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노래 가사도 있는 줄 압니다. 옛날에 ‘로맨스그레이’ 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할 때는 대충 서로 비슷한 연령대에서 일어나는 연애입니다. 그러나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남녀 사이에 생기는 나이 차입니다. 그것도 여태 알고 있던 상식과는 매우 다른 격차로 인하여 놀라움을 일으킵니다. 일반적인 차이 - 남자가 여자보다 연상인 경우는 그 차이가 좀 심하게 벌어져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인데 그 격차까지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60이 넘은 할머니(?)가 손자뻘 되는 애인과 함께 등장한 이야기가 해외토픽에 나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니 여교사가 고등학생과 연애하는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 미성년이라는 문제만 뺀다면 말이지요.
사랑에 국경이 없어진 것은 이미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이고 이제는 나이도 초월하여 생깁니다. 그것도 남녀가 구분 없이 말입니다. 어느 쪽이 얼마나 더 많은지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기야 그들 개인사이니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일은 아닙니다. 젊은 애인을 두지 못한 노인들의 시기심 정도로 넘어가는 일입니다. 어쩌면 연애도 능력이지요. 자기가 못한다고 남을 탓할 일도 간섭할 일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인생이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비판할 일은 아닙니다. 물론 부럽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면 더 늙기 전에 기회를 창출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압니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연애 감정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성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한편에서만 애태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위 짝사랑이지요. 한쪽은 맹한데 다른 한쪽만 홀로 불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지요. 그렇다고 그것을 옆에서 도울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전적으로 사적인 감정이니 말입니다. 대신해줄 수도, 만들어줄 수도, 나아가 도와주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그저 위로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옆에서 속이 타도 그 사이에 껴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안쓰럽고 안타깝지만 달려들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연애입니다.
‘샌디’ : 3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섹시한 엄마. 두 아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삶의 현장을 누비고 있는 이혼녀. 전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맘속에 스며있습니다. 여태 감정 한 번 드러내보지도 못하고 꾹 누르고 살아왔습니다. 아이들과 살기 위해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 했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을 돌봐줄 내니(유모)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찾아낸 내니가 스물다섯의 괜찮은 청년입니다. 조그만 카페에서 서빙하던 젊은이인데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심리치료소에서 또 만나게 됩니다.
‘애럼’ : 대학까지 나와서 창창한 미래를 다져야 할 때인데 기껏 카페에서 서빙이나 하고 지냅니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생겨서 갔는데 심리상담소 같습니다. 분노에 찬 내담자들의 분노폭발 상대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맘껏 욕설도 들어주고 나아가 폭력까지 당해주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서 샌디의 상대가 되어줍니다. 샌디는 여태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맘껏 폭발시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샌디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내니가 됩니다. 애럼의 부모는 잘난 아들이 취업은 하지 않고 기껏 남의 애나 돌보는 일을 하다니 속상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아들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일이니 맘만 상합니다.
샌디의 친구는 샌디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연애도 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남자를 소개해주는데, 글쎄 돈은 있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사지는 못합니다. 애럼의 친구는 아이들 돌보는 일에 빠진 친구가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아이들 엄마를 보고는 입을 다뭅니다. 괜찮은데,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이루어질 사랑일까 하는 의심은 들겠지요. 물론 애럼도 이혼 경험이 있습니다. 전혀 의도치 않은 사고입니다. 불법이민자가 시민권을 얻으려 애럼을 이용하려던 일이었습니다. 마음 착한 애럼이 상대방 처지가 딱해서 그것을 냉정하게 끊지를 못하였습니다. 아픈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샌디가 정상 임신을 했다면 두 사람이 결혼까지 했을까? 아이들도 애럼을 좋아하고 두 사람이 좋아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샌디는 자신의 실수 때문이라고 자책합니다. 아마도 한참 젊은 애럼의 장래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연애는 가능하지만 결혼까지는 아니라고 이미 작심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다행히(?) 불행히(?)도 자궁 외 임신이 되어 산모의 생명을 위해 낙태를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져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5년의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다니던 식당에서 우연히 다시 만납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삶의 자리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반가움과 기쁨을 나눕니다. 영화 ‘사랑은 언제나 진행중’(The Rebound)를 보았습니다. 2009년 작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