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잡기(靑城雜記)】제3권 / 성언(醒言) 41. 〔무고한 역신(逆臣)을 구해 준 영조〕
무고한 역신(逆臣)을 구해 준 영조
무신년 난리 때 남태징(南泰徵)이 금군 별장(禁軍別將)으로서 극악한 역적들의 옥사에 걸려 처형되었다. 남태적(南泰績)은 그의 사촌동생으로 역적들의 거짓 자백에 걸려들어 통진 부사(通津府使)로 있다가 체포되었는데, 고문으로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끝내 승복하지 아니하여 오래도록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영조가 그의 무죄함을 가엾게 여기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리는 기회를 빌려 죽이지 말고 멀리 유배 보내라고 명하였으나, 대간(臺諫)들의 반대에 부딪혀 출옥하지 못하였다.
영조가 온천에 행차할 적에 대간들이 모두 수행하자, 임금이 선전관(宣傳官)에게 밀지(密旨)를 주면서 명하기를,
“빨리 돌아가 도성 남문(南門)에 들어가거든 이것을 보아라.”
하였다. 선전관이 도착하여 밀지를 보니, 바로 남태적을 방면하라는 전교였다. 남태적은 출옥하자 몇 해 전에 이미 별세하신 어머니 상(喪)을 그제야 치르고, 상을 치르느라 풀어헤쳤던 머리를 묶고는 유배지로 떠나갔다. 그의 처와 첩이 뵙기를 청하였으나 만나 주지 않았다. 그의 첩은 철산(鐵山) 출신 기생이었는데, 남태적이 체포되자 죽음으로 그를 따르겠다고 맹세하고 그의 처와 함께 품팔이하면서 몇십 년 동안 열심히 옥바라지를 하였다.
아, 영조대왕이 신하들의 억울한 사연을 이토록 자세히 보살펴 주었으니, 신하 된 자가 누군들 감읍(感泣)하여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남태적이 임금님의 보살핌을 받아 세상에 드문 은혜를 입은 것은 그 역시 임금님의 마음을 감동시킴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주-C001] 성언(醒言) : 사람을 깨우치는 말이란 뜻으로, 총 3권에 인물평 및 일화, 사론(史論), 필기(筆記), 한문단편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주-D001] 남태징(南泰徵) : ? ~ 1728.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1723년(경종 3) 금군 별장(禁軍別將)이 되어 병권을 장악하였다. 1728년 소론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 등이 청주와 산청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서울에서 내응하기로 하였다는 죄로 참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인좌 등이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도성 안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를 색출하여 옥에 가두고 왕에게 보고한 사실과 또한 역적에 가담한 여부를 가리는 신문에서 끝내 승복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