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험록..
1930년 무렵이다. 우리나라 한학문장으로 이름을 떨친이가 여러분이 계셨는데 바로 무정 정만조, 화정 여규형, 매하 최영연 선생 같은 분이다. 이 가운데 매하 최영연선생은 한시를 잘 짓는 시인으로 유명한 분인데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스님네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나청하스님과 친분이 두터워서 뚝섬 건너 봉은사에 자주 나와서 시를 짓고 약주가 취하여 얼큰하면 뚝섬 강가에서 놀잇배를 사서 타고 물결을 쫓아 오르락 내리락하며 풍류을 즐겼다.
나는 그 분에게 한시짓는 법을 배우느라고 자주자주 만나서 담화를 한적이 있었는데 어느 때 나는 선생에게 묻되, 선생은 유학자로서 어떻한 인연으로 불교를 믿게 되었습니까? 하고 불교 입신의 동기를 물었더니, 내가 관세음보살님의 아들인데 어찌 불교를 믿지 않겠소? 한다.
나는 의아하여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관세음보살을 어머니같이 믿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자당(어머니)께서 관세음보살에게 빌어서 선생을 나으셨다는 말씀입니까?
하였더니, 대은(저자)이 그렇게 궁금하게 여긴다면 내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겠소. 나는 선친께서 일찌기 불교를 독신하는 불자로서 1년이면 몇차례씩 서울 세검정 에 소림사라는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리고 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때 무슨 생각이 드셨던지, 글 잘 하는 문장이라는 이를 후세에 전하고 아들 하나를 낳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다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점잖은 중년부인이 옥으로 깎아 만든 옥동자 하나와 돌로 깎아 만든 석동자 하나를 들어 보이면서 이 옥동자를 가겠느냐 석동자를 가지겠느냐 하였다.
그래서 꿈속이지만 석동자보다 옥동자를 구함이 낫기때문에 옥동자를 주십시오 하였더니 그 부인은 너에게 이 옥동자를 과분하니 이 석동자를 받아 가거라 하였다.
그러나 선친께서 천하에 이름이 높은 대문장의 아들을 하나 낳으려고 하는데 이 석동자가 그런 문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즉, 염려 마라. 이 석동자도 명망이 있는 문장이 될것이다. 하고 부인은 안개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석동자를 받기는 받았으나 옥동자만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깨고 보니 꿈이었다. 그 달부터 선비에게 태기가 있어 나를 낳게 되었는데 내 모양이 꿈에 받은 석동자를 같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낳았지만 나를 세상으로 보낸것은 관세음보살이 아니겠소.
그래서 나는 관세음보살을 생모나 친모같이 믿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불교를 독신하게 된것이오 한다.
이것을 보면 선생은 관세음보살이 점지하여 준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관음상을 보면 애기를 안고 있는 송자관음이 있으니 이 송자관음은 누구든지 보살에게 생남생녀를 의하여 기원하면 자보子寶를 보내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생남생녀를 의하여 기도하는 것도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는것이라고 하였다.
서울이나 시골을 다니면서 보면 부처님께서 기도를 하여 귀한 자식을 낳는 사람이 고금에 허다하거니와 예를 들면 왕가로서 순조대왕도 삼각산 금선암에서 기도하고 낳은 분이요,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도 북한산의 문수암에서 기도하고 낳았다고 하여 문수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다. -대은스님의 글에서-
*나의 꿈, 나의 해몽법..
꿈은 누구라도 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이 잘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문제다.
요는 꿈이 아무리 흉몽이라도 해몽여하에 달렸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에 임금님이 꿈을 꾸었다. 온 천하 산들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다 말랐다고 한다. 임금님이 이런 꿈을 꾸고 생각하여 보았다.
이것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혼자서 생각할 수가 없어서 여러 대신들에게 이 꿈을 해몽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 꿈을 해몽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 잘못 해몽하다가는 하루 아침에 목이 달아날까봐 모두들 겁이 나서 임금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 때 마침 지나가던 노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대궐을 찾아가 자기가 해몽하겠다고 임금님 앞에 나섰다. "임금님께서 꾼 그 꿈은 대단한 길몽입니다. 즉, 산이 무너지니 온 천하가 태평할 것이오, 바닷물이 다 말랐으니 용의 아들을 볼것이니 임금님께서 태자를 볼 길몽인줄 아뢰오." 하고 임금님은 노승의 해몽을 듣고 좋아라고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몇해 전까지도 꿈을 꾸면 잘 맞았다. 내 생각엔 잘 맞는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25년 전 일이다.
내가 신문사에 문학작품 한편을 보냈는데 그것이 발표되기 하루 전날 이런 꿈을 꾸었다.
여러 아이들과 같이 나는 연을 날렸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 중에서 내 연이 제일 높이 올라갔다가 줄이 끊어져 하늘 높이 더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나는 혼자 이렇게 해몽하였다. 내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갔으니 만인이 다 우러러 보는 꿈이다.
나는 그 문학작품이 당첨되리라고 해석했다. 그 다음날 신문사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또 어릴적에 서당에 다녔다. 꿈에 고전적인 것이 보이거나 서당방 선생님이 보이거나 글을 쓰거나 하면 반드시 이튿날 원고 청탁이 오거나 원고료가 들어오거나 작품전시가 들어오거나 하였다. 나는 이런 꿈만 꾸면 백프로 맞았다.
그런데 1.4후퇴 때 나는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갔다가 그곳 국민병교육대에 입영하려고 신청서를 냈더니 나이 제한에 걸려 입영하지 못하고 부산으로 건너왔다. 그 당시 부산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분도 없었다. 다만 1.4후퇴때 헤어진 김영일 형을 만날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형을 찾다 찾을 수가 없어 지금의 세벗사(출판사)에 찾아가 김영일 형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때 나는 꿈을 꾸었는데 내가 어릴 때 다니던 서당 앞마당에서 총천연색으로 된 돌부처님이 마당 가운데 있었다. 너무 아름답고 화려하여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나에게 활을 쏘았다. 두개의 화살이 머리에 꽂혀 피가 났다. 나는 꿈에도 겁이나서 피가 흐르는 머리를 붙잡고 뒷집으로 달려가면서 된장을 발라달라고 소리치다가 깨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꿈치고는 보통꿈이 아닌것 같았다. 그날은 어디로 나가지도 않고 하숙방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다음 날 11시 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경종아!' 나는 누군가 하고 창문을 내다보았다. 내가 찾던 영일이 형이었다.
나는 반가워 '김형!'하면서 맨발로 달려 나갔다. 김형은 세벗사에서 보낸 편지를 들고 나를 찾았다. 우리는 수십년 만에 서로 만났고 친구인 소천이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꿈에 맞은 화살 두개가 영일이 형과 소천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 형을 만난것은 부처님 덕이라고 새삼 생각하였다. -박경종님의 글에서-
첫댓글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감사합니다_()_()_()_
성불 하세요...감사히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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