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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10
1. 씬. 강하의 방 (밤)
-9회 연결에서.
준하 : 그 자식 울리지 말고, 그냥 결혼 해줘. 형이 원하면 이혼도 해주겠다잖아?
강하 : 그렇게 안타까우면 네가 하지 그러냐?
준하 : (더 멱살을 당겨 잡으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강하 : 네가 이러는 건 말이 되는 거 같구?
준하 : 내 친구야. 나한테 가장 소중한 친구 놈이란 말이야.
강하 : 정말 그게 전부냐?
준하 : .....
강하 : 그게 전부냐고 물었다?
준하 : (멱살 놓으면서) 전부야. 재영인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친구고, 동생이야.
그런 자식이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형 때문에 우는 거 싫어. 그래서 미친 짓한 거라고 이해해. (돌아서서 나가는)
강하 : (복잡한 심정으로)
2.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3. 씬. 강하의 방 (아침)
-강하, 눈을 뜨고 일어나 혹시나 해서 이불을 들춰보는데, 아무도 없다.
강하 :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드는)
4. 씬. 식당 (아침)
-빨강, 남이 보행기에 앉혀놓고, 식탁 차리고 있고, 주황, 옆에서 감자국 간 보고 있는.
주황 : 제대로 된 거 같은데....
빨강 : (간 보면서) 와. 네가 누나보다 났다.
주황 : 네가 누나보다 나은 게 한 둘이겠어. 변호사 아저씨, 오늘은 밥 좀 드실 수 있겠지?
나 이러다 변호사 아저씨랑 결혼해야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빨강 : 주황아?
주황 : 왜?
빨강 : 너 설마 남자가 좋은 거니?
주황 : (버럭) 누나.
5. 씬. 강하의 집 거실 (아침)
-강하, 2층에서 내려오고, 준하, 방에서 나오고, 태규, 하품하면서 자기 방에서 나오는데.
지하방에서 나오는 노랑, 초록, 파랑. 셋 다 다리를 절면서 나오는.
태규 : 야, 니들 왜 그래?
초록 : 다리를 묶고 잤더니 다리가 저려서 그래요.
태규 : 왜 다리를 묶고 자?
노랑 : 파랑이 자다가 돌아다닐까 봐요, 그래서 우리 셋이 다리 묶고 자는 거예요.
강하 : (그 모습 보고 있는)
6. 씬. 식당 (아침)
-강하, 준하, 태규, 아이들 모두 앉아 식사하고 있고, 남이 보행기 타고 있고.
그 앞에 앉아 남이 이유식 먹이고 있는 빨강.
준하 : 이제 남이 우유 안 먹나 봐요?
빨강 : 오늘부턴 이유식도 먹여보려 구요.
파랑 : (밥 먹으면서 코에다 침 묻히고 있는)
태규 : 아직도 다리 저려?
파랑 : 네, 아주 조금이요.
강하 : 오늘부턴 니들 다리 묶고 자지 마라.
-모두 멍하니 강하를 보는.
노랑 : 그럼 안 되는데. 그럼 파랑이 또 변호사 아저씨 방에 가서 잘지도 몰라요.
강하 : 니들 다리에 문제 생겼다고 위자료 청구할까봐 그런다. (일어나서는)
주황 : (일어서며) 오늘은 어떠셨어요? 먹을 만하셨어요?
강하 : 그래, 그런대로. (나가는)
주황 : (주먹 불끈 쥐고) 변호사님 국 제가 끓였거든요.
파랑 : 변호사 아저씨 나 걱정한 거 같지?
노랑 : 위자료 때문이라고 하셨잖아?
파랑 : 누난 진짜 눈치도 없어. 변호사 아저씨 나 진짜 좋아해.
준하 : (왠지 강하에게 묘한 느낌 받으면서. 남이 이유식 먹이고 있는 빨강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7. 씬. 회사 전경 (낮)
강하E : 뭐 하나만 확인하려 구요.
8.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 (일반 전화 사용 중) 진빨강이란 직원 혹시 차압이 들어와 있습니까? (듣고, 역시나 하는) 알겠습니다.
(전화 끊는데, 들어오는 재영. 강하, 서류 넘기는데)
재영 : 일부러 그러는 거야?
강하 : (무시하고 서류만 보는)
재영 : 그런 여자 앞에서까지 나 무시하는 거? 그럼 내가 질려서라도 오빠 포기할 거 같아서?
강하 : 그런 여자가 어떤 여잔데?
재영 : 몰라서 물어? 그런 떨거지같은 여자 때문에 나 어제 술까지 마셨어. 오빠 나 무시하는 방법 여러 가진 줄은 알겠는데,
앞으론 그러지마. 준하한테도 충고했지만, 그런 여자 애들 착각에 빠질 수 있어. 나 떼어내고 싶어서 동원한 방법 때문에
이상한 여자애가 달라붙으면 더 골치 아파지잖아?
강하 : 아니?
재영 : 뭘?
강하 : 말했지? 이 세상에서 너 하나만 여자로 안 보인다구?
재영 : 그래서?
강하 : 그럼 이 세상 모든 다른 여자는 여자로 보인다는 거야.
재영 : 무슨 뜻이야?
강하 : 맹한 척 하지 마. 알아듣잖아?
재영 : (보다가. 기가 막혀 헛웃음 지으면서) 정말 악랄하다. 그런 여자까지 상대하기 싫으면 그만 포기해라?
강하 : 나 일 좀 하고 싶은데.
재영 : 원강하씨, 사람 약 올리는 거 적당히 해두시죠. 평생 미안해하면서 살고 싶지 않으면요. 그럼, 일 하세요. (나가는)
강하 : .......
9. 씬. 회사 복도 (낮)
-빨강, 진주, 은말 얘기하고 있는.
은말 : 하루도 바람 잘날 없다더니. 그게 웬 난리였다니? 원변호사 길길이 뛰고 난리 났었겠다?
진주 : 한달이고 뭐고 당장 나가라고 안 해?
빨강 : 이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분위기야.
은말 : 웬일이라니?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진주 : 뭐, 빨리 한달만 어서 가라, 그러고 있는 거겠지.
재영E : 진빨강씨?
-세 사람 모두 돌아보는.
은말 : (빨강의 귀에 대고) 너 또 뭔 잘못 한 거야?
10. 씬. 회의실 (낮)
-재영, 빨강 들어오는.
빨강 : 딴 짓한 게 아니구요. 점심 먹고 잠깐, 아직 점심시간이라서.....
재영 : (지갑 열고, 천만 원짜리 수표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빨강 : (멍하니 보는)
재영 : 어젠 돈이 적어서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거 같아서요?
빨강 : .....
재영 : 오늘은 다르겠죠?
빨강 : 네. 그러네요, 정말 구미가 당기네요.
재영 : 그럼 집어넣어요. 그리고 오늘 바로 동생들 데리고 그 집에서 나가는 거예요.
빨강 : 구미는 정말 무지하게 당겨요.
재영 : 그러니까 집어넣으라잖아요? 왜 어제 큰 소리쳤던 게 있어서 무안해요? 그럼 나갈 테니까.....
빨강 : 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큰 돈 언제 만져보나. 머리 속에서 순간 별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가네요.
저 돈만 있으면 당장 나갈 수도 있겠구나. 근데, 안되겠어요.
재영 : (보고)
빨강 : 지금 이 돈 집어넣으면, 저 다시 있으나마나 미스진으로 살아야 하거든요. 이런 횡재가 웬 떡이냐 싶기도 하지만,
그럼 정말 제 인생에 횡재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죄송해요. 실장님. 이렇게 선심까지 써주셨는데 못 받겠네요.
