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거배’를 품다
선산에 다녀오는 길, 오래된 골동품 상점 구석에서 풍속도 한 점을 품에 안았다. 먼지 자국 얼룩진 백지 귀퉁이, ‘蕙圓’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하던 순간의 서늘한 설렘은 지금도 손끝에 또렷하다.
성묘를 마치고 찾은 식당이 마침 휴업일이라 발길을 돌린 시내의 한 골동품점이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눅눅한 먼지가 뒤섞인 공간, 빛바랜 도자기와 녹슨 금속 공예품, 금이 간 찻잔들 사이로 낡은 액자 하나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유리는 깨져 있었고, 나무틀은 세월을 견디지 못해 뒤틀리고 벌어져 덜렁거렸다. 백색이었을 여백에는 먼지 자국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고, 손때와 세월의 앙금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공짜로 가져가라 해도 손사래를 칠 법한 몰골이었다.
언뜻 보아 누군가의 무심한 모사본이려니 지나치려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250년 전 한양 선술집의 풍경 속 인물들이 저마다 소란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우는 듯했다. 동공을 한껏 넓혀 그림 한쪽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순간, 작고 정갈한 서체 하나가 눈에 또렷하게 박혔다. 혜원(蕙圓). 심장이 쿵쾅거렸다. 영인본이든 후대의 모사본이든 상관없었다. 그 두 글자가 자아내는 세월의 울림만으로도 가슴이 모질게 뛰었다. 내 눈에는 낡은 액자가 아니라, 세월을 건너온 깊은 향기로 보였다.
주인은 값도 묻기 전에 “그거 가져가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얼른 품에 안았다.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사람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주인은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그 눈길이 무슨 상관이랴. 나는 이미 한양의 선술집 한가운데 서서 250년 전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혜원의 〈주사거배酒肆擧盃〉였다.
술집에서 잔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그림의 배경을 이루는 부뚜막과 솥단지, 찬장, 선반 위의 정갈한 그릇들은 단지 옛 풍경의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민초들의 숨결과 삶의 층위를 고스란히 담아낸 생활의 기록이었다. 기와지붕 위로 곱게 핀 진달래꽃이 화사함을 더하고, 세월의 결이 배어 있는 종이 위에서 그림은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아늑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림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어 놓기로 했다. 표구를 새로 하기로 마음먹고 낡은 액자를 벗겨내는 일은 다정한 옛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혹여 종이가 상할까, 색이 번질까 손끝에 힘을 빼고 또 빼며 다루었다. 때 묻은 백지를 분리할 때, 오래된 종이 속에서 묘한 향내가 풍겨 나왔다. 시간의 냄새이자, 이 그림을 거쳐 간 어느 이름 모를 이들의 손때 밴 온기였다. 표구점에 그림을 맡기면서도 원형이 훼손되지 않을까 내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며칠 뒤 표구점에서 마주한 그림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새 옷을 입은 풍속도는 배접의 결을 타고 단아하게 살아났다. 혜원 특유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필선과 다감한 색채 감각이 선명해졌고, 주모와 심부름꾼, 손님들의 옷자락에 남은 색감과 인물들의 다채로운 표정, 시선, 손끝의 세밀한 움직임까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제목은 ‘주사거배’인데, 정작 그림 속 일곱 명의 인물 중 그 누구도 실제 술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있지 않았다. 의금부 별감의 권위도, 하인의 낮은 자리도, 주모의 분주한 생계도 그 순간만큼은 술집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내려놓아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주사거배는 눈에 보이는 동작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손에 잔을 들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은 이미 마음의 잔을 들어 달을 맞이하고 맑은 바람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인간다움을 지켜내던 작고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깨진 유리 뒤에 갇혀 있을 때는 초라해 보이던 그림이 제 옷을 찾자, 비로소 세월을 건너온 품격을 드러냈다. 한양의 선술집 풍경이 아니라 조선의 일상과 흥취를 전하는 고결한 예술로 다가왔다. 작품의 가치는 종이의 나이나 액자의 값비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고 예우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림은 말없이 일깨워주었다.
거실 벽에 걸린 풍속도 덕분에 집안의 공기마저 기품 있게 바뀌었다. 작은 전시관을 들어놓은 듯, 틈만 나면 나는 그림 속 인물들과 다정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더 커다란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다. 250년 전 한양의 선술집은 이제 나의 거실로 이어져 있고, 나는 그들 곁에 조용히 앉아 맑은 바람을 맞는다.
눈에 보이는 술잔이 없어도 좋다. 내 마음은 이미 저 기와지붕 위 뜬 달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려 맑은 술을 가득 채웠으니, 그것으로 참 오달지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나 삶의 가치도 다르지 않다. 겉모습은 세월의 먼지에 덮여 쓸쓸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간직한 본래의 결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정성으로 다듬고 따뜻한 눈길로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숨은 빛이 드러나는 법이다. 나 스스로가 그 깊은 가치를 알아보았다는 사실, 그리고 잊힌 시간을 예우하며 내 안의 삶을 다시금 귀하게 다듬었다는 기쁨이 오늘 밤 달빛처럼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