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어가 능통한 둘째 아들 덕에 오카나와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늘 꿈꾸는 일이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하지 못한 일이라 기대반 두려움 반이었다.
먼저 호텔과 비행기 그리고 도요타 렌터카를 예약했다.
새해 연휴기간을 이용해서 나선 길이었다.
물론 그 모든 일은 아들이 했다.
여행 첫날,
연휴 시작이라 행여 교통상황을 예측할 수 없어 오전 10시쯤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을 통과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걸려서
남은 시간 중 법무부 비자 통과 수속을 안해도 되는 자동 출국심사신청을 미리 해 두기로 했다.
지난 생일에 선물을 해준다던 남편이 면세점에서 시계 하나를 사 주었다.
여행 컨디션이 바로 쑥 올라가는 느낌?!
오후 4시 30분에 출발한 tway 항공은 저가 비행기라
기내식은 재료가 거의 수입산이었고, 식사도 삼각김밥에 간식을 주는 수준인 데다가 맛도 엉망이었다.
일본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그들의 경제를 도와 주기 싫어 가급적 쇼핑은 안하기로 했다.
비행기에 모니터도 없었고 피곤한 차에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지 눈 아래 바다와 논밭이 펼쳐지더니 도착이었다.
출발 전 검색한 기온은 섭씨 18도 정도였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서인지 제법 쌀쌀했다.
"오키나와 날씨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던 조카의 말 그대로인 듯했다.
남편의 옷이 너무 가볍게 준비 되었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두꺼운 가디건과 패딩 재킷이 있어 안도했다.
나야 언제나처럼 스카프가 여러장 이니까...
오키나와 공항은 작은 규모였고 몇 안되는 여행객도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느라 지쳐서
'우리나라 공항이 최고"
라는 느낌이 다시 들었다.
나하국제공항 문 앞에 나오니 도요타 렌터카 직원이 팻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졸졸 따라 렌터카 사무실까지 가는 버스에 탑승했는데
차 대여장소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사무실과 차고가 따로 붙어 있었다.
직원들은 친절하게 한국어 안내 책자들을 이것저것 챙겨 주고
우리는 좌측통행하는 일본의 자동차 즉,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승용차를 빌려 호텔을 찾아 나섰다.
놀랍게도 네비게이션에서 한국어 안내말이 흘러 나왔다.
호텔은 공항 근처에 있었고 세 사람이 잘 수 있도록 침대가 세 개 비치되어 있었다.
추가로 가져다 둔 침대는 조금 부실해 보여서 셋 중 가장 몸집이 작은 내가 쓰기로 했다.
짐을 풀고는 저녁 식사를 위해 국제시장 거리의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훨씬 편리하다기에 일인당 230엔을 주고 모노레일을 탔다.
역의 구간마다 가격이 달랐고 두 구간을 가는데 그 가격이었다.
국제거리엔 밤에 식당 호객꾼이 있었는데
늦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음식그림이 맛있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가 주문을 마쳤다.
작은 접시에 참치와 채소 세조각이 든 그릇 하나가 나왔다.
배 고픈 참에 들 뜬 기분으로 홀랑 집어 먹었다.
그것은 따로 주문하지 않고도 나오는 에피타이저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임을 식사후에 알았다.
아들은 '아차 당했다'라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게 일본 문화이니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을 듯...!
식사는 오끼나와 소바와 돈까스 , 그리고 초밥을 각자 시켜서 기분 좋게 먹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IT 강국이라는 일본답지 않게 카드결제가 느리고 예전 방식이라 놀랐다.
설상가상으로 카드가 기계에 끼어 드라이버에 니퍼까지 동원하고서야 겨우 마쳤다.
식사후에 걸어본 국제거리엔 자색 고구마타르트가 가게마다 특산물로 팔리고 있었고
작은 포도알처럼 생긴 샐러드도 포장해 팔았는데 맛은 짭짤한 해조류 맛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둘째는 소금 아이스크림을 먹어 봐야 한다고 하나를 사서 맛 보여주었다.