재영 : 괜히 잘난 척하지 말고 그냥 집어넣어요.
빨강 : 네, 잘난 척 같네요. 하지만 해볼래요. 잘난 척. 천만 원짜리 인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악물고 잘난 척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돌아서는데)
재영 : 한 달 뒤에 빈손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천만 원짜리 수표를 거절하는 진짜 이유가 뭐예요? 진빨강씨?
빨강 : (보고)
재영 : (비웃으며) 설마 신데렐라에 대한 환상 같은 거 있는 거예요?
빨강 : 아니요. 그보단 더 큰 꿈이 있는데요.
재영 : .....
빨강 : 신데렐라는 겨우 왕자 와이프지만, 보험 여왕은 여왕이잖아요? 대견하지 않으세요? JK의 후계자가 되실 분이니,
부하 직원이 그런 큰 꿈을 꾼다면 격려를 해주시고 싶으실 거 같은데요. 그럼, 나가서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는)
재영 : (분한 느낌으로 입술을 깨무는)
11. 씬. 회사 복도 (낮)
-빨강, 걸어오면서 가슴을 누르며.
빨강 : 아, 심장이야. 떨려 죽는 죽 알았네. 보험 여왕 소리가 거기서 왜 나오냐?
(머리 쥐어박으며) 제발 생각 좀 하고 말을 해라, 진빨강. 보험 여왕은 아무나 되냐구요. 말은 뱉어놓고 어쩔 건데.
12. 씬. 동대문 상가 (낮)
-빨강, 전단지 한 움큼 들고, 결의를 다지며.
빨강 : 몰라, 몰라. 보험 여왕이 못되면 1등 시녀라도 돼보는 거야. 아자, 아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빨강, 바쁘게 전단지 돌리며 인사하고 다니는.
하지만 상인들 무심하고, 빨강에게 관심이 없다, 무시도 당하고. 그러면서도 열심히 인사하며 돌아다니는 빨강.
13. 씬. 커피숍 정도의 장소 (낮)
-보험사 직원 헉 놀라서 보는.
직원 : 네?
강하 : 제가 보증을 서겠다고 했습니다.
직원 : 그, 그러니까 진빨강씨에 대한 지급 보증을 서시겠다는 건가요?
강하 : 네. 진빨강씨가 변재를 하지 못할 경우에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럼 월급 차압 취소해주실 수 있는 거죠?
직원 : 그렇긴 하지만.....
강하 : 그럼 그렇게 처리해주십쇼. 그리고....
직원 : 네?
강하 : 이 일은 서류상으로만 정리해주시고, 진빨강씨 본인에겐 알리지 말아주십쇼. 아시겠습니까?
14. 씬. 회사 복도 (낮)
-직원1,2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고 있는. 준하 그 옆을 걸어가는데.
직원1 : 살생부 같은 거 만들고 있는 거 아냐?
직원2 : 왜? 무슨 낌새 있어?
직원1 : 원강하 변호사가 진빨강이라는 FC 월급 차압까지 체크하더라구.
그게 뭐겠어? 권고사직 대상자 명단 만들고 있는 거 아니면?
준하 : (걸음을 멈추고 듣는)
직원 :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 아냐? 원강하 변호사가 제 2 대 주준 거. 서서히 정리해가면서 실권을 잡겠다는 거겠지.
15. 씬. 준하의 사무실 (낮)
-준하 들어오는. 그 위로.
직원1E : 원강하 변호사가 진빨강이라는 FC 월급 차압까지 체크하더라구.
준하 : (복잡하다)
16. 씬. 거실 (낮)
-정회장, 잠바 차림으로 애들 앞에 봉지를 내밀고 있는. 애들 쭉 서있고, 남이 보행기 타고 있고.
주황 : 이게 뭐예요?
정회장 : 고기 좀 사왔다.
초록 : 할아버지가 무슨 돈이 있어서요?
정회장 : 그냥 좀 생겼어.
초록 : 진짜 왜 이러세요? 할아버지? 정말 이렇게 사시면 안 된다니까요.
살 방도 없으시면서 돈 생겼다고 고기나 사오시고 그럼 정말 어떡해요?
정회장 : 다 먹자고 사는 거 아니냐. 빨리 구워먹자.
17. 씬. 정회장 집 거실 (낮)
-민경, 방에서 나오고, 청소하는 아줌마.
민경 : 회장님 점심 좀 잘 챙기세요. 한약 지어온 것도 잊어버리지 마시고 꼭 덥혀 올리시구요.
아줌마 : 회장님 나가셨는데요.
민경 : (보고)
아줌마 : 사모님이 걱정하신다고 나가지 않으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 드렸는데. 집에 계셔봐야 말 시키는 사람도 없고 하니까.....
(순간 아차해서 민경 눈치 보며 입 다무는)
민경 : (싸늘하게) 저희 집에 계속 계시고 싶으면 말수 좀 줄이세요. (나가는)
아줌마 : (부르르 떨며) 나 같아도 이런 집 정나미 떨어지겠다.
18. 씬. 식당 (낮)
-정회장, 아이들 모두 신이 나서 고기 구워 먹고 있는.
파랑 : 와, 진짜 맛있다. 어제는 짜장면에 탕수육에 팔...팔....
노랑 : 팔보채. 오향장육이라는 것도 먹었잖아?
파랑 : 맞다. 또 뭐 많았는데.
정회장 : 그런 걸 먹었어? 니 누나가 돈이 어디 있어서?
파랑 : 누나가 아니구요. 변호사 아저씨가 사주셨어요.
정회장 : 변호사 아저씨가 그런 걸 사주셨어?
파랑 : 네, 저 어제 잃어버렸다 찾았다구요.
정회장 : 집에서 널 어디다 잃어버려?
주황 : 그게요, 어제.....
태규E : (문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얘들아, 내가.....
-모두 긴장하는.
19. 씬. 거실 (낮)
-태규, 들어오면서, 아이들 일제히 뛰어서 식당에서 나와 태규 앞에 늘어서는.
태규 : 점심들 안 먹었지? 형이 짜장면 시켜놓고 왔으니까 금방 배달 올 거야.
주황 : 형. 욕실 변기 물이 안내려가요.
태규 : 변기?
초록 : 오빠가 고쳐주세요. 저희 오줌도 못 눴어요.
노랑 : 어서요.
파랑 : 어서요, 어서....
-아이들 태규 끌고 욕실로 들어가는.
태규 : 알았어, 알았어, 천천히....
20. 씬. 욕실 + 거실 (낮)
-태규, 변기 물을 내리면, 잘 내려가는. 아이들 문 앞에 쭉 서있고.
주황, 손짓으로 얼른 숨으라고 하면. 그 사이 정회장 얼른 지하방으로 들어가고.
태규 : 어 물 잘 내려가는데.
주황 : 어, 아깐 안내려갔는데.
초록 : 와, 태규오빠 손이 신의 손인가 봐요. 고장난 것도 손만 대면 바로 고쳐지나 봐요.
태규 : 그래? 내가 좀 그런 게 있어.
21. 씬. 지하방 (낮)
-정회장, 들어와서 숨으며
정회장 :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바꼭질 이게 얼마 만인가. 이게 꽤 재미있네.
22. 씬. 식당 (낮)
-태규, 고기판 보고. 멍해지는. 아이들 그 옆에.
태규 : 이게 다 뭐야?
주황 : 냉동실에 고기가 있어서 그거 녹여서 구워 먹었어요. 죄송해요.
태규 : 고기가 있었어? 저번에 친구놈들하고 다 구워먹고 아무 것도 없었을 텐데.
