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가 있어...영화의 삽입곡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의 노래가 히트를 쳤습니다.
바보란 말은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바보야"라는 한 마디는
자존심의 상처를 주기에 충분한 상대를 낮잡아 무시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3대 바보가 있습니다.
존경받는 바보 삼인 삼색.......
바보의 원조격인 장기려 박사와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바보는 바보라서 "바보야"라는 말을
마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정겹게 듣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바보에 담겨진 의사 장기려 박사와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과 종교인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다른 바보의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의사로서 바보인 장기려 박사는
훌륭한 의술과 상관없이 무소유의 덕으로서 인술을 베풀어 스스로 바보가 되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은
쉬운 길로 가지 않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는 정치적인 선택으로
비록 대통령이 되었지만 바보의 길을 갔습니다.
종교인 김수환 추기경은
최연소 추기경이라는 종교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권위나 위엄보단.....
정감어린 바보 미소를 선택하여 바보스런 인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3인 3색의 바보 인생은
나름 최고의 인생을 바보로 녹여내어 따뜻한 삶의 향기를 남겼습니다.
문득...성경을 연구하다가
의혹이 풀리지 않아 고민하였는데 스스로 바보가 된 모습을
"바보야"라고 불러보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최고의 신앙 인생을 살았지만
3인 3색에 못지 않는 바보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의 신앙 인생은 흠 잡을 데가 없는 완전, 그 자체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자신의 신앙 인생으로 녹여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흠결없이 온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서 풀리지 않는 의혹은
스스로 바보가된 바울의 모습을 3인 3색의 바보로 생각하여 풀어 보았습니다.
바울에게서 풀리지 않는 의혹, 스스로 바보가 된 바울의 모습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아 서원을 이행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였고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이었습니다.
무할례시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을 들멱이며 몸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였던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으로 믿음의 아들이 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다는 것은
복음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성전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완전한 성전이 되셔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 성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바울 스스로 헤롯 성전에 들어가서 결례를 행하였다는 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의 정서에 완전 반하는 것입니다.
고육지책이라는 말로는
바울이 담고 있는 완전한 복음적인 정서와 맞지 않아
스스로 바보가 되어 당시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바보가 된 바울은
복음의 놀라운 정수를 가지고서 의문의 죽은 것이라는
율법의 유대적 전통을 바보스럽게 행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담아낸 바울이었지만
그는 핍박자였었고,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었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죄인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가장 작은 자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바보 정신의 삶을 오롯이 살았습니다.
사도의 사명으로 복음을 유익하게 전하였던 바울이었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갈등을 스스로 바보가 되어 풀어내는 모습을
삼인 삼색의 바보 인생으로 조망하여 보았습니다.
존경받는 바보들의 행진은
일평생 업적으로 이룩한 프로패셔널한 조건을 버리고 인간적인 삶을 바보스럽게 선택하였습니다.
자신의 바보 인생으로 담아낸 바울의 복음은
삼인 삼색의 원조였습니다.
그러나 바울보다 먼저 바보가 된 구약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의 다윗입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대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얻기 위해 블레셋 사람 양피 이백을 배어 사울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불레셋으로 가서
입에 거품을 흘리며 미친척을 하여 목숨을 부지 하였고
블레셋 군대를 따라 다니며 블레셋 군대의 졸병이 되어 이스라엘의 적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해 도망자로 살면서 .....
살기 위한 다윗의 생존 몸부림은 블레셋이라는 적진에 들어 가서 바보 노릇을 하며 몸을 숨겼습니다.
블레셋의 군대에 몸을 숨기고 이스라엘의 의적이 된 다윗......
그렇게도 위대한 다윗이었지만 한 때는 정말 스스로 바보가 되어 바보 인생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병졸들에게 놀림감이 된 다윗은
"미친 똘마니"가 되어 블레셋 사람들을 긴장 시키거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았습니다.
원수의 나라 블레셋은 미친 똘마니 다윗에게
골리앗을 죽인 놈이라고 놀렸지만 블레셋은 다윗을 해하지 않았는데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20여년 동안 모든 국가의 조직과 군사력을 동원하였습니다.
바보가 되어 생명을 부지할 수 밖에 없었던 다윗은
제왕에서 미친 똘마니에 이르기까지 어떤 배역도 완벽하게 인생을 녹여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배우였습니다.
문득 인생지사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보여서 "바보야"라고 불러서 더욱 정겹고 편한 바보들의 행진은
질그릇의 바보 인생으로 빛난 보화를 각각 다르게 담아내었습니다.
스스로 바보가 되어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남긴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을 진짜 바보로 만들어 가는 구조적인 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존경받는 바보 인생도 있지만
모두를 바보로 만들어 가는 사회적 환경은 욕정의 굴레라는 바보들의 행진을
사회적 필요악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욕정의 굴레를 향한 진짜 바보들의 행진은
추락하는 새도 날개가 있다는 아우성을 신음으로 흘릴 따름입니다.
우리 나라 모든 청소년을.....
불량자과 일탈자로 만들어 가는 PC방 문화, 역시 일상의 생활 환경으로 가졌습니다.
어쩌다가 바보가 되어 존경받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모든 사람들이 진짜 바보가 되어가는 처참한 현실을
스스로 이상한 바보가 되어 맞불을 놓아 바보들의 존경스런 바보가 되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