약간 찝질하지만 달콤하기론 다를 바 없었다.
모노레일로 다시 호텔에 돌아 오고나서 생각해보니 첫날 차를 렌터한 것은 낭비다.
우리도 블로그를 검색하고 도움을 받았기에 이것을 글로 남겨 둔다.
오후 비행기를 타거든 그 날만은 모노레일로~!
서둘러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날,
아침은 호텔의 부페로 해결했는데
대체로 들큰한 일본식이라 해조류 샐러드가 새콤한 게 유일하게 개운했다.
네모 쟁반에 아홉개의 칸이 나뉜 접시에 반찬류를 고루 담게 되어 있었다.
섬지방이니 음식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저녁에 잠 들기전 책임감 많은 둘째가 검색해 둔 옛 중성성터를 찾아 갔다.
차는 남편이 운전했다.
한가한 느낌이 든 조용한 성터 유적이었다.
성벽 너머 멀리 마을이 보이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언덕에 자리한 그곳은 한가했다.
성벽 여기저기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이곳저것을 기웃대며 돌아 다니자니
오키나와는 휴양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둘째에게 멋진 추억을 담은 사진을 남겨주고 싶어서 난 작가처럼 아이의 젊은 날을 기록했다.
점심은 편의점에서 사서 먹어 보기로해서 스파게티 종류를 셋이서 샀는데
내 것은 엄청 느끼했다.
김초밥이나 햄버거를 살 걸 후회가 되었다.
해중 도로라는 곳을 다음 장소로 찾아 나섰는데
바다 밑으로 유리관이나 터널로 길이 나 있을 것이라는 상상과 달리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도로였다.
뭔지 이름에 속은 느낌이긴 했으나
주변의 바다색이 아름다워 위로를 받으며 육교 위에 올라 주변 감상을 하다보니
한 남자가 햇살과 바람에 취해 양지 바른 담 아래 누워 시간과 자연을 누리고 있었다.
쉼이란 바로 저런 것이겠구나 싶어 마음이 느긋해졌다.
해중도로휴게소의 기념품 가게에서 아주 싼 슬리퍼 하나를 사서 챙겼다.
만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다는 만좌모라는 바다분지의 절벽은
딱 제주도의 성산일출봉 같은 형태였지만 규모는 훨씬 작았다.
오키나와가 섬임을 증명하듯
맑고 푸른 태평양이 검푸르게, 하늘빛으로, 그리고 코발트빛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물색은 오키나와의 어느 바다건 참으로 고왔다.
이곳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느릿하게 걸어다녀도 금방 돌아 볼 수 있었지만
그 푸른 바다 풍경과 파도소리는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듯했다.
전 날 저녁 호텔 로비에서 만난 우리나라 여학생들에게 볼 만한 곳이 어디였느냐고 물었더니
몇 군데를 추천하며 하루 두 곳 정도를 돌아 다니면 좋다고 알려줬는데
쇼핑을 빼고 나니 네 곳도 무난했다.
내려오는 길에 유구촌, 일본어로 류큐무라라는 민속마을에 들렀다.
작고 아담한 마을은 구석구석 옛모습을 정갈하게 꾸며 놓았다.
옛집과 의상, 유리공예 도자기, 그곳의 먹거리등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전통적인 무예와 춤, 우유신, 미루꾸 신이 강복을 하기도 하는 공연도 했는데
앞에 앉았던 우리는 공연에 참가해서 춤도 추고 어울렸다.
위쪽에 그 마을의 특산품이라는 독사주를 파는 곳도 있었는데
독사를 보여주고 여러 종류의 뱀을 전시하고 있기도 했다.
아들은 독사를 몸에 감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저녁은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서 먹기로 했다.