주황 : 구, 구석에 있었어요.
태규 : 그래, 난 짜장면 사줬다고 니들이 큰 삼촌한테 너무 점수 주는 거 같아서 짜장면 시켜주려고 들어온 건데.
주황 : 빨리 취소하세요, 빨리요, 형.
23. 씬. 지하방 (낮)
-정회장, 아이들 모여 앉아있고, 남이 보행기 타고 있고.
주황 : 다음부턴 절대 아무 것도 사오지 마세요. 하마터면 들킬 뻔 했잖아요?
초록 : 할아버진 왜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하고 그러세요.
정회장 : 고기 사왔다고 구박 받는 건 생전 처음이다.
파랑 : 하지 말라면 하지 마세요. 좀.
하는데, 문 벌컥 열리고 뛰어 들어오는 태규.
태규 : 벌써 출발 했다고 취소 안 된다는데..... (놀라서 정회장을 보는) 누구세요?
-정회장, 아이들, 태규 앉아있는.
태규 : 할아버지도 계셨던 거야?
주황 : 네, 죄송해요.
태규 : 아니 뭐 죄송할 거야. 그치만 할아버지는 진짜 들키시면 안돼요. 지금도 우리 큰삼촌 겨우 겨우 참고 있는 거거든요.
정회장 : 면목 없소, 젊은이.
태규 : 그리고..... (일어나서 넙죽 절하는)
정회장 : (당황해서) 아니, 절은 무슨.....
태규 : 우태귭니다, 할아버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회장 : 부탁은 내가 해야지.
태규 : 빨강씨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정회장 : (허걱)
태규 : 손녀분을 제게 주세요, 할아버지, 네? 네?
24. 씬. 동대문 상가 (낮)
-전단지 돌리고 있는 빨강. 전화벨 울리고.
빨강 : 여보세요? 주황아? 왜?
25. 씬. 거실 + 동대문 상가 (낮)
주황 : (전화 중) 우리 친할아버지라고 했어. 그래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 아냐.
친할아버지도 아닌데, 숨겨준 거 알면 진짜 이상한 애들이라고 할 거 같아서.
빨강 : 그래, 잘 했어. 할아버지 지금 뭐하시니?
26. 씬. 식당 (낮)
-태규, 정회장에게 계속 술 따라주고 있는. 아이들 그 옆에 앉아있고.
태규 : 이게요, 진짜 비싼 술이거든요.
정회장 : 벌써 다섯 잔짼데, 난 그만....
태규 : 드세요, 할아버지, 제 마음이니까 많이 드세요.
정회장 : 이렇게 막 따라주면 취하는데....
태규 : 취하시면 어때요, 주무시면 되죠.
27. 씬. 지하방 (낮)
-정회장, 얼굴이 벌건 채 앉아있고, 아이들 그 옆에, 태규 무릎 꿇고 앉아있는.
태규 : 저희 부모님이 미국에서 크게 슈퍼를 하시거든요.
정회장 : 좋으시겠구만.
태규 : 제가 외아들이거든요.
정회장 : 저런 외롭겠구만.
태규 : 그래서 제가 다 물려받을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발 결혼을 허락해주세요.
정회장 : 아니, 그게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서....
태규 : 할아버지가 허락하셨는데, 빨강씨가 어쩌겠어요? 할아버지? 제발.
정회장 : (끄윽하면서 고개 숙이는데)
태규 : 허락하신 거예요, 할아버지. (일어나서) 만세. 만세, 만세.
28. 씬. 동대문 상가 앞 + 거실 (낮)
-빨강, 걸어 나오는데, 전화벨 울리고.
빨강 : 왜 또? 태규니?
태규 : 자기 나 할아버님께 결혼허락 받았어. 할아버지가 결혼하라셔.
빨강 : 그럼 너랑 할아버지랑 결혼해. (탁 끊어버리는데, 울리는 벨) 너 정말? 여보세요?
29. 씬. 길 (낮)
-전철역 앞 정도의 장소.
뛰어오는 빨강. 앞에 깡통 놓고 앉아있는 40 정도의 남자.
빨강 : 아저씨?
남자 : 누구?
빨강 : (앞에 앉으며) 저 진빨강이에요.
남자 : 아, 금방 오셨구만.
빨강 : 어떻게 되신 거예요? 보험금 지급 안됐어요? 그때 넘어지셔서 실명 하시고, 보험금 청구하셨잖아요?
남자 : 보험금이 나왔으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소? 눈이 안보이니 노점상도 못하고 이렇게 빌어먹고 사는 처지라오.
빨강 : 그때 병원에서 진단서 끊어서 내셨잖아요? 제가 다 차질 없이 처리 했는데.
남자 : 안됐으니까 내가 아가씨를 다시 부른 거 아니요? 내가 안 보이는데, 지들이 믿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구?
빨강 : 몰랐어요. 진작 좀 전화를 하시지 않구요.
남자 : 나도 금방 나올 줄 알았지. 지금 이 꼴을, 아가씨가 두 눈 똑바로 보고 가서 얘기를 좀 해줘요. 나 보험금 안나오면
정말 살 방법이 없어. 재판을 하겠다는데 내가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변호사를 무슨 돈으로 사냔 말이야?
빨강 : 어떡해요? 아저씨.
남자 : 난 믿을 사람이 아가씨 밖에 없으니까 제발 좀 가서 잘 좀 말해줘요.
-열 대 여섯 살 돼 보이는 여자 아이.
아이 : 아빠?
남자 : (두리번거리며) 뭐 하러 왔어?
아이 : 아빠, 밥 가져왔어. (도시락 가지고 옆에 앉는)
남자 : 아빤, 아빠가 알아서 한다니까, 추운데 뭐 하러 나와?
아이 : 어서 먹어, 아빠, 배고프지?
빨강 : (가슴이 아픈)
30. 씬. 사무실 (낮)
-움직이는 팀장을 쫓아가면서 빨강, 사정하는.
빨강 : 네, 팀장님, 이건 정말 회사 욕 먹이는 거라니까요.
팀장 : 네가 나설 일 아니야. 법률팀에서 하는 일을 낸들 어떡해?
빨강 :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다니까요. 정말 아무 것도 안보이세요. 아무것두요.
팀장 : 조사팀에서 조사 하고 재판하겠다는 거니까 넌 나서지 마.
빨강 : 팀장님, 팀장님.
팀장 : (버럭) 그만 하라니까.
31.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서류 보고 있고, 준하 그 앞에 있는.
준하 : 문제없는 거지?
강하 : 이대로 프로그래밍해도 돼.
준하 : 알았어. (하는데, 뛰어 들어오는 빨강) 빨강씨?
강하 : 뭡니까?
빨강 : 죄송합니다. 제가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최만호씨 사건이요.
강하 : 최만호씨? 아, 네, 그게 왜요?
빨강 : 제가 지금 가서 최만호씨 만나 뵙고 오는 길이거든요. 진짜 안보이시는 거 맞아요. 빛도 구별 못 하신다구요.
강하 : 그래서요?
빨강 : 보험금 좀 빨리 지급해주시면 안될까요? 당장 먹고 살게 없으셔서 길에서 구걸을 하고 계시거든요.
강하 : 재판을 시작했으니 법원에서 결정을 해주겠죠.
빨강 : 진짜 안보이신다구요. 변호사 비용도 댈 수 없이 가난한 분하고 재판을 하겠다고 하는 건 너무한 거잖아요?
강하 : 나가보시죠.
빨강 : 가난한 사람한테 그 정도 보험금 무는 것도 아까워요? 변호사님 돈도 아니잖아요?
