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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마법 광명을 밝혀 신라 미래와 희망의 빛으로 비춘 장보고
물리적 의미와 가치 영향을 드러내어 세상을 바꾼 장보고 신라 빛으로 힘차게
궁복 STEP
궁복 나이 17 꿈동이의 소원
궁복도 배고프다
리더십리부팅 소진에서 회복까지
Spark(열정)-변화의 원동력
Transformation(변화)-성장과 발전
Empathy(공감)-따뜻한 소통
Purpose(목적)-명확한 방향성
그는 설렘 가득 안고, 그의 나이 17세에 당나라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당나라에 도착해 설레는 마음으로 신라인들이 머무는 코리아타운인 〈신라방〉 으로 달려갔다. 환한 미소로 자신을 반겨주는 신라인들의 만남, 하지만 궁복은 왠지 낯설기만 해 수줍어하는 표정만...
서로 반갑게 끌어안으며 인사를 나누고, 타국에서 신라사람들을 만난 기쁨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궁복은 그 순간의 벅찬 감동과 따뜻한 포옹이 가슴속 깊이 한동안 남았다.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여 정착해 계신 분들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으로, 그는 낯설음을 금세 잊고 다른 환경에서 익숙해지는 등 쉽게 적응했다.
자신을 환영하는 분들의 신라방을 정성스러운 꽃 장식, 풍성한 간식과 따뜻한 환영까지... 모든 순간에 배려와 사랑이 가득한 채 지역 안내까지 해줘 고마움이 컸다.
당나라 신라방 환영식에는 단순한 맞음을 보이는 것을 넘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무너져도 신라사람이다
신라방에서만 누릴 수 있는 산라인들의 대 환영!
궁복을 비롯한 참석한 모든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 신라인들의 따뜻한 환영은 궁복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궁복도 배고프다
오늘은 위로받을 차례입니다
궁복 웃음을 위하여,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형, 신라방에 거주하는 분들이 수고를 함께 나누기 위하여 신라방을 관리하는 분들은 매일 마음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도 가끔은 기대고 울어도 된다는 것을, 강한 사람도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만큼은 궁복도 배고프다
먼저 와 계신 신라인들이 토닥토닥! 위로 해주었다.
밝은 꽃, 궁복의 열정이 신라방을 기득 채워진 채, 함께 웃으며 토론하고 자신이 꿈꾸었던 군인의 꿈을 이루고자 그는 지원군으로 입대했다. “최고의 열정과 긍정의 에너지는 누구? 나야 나!” 밝은 꽃 궁복이라고, 그는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는 용기와 잎으로가 더 기대된다는 설렘을 안겨주는 진정 멋진 시간이었다며, 그는 무령군 군사로서 활동을 했다.
궁복은 신라방에서 함께해서 더 뜨겁고, 함께해서 더 빛났던, 특별한 하루였다고 했다. 단순한 만남 이상의 의미가 담긴 따뜻한 마음, 〈미래꿈신라방 감동 행복공간〉 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는 멋진 신라방으로 보았다.
그런 공간에서의 그는 선암마을에서 떠나기 전부터 꿈꾸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기 위해 서로의 이야기로 배우고, 웃음과 감동으로 물든 시간들을 함께해서 더 즐겁고, 함께해서 더 빛났던 순간들이었다고 이제 난 신라의 꿈둥이가 아닌 ‘당나라에서의 희망둥이’ 로 새롭게 태어나 궁복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신라의 빛이 바라지 않도록 하겠다며, 17개의 꿈을 갖고 당나라의 삶을 시작했다.
궁복발걸음은 사랑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 다시 시작해봅니다” 라고 무령군에서 충실했다.
궁복의 17개의 꿈은 신라의 미래를 여는 희망의 의 꿈으로 『학문, 기예, 기술, 과학, 문화, 예술, 방어, 질서, 안정, 평화, 무역, 변화, 혁신, 개척, 확장, 부강, 균형』 이다. 그런 궁복은 장보고로 그 꿈을 펼쳤고, 완도 청해진에서 이루어 갔다.
●장보고의 국제지유무역의 시장 전략
장보고가 국제무역에 왜 신경을 썼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이렇다. 그는 찬란한 신라라고 말하지만, 웃지 못하는 곳이 있었다. 수출입의 무역교역이다. 신라는 중계무역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 했다고 해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추진하지 못해 문물교류가 일장방적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장보고는 이점을 직시하고 바로 중계무역을 바로잡고 균형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신라무역 정책을 다시 세우고 진해하게 했다. 그동안 신라는 타 지역, 다른 ㅏ라들과의 교역이 이루어가면서 문화의 꽃을 피우며 경제 부흥에도 이바지했지만. 크게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신라는 나름의 문화로 그 덕에 국내 기업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냈지만, 일부에서의 일이지, 전체적으로 보면 영업 손실을 내거나 빛 좋은 개살구였다. 신라는 당나라나 일본보다 나은 물품이 덜했던 것이다. 신라는 수출을 했지만, 많은 양이 아닌데다가 물품이 당나라나 일본에 비하면 뒤떨어졌다. 그런데다가 활발하게 다른 나라로 무역(무역)을 활발하게 진행하지 못했다.
‘신라는 물품과 무역이 위기를 맞고 있다’ 라고 장보고는 진단했다. 한 때는 일본을 밀어내고 국제 시장을 장악한 신라는 당나라의 저가 물량 공세에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익이 많이 남는 프리미엄 제품군을 공략하면서 당나라 추격을 따돌렸다. 하지난 당나라와 기술력 격차는 매년 좁혀지고, 소비자의 구매 트렌드 변화와 늘어난 교체 주기, 경기 둔화 등으로 고가 프리미엄 제품 시장은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 신라 제품이 고가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차별화가 사라짇고, 중저가 시장에서는 가성비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이에 신라는 제품 업체들은 구독 서비스와 차별화된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쪼그라진 프리미엄 시장에 장보고의 고민은 컸다. 당나라 기업들이 신라 제품을 베껴 싼값에 내놓자 신라 기업들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 전략은 초기에는 통했지만, 그러나 경기 둔화기 장기화하면서 프리미엄 시장은 정체되고. 불경기에는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사치품 구매 비용이어서 소비자들은 부가 기능을 덜어낸 실용성 있는 제품을 많이 찾았다. 장보고는 이 점을 직시하고 그는 심각성을 깨닫고 ‘신라 제품 상황은 심각하다’ 라고 진단하고, 신라 제품 생산 방식과 전략을 정립하고, 무역지도를 다시 그려냈다.
이런 상황에서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당나라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었다. 당나라 기업들은 세계 최대 제품생산 그룹에 등극했다. 그 회사들은 각종 제품군에서 신라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
장보고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는 신라의 현실 앞에서 어느 누구보다 국제적 감각과 무역에 눈을 뜬 그였기에, 그는 〈신라구독 해외공략〉 이라는 결심을 하고, 업계는 구독 사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제품 구독은 소비자가가 월 이용료를 내고 각종 제품을 등을 사용하며, 소모품.서비스를 받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소유하는 형태로써 초기 비용이 적어 사용자를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정기적인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묶어두는 ‘록인-Lock in’ 효과도 있어 〈신라구독 서비스〉 으로 해외공략을 해됐다.
