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인터뷰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낸 박완서소설가 박완서(79)씨가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를 냈다.
최근 4년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발표한 에세이 13편, '박완서의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2008년 한 해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서평 칼럼 13편을 함께 실었다.
지난 주말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자택에서 만난 박완서씨는 눈을 반짝이며 산문집을 낸 소감을 밝혔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걸 다 썼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아예 빼거나 만족스러울 때까지 고쳐 썼기 때문에 나이에 부끄럽지 않은 책이 됐다고 자부해요."
작가는 "이렇게 쓰는 게 나잇값이라면 나는 글에서만큼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고도 했다.
- ▲ 자택 마당 한쪽을 화사하게 물들인 꽃나무 앞에서 소설가 박완서씨가 소녀처럼 웃었다. 그는“내 마당에 몸 붙이고 있는 것들은 하루도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 날이 없다”며 연방 꽃잎을 다듬고 잡초를 솎았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번 산문집을 통해 박씨는 자신의 문학을 형성한 개인사의 기쁨과 슬픔을 돌아보고, 사회 원로로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청춘의 부푼 꿈을 깡그리 앗아가 버렸지만 그녀에게 처음으로 작가의 꿈을 갖게 한 6·25전쟁 경험에 대한 토로는 역사와 개인과 문학에 대한 깊은 상념으로 독자를 이끈다. 20년 전 외아들을 잃은 슬픔을 삶에 대한 뜨거운 사유와 문학으로 승화해가는 과정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차산 밑에 있는 자택에서의 일상도 살짝 공개했다. 박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에 나가 잔디 사이에 퍼진 토끼풀, 민들레, 괭이밥을 뽑는다. 그러다 지쳐버리면 "내가 졌다"며 마당에 벌렁 드러누워 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등을 대고 누운 잔디밭에서 씨를 품은 흙의 꼼지락거리는 기척을 느끼기도 한다. 그 생명의 에너지가 반가워서 그녀는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고 속삭인다.
박씨는 지난 5월 집의 지하 집필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한 달간 깁스를 하고 꼼짝없이 갇혀 있자니, "자기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것만도 행복임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걸을 땐 걷는 것만 생각해'란 말을 팔십이 다 돼서도 듣는구나 생각했어요. 두 다리로 가까운 호숫가에 나가 흙길을 걸을 수 있는 데 감사하게 됐지요."
올해가 6·25전쟁 발발 60주년이어서인가. 대학 입학식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던 전쟁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그녀는 교사나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25쪽) 만약 그녀가 소설가 대신 교수나 교사가 됐다면 어땠을까. 작가는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박씨는 여전히 '현역작가'다.
단편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2008), '빨갱이 바이러스'(2009),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2010)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왕성하게 글을 쓴다.
다음 소설집은 언제 나올까.
"아직은 계획 없어요. 몇 년 후 계획을 세우고 살기엔 내가 늙었거든요. 하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물론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빨리 쓰지는 않지만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고, 지금도 머릿속으론 작품 생각을 계속 해요."
첫댓글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제는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태어나서 박완서 님의 글을 읽을 기회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저도 안타깝군요. 삼가 님의 명복을 빕니다.
연세가 벌써...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학창시절부터 그분의 책을 많이 애독했는데 큰별이 떨어지셨네요.
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 요즘세태의 감각을 유지하시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신분인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