준하 : 빨강씨.
강하 : (일어서며) 내 돈이 아니라서 더 안 됩니다. 고객들이 낸 돈이니까.
빨강 : 안 보인다구요. 정말 안보인단 말이에요.
강하 : 그래서 법에 판단을 맡기는 거 아닙니까?
빨강 : 법은 가난한 사람 편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법이 아니라도 보호 받잖아요?
강하 : 아니죠, 법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단지 공평해야 할 뿐이지.
준하 : 그만하고 나가요. 빨강씨. 진짜 실명하신 거면 보험금 지급될 거예요.
빨강 : 당장 먹고 살게 없다구요, 당장.
강하 : 나가주시죠, 일 해야 하니까.
준하 : (데리고 나가려고 하면서) 나가요, 빨강씨.
빨강 : 고객을 가족처럼이란 말, 다 사기죠?
강하 : (보면)
준하 : 빨강씨. 왜 이래요?
빨강 : 왜 내가 고객들 앞에만 서면 그렇게 버벅였는지 이젠 알 거 같아요.
사기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거였어요. (돌아서서 나가는)
준하 : (강하를 보면)
강하 : (자리에 앉고)
준하 : (나가는)
강하 : ......
32. 씬. 회사 복도 (낮)
-울상이 되서 서있는 빨강, 준하, 음료 캔 가져다 내미는.
빨강 : .....
준하 : 손 무안하게 만들 거예요? (음료캔 따서 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는 은말. 진주 걸어오다가.
진주 : 뭘 그렇게 멍하니 봐? 은말씨?
은말 : 가만 가만 좀 있어봐.
빨강 : (음료캔 받아서 조금 마시는) 고맙습니다.
준하 : 형. 일은 빈틈없이 하는 사람이에요.
빨강 : 진짜 제 눈으로 봤다니까요.
준하 : 그럼 지급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빨강, 어깨 툭 치면서) 얼굴 좀 펴요.
빨강 : (어색하게 웃는)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은말, 진주의 표정이 멍해지고.
준하 : 빨강씨 같은 FC가 있어서 그 고객분은 든든하시겠네요. 이따 집에서 봐요. (걸어가는)
빨강 : ......
-급하게 다가오는 은말, 진주.
은말 : 지금 뭐한 거냐?
진주 : 뭐야? 둘?
빨강 : 뭐가?
은말 : 뭐긴, 니들 분위기 야사시 하니 이상하던데.
진주 : 은말씨도 그렇지? 내가 보기엔 딱 멜로 필이었어.
빨강 : 그런 거 아니야.
은말 : 아냐, 아냐. 오래 산 사람 눈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거야. 내가 보기엔 니들 심상치 않다.
진주 : 낼 모레 마흔인 내 눈으로 봐도 뭔가 있어, 너랑 원준하 팀장.
빨강 :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은말 : (빨강 손 덥석 잡으며) 원변호사는 씨도 안 먹히겠지만, 원준하 팀장은 또 모른다. 덤벼 보는 거야, 빨강아.
33. 씬. 헬스장 (밤)
-달리고 있는 강하.
34. 씬. 거실 (밤)
-들어오는 빨강. 태규 기다리고 있다가 손 덥석 잡는.
빨강 : 이러지 말랬지?
태규 : 나 허락 받았어, 할아버님 내가 진짜 마음에 드시나봐. 우리 미국 가자. 우리 엄마,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아니다, 우리 엄마, 아빠 오시라고 할까?
빨강 : 태규야?
태규 : 응, 자기, 말해, 말해.
빨강 : 누나 좀 살자, 응? 누나 좀 살자구. 너 이러지 않아도 누나 머리 아픈일 투성이다. (지하방으로 움직이면)
태규 : 걱정하지 마, 자기. 나랑 결혼하면 자기 머리 아픈 일 절대 없게 할 테니까.
35. 씬. 지하방 (밤)
-빨강, 들어오면, 남이, 정회장 잠들어 있고.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모두 지친 표정으로 멍하니 기대 앉아있는.
주황 : 지금 와?
빨강 : 니들 왜 그래?
주황 : 태규형이 짜장면이랑 잔뜩 시켜줘서 먹었더니 움직일 수도 없어.
빨강 : 그거 먹었다고 움직일 수도 없어?
초록 : 할아버지가 고기 사오셨거든. 그것도 구워먹었더니.
파랑 : 누나 껀 남겼어.
정회장 : (일어나며) 지금 오냐? 아이고 어지럽다.
빨강 : 또 쓰러지셨던 거예요?
주황 : 태규형이 비싼 술이라고 한 병 다 따라 드시게 했어.
초록 : 언니랑 결혼 허락해달라고.
빨강 : 할아버지가 뭔데, 제 결혼을 허락하고 말고 하세요? 진짜 왜 그러세요?
정회장 : 나 니 결혼 허락 한 적 없는데.
-전화 진동하면.
노랑 : 전화 안받으세요?
정회장 : 어, 안받아도 되는 전화야.
36. 씬. 인구의 집 거실 (밤)
인구 : (수화기 들고) 진짜 너무 하시네. 왜 전화를 씹으시는데?
-민경, 재영 서있는.
인구 : 내가 정말 우리 아버지 때문에 속이 터져서 제 명에 못 죽을 거야.
민경 : 목욕물 받아놨으니까 들어가요.
인구 : 대체 잠은 어디서 주무시는 거야?
민경 : 아버님이 돈이 없으셔서 한데 잠 주무시겠어?
인구 : 그래도 예전에 잠은 꼭 집에 와서 주무셨잖아.
민경 : 점점 더 집에 정이 안 붙으시나 보지.
인구 : 당신은 또.
민경 : 물 식어요, 어서 들어가요.
인구 : (들어가면)
민경 : 너 나 닮아서 잔정 없는 건 아는데, 할아버지께 조금만 살갑게 굴어봐.
재영 : 내 나름으론 그러고 있는 거야.
민경 : 강하하곤 가능성 있는 거니?
재영 : ......
민경 : 왜 대답이 없어?
재영 : 강하 오빠 자기 발로 찾아와서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엄마 안심 못할 거 아냐?
민경 :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긴 한 거야?
재영 : 노력 중이야. (움직이려고 하면)
민경 : 난 그게 더 싫어.
재영 : (보면)
민경 : 사랑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어야 하잖아?
재영 : .....
민경 : 넌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재영 : 엄마 딸이잖아, 나. (움직이는)
민경 : (혼잣말로) 내 딸이라서, 너만은 나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37. 씬. 헬스장 (밤)
-강하, 런닝 머신에서 내려오면. 준하 서있는.
준하 : 정말 마라톤이라도 나가려는 거야? 왜 그렇게 체력 단련 심하게 하는 거냐구?
강하 : (걸어가면)
준하 : 재판 없는 날 점점 더 많이 뛰고 있다는 거 알아?
강하 : (멈칫 했다가 걸어가는)
준하 : (혼잣말로) 뭐가 그렇게 만드는 건데?
38. 씬. 강하의 방 (밤)
-빨강, 침대보 갈고 있는. 들어오는 강하.
빨강 : (당황해서) 죄송해요, 오시기 전에 갈아두려고 했는데.
강하 : .....
빨강 : 나중에 하겠습니다.
강하 : 하던 건 그냥 하십쇼.
빨강 : 그럼..... (침대보 계속 갈면서 눈치 보는)
강하 : (웃옷을 벗어놓고 오디오실로 들어가는, 엘피판을 드는데)
빨강 : (유리문 노크 하는)
강하 : (보고)
빨강 : (들어가도 되냐는 시늉)
강하 : 들어와요.