그런 전략으로 국제자유무역을 추진했던 장보고였다. 그는 그런 정책과 전략으로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신라를 자족이 가능하고, 제품 우위에 서며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신라를 만들겠다” 고 의지를 보였다.
해상왕과 무역왕 타이틀을 갖고 있는 장보고는 신라의 경제는 자족 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당나라에 비하면 뒤떨어진 점이 많다고 보고, 신라에 있는 세계적 규모의 문화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 문화콘텐츠, 에너지 등 분야의 활용 방안도 고민해 신라의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세계 무역은 신라를 통한다.’ ‘무역은 신라에서 시작한다’ 라는 거창한 구호로 국제자유무역을 추진했다.
장보고는 “대전환 시대에 신라가 신라정부 성공의 시발점이자, 교두보가 되도록 하겠다” 며 “신라에서 문화를 꽃피우고, 무역의 성공 바람을 일으키겠다” 고 다짐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반도의 일부의 지역이자만, 다른 지역과는 상황이 달라 기존과는 다른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행정과 정책, 제도와 법률이 필요하다” 며 “신라 조정과 함께 행정 혁신을 일으키겠다” 고 하면서 그가 생각한 대로 힘차게 추진해갔다.
신라 42대 흥덕왕은 “조정은 장보고의 흘린 땀과 노력이 후회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신라 발전을 위한, 특히 무역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며 “국제 규격을 충족하는 신라중계무역 시설을 비롯한 무역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는데 돕겠다” 고 약속했다. 흥덕왕은 국제적 감각과 선진문화에 조예가 깊은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하면서 “백성들한테 더 많은 관심 속에 응원 받으며, 국제무대에 설 수 있게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 고 힘을 실어줬다. 그런 흥덕왕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해상을 통한 국제자유무역을 활발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흥덕왕과 여러 왕들은 “장보고의 역할과 탁월한 임무 수행에 극찬하며,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으로 뜨거운 감동과 자부심을 안겨준 장보고가 신라의 자부심” 이라며 “장보고는 신라 영웅” 이라고 치하했다.
장보고는 〈장보고 실용주의〉 를 외쳤다. 생각의 기능을 설명, 재현, 실제의 반영이 아닌 예측, 문제 해결, 행동을 위한 도구로, 이상주의와는 달리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 실용주의를 ‘도구주의 또는 실험주의’ 로 발전시켜, 인간의 지적 활동이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로 적용한, 고정된 진리나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행동, 경험, 유용성’ 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 사상으로 만들어낸, 〈시대정신 & 실용주의〉 로 신라문화를 신라의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라는 문화산업에 나름의 독보적인 것을 창작해왔다” 며 “기업의 기술, 마케팅 지원, 규제 완화 등 빈틈없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해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형 문화산업을 구현해 나갈 것” 이라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장보고는 “신라 800년 현재에 안주하며 미래를 놓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아야한다” 며 “미래 경제와 선진산업을 선도해야 할 1등 국가에 효능감 있는 정책을 꾸준히 착안하고 발굴하여, 더 찬란한 신라를 만들어내야 한다” 고 반도를 이끌었던 신라를 멈춰 있는 나라로 전략시켜서는 안 된다며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장보고의 군사와 무역 관계 설정
장보고가 무역을 왕성하게 추진하게 된 것은 당나라에서의 무령군에 근무하면서 터득한 ‘무역관(貿易觀)’ 이다. 당나라는 해외 무역에 상당한 선진화를 이룬 채,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장보고는 당나라의 선진무역 사업을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군사 기술(技術)이나 전법(戰法)을 터득하면서 무역 공부에도 열중했다. 그는 단순한 직업군으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았던 것,
군사기술과 전법을 잘 익혀서 고국 신라로 다시 들어가 나라를 위해 써 먹겠다고 하며, 그는 배운 무역을 군사와 함께 추진했다. 이때 당시만 해도 장보고처럼 다방면에 지식을 갖춘 다재다능한 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있어도 그저 어께 너머로 배운 자들의 어설프게 보여준 비전문가들이었다. 장보고는 전문지식을 갖춘 몇 안 된 사람이었다.
그는 군사(軍事)와 무역(貿易)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쌓겠다고 당나라로 떠났다. 그는 목표와 계획을 세우기를 이미 고향에서 활 쏘는 법을 배웠고 연습을 했기에, 그는 당나라 무령군에서 기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어 훌륭한 군사로 인정을 받았다. 그게 장보고가 염두하고 미리부터 자신 나름의 군사훈련을 익혔던 게 첫 번째 계획이다. 두 번째로는 군사력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워 실전에 능 하는 참 군인으로서의 인정을 받든 것이었다. 그러면서 당나라의 선진무역에 관심을 두며 군사와 무역의 관계라는 학문을 배웠던 게 세 번째 자신의 목표였다.
군사와 무역은 서로를 강화하거나 억제하는 상호작용을 가지며, 동맹.협정.분쟁 같은 안보 변수에 따라 무역이 확대되거나 제한되는 경향이 있어 군사와 무역의 두 성질을 파악하는 데 주시했다.
특히 무역협정은 군사 분쟁 발발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동시에 군사 분쟁은 무역협정 체결을 저해하는 상호 인간관계가 제시되기에 군사와 무역 관계의 핵심을 정리했다.
군사와 무역의 관계, 군사적 측면에서는 군사동맹 훈련 정보 공유, 무역측면에서는 무역안보 외부 효과의 동맹이 무역자유화에 미치는 영향, 상호 작용으로 동맹 신뢰성에 따라 무역자유화 효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 군사협력 강화의 기반, 무역자유화, 무역협정이 군사 분쟁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무역협정과 분쟁 대치, 무역협정 체결을 억제, 분쟁이 무역협정 체결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군사 분쟁에 연구하여 신라의 군사와 무역에 접목시켰다.
장보고는 무역협정으로 군사 분쟁을 발발을 억제시켰고, 군사 분쟁을 무역협정 체결로 억제했다. 이처럼 무역협정과 군사 분쟁은 서로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상호 인과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당나라, 일본 등 동맹이 무역에 미치는 긍정 효과는 동맹이 ‘신뢰성’ 에 따라 달라졌다. 무역의 비준 여부와 국내 거부점 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무역협정과 군사 분쟁은 상호 인과관계를 가질 수 있어, 군사 분쟁이 무역협정 체결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보고(張保皐)는 군사와 무역을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궁, 장에 숨겨진 의미
궁(弓), 장(張)자는 활 궁(弓)자가 있다. 이 활 궁은 ‘끌 인(引)’ 의 뜻을 내포한다. 인(引)은 ‘활을 쏘다. 물리치다’ 라는 뜻이 담긴 한자다. 장보고의 국가관과 사명감, 군인 정신은 궁복의 궁에서 풍겨남이며, 또 장보고의 이름에서 장(張)자와 보(保)가 끌 인(引)을 찾아볼 수 있다. 장(張)자의 활궁변(弓), 보(保)자의 사람인변(人)은 끌 인(引)을 의미한다. 끌 인(引)은 갑골문에서는 끌다. 당기다. 늘이다. 이끌다. 인도하다 라는 뜻을 지닌 한자로 풀이한다.
