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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67주년 아침에 우리 모두가 슴속 깊이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자 준엄한 경고!
Ⅰ. 경계해야 할 내부의 적 [6.25특별시론] written by. 박세환
평화는 오직 평화를 누릴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간다. 전쟁은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만을 피해간다.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은 내부의 적이다. 이러한 내부의 적들이 자유와 민주의 가면을 쓰고 이 땅에서 활개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를 통털어 보면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수많은 나라는 대부분 내부의 적에 의해 멸망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다.
그렇다. 만주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 대제국은 왕자들의 권력다툼으로 망했다. 조선조 500년의 역사는 당파싸움이라는 내부의 적에 의해 막을 내렸다. 만리장성을 쌓았던 진나라도 결국은 후계를 둘러싼 내분으로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는가?
오늘은 6·25전쟁 67주년이 되는 날이다. 동작동 국립묘지에 누워 계시는 전몰용사는 오늘 아침 우리들에게 뭐라고 하실까 ? ‘제2의 6·25전쟁을 막아 달라. 다시는 수백만 민족이 전란의 피해자가 되고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는 일은 없게 해 달라’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애국선열들의 준엄한 요청에 순응하는 길은 무엇인가? 바로 내부의 적을 척결해야 한다. 우리 안보에 구멍을 내고 국민들의 안보 경각심을 흐트러뜨리는 내부의 적 제1호는 맹목적인 친북 반미세력이다. 이들은 입만 열면 ‘국방비를 감축하라! 복무기간을 단축하라! 해외파병 반대한다! 미군 물러가라!’고 외친다. 사드 반대를 외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 모두가 우리의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군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민들 간에 갈등과 혼란을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잠꼬대로 몰아세웠던 평화주의자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보따리를 싸 도망갔다.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나면 과연 친북 반미세력들은 어디에 가 있을까? 사드반대세력들은 어디에 가있을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내부의 적은 평화지상주의다. 도대체 평화를 싫어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평화를 노래하는 사람에게 결코 평화는 찾아가지 않았고,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하여 전쟁이 피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평화는 오직 평화를 누릴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간다. 전쟁은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만을 피해간다.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일으킨 게 아니라 유럽의 평화주의자들이 불러들인 것이다.” 처칠은 이렇게 통탄했다.
6·25전쟁 67주년 아침에 우리 모두가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자 준엄한 경고다.
Ⅱ. 채명신 사령관 Vs 성주주민 systemclub 지만원 대표
채명신 사령관이 마지막으로 택하신 길은 우리나라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표상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그는 8평짜리 장군 묘를 버리고, 1평짜리 병사들과 함께 누워있다 . 이역만리 상하의 뜨거운 전쟁환경에서 그와 함께 세기에 빛나는 한국군 전쟁사를 창조했던 전우들 곁으로 간 것이다. 그리로 가면서 “나 여기 묻히노라” 따위의 생색을 내지 않았다.
평소 그가 보여준 언행들을 가장 잘 반영하기 위해 나는 그의 표지석에 그가 병사들에게 바치고 싶은 말씀을 정리했다, 여러 날 여러 개의 글을 쓰고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글이 바로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는 짧은 글이다.
평소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옛 전우들에 봉사하고 가신 분이 가장 함축성 있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을 것이다. 장례 행사에서 설교와 기도를 맡았던 특전사령부 군목인 모 중령은 이 한 마디의 말씀이 양서 수백권을 대표하는 말씀이라고 극찬을 했다.. 없는 업적도 있는 것처럼 조작하고, 조그만 명분도 크게 부풀려 생색을 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행태인데, 이 말씀에는 “내가 없다”는 것이다.
영문 번역은 영문 전문가이자 채명신 장군을 마지막까지 자발적으로 보좌한 정재성(stallon) 전우가 했다. "Because you soldiers rest here, our country stands tall with pride.".
그리고 이 표지석을 마련하기 위해 정재성 전우가 많은 고생을 하였다. 기술자를 찾는 데에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많은 고생을 거쳐서야 비로소 만족할만한 작품을 완성해 오늘과 같은 명품을 설치하게 되었다.
한 개라도 더 챙기고자 하는 세상에서 채명신 사령관이 보여준 무욕의 길과 부하사랑의 길은 분명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마구 파먹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아는 개돼지들이 우글거리는 이 사회에는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멋과 아름다움과 신선함에 감동하지 않는 이리떼 사회, 소돔과 고모라성도 이처럼 더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와 함께 이역만리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장병들의 삶과 그들이 남겨준 유산에 대해 성주사람들은 잠시나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전사한 병사들은 누구이고, 참외 장사 안된다 나랏돈 받아내려는 성주 사람들은 누구인가?