빨강 : (들어서는) 저기요. 최만호씨 사건이요.
강하 :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잖습니까. 법에서 판단해줄 거라구.
빨강 : 변호사 비용이 없으시거든요. 혹시 아시는 분 있나 해서요?
강하 : 네?
빨강 : 변호사 친구분들 중에서요, 인권 변호사 같은 거 하시는 분 없으세요? 그런 분 있으면 무료 변론 좀 해주시면 안 될까 해서.
강하 : 지금 상대 변호사를 저더러 소개하라는 겁니까?
빨강 : 말이 안 될까요?
강하 :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말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왜 자꾸 그러는지 이유를 좀 알면 안 되겠습니까?
빨강 : 제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먼저 뱉고 보는 스타일이라서.
강하 : 그게 자랑입니까?
빨강 : 누가 자랑이라고 그랬어요? 그래도요, 우리 엄마는 제 이런 스타일이 임자만 제대로 만나면
귀여움 받고 살 거라고 그랬거든요. 이런 저런 생각 많고 음흉한 것보단 무슨 생각하는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스타일이
귀염 받으려 들면 겁나게 받는 거라구.
강하 : 설마 지금 이러는 거 귀여워해달라는 건 아니죠?
빨강 : 제가 설마, 저도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을 줄은 알거든요. 근데, 우리가 무슨 말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강하 : (진짜 한심하다) 내려가서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빨강 : (갸우뚱하면서 나가는) 뭔가 중요한 걸로 시작했는데.....
강하 : 귀여움은, 대책 없는 스타일이지. 아, 혼잣말 좀 하지 말자구.
39. 씬. 거실 (밤)
-빨강, 2층에서 갸우뚱하면서 내려오는.
빨강 : 시작은 분명히 그게 아니었는데.
-욕실에서 세수하고 나오는 준하.
빨강 : 들어오셨어요?
준하 : 형 있을 땐, 2층에 올라가지 말라니까요.
빨강 : 이젠 포기하셨나 봐요. 침대보 갈다가 들어오셔서 나오려고 했더니 하던 거 그냥 하라고 하시네요.
준하 : (이상한 느낌으로 2층을 보는)
빨강 : 출출하시면 라면이라도 끓여드릴까요?
준하 : 아니에요. 먹었어요.
빨강 : 아, 맞다, 변호사 소개. 유리방에 들어갈 때까진 분명히 생각 했었는데.
준하 : 오디오실에 들어갔었어요?
빨강 : 네? 네, 들어와도 된다고 하셔서. 그게 왜요?
준하 : 아닙니다. 들어가서 쉬세요.
빨강 : 쉬긴요, 침대보도 빨고 쌀도 불려놓고 할 일이 태산인데요. (세탁실 쪽으로 움직이는)
40.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오디오실에서 음악 듣고 앉아있는.
준하, 들어오는. 그런 강하를 물끄러미 보며 서있는. 준하, 유리문 두드리는.
강하 : (보고, 일어서서 나오는)
준하 : 작년 재판 사례집 좀 줘.
강하 : (책 찾아서 건네고 다시 오디오실로 들어가려고 하면)
준하 : 참, 빨강씨는 그 방 청소해도 되는 거야?
강하 : (보고)
준하 : 다른 아줌마들은 오디오 건드릴까봐, 못하게 했잖아. 청소도 형이 직접하고.
강하 : 청소하겠다고 우기는 데 어떡해. 예전 규칙들이 하나도 안 지켜지는 마당에 그냥 참아보려고 하는 중이다.
(오디오실로 들어가는)
준하 : (점점 더 복잡한 심정이 되고)
41. 씬. 지하방 (밤)
-빨강, 어깨 두드리며 들어오면. 노랑, 초록, 파랑 자고 있고, 주황, 남이 기저귀 갈고 있고.
정회장, 태규 마주앉아있는.
태규 : (약병 따서 주며) 이게 제일 비싼 약이예요. 술도 깨시고 속도 편해지실 거예요.
정회장 :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태규 : 드세요, 할아버지.
빨강 : (태규, 발로 툭툭 차면서) 너 뭐하냐?
태규 : 자기, 발로 좀 그러지 마. 할아버지 술 깨시는 약 사다드리는 거야.
빨강 : 병 주고 약 주냐? 술 퍼 자시게 할 땐 언제고.
태규 : 손주 사위로 받아주신 기념으로 술 좀 드시게했다 뭐. 그래도 기분은 좋으시죠? 할아버지?
정회장 : 술을 너무 마셔서 머리가 깨질 거 같아.
태규 : 그러니까 어서 어서 드세요.
빨강 : 빨랑 가서 안자니? 안나가, 안나가? (연신 발로 차면서)
태규 :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할아버지. 자기, 내 꿈 꿔. (나가는)
정회장 : 진짜 둘이 뭔 사이긴 하냐?
빨강 : 술 덜 깨셨어요? (그러다 벽에 세워져 있는 천 두루마리 발견하고)
-빨강, 천을 오려서 몸에 대보고, 네모난 옷을 만들고 있다.
정회장 : 그건 뭐하게?
빨강 : 오늘 동대문 상가 돌았는데 다들 바쁘셔서 눈도 안 돌리시더라구요. 이거 만들어서 입고 나가면 좀 봐주실 거 같아서요.
주황 : 누나 혼자만 하면 효과 별로 아닐까?
42. 씬. 강하의 집 전경 (아침)
43. 씬. 강하의 방 (아침)
-강하, 일어나서 이불 걷어보면. 아무도 없는.
강하 : 다리 묶지 말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
44. 씬. 식당 (아침)
-강하, 준하, 태규 들어오면. 식탁 차려져 있고. 메모지.
준하 : (메모 들어보면)
빨강E : 오늘 아침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모두 외출합니다. 아침 맛있게 드세요.
태규 : 어, 다들 어디 간 거야?
45. 씬. 동대문 상가 (아침)
-빨강, 정회장, 아이들 모두 자기 이름에 맞는 색색깔 원통 옷 입고. JK생명이라는 띠 두르고.
빨강은 남이 안고, 남이 역시 옷 만들어 입히고.
탬버린 정도의 악기들 노랑, 초록, 파랑 들고. 쭉 걸어가며 상인들에게 인사하고, 전단지 돌리고.
정회장 : 난 색깔이 좀 칙칙하지 않냐?
빨강 : 연세가 있으신데 젊잖게 입으셔야죠.
정회장 : 늙을수록 환하게 입어야 하는 건데, 검정색이 뭐냐? 검정색이.
빨강 : 아, 그것 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그냥 좀 따라오시죠.
정회장 : 따라 간다, 얜 아침부터 버럭 거리냐.
-쭉 걸어가며 인사하고 전단지 돌리고, 상인들 희한한 구경거리를 보고 웃으며 전단지도 받고, 빨강에게 뭔가 묻기도 하고.
주황 : 봐, 내가 다 같이 나와야 효과 있을 거라구 했지?
빨강 : 그래도 좀 찜찜하다. 니들 앵벌이 시키는 거 같기도 하고.
주황 : 이게 홍보지 무슨 앵벌이야.
46.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앉아있으면, 장수 들어오는.
장수 : (인사하고) 부르셨습니까?
강하 : (일어서며) 네, 조사를 해주실 일이 있어서요.
-시간 경과.
장수 : (멍한 표정으로) 무슨 말씀이신지?
강하 : 확실한 실명 증거 자료가 있으면 복잡하게 재판으로 안 끌고 갈 수 있어서 말입니다.
장수 : 하지만.....
강하 : 회사 이미지에도 문제가 있고 해서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그럽니다.