조자로 활 궁(弓)과 뚫을 곤(丨)을 합친 회의(會意)문자다. 인(引)은 활의 시위를 손으로 ㄷ아가는 모습으로, 활을 당겨 발사 직전의 팽팽한 상태를 뜻한다. 끌 인(인)의 뚫을 곤(丨)은 ‘위아래로 관통하다. 나아가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인(引)은 ‘사람을 끌다. 이끌다’ 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장(張)은 인(引)으로, 인(引)은 보(保)로 하나의 맥을 같이하는 연결성을 지닌다. 활이라는 핵심주체로 하여 활의 시위가 팽팽하게 얹힌 상태암을 말해주고 있다. 활로 끌거나 이끌겠다는 의미다. 이끈다는 것은 곧 군사, 무역, 그리고 나라 등 응용 서비스로 이어지는 구조로 각 계층이 결합해 대규모 신라 인프라 확장을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청해진은 신라 역사상 가장 큰 인프라 구축 중 하나다.
장보고는 청해진 대사로 있으면서 수많은 정책과 전략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해상무역을 추진했다. 그는 군사 안보에 있어서는 ‘인해전술(人海戰術)’ 공격법을 진행했으며, 해상 무역에 있어서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으로 전술과 전략 실행 과제를 당.일본 등과 연결해 공개하고, 지속해서 추적.리뷰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했었다.
장보고 자신의 이름의 장(張)과 보(保)는 ‘인도접수(引渡接受)’ 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인(引)자는 갑골문에서는 활 궁(弓)과 큰 대(大)의 활자였던 것이 나중에 대(大)가가 당김을 나타내는 지시부로 (丨)으로 변하였는데, 궁(弓)은 활을 당겨 크게 부풀린 모습에서 ‘당기다. 끌다’ 의 뜻을 나타낸다. 즉, 인도(引渡)에서의 인(引)은 ‘끌다. 이끌다’ 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인도접수의 줄인 말인 ‘인수(引受)’ 는 위원회 따위를 이끌어 권리나 업무 등을 건네받음을 의미한다. 고로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에서 자신이 추진한 모든 일들이 인도접수(引受)를 하겠다는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인수(引受)는 인계인수의 줄인 말로, 인계(引繼)는 이을 계(繼)자를 쓰는데, 퇴장할 정권의 입장에서는 국정업무와 정권을 인계(引繼)해주는 것이고, 새로운 정권의 입장에서는 인수(引受)를 하는 것이다.
인수인계를 중국에서는 서로 닿아 접촉한 ‘교접(交接)’ 이라 하며, 조선시대에는 물건의 인수인계에 대해 곳간에 있는 것을 되돌려주는 ‘반고(反庫)’ 또는 서로 주고받고 나누는 ‘교할(交割)’ 이라고 썼다.
궁복의 본이름을 한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에 궁(弓)자가 들어간 한자를 쓴 것은 ‘활을 당기듯이 무엇을 당기거나 끌어 오겠다’ 는 의지를 담았다. 궁(弓).장(張).보(保)에서의 암시하는 인(引)은 견인(牽引), 끌어당기겠다는 것이다. 구인(拘引),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인수(引受), 물건이나 권리를 넘겨받겠다는 것이다. 인용(引用). 좋은 점들을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인(引)은 화살을 본뜬 상형문자인 인(寅)과 상통한다. 인(寅)은 ‘호랑이’ 를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인(寅)은 ‘공경하다’ 는 뜻으로 쓰인다. 서로 공경하는 관계라는 뜻으로, 높은 벼슬아치들끼리 서로 공경하는 동료인 ‘동인(同寅)’ 등의 단어를 제시한다.
궁복(궁복).궁파(弓巴)과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은 ‘끌 인(引)’ 또는 ‘동료 인(寅)’ 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장보고의 장(張)에서 활 궁(弓), 장보고의 보(保)에서의 사림 인(人) 이 두 한자는 끌 인(引)을 말한다. 끌거니 이끈다는 뜻이다.
인(引)은 ‘넓은 홍(弘)’ 자와 같은 상통한다. 홍(弘)은 갑골문에서 활(弓)에 지사부호를 더하여 화실이 시위를 떠날 때 내는 큰 소리를 형상화하였다. 이로부터 ‘당기다. 강력하다’ 의 뜻이 나왔다. 여기서 파생된 ‘굳셀 강(强)’ 은 생명력이 대단히 강한(弘) 쌀벌레(蚚)를 지칭했다.
궁(弓)과 관련된 한자를 살펴본바 궁복.궁파.장보고라는 이름이 깊은 철학과 사상, 국가관 사명감, 꿈과 희망, 야심과 야욕이 담긴 이름임을 알게 된다. 그런 인(引)으로 고(皐)하겠다는 것인데. 언덕 고(皐)는 높은 위치, 즉 제왕을 말한다. 장보고는 장과 보로 어떤 위치에서 큰 인물이 되겠다는 자신만의 바람을 장(張)자, 보(保)자. 고(皐)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확장해 끌어올리겠다는 장보고의 마음, 그 마음은 해상왕이라는 위대한 칭호를 부여했던 거.
●장보고의 만국진량 정책, 세계를 넘나들다
군사를 통한 해상무역을 활발하게 추진하겠다는 장보고의 생각, 그런 인프라스트럭처 통합을 가속화하겠는 복안으로 향후 국가와 기업 간 경계를 넘어선 일종의 해상패권 다툼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었다.
장보고는 이름에서 읽어볼 수 있듯이, 그는 신라 해양 3.0이라는 전략을 세웠다. 3.0은 〈해양왕국〉 을 세운 일로, 이 원대한 구상은 〈뉴딜 씨 플랜-New deal Sea Plan〉 라는 ‘새로운 해양국가 건설’ 을 목표로 둔 것이다. 장보고는 해상장악,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변화를 희망했으며, 그건 상당 부분 신라 백성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했다.
궁복.궁파.장보고는 군사작전의 암호명(暗號名), 무역전략의 전술(戰術)로 쓰인 이름들이다. 어떤 일을 이뤄 자신을 큰 인물로 만들겠다는 희망사항이 담긴 이름이다. 이런 이름으로 핵심 해양과 산업의 패권을 확보하고 해상망(로), 공급망을 재배치시키려는 전술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신라라는 나라를 새롭게 재정립, 즉 정치.경제.사회.문화.제도 등을 혁신하려는 생각도 담아냈다.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역사 유적지 중 대표적인 것이 ‘슈리성(首里城)’ 이다. 이 성 안에는 동종(銅鐘)이 있는데, 일본의 옛 이름인 류큐 왕국시절에 세운 성(城)으로서, 이 성안에 설치된 동종에는 이런 글씨를 새겼다.
‘만국진량(万國津梁)’ 이라는 글씨다. 만국진량은 ‘세계로 건너간다. 세계의 가교’ 라는 뜻이다. 이 종(鐘)은 류큐 제1왕조 시절인 1458년, 조선 세조 4년에 제작된 종이다.
종 앞에 설치된 설명문에는 ‘류큐왕국 남쪽 바다의 아름다운 나라이다’ 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나라는 조선을 말한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해양왕국으로 군림했다는 것을 말해준 것으로, 해상왕국으로서의 자랑스러운 기상(氣像)을 나타낸 글귀가 아닌가 한다. 해양왕국을 꿈꾼 장보고, 그를 지칭한 듯하다.
만국진량의 종의 울림, 해양왕국을 이룬 것에 대한 기림과 기원, 더욱 더 그 울림이 아름답게 울려 퍼지도록, 나아가도록 슈리성에서는 매일 종을 쳤다. 종치기는 “그대의 항해에 안전을 기하고, 항해를 통해 그 뜻을 이루고, 희망을 안기기를 바란다” 는 소망의 울림을 해됐다.
