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기자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기자는 온 국민들이 취재활동을 벌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언론사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그 언론사에 소속돼 취재를 행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국민들을 대신해서 취재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집단은 특별한 사유없이는 취재활동을 제약하거나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 언론사가 제대로 된 언론사인가 여부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입니다. 겉만 언론사일 경우 견디지 못하고 도태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언론사 기자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들의 궁금한 점을 취재하고 국민들이 위해를 받는 사항과 불이익을 받는 것을 취재해 알림으로써 국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또한 권력을 견제하는 조직이자 무관의 제왕이라는 칭호도 얻고 있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자신은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때문일 것입니다. 권력을 견제하기에 권력기관들이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 그런 언론인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잘 알 수는 없고 기자가 아닌 기레기들이 활개치는 세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나라에 제대로 언론인의 의무와 맡은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한편 신기하기도 합니다.
권력 기관에서는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치적이나 정책을 홍보해 주기를 바라지만 제대로 된 언론인들은 취사선택 그리고 제대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할 경우 날카로운 지적을 펴는 것은 당연합니다. 기자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국민들을 위해서입니다. 권력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도구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라는 이유가 그런데 있습니다. 국민들은 기자들이 제 역할을 다할때는 박수를 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기레기라며 경멸의 시선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에 대통령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발언은 대단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황 수석이 그런 이야기를 했으리라고 쉽게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황 수석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식사 자리를 가진 자리에서 최근 여러 현안에 대해 언급하던 중 자신의 군대시절 이야기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MBC는 잘 들어" 라고 한 뒤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습니다. 황 수석이 언급한 사건은 1988년 8월 6일 아침에 당시 중앙일보의 자매지인 중앙경제신문소속 사회부장이었던 오흥근 기자가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당한 일로 회칼을 사용한 공격에 큰 부상을 입은 사건입니다. 수사결과 육군정보사령부 소속 요원들이 벌인 한국의 국군정보사령부의 대표적인 흑역사이자 국내 불법 공작 사례 가운데 특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입니다. 아직도 사건의 전말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당시 오흥근 기자는 전두환의 군사정권 때부터 사회에 만연한 군사적인 문화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다수 보도해 왔는데 그 이유로 군부에서는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당 칼럼이 게재된 이후 오흥근 기자는 신원 불명의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살해 협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해 8월호에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을 추가로 게재하자 신문사로 항의 편지가 오거나 오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등 대놓고 신변에 큰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듣기도 말하기도 섬뜩한 정보사 회칼 테러 사건을 현 대통령실 황상무 수석은 언급하면서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를 썼던 것이 문제가 됐다는 취지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믿기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니 지금이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대명천지에 예전 그렇게 지탄을 받았던 언론인 테러사건을 언급한 것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황 수석은 지금 자신이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청와대 수석자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이 됩니다.
MBC는 현 정권 들어 여러가지 보도를 놓고 대통령실 그리고 정부와 마찰을 빚었습니다. 미국 순방과정에서 불거진 대통령의 멘트 파문을 보도한 MBC를 왜곡 편파방송이라며 고소 고발하고 회사로 집단 항의방문하기도 했습니다. MBC는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로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이종섭 전 국방장관 출국 금지 조치 그리고 호주대사 임명 그리고 돌연 호주 출국 등을 MBC가 특종보도하자 MBC와의 관계는 더욱 날카롭게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기자단과의 식사자리가 있었고 여기에 참석한 황 수석이 이런 발언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이 참석했던 기자들이 왜 MBC에게 잘 들으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황 수석은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했고 회사에 정보보고하지 말하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그 배후가 있다고 의심이 생길 순 있지"라며 북한 개입 가능성을 내비췄지만 그 발언 경위에 대한 질문에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한 차원이라며 농담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인물이 자신의 언급 내용을 놓고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묻자 그냥 농담이라고 해버리는 그 자세가 도대체 책임있는 자리의 인물이 가져야 할 태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황 수석은 MBC의 보도가 정말 허무맹랑하고 그야 말로 오보라면 정식으로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고발하면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통령 멘트 파문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생략한 채 과거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그 언론인 테러사건을 운운한 것은 너무도 부끄럽고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마음에 안들면 그런 테러를 행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들립니다. 황 수석 자신도 언론인 출신이자 한때 같은 직종의 방송사 기자였으면서 지금 자리가 바뀌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느껴집니다. 황상무 수석이 최근 고된 일과로 잠시 평상심을 잃고 마음의 평정을 놓쳐 평소와 다른 소리를 했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심정에 한때 잠시 같은 회사에 있었던 사람이 한마디 하는 것입니다.
2024년 3월 1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