47. 씬. 회사 복도 (낮)
-장수, 갸우뚱하면서 강하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오는.
장수 : (돌아보며)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야.
48. 씬. 길 (낮)
-만호와 마주 앉아있는 빨강.
빨강 : 제가 어떻게든 길을 찾아볼 테니까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만호 : 큰 보험사를 상대로 재판을 하면 질 게 뻔한데.
빨강 : 제가 있는 힘껏 도와드릴게요.
49. 씬. 회사 복도 (낮)
-강하, 걸어오면. 빨강, 급하게 다가오는.
빨강 : 저기요?
강하 : 또 뭡니까?
빨강 : 생각났거든요. 변호사 얘기.
강하 : 또 그 얘깁니까?
빨강 : 친한 친구 변호사 분 중에 이런 일에 나서주실 만한 분 안계세요?
강하 : 저 친구 없습니다.
빨강 : 그게 자랑이세요?
강하 : 뭐요?
-그 모습, 멀리서 걸어오다가 보는 재영.
빨강 : 아, 아. (머리 흔들고) 딴 데로 새지 말자. 새지 말자. 그럼 혹시 친한 선후배 변호사 분들 중에서라도?
강하 : 저 친한 선후배 없습니다.
빨강 : 아, 진짜 왜 그렇게 사셨대요?
-재영, 옆으로 다가오는 준하.
준하 : 점심 먹으러 가냐? (재영, 표정 보고 눈길 따라 가면 마주 서있는 강하와 빨강)
빨강 : 제가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진짜 변호사님 인생 너무 각박하게 사시는 거 아니세요?
강하 : 남이사 인생을 어떻게 살았든 진빨강씨가 무슨 상관입니까?
빨강 : 상관은 없지만, 너무 딱해서 그렇잖아요? 친구 하나 없고, 친한 선후배도 없고, 그럼 큰 일 당하면 와줄 사람도
하나 없다는 건데. 저도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서 당해봐서 알거든요. 변호사님한테 미쳐서 5년 허송세월하다가
인간 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회사에선 있으나마나 미스진 소리나 듣고 살다보니 회사 분들도 거의 안와주시고.....
강하 : 난 당할 큰일도 없지만, 당한다 해도 누가 오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빨강 : 너무 그렇게 생각하실 게 아니구요.
강하 : 지금 얘기 또 딴 데로 빠지는 건 알고 있습니까?
빨강 : 아. 얘기가 처음에.....
강하 : 그리고 가정부가 그렇게 말도 없이 외출하고 그래도 됩니까?
빨강 : 메모 써놨는데요.
강하 : 자기 볼일 보겠다고 밥만 달랑 차려놓고 나가고 그러는 거 근무 태만 아닙니까?
빨강 : 할 일 다 해놓고 나갔는데 근무 태만이라고 하시면......
강하 : 입주 가정부가 외출을 할 일이 있으면 고용인한테 사전에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건 상식 아닌가요?
빨강 : 그렇게 빡빡하게 따지기 좋아하시니까 친구도 하나 없는 거 아니겠어요?
강하 : 지금 엉기는 겁니까?
빨강 : 아니, 언제 누가 엉겼다구.
-멍하니 보는 재영과 준하.
재영 : 강하 오빠 말 저렇게 많이 하는 사람이었니?
준하 : 저기 그게 말이야. 진빨강씨가 사람 말 길게 하게 만드는 이상한 특기가 있거든.
재영 : (돌아서서 걸어가는)
준하 : (아직도 뭐라고 떠들고 있는 강하와 빨강을 보다가 재영을 따라 가는)
50. 씬. 회사 일각 (낮)
-재영, 서있는. 준하 다가오는.
준하 : 밥 먹자.
재영 : 싫다.
준하 : 임마.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
재영 : 별 거 아닌 일에까지 곤두서는 내 자신이 정말 싫어.
준하 : 한 집에 살고, 또 말 길게 하게 만드는 특기도 있고 그래서일 뿐이야.
재영 : 그리고 더 싫은 건, 저런 애까지 여자로 보인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원강하라는 남자한테 매달리는 나 자신이야.
준하 : 여자로 보인대? 형이? 진빨강씨를? 그. 그거야 너 약 오르라고.
재영 : 알아. 그런데 낯설어.
준하 :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면서 낯설긴 자식아.
재영 : 직원들 다 다니는 회사 복도에서 그런 여자애와 길게 떠들어대는 원강하. 너무 낯설어.
그리고 낯선 이 느낌이 너무 짜증스러워.
준하 : (실은 본인 자신이 불안한 느낌이 가장 크다)
51.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들어와 앉는.
강하 : 말려들지 말자, 원강하. 말대꾸를 하니까 자꾸 물고 늘어지는 거야. 근데 나 뭐 하러 가던 길이었지? 아, 점심.
(일어서며) 저 여자 진짜.....(하는데 들어오는 재영)
재영 : 나만 여자로 안 보인다고 했지?
강하 : 그만 하자.
재영 : (다가서며 강하에게 입을 맞추는)
강하 : (굳어지는)
재영 : (격렬하게 입을 맞추는데)
강하 : (확 밀치는)
재영 : 이래도 내가 여자로 안보여?
강하 : 정재영, 너무 추하다는 생각 안 드냐?
재영 :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옷도 벗을 수 있어.
강하 : 지금 이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추하다. (가려고 하면)
재영 : (강하의 팔을 잡는) 널 사랑한다구, 원강하.
강하 : (싸늘하게) 너 나 사랑하는 거 아니야. 네가 이루려는 제국에 내가 필요한 것뿐이지.
재영 : 사랑이라는 감정이 원래 더럽고 치사한 거라던데. 그럼 증명된 거 아니야?
정재영이 이렇게 더럽고 치사하게 매달리고 있으면 사랑이라고 증명된거 아냐?
강하 : 아니, 네 야망을 증명한 거지. (나가는)
재영 : 야망 때문이면 정말 좋겠다. 그럼 꼭 네가 아니라도 될 테니까......
52. 씬. 회사 일각 (낮)
-진주, 빨강 서있는.
빨강 : 나 만원만 빌려주라.
진주 : 왜? 교통 카드 다 썼어?
빨강 : 아니, 뭐 좀 하려구.
진주 : 만원으로 뭘?
빨강 : 그냥 좀 빌려주라.
53. 씬. 길 (밤)
-빨강, 빵 봉투 들고 걸어오는. 만호 앉아있고.
빨강 : (급하게 다가가는데)
-요란한 브레이크음.
만호 : (고개를 돌리고)
빨강 : (고개를 돌리는데)
-만호의 딸 아이, 도시락을 들고 길을 건너다가 차 앞에 멈춰서있는.
만호 :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길로 뛰어드는)
빨강 : (멍해지는)
-그 모습을 차에서 내리다가 보는 장수.
54. 씬. 길 (밤)
-만호, 울며 앉아있고, 그 옆에 딸 앉아있고, 마주 앉아있는 빨강.
만호 : 사는 게 막막해서...... 애 엄마도 허리를 다쳐서 일도 못나가고. 노점은 단속 때문에 할 수도 없고.
미안해요. 아가씨까지 말려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변호사 비용도 없고, 아가씨한테라도 매달려 볼 요량으로다가.....
보험 사기로 신고만 하지 말아줘요.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빨강 : (빵 봉투 앞으로 내놓으며) 그런 거 안 해요. 이거 드세요.
만호 :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이걸 받아먹어요.
빨강 :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은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만호 : 죄송은. 내가 미안하지. 추운데 어서 가요.
