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22/옥수수 이야기 6]‘옥수수 시’를 쓴 재야在野시인
무릇 시인이라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거나 문학잡지의 추천을 받아야만 시인일까요? 누구의 인정에 상관없이 본인이 글 쓰는 게 좋아 끄적거리고 다듬어 ‘만족’을 한다면 ‘글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른바 ‘재야在野 글쟁이’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도 없겠지요.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구가 저 깊은 가슴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일기이면 어떻습니까? 그러기에 소설가, 수필가, 시인이 아닌 저같은 주제에도 ‘생활글작가’를 자처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어제는 참 재미난 카톡을 받았습니다. 신문사 후배(60년생)이지만 오랜 벗으로 여기는 ‘법 없이도 살’ 경상도 산청 출신 친구가 ‘옥수수’ 자작시自作詩 두 편과 제 졸문(찬샘레터 20편 https://cafe.daum.net/jrsix/h8dk/1203)을 읽고 쓴 운문韻文(본인 극구 시라고 하지 말라니 운문이라고 합니다)을 보내와 감격했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우리 고향에서는 ‘고진’이라고 부릅니다. 한 동네에 한두 명은 꼭 있게 마련인, 본성이 원래 착하고, 부지런한, 언제나 처음과 한결같이 변함없는, 항상 자기보다 남을 더 먼저 배려하고,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을 한다던가, 살면서 남을 해꼬지하거나 험담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손해를 보더라도 화도 잘 내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저 사람 참 고진이네’라고 말합니다. 또는 '진국'이라고도 하지요. 사투리사전을 찾아보지 않았지만, 우리 고향에선 표준말입니다. 흐흐. 그 친구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과 어울리게 편집해 보낸 운문을 어느 시인이 쓴 지 알고 검색을 했는데, 자기가 되나깨나 썼다고 고백을 하더군요. 같이 함 감상해 보지 않겠습니까? 재미도 있습니다. 옥수수 껍질을 까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는군요? 혹시 그런 기분 느낀 적 있나요? 수수같아 수수한데 벗겨놓고 보니 알알이 옥같아서 옥수수라고 한다는군요. 삶은 옥수수를 보며 그걸 키우려 애타운 농부의 마음을 엿보는 이 친구가 바로 시인이 아닐까요? 묘사가 아주 좋더이다. 나만 그럴까요? <옥수수>제목의 운문 좀 보세요. <단맛 머금은 탱탱한 백옥/향내 솔솔 풍기는 순결한 숨결/켜켜이 껴입은 갈매빛 모시적삼/흰 살 우련히 비치는 부드러운 린넷속옷/하나씩 하나씩 벗길 때/마침내 봄햇살처럼/첫사랑 그녀처럼/한꺼번에 와르르 안겨오는 내밀한 충일/까는 것은 까이는 것보다 즐겁다/씹는 것은 씹히는 것보다 행복하다>. 아아- 이제 섹시하기까지 하는군요.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서 첫사랑을 떠올렸군요. ‘한꺼번에 와르르 안겨오는 내밀한 충일充溢’을 느끼셨군요. 6학년 3반(63살)인데도 오직 ‘순정純情의 남자’이기에 우러나온 정서情緖일 것입니다.
솔직히 이런 글이 시이고,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요? 하여 바로 “고마워. 내일 새벽 글감을 줘서. 그리고 일흔 살때쯤 이런 운문을 모아서 시집 한 권 내셔”라고 댓글을 보냈습니다. 실실 웃으며 말을 더듬는, 겸손해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나의 졸문을 보고 이런 운문(세번째 사진)을 쓰고 보내오겠습니까? 상당히 놀랐습니다. 재야의 고수입니다. 그래서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했겠지요. 옥수수를 많이 못사줘 미안하다는 친구는 지금도 ‘현역’입니다. 명예퇴직한 선생님 아내는 순박하고 온화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남편에 그 아내라는 말처럼요. 어렵게 얻은 외아들과 평범하게 사는 그 친구가 연전에 ‘송구스러운 기록을 염치 불구하고 보낸다’ 면서 『이생이와 을동댁-양촌 육남매의 사부곡思父曲』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 권 보내왔습니다. 세상에 뭐 이런 말이 있습니까? 처갓집 육남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가족문집인데, 거의 다 읽어보고 ‘한 감동’했습니다. 물론 사위인 그 친구의 글도 보석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글은 첫째 진솔해야 해야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잘 쓰고 못쓰고는 그 다음 문제라는 게 나의 지론입니다. 역사는 미시사든 거시사든 기록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개인, 한 가족의 기록도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떠오르는 친구가 있어 좋습니다. 만나도 별 말이 없고(재미가 없다는 뜻), 더구나 ‘술을 마시고 싶은 때는 한번도 없는데, 마지 못해 한두 잔 한다’는 친구인데도 말입니다. 하하, 이렇게 글감을 주는 친구가 있어 좋은 아침입니다.
첫댓글 옥수수 시 모두 압권일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