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도와 나의 삼다가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마음부터 먼저 닿는 곳이 있다. 그곳이 제주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 섬을
‘삼다도’라 불렀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은 땅. 많다는 것은 때로는 넘침이 아니라, 오래 쌓인 시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의 돌은 단단하면서도 비어 있다. 화산이 남긴 흔적인 현무암은 곳곳이 구멍으로 숨 쉬고 있다. 비가 내리
면 물은 그 돌 틈을 따라 천천히 스며든다. 급히 흐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씻어낸다.
그렇게 걸러진 물은 마침내 맑아져 땅속 깊은 곳을 지나 바다 가까이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견딘 끝에야 모습을 드러내는 물. 제주의 돌은 묵묵히 그 시간을 품고 있다.
바람은 그 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제주에서는 바람이 계절을 대신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스치고, 때로는 몸을
밀어낼 듯 거세게 분다. 태풍이 아니어도, 바람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인다. 해안가에 서 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쉼 없이 돌며 바람을 품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붙잡아
삶의 에너지로 바꾸는 일. 바람은 그렇게 제주의 일상이 된다.
여자 또한 제주의 이야기 속에 오래 머문다. 한때 그 섬에는 여자가 많았다. 바다로 나간 남자들이 돌아오지 못하
는 일이 잦았고, 또 많은 이들이 육지로 떠나갔다. 남겨진 자리에는 자연스레 여성들의 삶이 두텁게 쌓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야기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사람의 흐름이 바뀌면서, 삼다의 균형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 속에는 여전히 한 시대의 바람과 삶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에게도 ‘삼다가’가 있지 않을까.
우리 집에는 유난히 많은 것들이 있다. 먼저 술병이다. 다 마신 병조차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병마다 담겨 있던 시간
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의 대화, 어떤 밤의 기분, 혼자였던 순간과 함께였던 시간이 병의 유리벽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카르페 디엠’이라 적힌 와인병 하나는 그 이름처럼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듯 찬장 속에 조용히 서
있다. 빈 병을 들여다보면, 이미 사라진 맛보다 그때의 공기가 먼저 떠오른다.
책들도 마찬가지다. 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스며 있다. 서재에 들어서면 나는 늘 그 안에 갇히면서도 동시에 풀려
난다. 책장 사이에 앉아 글을 읽고, 또 글을 쓰다 보면 바깥의 시간은 멀어지고, 오직 나만의 흐름이 흐른다. 그 고요 속
에서 나는 세상과 조금 떨어진 채, 더 깊이 연결된다. 책은 나를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나에게로 돌려보낸다.
서재 한켠에는 그림엽서들이 모여 있다. 여행지에서, 배 위에서,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 하나둘 모아온 것들이다. 손바닥만
한 종이지만 그 안에는 그때의 빛과 हवा, 그리고 나의 발걸음이 담겨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엽서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도둑은 그것을 값나가는 물건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날 나는 물건이 아니
라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사라진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던 나의 순간들이었다.
제주의 삼다가 자연이 만든 풍경이라면, 나의 삼다가는 시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돌이 물을 품고, 바람이 섬을 스치고, 사람
이 삶을 남기듯, 나의 술병과 책과 엽서는 나를 스쳐간 시간들을 고요히 붙잡고 있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삼다가’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많음 속에서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이루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