다녀오신 분이 그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고 학생들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해가 질 무렵 네온이 반짝거리는 아메리칸 빌리지에 들어 서니
마치 이태원 거리처럼 옷가게와 음식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섰다.
옷의 수준은 우리 나라보다 나을 게 없어 가게를 여기저기 기웃대며 돌아다니며 이국의 맛만 느꼈다.
한 모자가게에서 두상이 큰 아들이 유일하게 잘 맞는 모자 하나를 발견해서 사 주었다.
아들이 검색한 스테이크 가게에서 생맥주 두 잔과 스테이크와 갈비를 셋트로 시키니 밥과 샐러드가 따라 나왔다.
한국인이라 했더니 영어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양을 몰라 2인분만 시켰는데 셋트를 추가해서인지 충분한 양이었다.
부직포로 만든 앞치마를 두르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셋째날,
서둘러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식당이 단체 여행객으로 복잡해서 한참 기다렸다가 겨우 먹었다.
그나마 호텔 식사가 젤로 나으니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오늘 일정은 주로 바다와 관련된 곳으로 유리 바닥 아래로 바닷속이 보이는 글라스보트와
바다밑까지 이어진 등대같은 해중 전망대를 함께 묶었다.
매표소에서 2060엔에 티켓을 구입했다.
모래로 된 해변이 멋진 리조트 곁에 있었는데
해변을 거닐기도 하고 방파제에서 사진도 찍고 하다가
시간이 되어 글래스보트에 타자 신기한 산호사이에 알록달록 예쁜 고기들이 물 속을 느긋하게 헤엄쳐 다녔다.
수영을 못하는 남편은 처음 경험하는 바닷물속이라 아이처럼 좋아했다.
해중 전망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잠수함 구멍처럼 동그란 유리창을 통해 자연의 바다를 구경하는 것이다.
전망대 가는 길에서 해변을 보니 지중해의 마을처럼 리조트도 아름답고
길 아래엔 바람도 거칠어 포말로 부서지는 거친 물결을 볼 수 있었다.
내친 김에 큰 애가 그렇게 보고 싶다던 고래가 있는 수족관으로 이동했다.
오래 전에 엑스포장으로 개관했다는 이 곳은 제법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돌고래쇼의 시간이 되었다기에 들어가자마자 쇼장으로 직행~
시작도 하기 전에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들이 튀어 올랐다.
쇼장 바로 너머 푸른 태평양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져 있어 갇힌 돌고래가 마냥 안쓰러웠다.
"혹시 높이 뛰면 보이는 바다가 그리워 신나게 뛰는 거 아닐까?"
기다리는 동안 남편에게 묻자 그럴 수도 있겠다며 진지해졌다.
돌고래.. 머리도 좋다는데...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어쨋든 돌고래의 재주를 보고 큰 거북이도 보고 해양 수족관으로 갔다.
고래가 자그마치 세 마리가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우아한 가오리,
그리고 수많은 고기들이 돌고 또 도는 수족관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탐욕으로 인해 자유를 착취당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보고 또 보고 사진도 찍고 또 찍고 ...
그곳을 나섰다.
드라이브 하기 좋은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가
고우리섬이라는 연인들을 위한 섬이 있다기에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시골길을 따라 달리자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이 보이고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입장료가 800엔인 고우리 조개박물관과 음식점이다.
전동차를 타고 그곳에 올라 섬에서 생산된 야채가 듬뿍 올려진 피자와 커리를 시켰는데
커리는 별로, 피자는 깔끔했다.
오리온 맥주 공장에 가고 싶어했던 둘째를 위해 오리온 맥주를 시켜 건배를 했다.
언덕 위에 있는 박물관이라 눈 아래 펼쳐 보이는 푸른 바다는 또 다른 장관을 선물했다.
기념사진도 찍고 박물관 구경도 하고 옥상에 설치된 연인의 종을 쳐 보기도 하고....
돌아 오기가 아쉬운 아름다운 바다풍경이었다.