만국진량, 세계의 모든 나라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전달한 울림의 종이다. 진량은 나루 진(津), 들보 량(梁)으로, 진량은 한자 그대로 나루와 다리를 뜻하며, ‘물을 건너는 다리’ 를 뜻하는 곳으로써, 곧 물을 건너는 시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유적으로 교량 역할을 하는 사물 방법 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형편.기회를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중생제도 또는 중생을 구제(救濟)하는 수단을 뜻한다.
진량은 나루터와 다리라는 뜻으로 물을 건널 수 있게 시설을 이른 말과 부처의 중생제도(衆生制度)를 이른 말과 어떤 알을 할 수 있게 된 형편이나 기회, 그리고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뛴다는 뜻으로, 사람으로 이리저리 몹시 바쁘게 돌아다님을 이른 말로 정리되는 데, 이 뜻은 장보고가 바다를 쉽게 오고가고 할 수 있도록 해상로 개척을 한 것들은 ‘진량(津梁)’ 이라고 볼 수 있다. 만국진량은 장보고가 만든 〈신라진량〉 인 셈이다.
장보고가 만든 신라진량의 법칙, 동해,서해.남해.황해.동남해로 ‘신라진량’ 으로 무역을 추진했다. 청해진은 교량적인 역할의 진량으로서 당나라, 일본, 동남아로 교두보(橋頭堡) 역할을 담담했다.
장보고의 ‘진량(津梁)’ 법칙.제도가 있었기에 신라는 천년역사라는 위대한 왕국으로 부상했고, 장보고라는 한 인물로 인하여 바다는 〈군사.경제.문화지도〉 를 그려낼 수 있었다.
해군군사기지이자 무역거지.거점인 청해진(淸海鎭)은 ‘만국진량관(万國津梁館)’ 으로 불리었다. 청해진의 진(鎭)은 ‘진입하다. 눌러두는 물건’ 이라는 뜻인데, 만국진량관이라는 말로 쓴 것을 보면, 청해진은 만국(万國)을 상대할 정도로 국방력과 경제력이 막강하고, 기술력과 전략을 갖춰 많은 나라와 교류했으며, 진량관(津梁館)으로 여길 정도로 여러 사람들을 모셔 머물게 하거나 물건들을 두게 했다.
장보고는 생사해(生死海)를 건너고자 하면, 응당 심지(心智)로 건너가라 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임하라고 했다. 장보고는 항해에 근본으로 지말(支末)을 거두어 지혜(智慧), 즉 사물의 도리(道理)나 이치(理致)를 잘 분별하는 정신 능력.슬기로 생사해를 건넜다.
징보고는 진량의 열할 띤 청해진을 ‘진량지청해진(津梁之淸淸海鎭)이요. 청해진진량야(淸海鎭津梁也)’ 이라 했다. 『다리역할을 한 청해진이니 청해진이 물을 건너게 하도다.』 라는 뜻으로 청해진은 진량(津梁)에 세계에서 기장 으뜸가는 곳으로 보았다. 신라진량을 최고로 쳤던 것이다. 만국진량은 곧 〈신라진량〉 을 말한다.
완도 청해진에서 신라진량을 외친 궁복.궁파.장보고 이 이름은 강력한 인상(印象)이 작용한다. 장보고는 신라에게 〈강한 군인, 터프한 전투형 군인〉 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훗날 각종 정치 유세에서 신라 상황을 이야기 할 때, 신라 조정에서는 이 일화(逸話)를 여러 차례 인용하곤 했다.
장보고는 왕에게 “임금님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해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기도 했다. 흥덕왕은 장보고의 이름을 인용하며 “장보고 대사는 확장정책, 방어.안보, 큰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정신을 갖춘 정말 대단한 청해진 대사입니다.” 흥덕왕은 “그는 진짜 장수요, 대사이다. 설화 속 허구적(虛構的)이고, 보잘 것 없는 인물이 아니다” 라고 말을 해됐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군사〈최고사령관〉 , 무역 〈으뜸통역관〉 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보고는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그런 신분을 초월해 해상왕으로서 군림한 위대한 인물, 자랑스러운 신라인으로 태어났다” 며 “이것이 저의 업(業)” 이라고 했다.
●건덕암과 국두암의 건과 두의 인물 설정, 선암을 빛났다
궁복이 태어난 영암 선암마을, 선암에는 건덕암(乾德岩)과 국두암(國頭岩) 두 바위가 전설처럼 들리거나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도 사실성 증거(證據).현실적(現實的) 의미가 더해져 전설(傳說)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의미로 이어지고 있다.
건덕암과 국두암은 마을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 또는 전설(傳說)이 아니다.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그 안에 더 큰 이야기의 사연(事緣).사실(事實)이 있다.
건덕암의 件건(乾)은 ‘하늘(天).괘(掛),이름(姓).임금(王)’ 을 뜻한다. 국두암의 두(頭)는 ‘머리.꼭대기.맨앞.시초.첫째.우두머리.상위.재능.지혜.근처’ 를 뜻한다. 임금.제왕의 뜻을 가진 건(乾)은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를 의미하며, 우두머리의 뜻을 가진 두(頭)은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 을 의미한다.
장보고는 영암 출신이라는 기록은 없다. 마을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있다. 구전에서 구전으로 전해질 뿐이다. 궁복.장보고를 말해주는 입증적(立證的)인.사실적인(事實的)인 것은 건덕암(거북바위)과 국두암(너럭바위)이다. 건덕암은 궁복의 탄생설(誕生說)과 관련된 바위이고, 국두암은 부두(埠頭) 역할을 한 바위에서 궁복이 당나라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이다.
바위들이 저마다 사연이 있는 셈이다. 거북바위는 궁복.장보고를 ‘해상왕’ 이라는 의미를 둔 건덕암이다. 너럭바위는 궁복.장보고가 ‘장수.장군’ 이라는 의미를 둔 국두암이다. 두 바위는 훌륭한 인물을 상징하는 궁복.장보고란 인물상(人物像)이다. 다시 한 번 건덕암과 국두암을 거론하는 것은 장보고에 대한 출신지는 여러 설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영암 선암마을에서 궁복.궁파.장보고에 관련된 바위 말고는, 이처럼 그에 대해 얽힌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사실을 재차 알려봄이다.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서...
그 흔적은 중국에서도 있고, 완도 청해진에서도 있다. 하지만 그의 탄생지는 알 수는 없다. 정확히 기록되거나 입증할 만한 근거를 내세울 만한 것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 다행히 영암 선암마을에 궁복.궁파.장보고에 대한 흔적들이 남아있다고,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전한다.
흔적(痕迹). 뒤에 남은 자취나 자국을 말한다. 궁복이 태어났다는, 궁복이 놀았다는, 궁복이 활을 배웠다는, 궁복이 배를 타고 떠났다는 설(說)이... 그에 대한 선암마을에서는 〈탄생설화, 활 연습 설화, 배를 탄 설화〉 등이 물증으로 제시돼, 그가 17세까지 선암에 있었던 그 흔적을 더듬게 한다.
장보고가 영암 선암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는 일부 사람들만 알고 있을 정도로 극소수이며, 주로 장보고는 완도에서 태어났다고들 알고 있다.
