984년 제대했으며 육군은 텍사스주에 있는
포트후드 육군기지를 2023년 포트카바조스를 명명했다.
이밖에 휴 넬슨 주니어 대위와 케네스 데이비드 일등병은 베트남전쟁에서 세운 무공으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데이비드 일등병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사후 수훈이다.
명예훈장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의무가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용맹을 떨친 군인만 받을 수 있는
상으로 심사 기준이 매우 까다로우며 전사자가 받는 경우가 많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훈자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미국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면서
미국민이 앞으로도 서로를 위해 그런 이상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미국은 지리나 민족, 종교가 아닌 “모든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근거로 설립된 국가라면서
“우리가 항상 그 이상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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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한미일 협력, 인태지역 발전에 큰 기여”… 바이든 “저의 집으로 같이 가자” 농담도
이상헌기자 2023.
세 차례 환담 나눈 한미 정상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파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대기실에서 조우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2023.9.10/뉴스 1 ⓒ News1
“(한미일 3국 간 협력이) 3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 뉴델리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갈라 만찬에서 만나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협력체계 공고화가
인도태평양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3국 협력을 이끌어낸 주역”이라며 “우리 협력으로
3국 일반 국민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9일 G20 정상회의 만찬에서 바이든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한 시간 반 동안 환담을 나누는 등
한미 정상은 이날 하루에만 세 차례 만났다.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약 3주 만에 이뤄진 한미 정상의 만남이기도 하다.
한미 정상은 지난 5월 G7(주요 7개국) 확대 정상회의 만찬에서도 나란히 앉아 2시간가량 대화를 나눈 바 있다.
한미 정상은 G20 정상회의 시작 전 정상 라운지에서 첫 환담을 했다.
윤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환대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 정상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친밀하게 교류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보람이었다”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어깨를 만지며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미 정상은 양자 회담장을 지나던 중 또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제 휴가지에서 함께 시간도 보냈는데, 귀갓길에
저의 집으로 같이 갑시다”라며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고 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그와 동시에 역사적 순간이기도 한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 정상은 손을 맞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상헌기자 dapa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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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의 양자회담장 로비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바이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방한 일정 시작..'기술동맹' 부각
배지현 2022.
[2022 한-미 정상회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숙소인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면담 관련 연설을 위해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
첫댓글
6.25 동란중
미군 사망자 : 33686명
실종자 : 3737명
부상자 92134 명 <인터넷 검색>
사망자의 평균나이 ㅡ> 19 ~ 23세
꽃다운 청춘들 ,, ㅠ
낮선 이국땅에서..~
넘 미안하고 또 고맙고.. ㅠㅠ
이땅에 다시 전쟁 터진다면..!
비록 나이 많아도..!! 군화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맬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젊음의 순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의 평화로운 오늘이란 삶 앞에
진정 감사한 일입니다
하여 오늘의 역사 한 페이지엔
장미꽃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하였습니다
은 산 님
은 산 님의 나라사랑에 군화 끈 동여매시면
저도 앞치마 질근동여매고..참석합니다 ㅎ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께서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셨군요.
만약 그 당시 미군과 유엔군의 도움없이 그대로 끝나 버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우리가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날씨가 약간은 풀렸군요.포근한 주말 보내세요.양떼님 ~~
오늘의 역사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