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조명이 멋드러지게 비추는 Bar.
파란 조명과 대조되는 적나라한 붉은 색의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다.
잔에 들어있는 와인들이 출렁이며 여인의 입속으로 들어갈 때 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여럿이 여인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애워싼다.
그러면 여인은 잔을 테이블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도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표정을 남자들에게 지어보인다.
체격이 보통체격을 훨씬 넘어서는 그들과 달리 약간은 왜소해보이는 사내가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낸다.
"민초희씨,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남자의 말에 초희는 조소를 흘리더니 우아하게 일어선다.
"후후.. 회장님께 전하세요.
전 그런 취미 없다고. 그럼 알아들으실 것 같네요.
요즘 노인네들은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니까."
초희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사내와 초희를 지켜보고 있던 사내들이 분개한 듯 초희를 막아선다.
아마 자신이 모시는 분을 깎아 내리는 듯한 발언이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니라..
"진정들 하세요."
남자는 그런 그들을 진정시킨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간다.
"절대 초희씨에게 불리한 조건이 아닐텐데요."
"후.. 정재훈씨. 전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고 싶지 않아요"
초희는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밝힌 뒤 도도하게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며 Bar를 빠져나온다.
그곳을 빠져 나온 그녀의 얼굴은 승리의 미소가 번져있다고나 할까.
그리고는 재빠르게 휴대폰의 번호를 눌러나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폰 저너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앳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으하하하하"
Bar에서와는 달리 우왁스러운 웃음 소리를 지어내는 초희.
그녀는 여전희 구두굽 소리를 내며 방금 전과는 달리 우왁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지게 터벅터벅 걸으며 통화를 해 나간다.
Bar에서와는 정말 대조적인 그녀의 모습.
"잘 살아 계신가? 형씨!"
[휴- 또 너냐?]
"어허- '또'라니! 누님한테!
나와라. 나 지금 엄청 높은 곳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니까."
[됐네요. 이사람아- 불러서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너 저번에 그런 기분을 맛볼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서 불러놓고 어떻게 했냐!!
나한테 오바이트를 선물했잖냐!!]
남자의 목소리에서 정말 싫은 기억임을 사뭇 느끼게 해준다.
그런 남자를 아는지 초희는 막무가내로
"웃기지마! 난 두 말 안해!
음.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냐면요~~
오! 저기가 좋겠네! 우리 자주가는 포장마차 알지? 골뱅이 무침 예술인 곳!
그리로 오세요~ 서.방.님~ 후후"
약속을 성립해 버린다.
그리곤 재빨리 폴더를 닫아버리는 초희.
그녀의 얼굴에서 다시한번 승리의 미소가 번지고 그녀는 총총 걸음으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선다.
**
"아줌마~ 늘 시키던걸로요!!!!!"
우렁찬 초희의 목소리.
그녀의 목소리에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 들고있던 그릇을 놓칠뻔 했다.
뭐, 이런 일도 한두번이랴.
이제는 익숙해진 아주머니가 붉은 빛깔이 감도는 골뱅이 무침을 초희가 자리한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다.
"참내- 그런 옷을 입고 이런델 오믄 쓰나!!
클럽이라도 가서 남자좀 꼬셔야지 않커써?"
"에이- 아줌마도 참!!
저 그런데 가면 남자들이 끊임없이 들러붙어서 안되요~ 알믄서!! "
이곳의 단골 손님답게 아주머니와 터울없이 지내는 초희.
그런 초희를 딸처럼 생각하는 아주머니.
그들이 이야기 꽃을 피워갈 때 쯤 방울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선다.
들어선 남자를 알아보고 손을 번쩍들어 반가움을 표현하는 초희.
"여~"
"야야야야! 너 옷차림이.. 아유.. 그냥!
날 잡아다 드슈~라고 광고를 하지 그러냐?"
초희의 야시시한 옷차림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수혁.
그는 초희와 고등학교 2학년 때 알게된 친구로 5년지기 친구이다.
"와- 벌써 시켰냐?
오- 아줌마 안녕하세요~
귀염둥이 혁이 왔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를 알아보는 수혁이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 역시 그런 수혁의 인사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후후- 그려. 우리 혁이 왔구만!"
"쿡- 잘 지내셨죠?"
"잘 지내긴! 사흘 전에도 와놓구서!"
"사흘 동안 아주머니 못봐서 얼마나 보고싶었다구요!"
"옛끼 아부는!"
"에이- 저만 따돌릴거에요? 다들!
아줌마 빨리 일이나 해요! 저기 저 손님 잔뜩 꼴아서 아줌마 노려보고 있잖아요!"
초희의 뾰로퉁한 표정에 수혁과 아주머니는 큰소리로 웃는다.
그리고 수혁은 초희를 마주하여 자리에 앉고 아주머니는 초희가 말한 손님의 주문을 받으로 다른 자리를 떠난다.
"야. 암만 곱게 바라보려 했지만! 그 옷은 쫌 너무했지 싶다!"
수혁의 초희의 옷차림을 여전희 못마땅한 눈길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됐어- 신경꺼-
그보다! 이 누님이 말이지! 크크
너 들으면 아주 환장할거다"
"예예- 말씀해 보십쇼! 초희님!"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수혁.
그런 수혁의 반응에 노려보는가 싶더니 다시 환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어나간다.
"크크크- 너도 알거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대성그룹 알지?
그 대성그룹 강성재 회장이 말야! 나한테 제의를 했는데!
그것을 내가 뻐엉~ 차버렸다는거 아니냐!!
크하하하- 나같이 대단한 인간이 또 있을가?"
"아아- 대성그..! 에엑- 대성그룹 회장님?!
그 회장님이 너에게 무슨 제의를!!"
"크크- 들음 놀랄거야!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초희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포장마차 안에 쩌렁쩌렁 울리고.
그 웃음을 잠재우려는 듯 초희의 폰이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한다.
"아씨- 한창 좋은데! 여보세요?"
[민초희씨! 정재훈입니다.]
앗! 싶은 초희가 도도하게 다리를 꼬더니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목소리를 다듬는다.
"흠.. 무슨일이죠? 그 얘긴 끝난 걸로 아는데."
[회장님이 다른 조건을 내셨습니다.
회장님의 재산모두 민초희씨에게 상속하기로 말이죠.]
재훈의 말에 벙쪄버린 초희는 아무 말도 못한채 멍하니 폰을 귀에 갖다 대고 있을 뿐이다.
그 순간 포장마차 안은 고요해진다.
도데체 대성그룹 강회장의 제안이 뭐였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