건덕암의 거북바위는 고개를 젓는다. 집어넣었던 목을 다시 빼든다. 그러면서 쳐든다. 아니라는 것이다. 국두암의 너럭바위는 소리 없이 자신의 모습을 감춘 듯이 한다. 파도로 물보라 치는 장면을 더 이상 못 봐서다. 궁복을 태웠던 배(船)로 인하여 물보라를 친 광경을 보여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바위는 묻혀있는 듯이 숨죽이고 있다. 부두 역할을 한 너럭바위(우두머리바위)는 간혹 자신에게 떨어지는 빗방울로, 그 때의 물보라 치는 것에 웃어 보인다.
궁복이 주로 이 바위를 찾아 놀고 갔던 바위기에 너럭바위는 비만 오면 그 빗줄기로 ‘파도친다. 물보라가 핀다’ 고, 궁복을 기다린 건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궁복.장보고는 영암 선암에서 테어났다’ 라는 보도, 밝히지 않은 장보고의 탄생지, 그에 대한 단서(端緖)의 ‘물증(物證)을 찾아라!’ 미션을 부여받은 느낌이다.
단서 하나, 선암마을의 ‘거북바위(건덕암)’ 이다.
단서 둘, 선암마을의 ‘너럭바위의 우두머리바위(국두암)’ 이다.
단서 셋, 건덕암과 국두암의 ‘지명유래와 의미’ 다.
단서 넷, 활성산, 궁성산의 ‘활 훈련장(訓鍊場)’ 이다.
단서 다섯, 선암마을 앞의 ‘바다’ 다.
단서 여섯, 궁복이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던 ‘해로(海路)’ 이다.
단서 일곱, 배를 정박하기 위해 부두에 박힌 ‘말 둑’ 이다.
단서 여덟, 마을사람들의 ‘구전(口傳)’ 이다.
이 단서들을 샅샅이 살펴보거나 추적해보면 그 답이 나온다. 건덕암과 국두암은 궁복.궁파.장보고로 인한 이름을 지어 그렇게 부르고 있다. 건덕암은 궁복을 낳게 하는데, 영험한 기운을 불어줬다. 궁복이 자라나 이 바위에서 놀기도 했다. 이 바위의 전설 또한 장차 이 마을에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예견(豫見)을 했다. 그리고 부두인 너럭바위 국두암은 부두(埠頭)의 두(頭)자와 궁복이 장보고로서 큰 인물이 되게 한 배를 탔던 곳이라고 해서 우두머리바위라 불렀던 것을 나라(신라)의 큰 인물을 배출하게 만든 바위라는 의미를 부여해 나라 국(國)자를 써 ‘국두암(國頭岩)’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국두암이 있는 곳에는 지금도 ‘말 둑’ 이 남아있다. 청해진에 말 둑이 있듯이 선암에서도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증거물이 존재한다. 영암에는 무역이나 군사의 항으로 군서 구림 상대포(上臺浦), 시종 남해포(南海浦)가 있다. 이 포는 삼한시대부터 사용했던 포구(浦口)이다. 1000년 전 선암마을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마을 밑, 송석정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영암은 평지의 들녘은 거의 바다였다. 간척으로 바다는 사라지고, 농토(農土)로 변했다.
궁복은 마을의 부두(埠頭)에서 배를 타고 해창포(海倉浦), 남해포와 신안 섬들을 경유해 당나라로 건너갔다. 신라 최치원은 군서 구림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갔지만, 궁복은 마을 앞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그래서 마을에 있는 우두머리바위(너럭바위)를 훗날 국두암(國頭岩)으로 격(格)을 높여 불러지고 있다.
이게 궁복.장보고가 어디서 태어났는가에 단서를 찾아볼 수 있는 증거물 중 하나이다.
●장보고의 이름 이보다 더 애국적인 이름은 없다
통일신라 때 전남 완도 근방에 해상진출기지인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병력을 이용해 동양 삼국에 출몰하는 해적을 소통하면서 극동해상(極東海上)의 교역권(交易權)을 장악한 장보고, 그는 해상고역을 활발히 하는 동안 당나라와 일본의 사신(使臣).승려(僧侶).유학생(留學生)들의 왕래에 배를 제공하고 정부 간 교류(交流)와 통신(通信)을 대신 해준 장보고, 선박 건조(建造)와 수선(修繕), 그리고 조선 기술자(技術者)들까지 도와주어 신라.당.일본으로부터 신임을 얻은 위대한 인물로 평가 받았던 장보고다.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리만큼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 ‘영웅(英雄)’ 으로 그를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봤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이라는 무역사업 계기 양국 간 신뢰(信賴)를 바탕으로 미래를 함께하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構築)했다.
궁복(弓福)의 궁(弓) 화살은 ‘무기’ 를 말한다. 뛰어난 군사(軍事)가 되겠다는 각오다. 궁파(弓巴)의 파(巴) ‘활동성, 창조, 확장’ 을 말한다. 파는 ‘이어지다. 바라다. 기대하다’ 라는 뜻으로 활로 나라를 지키고, 안정(安定)과 평화(平和)를 이루겠다는 의지다.
장보고(張保皐)의 장(張)은 넓혀나간다는 ‘영토 확장’ 을 말한다. 해상무역(海上貿易)으로 신라의 해역(海域)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이다. 보(保)는 군사로 ‘나라를 지키겠다’ 는 것을 말한다. 강력한 군사력(軍事力)으로 안보(安保)와 국토방위(國土防衛)에 철두철미하겠다는 의지다. 고(皐)는 ‘높은 위치’ 를 말한다. 고는 ‘이상적 정치와 도덕적 이상과 현명한 통치’ 로 자신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내겠다는 희망이다.
장보고는 신라의 장수(將帥)로서 자부심을 갖고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판단으로 안보를 지켰다.
그는 통일신라(統一新羅)를 〈신라를 다시 위대하게〉 라는 거창한 구호로 신라를 혁신(革新)하려 했다. ‘장보고이노베이션’ 이다. 그는 화살.칼.창이라는 무기를 갖고 장(張)으로 신라를 확장(擴張)하고, 보(保)로 신라를 안전(安全)하고 튼튼하게 만들고, 고(皐)로 이상적(理想的)인 신라로 만들겠다는 ‘신라를 다시 위대하게’ 를 매일 주기도문(主祈禱文)으로 부하들에게, 조정의 산하들에게, 백성들에게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가르쳤다.
세상의 모든 평화는 신라에서부터 시작되고, 부흥은 신라에서 꽃피워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정신으로 청해진을 신라의 미래 운명(運命)을 결정짓는 곳으로 여기고, 신라를 다시 위대하게는 청해진에서 일어나 신라 전체로, 나아가 세계로 이 뜨거운 열기가 퍼져가게, 그는 깃발을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쳐 됐다. “신라를 다시 위대하게!”
장보고는 신라를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經濟的)으로 더 크고,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구호를 〈신라를 다시 위대하게〉 라고 했다.