빨강 : 그럼..... (일어서서) 아저씨?
만호 : (올려다보면)
빨강 : 그래도 사는 게요. 사는 게 이게 전부는 아닐 거예요.
만호 : (아이 감싸 안고 눈물 글썽해서 끄덕이는)
빨강 : 그러니까 힘내세요.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서 있는 장수)
55. 씬. 장수의 차 안 (밤)
-장수, 빨강 앉아있는.
장수 : 내일 다시 정밀 검사 받아보자고 대학 병원에 진료 의뢰하고 오던 길이었는데.
빨강 : 고마워요. 진주 언니가 부탁했나보죠?
장수 : 진주씨? 아, 아니에요. 원강하 변호사가 불러서 재판 없이 일처리 할 수 있도록
실명의 확실한 증거를 찾아봐달라고 했거든요.
빨강 : 원변호사님이요?
장수 : 믿기지 않죠? 나도 그 냉혈한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믿기지 않더라니까.
빨강 : ......
장수 : 하기사. 저번에 불치병 애기 엄마 사건으로 인터넷에서 그렇게 욕을 먹었으니 자기도 부담은 좀 스러웠겠지.
본인 말로도 그러더라구요. 회사 이미지도 있으니 이번엔 조용히 해결했으면 싶다구.
빨강 : .....
56. 씬. 일식집 정도의 장소 (밤)
-정회장, 강하 앉아있는.
강하 : (사진을 내놓는)
정회장 : (사진을 받아드는)
강하 : 오정애씨 사진 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김성호씨는 주민등록을 만들기 전에 행적이 묘연한 상태라서요.
정회장 : (사진을 애잔하게 바라다보는) 이 사람이.....우리 인혁이 짝이었다는 거지. 이 사람이.....
강하 : 여러 루트를 통해서 찾고 있으니 곧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정회장 : (끄덕이며) 제발 살아만 있거라. 제발.....
57. 씬. 지하방 (밤)
-태규, 양갱이 꺼내놓으면서. 동생들 죽 앉아있고, 남이 보행기에서 잘 놀고 있고.
태규 : 노인분들은 이런 거 좋아하신다고 해서 특별히 사온 건데. 어디 가신 거니?
주황 : 그건 저희도 몰라요.
태규 : 할 수 없지 뭐. 너희가 먹어. 할아버지는 다시 사다 드리면 되니까. 근데 말이야?
주황 : 네?
태규 : 할아버지가 나 진짜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 같긴 하지?
노랑 : 그게요, 오빠,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셔도 우리가 언니가 결혼하는 거엔 뭐라고 말 못하시거든요.
태규 : 왜? 할아버지 말발 안 세셔? 그러면 안 되지. 엄마, 아빠도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제일 큰 어른이신데
어른 말씀을 들어야지.
초록 : 어쨌든 할아버지는 오빠가 마음에 드시는 거 같아요.
태규 : 그지? 그지?
-빨강, 들어오는.
빨강 : 너 왜 또 이 방에 와 있니?
태규 : 응. 할아버지 드리려고 양갱이 좀 사왔거든.
빨강 : 참 실속도 없는 일에 애 많이 쓴다.
태규 : 실속이 없긴 왜 없어. 할아버지가 나 무지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
빨강 : 나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어서 나가.
태규 : 내가 이따가 문 몰래 열어놓을게, 할아버지 들어오셔야 하잖아.
빨강 : 나가라 좀.
태규 : 자기 우유 먹을래?
초록 : 무슨 맛인데요? 나도 먹을래요.
태규 : (하트 손으로 만들어 보이면서 빨강에게) 아이 럽 우유~
주황 : (욱하는)
태규 : (나가는)
초록 : 저런 말은 안 하는 게 훨씬 나을 텐데.
58. 씬. 준하의 방 (밤)
-준하, 일하고 있으면, 노크 소리.
준하 : 네.
-노랑, 문 빼꼼이 열고.
노랑 : 들어가도 돼요?
준하 : 응. 들어와.
노랑 : (들어와서) 너무 서두는 거 같긴 한데요. 이러시다가 잘못 되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준하 : 뭐가?
노랑 : 태규 오빠가 요즘 너무 열심이거든요. 지금은 우리 언니가 아니라고 하지만, 여자 마음은 제가 좀 알거든요.
저도요. 제 짝 됐던 박호규가 진짜 마음에 안 들고 싫었거든요. 근데, 걔가 저 좋다고 연필도 주고, 지우개도 주고,
크레파스도 막 주고 그러는 거예요. 걔가 눈은 좀 높거든요.
준하 : 저기 미안하지만, 정확하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노랑 : 들어보세요. 박호규가 저 막 좋다고 그런 거 막 주고 그러니까 저도 마음이 막 흔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결혼 할 때, 1번으로 생각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여자 마음이 그런 거라니까요.
준하 : 그러니까 너 박호규한테 번호표 1번 줬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니?
노랑 : 아니죠. 잘 좀 들어주세요. 태규 오빠가 계속 저렇게 좋다고 하면서 피자도 사주고, 양갱이도 사주고. 그러면
언니 마음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요.
준하 : 저기 아저씨 이 일 빨리 해야 하는데.
노랑 : 나가라구요?
준하 : (끄덕이면)
노랑 : 저한테까지 이러시면 안 되세요, 아저씨. 전 그래도 아저씨 편이라서 이런 말도 해주는 건데.
(나가면서) 그래도 아직은 아저씨 편이예요. 잘 좀 하세요. (문 닫는)
준하 : (머리 흔들며) 아 저 꼬마 진짜 질기네.
59. 씬. 강하의 집 거실 (밤)
-강하, 들어오면, 빨강 청소하고 있는.
빨강 : 이제 들어오세요?
강하 : 네.
빨강 : 저녁은요?
강하 : 먹었어요.
빨강 : 저녁 드시고 오실 거면 아까 회사에서 만났을 때 말씀 좀 해주시면 안돼요?
강하 : .....
빨강 : 그럼 일부러 꼬두밥 안 해놔도 되고.
강하 : 너무 막 가는 거 같지 않습니까? 진빨강씨?
빨강 : 아니요. 꼬두밥은 혼자 좋아하시니까요. 오늘은 진짜 후 불면 날아갈 정도로 잘 됐는데, 버리기도 아깝고,
내일 아침에 찬밥 드셔야 해서 드리는 말씀이죠.
강하 : 후 불면 날아갈 그 밥 내일 아침에 먹으면 될 거 아닙니까?
빨강 : 멀건 감자국도 진짜 제대로 끓였는데.
강하 : 내일 아침에 먹는다구요, 그 국도.
60.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들어오는.
강하 : 아주 밤낮으로 시비야.
-옷 갈아입는데. 파랑, 문 빼꼼이 열고.
파랑 : 아저씨?
강하 : 왜?
파랑 : 지금은 몽유병 아닌데, 들어가도 되요?
강하 : 맘대로 해라. 네가 언제 물어보고 들어왔냐?
파랑 : (얼른 다가와서) 아저씨?
강하 : 왜?
파랑 : 전요, 아저씨가 짜장면 사주셨다고 아저씨 편이 아니에요.
강하 : 뭐?
파랑 : 그냥요. 전요. 아저씨가 진짜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태규 형한테 밀리시면 안돼요.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 (뛰어나가려다가. 홱 돌아서서) 안녕히 주무세요. 우리 누나 꿈꾸세요. (나가는)
61. 씬. 강하의 2층 욕실 (밤)
-강하, 세수하면서.
강하 : 진짜 저 남매들 때문에 살 수가 없다. 아, 혼잣말 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너 왜 이러는 건데? 원강하?
