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낭만시인 산행기(1)
산행의 후유?증은 크다. 경사90도를 자랑하는 683m예봉산 자락은 그저 올라가기에 바빴다. 두 아낙은 ‘이런 완만한 산을 예찬’한다. 이래서 각도기가 발명되었다. 급경사를 완만하다고 표현하는 두 아낙에게 세종대왕과 집현전학사가 끌어안고 울 판이다. 덕분에 나의 무릎은 며칠째 통증을 호소한다. 기실 지하철 계단도 기피대상이라 뻘쭘하게 열에 아홉은 여사님들이 애용하는 승강기에 수줍게 끼여 다리쇄국정치를 고수하던 내가 그날은 수로부인에게 진달래를 꺾어 바치던 이름 모를 노인이 되어 하염없이 수직상승 하였다. 정상의 시야는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려 화면은 나이 먹은 금성샛별 텔레비전만큼이나 희뿌옇다. 술 구하기가 힘들다는 산행대장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속리산가서 밀주 큰 거 한통이나 구하고 경주 가서 쌀 막걸리 두통이나 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팔당을 달렸다. 여덟시에 집을 나선다. 두 시간 반이면 여유롭게 당도할 것이라는 휴대폰에 잠입된 교통편을 믿으며 용산역에 도착한다. 웬 걸. 예전에 용산근처 동빙고동에 거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전동차는 띄엄뛰엄 한나절이나 걸려 한두 대 다니던 시절이었다. 30년도 더 지난 오늘에서야 감회가 무량대수하게도 옛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 경의중앙선으로 명명된 열차는 그 시절 꼬마 전동차가 아니다. 지금은 보무도 당당하게 대선 주자 급으로 철로를 이어 놓았다. 오래 기다리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30분을 기다려서야 팔당을 스쳐 지나가는 열차가 당도한다. 차량을 메운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불어난 뱃살은 무릎을 초토화시켰다. 전형적인 거미인간을 자랑하는 육체는 상대적으로 열세인 가느다란 다리의 쏠림현상으로 인한 무릎에 강한 통증을 유발시킨다. 56년 무면허에 빛나는 뚜벅이의 자존심이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지하철 계단은 골고다의 언덕처럼 문둥병 환자를 찾아 나서는 벤허의 두 눈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연스럽게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자동 승강기를 찾아 애용하는 날이 잦아졌다. 승강기 사용자는 열에 아홉은 여사님들의 전용 아지트다. 그 틈에 끼여 줄을 서는 일이란 게 보통 난감하기 짝이 없다. 덩치는 산만한데다 동안 살결은 자랑하는 얼굴을 중심에 두고 빳빳하게 쳐다볼 만큼의 용기가 충만하지 않음에도 두 다리의 안위를 위해 쪽을 양보하기로 한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 몸에 배인 자연스러움이 집처럼 편안하다.
산이 멀어졌다. 한때 주말이면 ‘나는 돈가스’처럼 몸이 가벼운 시절이 있었다. 거친 호흡도 어느 정도의 수업료를 지불하면 평온함을 찾는다. 사랑은 위대하다. 경사진 산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주일아침을 평지의 첨탑 건물로 장식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안락한 육신은 입으로 중심이동을 갈아타고 평온한 육신은 스펀지에 물먹은 스펀지처럼 푹신하기 시작한다. 벨트가 뱃살에 가려 숨어들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니코틴의 흡입이 차단되고 그를 대체 복무할 음식병사들이 차례로 투입되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입으로 진군한 음식들은 뱃속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좁아터진 평수를 늘이기에 베란다를 부수고 내장공간을 넓힐 인테리어 공사에 한창이다.
그러기를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뱃살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평지에서 놀던 연약한 두 다리는 산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젊은 시절 라이트급(57~60Kg)을 자랑하던 무게는 헤비급으로 수직상승한 것이다. 지가 무슨 알리나 조지 포먼도 아닌 것이. 한 달에 한 번 고향의 미타산 산행이 있다. 서서히 가동을 해야 할 판이다. 무슨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독립 유공자마냥 그것도 특별한 행사에만 참석했다. 리프팅이나 수안보 같은 특별한 날에만. 그러다 한번은 비교적 수월한 삼성산 산행에 따라 나섰다. 주요 멤버는 제법 연식을 자랑하는 하늘같은 선배님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죽하면 오십대 중반을 자랑하는 내가 가장 막내였을까. 외형적으로야 아직은 나온 배를 제외하면 제법 쓸 만한 연식을 가졌다고 자부했는데 오판이었다. 몸이 강력한 무기임에도 젊다는 이유하나로 각종 술병은 내 배낭으로 옮겨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누가 말했든가. 그날 죽는 줄 알았다. 하늘엔 비까지 내렸다. 면도기를 거부한지 한 달째. 삐쭉하게 자란 수염은 비를 맞아 처량하다. 몰골이 말씀이 아니다. 그날 아로 새겨진 별명이 ‘서울역 낭만시인’이다. 마음은 산으로 가고 있지만 몸은 거실 소파에서 움직임을 거부한다.
새로운 해가 밝았다. 3월의 첫날, 산신제를 향한다. 관악산에 위치한 관음사 중턱에서 한다기에 부담 없이 나섰다. 막걸리 한 상자 짊어진 걸 제외하곤. 돼지머리가 입을 벌린 체 하늘을 향해 웃고 있다. 저 돼지가 나를 괴롭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2편에 계속됩니다.)
첫댓글 거 담배도 피우시면... 건조기에 산에서 담배피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니코틴을 흡입하시면서 알콜도 삼키시면 기분이 좋을 겁니다. 저는 단주선언을 한지 4개월이 되었지만 마음속으로 맥주를 맛있게 마시며 알콜맛도 잘 음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