장보고는 군사기지, 무역기지인 청해진에서 “준비의 시간은 끝났고, 이제 행동의 시간이 도래했다” 면서 “여러분의 용기(勇氣)와 투지(鬪志)가 인류 역사(歷史)와 문명(文明)의 흐름을 바꾸게 될 것” 이라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대의 이름이 말하는 장보고
장보고는 역사(歷史)를 역사(力士)로 역사(役事)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힘을 다하여 일을 다 해 '뉴 씨 월드-New Sea Wold' 라는 해양을 건설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군사(軍事) 면에서는 튼튼한 ‘안보(安保)와 질서(秩序), 국토방위(國土防衛)’ 에 철저히 했다. 무역(貿易) 면에서는 해양영토, 해양루트, 해양무역을 개척하는 ‘해양왕국(海洋王國)’ 이라는 건설에 크게 이바지했다.
●장보고와 그의 시대
장보고가 활동했던 시기는 800년 때이다. 그 시기는 신라가 통일신라로서 다시 한반도를 지배하며 신라천년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던 시기이다. 왕권의 불안이 있었기는 했지만, 신라천년의 꿈은 변함이 없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신라의 기존의 정책과 함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 힘찬 전진을 가했다.
그는 군사기지, 무역기지의 청해진이라는 ‘신라집단지성’ 을 통해 어떻게 하면 바다의 보물 발굴, 그로 인한 값진 신라로 빛나게 할까?
이 점에 그는 매일 고민했다. 그러면서 신라천년의 완성을 하는데, 극치(極致)를 이루게 했다. 신라의 찬란함이 어느 때보다 빛나게 했다.
●장보고의 일과 삶
장보고는 그가 태어난 마을 선암의 선을 따 ‘선택지(選擇地)’ , 그가 당나라에서 가있던 서주의 서를 따 ‘서식지(棲息地)’ , 그가 청해진을 설치한 완도의 완을 따 ‘완숙지(完熟地)’ 로 만드는 일들을 일구어냈다.
장보고는 선각자(先覺者)로 먼저 나아가는, 수호자(守護자)로 지키어 보호하는. 완결자(完結자)로 완전하게 마무리 짓는 실용주의, 보호주의. 완성주의를 추구했다.
그는 일이나 사상에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의 ‘선구자(先驅者)’ 로 출발선에 서며 지평ㅅ너을 향해 스타트했다. 그는 빛을 내어 쓴 ‘서광자(瑞光者)’ 로 빛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목표지점까지 모두 달린 ‘완주자(完走자)’ 로 계주(繼走)를 이어갔다. 장보고는 반드시 목표를 향해 포기하거나 힘이 없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겠다고 강한 의지로 나에게는 전진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고 집념을 갖고 장보고가 비춘 빛, 아름다운 빛으로 세상을 밝히겠노라고 서광자로서 좋은 일이 일어나게 했다. 그는 그런 일에 마라토너서의 신라무역 계주에 대표주자로 나서 끝까지 달려 우승이라는 영예를 안아 보였다.
해상에서 펼쳐진 장보고의 무역, 그 트랙은 신라, 당, 일본, 동남아 등으로 그려진 것으로 이 나라들이 참여하는 계주를 했다. 릴레이에 참여한 나라들은 각 대표주자에 의해 응원을 받으며, 힘차게 달려갔다. 신라는 당나라에 바턴을 넘겨주면, 당나라는 일본에, 일본은 다시 신라에 주고, 받은 신라는 동남아로 그 바턴을 넘겨주는 방법으로 계주가 리드미컬하게 진행되게 했다. 계주에서의 규칙이 나라의 최고 상품을 짊어지고 달리기여서 그 물건을 지고서 뛰었다. 그 짐을 다른 선수에게 전달해주는 계주이다. 이런 운동계임으로 ‘국제자유무역 지고 달리기’ 라는 임무를 받고 신라는 각 나라에 짐을 지고 달려갔다.
이런 계주를 위해 장보고는 해상로, 무역마라톤 트랙을 조성해났다. 장보고트랙에 모든 나라들이 이 트랙으로 힘찬 발을 내디뎠다. 왕도 청해진을 출발선으로 계주가 시작됐던, 그 출발선을 모든 지평선으로 삼으며 각 나라의 무역항이 도착지점이기에 그는 전력질주에 온 힘을 다했다. 장보가 도착하면 그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성을 질렀고, 그 함성에 대표주자들은 기쁨의 자신의 흘린 땀을 값지게 생각했다.
장보고릴레이는 철인경기를 보는 듯했다. 자전가를 타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수영으로 건너가는 것처럼 그는 배를 타고 갔었고, 그는 바다에 뛰어들어 짐을 실은 배의 항해를 도왔다. 이런 자신의 전법.전술.전략으로 장보고 무역선은 물살과 바람을 갈랐고, 그 항해는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그는 그런 선택지, 서식지, 완숙지로 그의 삶은 복종.항복.양보.굴복보다는 ‘당당함’ 을 보여줬다. 그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라는 굴곡 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삶을 살아갔다. 장보고의 굴곡이 많은 삶, 결국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굴곡 있는 삶 뒤의 희망,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엡스키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사형과 유형, 간질과 도박 등 고통스러운 운명을 겪어야 했다. 황제 리콜라이 1세의 학정에 저항한 그는 반체제 운동을 한 협의로 체포됐다. 가혹한 강제 노동형을 당한 그는 고통을 감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생활은 생활이다. 어떠한 불행 속에 있어도 낙담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라고 자문하며 절망을 이겨냈다. 파산은 위대한 작가가 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밑바탕이었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작품을 썼으며, 이때 완성한 소설이 불후의 명작 ‘죄와 벌’ 이다.
장보고도 도스토엡스키 같은 역경을 인내(忍耐)로 극복하는 삶이었지 않는가 한다. 그는 도스토엡스키가 “어떠한 불행 속에 있어도 낙담하거나 타락하지 않는다” 고 말했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는 의지의 몸부림을 부리는 등 한때는 좌절의 고통이 닥치기도 했지만, 그는 그럴수록 재기의 꿈,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강한 의지로 ‘해상왕(海上王)’ 이라는 위대한 인물로 남게 됐다.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피할 수 없다. 이룰 수 없다’ 라는 사람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힘의 ‘불가항력(不可抗力)’ 에 대해서,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있다면 자연재해일 뿐이었다. 그는 절대 산업혼란이나 폭동, 반란, 전쟁 등에는 단호하게 맞섰다. 장보고는 예측 불가능과 회복 불가능의 부정적인 상황으로 보지 않았다. 관리 소홀, 내부 인력 부족과 준비 부족 등을 보이질 않았다.
장보고는 불가항력-Force Majeure, 지연재해나 천재지변의 외부로부터 발생한 일로서 보통 필요하자고 인정되는 수단을 다하여서도 피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다른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들은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라고 외쳐 되며, 강한 의지로 추진해 일구고 말았다.
해상진출(海上進出)은 불가항력은 판타지적 설정을 드라마틱하게 전반에 배치하지만, 사업이 향하는 지점은 운명보다 선택에 가깝다. 저주와 계약, 초자연적 장치들이 관계를 흔들지만, 해상진출은 그 장치들을 진출을 강요하는 힘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가항력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사업들이 어떤 마인드와 액션으로 감정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지를 끝까지 물었다. 전반적인 톤은 부드럽고 가볍게 출발하지만, 감정의 결은 점차 무게를 얻으며 관계의 현실로 수렴됐다.