그러나.. 하루라는 시간은 인생처럼 유한하다.
내가 일본에서 사고 싶어하는 모자를 사기 위해 저녁은 쇼핑센터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호텔 방향으로 돌아 오다가 마땅한 쇼핑 센터를 검색한 게 갤러리아였는데
찾아 가보니 명품소개만 잔뜩 되어 있어 눈 버리기 전에 얼른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왔다.
가급적 명품엔 관심 끄고 살자는 게 나름의 내 신념이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쇼핑셍터를 찾아갔더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폐점 시간이었다.
아케이드의 마지막 손님으로 맛도 없는 국수와 오믈렛 그리고 돈까스로 저녁을 떼웠다.
근처에 BLUE SEAL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더니 아들이 반색을 한다.
"여기 오면 이런 건 꼭 먹어 줘야 한다나 어쩐다나..."
못 이기는 척 따라가 하나를 시켜서 셋이서 맛만 보았다.
뭐 그렇고 그런 맛이지 뭔가.....
쇼핑? 다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와 푹 쉬었다.
넷째날,
아침을 먹으니 드디어 한국에 간다는 설레임이 생겼다.
"아들 덕분에 구경 한번 잘 했다. 고맙다. 부모 앞장 서 구경 시켜줘서..."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들을 칭찬했다.
아침 다른 이들이 추천한 수리성을 가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는데
주말이라서인지 주차장이 가득 차 차를 세우지 못해 헤매다가 아예 포기했다.
그 덕에 함께 못 나선 큰애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갔다.
물론 나를 위한 모자도....
AEON백화점에 가니 가격도 저렴하고 시간 보내기도 좋았다.
큰애가 바랐던 고성능 불루투스이어폰과 포터블 사진 인화기
그리고 내 모자들과 남편 모자를 사고 면세처리를 했다.
한국보다 훨씬 저렴했다.
푸드코트에 가서 처음으로 제법 일본정식같은 식사를 먹게 되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말차를 무료냐고 확인하고 마셨다.
일본의 에피타이저는 묻지 않고 제공되고 가격은 비싸니까...
요번 여행에서 배운 것이다.
무료는 일본어 발음과 우리 발음이 같아 내가 확인해 보고 신나서 웃었다.
식사가 끝나니 차를 반납하고 일찍 공항에 가야해서 여유시간 동안 근처 해변의 찻집에 갔다.
낭만적인 둘째가 칵테일을 시키고 우리는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여행의 마침표를 찍을 기념식을 했다.
바람이 서늘한 해변가 찻집은 야자수와 더불어 평화로웠다.
시간이 얼추 되었다 싶어 차를 반납하고 공항에 가니 너무 여유를 부렸나?
비행기 마지막 두번째 칸이 우리 가족자리였다.
돌아 오는 길 기내식은 더 황당했다.
중국산 수입 밀가루빵에 물러진 귤 하나, 그리고 플레인요구르트다.
저가항공과 고가항공의 구분을 확실히 하기로 했나 보다.
빵과 귤을 포기하고 요구르트로 저녁을 대신했다.
구름 사이를 날다 성탄 트리불빛이 내려다보이니 우리나라다.
야호! 우리나라 만세다.
김치에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느끼한 기분이 확 가신다.
일본 여행 얘기 나올 때부터 음식이 내 입맛에 안맞는데 하필 일본이냐고 반대했었는데
역시 유럽 갔을 때보다 음식은 더 힘들었다.
유럽은 빵이라도 제대로 나오지 이건 죽도 밥도 아니다.
다음 일본여행은 김치나 고추장 필수 준비할테다.
아들과 비행기에서 첫 자유여행의 기쁨을 얘기하며 귀국했다.
무엇보다 아들이 이제 어른이 다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간다는 느낌을 받으니
한 세대가 지나가는 첫 느낌이 강했다.
행복한 가족 여행에 큰애가 빠진 게 참 아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