62. 씬. 강하의 2층 거실 (밤)
-강하, 욕실에서 나오면, 빨강, 차 들고 올라오는.
강하 : 그냥 잘 거니까 커피는 됐어요.
빨강 : 커피 아닌데.
강하 : 그러면 뭐 독약이라도 탔습니까? 친구도 없고, 선후배도 없는 놈 큰 일 당하게 하려구?
빨강 : (킥 웃고) 그런 농담도 할 줄 아세요? 와, 진짜 신기하다.
강하 : (아,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표정으로 방으로 움직이는데)
빨강 : (앞으로 막아서며) 코미디 프로 같은 보셔도 웃지 않으시죠? 왜 웃는지 모르시겠죠?
강하 : 지금 뭐하는 겁니까?
빨강 : 5년 동안 쫓아다녔지만, 웃으시는 거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강하 : 웃을 일이 없어서 안 웃습니다, 됐습니까?
빨강 : 잠 잘 오시라고 쟈스민 차 타왔는데. 그리고 고맙습니다.
강하 : 뭐가요?
63. 씬. 거실 (밤)
-준하, 책 들고 2층으로 움직이고 있는.
빨강E : 조사부 이장수 차장님께 들었어요. 변호사님이 최만호씨 확실한 실명 증거 자료를 찾아보라고 하셨다는 거요.
준하 : (멈추는)
64. 씬. 강하의 2층 거실 (밤)
빨강 : 실은 저하고 같은 마음이었던 거죠?
강하 : 아니요, 법은 공평해야 하니까 고객한테도 방어할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빨강 : 그냥 그렇다고 해주면 안돼요? 꼭 그렇게 얌통머리 없이 쌀쌀맞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세요?
강하 : 네. 그래야 시원합니다.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빨강 : 최만호씨, 재판 안하시겠대요.
강하 : (보면)
빨강 : 완전히 실명하신 건 아니었대요.
강하 : .....
빨강 : 그럼 문제없는 거죠? 본인이 보험금 청구 안하신다고 했으니까 보험사기 같은 걸로 문제 되는 건 아니죠?
강하 : 공부를 안 하니까 그런 걸 묻는 거 아닙니까?
빨강 : (보면)
강하 : 본인이 포기하겠다는데 문제될 게 뭐 있습니까? (문 닫고 들어가면)
빨강 : 정말 정 안 붙는 캐릭터야.
65. 씬. 거실 (밤)
준하 : (계단에 서서 생각에 잠기는)
66.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책상 앞에 앉고. 빨강, 찻 쟁반 들고 들어오는.
빨강 : 정말 왜 그러세요? 차 가지고 올라온 거 뻔히 보시곤 눈앞에서 문 쾅 닫는 건 무슨 매너신데요?
강하 : 한 달 동안은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말 막 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빨강 : 그러게요. 제가 점점 왜 이럴까나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변호사님하고만 마주서면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하게 되고.
예전엔 잘 보이고 싶어서 이쁜 말만 했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없어져서 그런가 봐요. 반성하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자, 그럼 차드시고 편한 밤 되세요. (나가는)
강하 : (찻잔을 들어올리는)
67. 씬. 준하의 방 (밤)
-준하,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답답해서 일어서는.
68. 씬. 거실 (밤)
-준하, 방에서 나오면, 태규 전화중이다.
태규 : 엄마, 엄마, 나 진짜 돈이 필요해서 그래. 아니 용돈 말고. 그것보다 좀 많이 필요한데. 그건 묻지 말고. 엄마? 엄마?
아니, 무슨 엄마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전화를 이렇게 탁탁 끊어 버리냐?
준하 : (다가오며) 야, 너 또 무슨 사고 쳤냐?
태규 : 아니야, 그런 거.
준하 : 그런 거 아니면, 네가 큰 돈이 왜 필요해?
태규 : 삼촌 다이아 반지 하나 사려면 얼마나 들까?
69. 씬. 식당 (밤)
-준하, 물마시고 있으면,
태규 : 그래도 1캐럿 정도는 해주고 싶은데, 마음 같아선 더 큰 걸로 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내 처지가 그러니까.
준하 : 너....
태규 : (보면) 응?
준하 : 너 진심이야?
태규 : ......
준하 : 빨강씨에 대한 마음 진심이냐구? 그 맨날 하는 운명의 상대 타령 또 하는 거 아니냐구?
태규 : (주먹으로 가슴을 탁 치고 맹세하는 포즈하면서) 이번엔 진심이야. 내 인생에 여자는 진빨강 하나라고, 맹세해.
70. 씬. 회사 전경 (낮)
71.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퇴근하기 위해 가방 정리하고 있으면, 들어오는 준하.
준하 : 오랜만에 술 한 잔 하고 들어가자.
강하 : ......
72. 씬. 길 (낮)
-걸어가는 빨강. 전화벨 울리고.
빨강 : (번호 보고) 태규야, 누나 일하느라 바쁘다. 이렇게 방해하면 나쁜 어린이에요, 우태규.
태규E : 내 친구놈들이 보험 설명 다시 듣고 싶대.
빨강 : 그래?
73. 씬. 재즈바 (밤)
-강하, 준하 술 마시고 있는. 비어있는 무대.
강하 : (무심하게 술 마시는데. 계단으로 내려오는 빨강을 보고. 굳어지는)
-빨강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과 동시에 불이 꺼지는.
모두가 술렁이는. 정전이야, 뭐야 어쩌고 저쩌고.
빨강 : (놀라서 조심스럽게 벽 잡고 내려오려는데)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는.
빨강 :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모으는데)
-턱시도 차림의 (또는 이벤트성 의상으로, 사관생도 복장 같은) 태규의 친구 1,2 빨강의 손을 잡는.
빨강 : 왜, 왜 이러세요?
-태규의 친구들 빨강을 무대로 데려가는.
빨강 : 저, 저 노래 못하는데.
강하 :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준하 : (무심한 표정, 하지만 강하의 표정을 주시하는)
빨강 : 저 진짜 노래 못하거든요.
-빨강이 엉겁결에 무대에 올라서면, 태규, 기타를 치면서 나타나는.
빨강 : (멍하니 보고)
강하 : 저 자식 뭐하는 거야?
준하 : 보면 알겠지 뭐.
-태규. 감미로운 발라드 곡. 김장훈 “마이프로필” ~내 이름은 너의 남자, 태어난 날 너를 만난 날, 눈빛 처음 마주쳤던~
빨강 : .....
태규 : (노래를 하고)
-그 사이, 계단으로 내려오는 재영.
재영 : (무대를 보고 이 상황이 뭐지 하는 표정으로)
태규 : (노래 끝내고, 기타 풀어놓고. 빨강 앞에 무릎을 꿇는. 준비 해뒀던 반지 케이스 꺼내서 여는)
빨강 : 너....
강하 :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준하 : (그 모습 놓치지 않고)
태규 : 진빨강. 난 바보 같고, 성공 할지 안할지, 자신도 없고, 맨날 헛소리만 하는 웃기는 인간이지만.
하나는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어. 지금 이 순간은 헛소리가 아니라는 거. 그리고 이것만 맹세할게.
너 때문에 지금 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거 란 거. 너 때문에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거 란 거.
너 때문에 지금 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될 거 란 거. 그러니까 나랑 결혼해줘.
빨강 : .....
강하 : (굳어져서 보다가, 고개를 돌리는)
-그런 강하를 보는 준하. 재영.
빨강 : (멍해있는데)
-주위 사람들 받아줘, 받아줘. 소리치는.
빨강 : (어떻게 할 줄 모르는 표정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