해상진출은 우연처럼 시작된 계약과 저주를 계기로 여러 사업들이 얽히면서 전개됐으며,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과 반복되는 사건들은 관계를 빠르게 진전시키는 장치로 작동하지만, 해상진출은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의욕은 급격히 끌어올려갔다가 현실적인 문제와 과거의 선택 앞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른 판타지는 상황을 만들고, 선택은 장보고라는 인물을 드러냈다. 해상진출이라는 선택에 있어서 불가항력처럼 보였던 감정은 결국 책임을 요구하며, 장보고는 그 책임 앞에서 답을 내렸다. 가볍게 시작해 점차 현실적인 무게를 더해가는 일의 청해진이 펼치는 국제자유무역은 거세진 물결 또 다른 방향을 차분하게 제시했다.
군사기지, 무역기지를 선언, 청해진을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지역으로 하여, 어느 누구도 침범 못하도록,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 못 하도록, 신성시 하는 최고의 신(神)의 경지의 불가항력으로 끌어들었다.
●군사와 무역으로 지각 변동을 일으킨 장보고
신라 장수 해상왕 장보고의 군사.무역 굴기는 글로벌 산업지형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중계무역으로 나라의 물품을 서로 수출입(輸出入)한 국제자유무역에는 신라 장보고의 전략과 상술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데다, 미래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연구개발 투자액과 과학.기술.공학.수학과 공예 등의 시스템 전문가 등 각종 지표는 신라의 저력을 보여줬다. 한때 외국 기업의 주문에 따라 공산품을 양산해냈던 세계의 공장이 최첨단 테크허브로 변모시키며 신라무역을 글로벌무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요즘으로 보면 K-무역이다. 그 때 당시미도해도 신라는 문.공예에 큰 주목을 받을 시기였다.
신라의 기술굴기 배경에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 청해진을 통한 정부 주도의 산업 생태계 육성 등 다양한 요인이 꼽힌다. 그런데다가 〈장보고플랜〉 이 기술굴기의 숨은 주역으로 떠올랐다. 장보고플랜은 장보고를 비롯한 무역 분야 전문적인 소양을 갖춘 천재들을 선발해 연구자로 만든 뒤, 중계무역 분야로 배출하는 교육.산업 연계형 프로젝트다. 장보고는 해상왕이라는 무역 인재 양성의 1등 공신 중 한명으로 꼽힌다.
장보고는 인재 양성에 있어서 무역 전문가서의 잠재력이 보이는 인재 50명을 선발해 튜링 클래스에 배정하는 식으로 무역 전문가를 배출시켜 국제자유무역에 역할을 띠게 했다.
장보고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배움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흥미와 의지다. 예초에 후보군으로 올랐다는 것만으로 성적표나 이력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심층 면접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보고, 엘리트 클래스는 좋은 전문 무역상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배움을 이어가고, 높은 수준의 연구와 실적 결과를 내놓을 수 전문가를 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사업을 추진했다.
신라 조정에서는 이런 장보고플랜에 무역종사자들이 온전히 연구에 매진에 매진할 수 있도록, 무역종사들이 직접 연구하고 성과 주제를 고르고, 해당 연구.결과에 파고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줬다.
●Let's Play in SILLA
장보고는 ‘신라에서 시작합시다’ 라는 구호로 무역을 추진했다. 그 시작의 알림에는 ‘중계무역(中繼貿易)’ 이다. 외국에서 수입한 물자를 그대로 하게 하거나 약간 다해 재수출하는 형식의 무역을 진행했다. 그는 〈장보고 Play 〉라는 무역 시작을 신라로부터 하게 했다. ‘모든 교역은 신라를 통한다’ 라는 원칙을 세우고, 신라에서 당나라로, 일본으로, 동남아로 진출시켰다. 청해진을 물류의 거점(據點)으로 삼았다.
장보고 주류 제품-우수한 생산력과 품격을 갖춘 메이드 인 신라 재품을 집중도 있게 선보였다. 신라무역 청해진, 장보고가 표현하는 제품들의 점점을 경험해보게 했다.
장보고 정육 제품-좋은 품질을 인증하는 이름, 청해진 신라 제품은 고품질 제물에 관심과 정성, 엄격한 기준과 청학으로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제품이다.
장보고 청과 제품-청해진 지점 산지의 비옥한 토양에서 농부의 정성으로 수확한 뛰어난 멋과 모형의 귀한 상품을 엄선했다.
장보고 수산 제품-깨끗한 우리 바다의 영양을 간직한 생선 등을 싱싱한 자연을 준비했다.
장보고 발효.곳간-자연을 사랑하고 신라 땅에서 난 재료를 평생 연구해온 식품 장인의 철학과 정성이 깃든 일상 식료품부터 품위 있는 선물용까지 제안했다.
장보고 인삼.홍삼 건강 제품-무탈한 하루하루가 가장 소중합니다 라고 일상의 귀함을 아는 분들을 위해 엄선한 전통 건강식품으로 건강과 활력을 제공하는 무역을 추진했다.
장보고 디저트 살롱 제품-하우스오브청해진 디저트 살롱은 신라의 자연과 계절, 식문화 유산을 연구해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식 디저트를 선보였다.
돌아온 제품, 신라가 자신 있게 만든 제품들을 외국사람들한테 사랑을 받게 한 제품을 만드는 분들의 노력과 정성은 신라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격을 높였다. 장보고의 홍보 전략에 신라브랜드는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로 높이 평가를 받았다.
●장보고의 끝없는 도전
장보고의 도전(挑戰)은 ‘현유도전(現流道展)’ 이었다. ‘현재 가고자 하는 길이 힘들다 해도 초심 속에서 가고자 함’ 이라는 의미로,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고난(苦難) 뒤에 숨겨진 아름다움, 삶의 고난과 희망을 표현한 ‘장보고작품’ 을 선보였다.
장보고는 청해진 대사로 활동하며,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매개로 여러 나라들과 마음을 나누며 소통(疏通)했다. 국제교류를 활발히 하여 신라의 감성집단(感性集團)으로 형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린 나이 때부터 해왔듯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새로운 것에 도전정신을 보여줬다. 그는 군인으로서 그치지 않고, 무역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새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신라무역 세계화’ 로 라는 국제무대 진출에 꿈을 꾸었다.
장보고는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은 또 다른 제 모습이 될 것이라면서, 그때까지 건강이 허락한다면, 세계적인 전략가(戰略家), 상술가(商術家)들을 보며 나의 꿈을 키워왔으므로 “현재의 그 사람들처럼 위치에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희망 사항이고, 꼭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장보고의 청해진 비전 선언문
인류 역사 속에서 무역(貿易)은 문명(文明)을 밝히는 ‘등불이자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의 언어’ 로 휴머니즘을 발현시켜 나라를 하나로 묶는 힘이다 라고 장보고는 주장했다. 신라 청해진은 군사기지로서 국토방위를 위한 해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바로잡은 질서회복에 역할을 띠었다.
그러면서 군사기지는 활을 쏘는 궁수(弓手)를 무역을 나르는 ‘교역수(交易手)’ 로 역할을 띤 무역기지(貿易基地)로도 사용했다. 군대의 보급.수송.통신을 무역에도 적용해 무역의 거점공간의 청해진이었다.
청해진은 무역이 신라 존재의 본질적(本質的) 표현이며, 신라 정신의 정수인 창조성(創造性)을 고양하고, 전 세계인이 그 에너지를 공유하여 인류의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진보(進步)에 이바지하고자 청해진 비전을 선포하였다.