Ⅲ. 6.25전쟁과 54,000여 미군 전사자들 6·25전쟁 67주년 아침에 다시 떠오르는 감동의 6.25 실화 , 前 TBC-T<이정웅>씨의 글" ‘밴프리트 장군과 클라크 장군’
이 편지는 워커 장군의 후임이었던 릿지웨이 장군이 맥아더 장군이 해임됨에 따라 UN군 총사령관으로 영전한 뒤, 그 후임으로 부임한 밴프리트 미 8군 사령관의 아들 지미 밴프리트 2세 공군 중위가 이제 막 해외근무를 마쳤음으로 한국전에 참여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해서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있는 한국전에 참여하면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편지였다. 1952년 4월 2일. 이 훌륭한 군인은 압록강 남쪽의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새벽 세시 김포 비행단의 레이더와 접촉한 후 표적을 향해서 날아가더니 레이더에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겼다.
즉시 수색작전이 시작된 것은 물론 이다. 4월 4일 아침 10시 30분. 8군 사령관 밴프리트는 미 제5공군 사령관 에베레스트 장군으로부터 지미 밴프리트 2세 중위가 폭격 비행 중 실종되었고 지금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지미 밴프리트 2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즉시 중단하라.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무모하다.”라고 아버지가 아들 구출작전을 무모하다고 중지시킨 것이다.
이것은 인접 한국군 부대장으로서 회의에 참석했던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증언이다. 며칠 뒤 부활절을 맞아 그는 전선에서 실종된 미군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말한 벗이 곧 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밴프리트 미 8군 사령관은 한국을 벗이라고 생각했고, 그 벗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킨 것이었다. 이런 강직하기 짝이 없는 군인 앞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놀라운 부탁을 하였다. 1952년 12월, 대통령 당선자인 노르만디의 영웅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한국 전선을 살피기 위해 방한하여 8군사령부를 찾은 것이었다.
8군과 한국군의 고위 장군들과 참모들이 모두 참석하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밴프리트 사령관이 전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끝내자 조용히 듣고 있던 차기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느닷없는 질문을 하였다.
“장군, 내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 안 있어 대통령에 취임할 당선자가 전투사령관에 대한 첫 질문 치고는 너무나 대통령답지 않은 사적인 질문이기도 했지만, 상대가 아들을 잃고도 꿈쩍하지 않은 밴프리트였기에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전방의 미 제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밴프리트 장군이 사무적으로 짤막하게 대답하자 아이젠하워는 그야말로 참석자 모두가 놀라 나자빠질 사적인 부탁을 공공연히 했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부대로 배치시켜 주시오.” 참석자들이 모두 서로 두리번거리면서 웅성거리고 밴프리트 사령관도 언짢은 표정으로 아이젠하워를 응시하면서 의아해 하자 당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내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프지만 나는 그것을 가문의 영예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입니다. 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령관이 잘 알다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나와 미국에게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령관이 즉시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실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순식간에 두리번거리면서 의아해 하던 분위기가 반전되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표정이 되고 곧이어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각하!”라는 밴프리트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미 2사단 72탱크 대대의 대대장 T.R. Fehrenbach 중령이 전역 후 쓴 'This kind of war(한국 전쟁)' 이라는 책에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페렌바하는 전역 후 유명한 역사 저술가와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마지막 UN군 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 클라크 대위도 금화지구의 저격능선에서 중대장으로 싸우다가 세 번에 걸친 부상으로 전역을 했으나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 그 중 35명이 전사하였다. 한국전에서의 미군 전사자는 모두 54,000여명,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하여 사령관이 전사하고 사단장이 포로가 되며 자기 자식들마저 참전시켜 전사를 당하게 하는 장군들과, 남의 나라 전쟁에 54,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꿈쩍않는 국민을 둔 위대한 미국,
끔찍히도 자식들을 사랑하여 거대한 재산을 물려주려고 온갖 부정을 일삼던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과, 어떻게든 자식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벼슬깨나 하고 돈깨나 있다는 고위층 사람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역을 면제받으려고 온갖 꾀를 다 쓰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를 누리고, 두 명의 소녀가 미군 작전 훈련중에 사고로 죽었다고 미국 물러가라며 몇달 동안 촛불시위로 온 나라를 소란케 하는 국민을 가진 한국..
과연 어느 나라 아버지가 훌륭한 아버지이고 어느 국민이 더 훌륭한 국민인가? 어느 나라 국민이 더 애국하는 국민인가?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미워하고 반대해야 하며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은혜란 무엇이고 신의와 도리가 무엇이며 애국이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입은 은혜를 갚고 신의와 도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애국하고 있는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 사진은 1953년 미 2사단 사단장 제임스 밴 브리트 장군, 백선엽 참모 총장, 8군 사령관 맥스윌 테일러 장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
Ⅳ.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인 더글라스 던컨의 작품, 6.25 한국전쟁 라이프지에 소개
중공군 개입으로 미군이 퇴각하던 당시 사진들이라, 병사들 얼굴은 어둡고 ![]() 프란시스 펜턴 해병대 대위가 중대에 탄약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 지프차가 지뢰를 밟고 터지면서 부상을 입은 병사. 함께 탔던 동료가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더글라스 던컨이 한국 전쟁 때 찍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한 사진. 서울 시내를 진격하는 미군 탱크, 그 아래 긴급히 피신하는 서울 시민들이 보인다. 탱크가 진격하고 있는 방향 건너편에서 북한군이 총격을 가하고 있다 ![]() 중공군 공격에 퇴각하고 있는 미 해병대 병사들 ![]() 해병대원들이 전사한 동료들 옆을 지나 행군하고 있다 ![]() 지친 병사가 잠깐 잠을 청하는 동안, 강아지가 애처롭게 주인을 바라보고 있다 ![]() 서울 시가전 ![]() ![]() ![]() 중공군 남하로 퇴각하고 있는 미 해병대 ![]() 적군 시신을 지나 돌진하고 있는 해병대원 ![]() 부상당한 병사가 후송되고 있다 ![]() 적의 공격에 맞서 진지를 사수 중이던 레오나드 헤이워스 상병이 탄약이 떨어졌다 ▣ 대한민국의 기적 - 한국을 아십니까? Click! http://www.youtube.com/embed/TwxiTyc7IEk 한국전쟁사와 근대 , 출처 :소담 엔카 Ⅴ. < 성 명 서> 6.25전쟁 발발 67주년을 맞이하여! 67년 전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저 멀리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UN(유엔) 21개국, 194만 1000여명의 용사들이 전혀 모르는 나라, 한 번도 만나 본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참전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용산 ‘전쟁기념관’ 복도 벽에는 6.25 참전 16개국 전사자(戰死者)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그 위에는 가로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쓰여 있다.
《“우리나라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敬意(경의)를 표한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위 명문(名文)은 워싱턴에 있는 韓國戰 기념물에 새겨져 있는 글을 옮긴 것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위대한 결단을 내려 한국과 한국인을 살렸다. 南侵(남침) 보고를 받자마자 “그 개자식들을 막아야 한다”면서 참전을 결단했으며, 중공군이 38선 이남(以南)까지 밀려 내려와 주변에서 한반도 철수를 건의했을 때도 “미국은 곤경에 처한 친구를 버리는 나라가 아니다”고 선언했다. 소련의 지원에 의한 북한의 기습남침과 중공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한반도 공산화 직전상황에서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한 것은 바로 미국의 신속한 참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전쟁에서 戰死한 國軍장병은 13만 7899명이고, 美軍장병은 3만 7000여명에 달한다. 이러한 엄청난 인명피해가 북한의 남침에 의해 발생한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國軍장병들과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고 희생한 美軍 참전용사들에게 머리 숙여 애도와 경의를 표한다. 이분들의 희생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자유 대한민국의 번영을 있게 한 토대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행동본부는 다가올 통일 대한민국을 위해 앞으로도 꿋꿋하게 전진할 것이다. 마부위침 (磨斧爲針)의 심정으로 태극기가 평양의 하늘에 휘날리는 그날을 위해 미주동포, 韓美양국과 함께 할 것이다. 神의 은총이 자유세계를 수호해온 韓美동맹과 함께하길 기원하는 바이다. 한미동맹 만세 국민행동본부 2017년 6월
대한민국구국안보연합 / 대한민국ROTC救國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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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起하자 6.25 韓國戰爭 (1)
1950. 6. 18. 6.25 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6.25 공산군의 기습남침
1950.6.28 서울시내의 인민군
1950.6.28 서울시내의 인민군
유엔기를 수령하는 맥아더장군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남하하는 피난민 행열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철원 노동당사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1950.9.15 인천상륙작전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1950.9.15 인천상륙작전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1950. 9. 27.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서울 시가전
1950.9.28 중앙청에 태극기 계양하는 해병대용사들
1950. 9. 29. 태극기 펄럭이는 중앙청
이승만 대통령 과 맥아더 장군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북한군에 의해 대량 학살된 시신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한국여인 들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칼라로 된 韓國戰 동영상 이 자료는 한국전의 발발에서 부터
휴전까지의 역사적 자료를 담은 매우 귀중한 영상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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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이 끝날 때마다, 좌측상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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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노래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겨레
2 아 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빌어 모조리 쳐부숴 흘려온 갚진피의 원한을 풀으리.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 이겨레
3 아 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쫒기는 적의 무리 쫒고 또 쫒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 이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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