1. 청해진은 무역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고, 창조적 에너지를 연결하며, 인류의 문화적 발전과 평화로운 공존에 기어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2. 청해진은 무역의 에너지를 결ㅈ비하여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잇는 세계적 예술 연대 플랫폼이 된다.
3. 청해진은 무역의 존엄, 연대, 공정, 다양성, 지속성의 가치를 지향한다.
4. 청해진은 세계 무역인의 창작교류 촉진, 국제무역 대회 및 문화행사 개최, 문화적 소외 계층에 대한 예술 기회 확대, 무역을 통한 사회적 통합과 치유, 문화산업과 협력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사명으로 한다.
5. 청해진은 특정 국가, 인종, 종교, 정치, 이념에 치우치지 않으며, 전 세계 무역인과 국민이 함께하는 개방적 공동체를 지향한다.
6. 청해진은 무역의 이름으로 권위주의와 차별을 거부하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바탕으로 교역을 추진한다.
7. 청해진은 무역이 경쟁을 넘어 공존의 언어로, 창조는 소유를 넘어선 공유의 가치로 만들어 궁극적으로 인류의 자신으로 길이 남을 교역을 추진한다.
장보고의 무역관념 사상, 무역이 경쟁을 넘어 공존(共存)의 언어로 삼겠다는 그의 철학은 ‘서로 도와서 함께한다’ 는, 같이 존재한 동존(同存)이다. 진정한 무역.교역은 공존.동존에서 이루어질 때 함께 발전(發展)되고 번영(繁榮)한다는 장보고의 신념이었다.
그는 또 창조(創造)의 개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일에도 집중했다. 이런 창조는 소유하기보다는 두 사람 이상이 한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유(共有)’ 개념을 지향했다.
●장보고의 왜곡된 시각
장보고가 해적(海賊)이었다고 알고 있거나, 말해 된다. 사실일까?
장보고가 해상에서 선박을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은 도둑으로서 청해진을 설치한 것이었다고 본다. 이 말이 진실일까?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역사의 진실을 부정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왜곡된 시각, 장보고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해적이 아닌 해적을 소탕하는 군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이라는 그런 탄탄한 군사기지를 통해〈신라무역세계화〉 에 집중하며, 무역의 세계화는 신라로부터 시작했다.
청해진의 진(鎭)은 ‘진압하다. 물건을 두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만큼, 해적을 진압하면서 신라의 물품을 청해진으로 가져와 다른 나라로 교역했다. 청해진은 물류창고(物流倉庫)이면서 무역항구(貿易港口)로서의 진(鎭)이었다. 청해진은 도둑질을 한 장소가 아니었다. 도둑을 잡고 물리친 곳, 무역을 위한 곳으로 사용했다.
‘장보고는 해적이었다’ 라고 인식한 것은, 어떻게 그렇게 보았을까? 그럼 일개의 도둑놈을 해상왕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해상을 제패한 것은 지나가는 배들을 붙잡아 실은 물건들을 빼앗은 도둑질하려고 바다를 점령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려 번 서술했지만, 장보고는 해적도, 반란자도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나라의 명을 받아서 청해진 대사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었다.
장보고는 해적이었다. 이렇게 한 인물에 대해 폄하(貶下)한 것을 몰상식한 지식창고를 갖춘 분들의 역사 왜곡주의자(歪曲主義者)가 아닌가 한다. 장보고는 해적하려고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다. 장보고의 이름의 뜻은 분명 그는 애국자로서의 안전.질서.법이 통하는〈평화로운 세상〉 을 구현하려고 했다. 그런 속에서 활발한 ‘무역의 꽃’ 을 피우게 하여 〈부강한 신라〉 를 만들려고 했었다.
장보고가 해적을 소통하는 일을 두고 해적꾼으로 보는 시각은 잘 못된 인식.판단이다. 그는 자신이 해적으로 활동한 게 아니라, 당나라, 일본 등의 해적들이 배에 실은 물건들을 빼앗아 가는 심지어, 사람들을 잡아 노예로 파는 행동을 바로잡았다. 그런 일을 장보가 당나라에 쳐들어가서 물건을 약탈했다고 기술하거나 알고 있는 것은 신라의 인물, 장보고의 참 정신을 빛바래지게 하는 일이다. 그는 해양질서를 바로 잡으려고 했고, 해적들을 물리치려고 했다. 나쁜 짓을 한 자들에게 용서할 수 없다며, 그들을 바다에서 더 이상 발을 못 딛게 만들었다.
장보고가 무력으로 위협하며 노략질해 빼앗았다는 해적으로 보는 데, 장보고의 한 인물을 폄하, 신라를 욕보이게 한 일이다. 장보고는 군사력을 키우면서 국제자유무역으로 양국 간에 윈윈하여 상생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장보고는 속여 빼앗는 행위를 한 노략질자, 속임수.강압적으로 빼앗기보다는 정직.자발적 관계로 참 모습을 보였다. 노략질 하는 이리,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옷을 입고, 무법천지 노략질 횡행을 하질 않았다.
조선 노략질 왜구가 해외진출 개척자라고 말하는 데, 장보고는 그런 왜구도, 그런 식으로 해외진출 개척자가 되진 않았다. 오로지 노략질 한 왜구가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 물건을 파고 사는 일에 착함을 보여줬다.
장보고는 우리는 해양질서를 바로 집으려 왔지 노략질하여 온 군사가 아니다 라고 했다. 그는 그리 말하고 무역상인들의 소원을 들어 즉각 영(營)내려 어떤 물건도 훔치거나, 진로 방해를 한 자는 참수(斬首)하라 상인들에게 다짐을 두어 말하고, 그들이 안심하게 교역(交易)을 하도록 해주었다.
장보고는 해안가에 궁수(弓手)들을 숨기고 배로 항해하는 상대방의 배를 좁은 강 하구로 오게끔 하여 바다 민족을 맞서지는 않았다.
인류 최초의 바다 민족, 그들은 누구일까? 기원전 1200년경~기원전 11500년경까지 약 50년 동안으로 추정되는 고고학자 에릭 클라인은 2014년에 출간한 책인 기원전 1177년 문명이 붕괴된 해에서 이들이 기원전 약 13세기 후엽~기원전 12세기 초엽쯤에 걸쳐 지중해 동부의 여러 문명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린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을 헸는데, 1200년 전 장보고가 〈비다 민족〉 이 아닐까 본다.
그는 왜구들처럼 해변 도시에 갑자기 상륙하여 마을을 불태우고 식량과 재물을 노략질하고 아녀자들을 납치한 뒤 떠나거나, 해안에 힘을 차지하고 강제로 정착하는 방식을 취하지를 안했다.
기존의 육군과 첨단 장비 중심의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던 고대 국가들은 이러한 비정규적인 게릴라식 해상 노략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신라는 장보고로 인하여 그런 우려를 종식시켰다.
●바다의 질서를 잡은 것은 해적이 아니라 우리
“바다를 앞으로 지배하는 것은 우리다. 우리가 바다의 주인이 될 것” 이라고 말한 해적들을 보고, 장보고는 “바다의 질서를 잡은 것은 해적이 아니다. 우리다” 라고 성명을 내고, “바다의 질서를 잡은 것은 해적이 아니라 우리다”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장보고는 “신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얕잡아 보거나 쉽게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만약 가볍게 보거나 까분다면, 당장 너희들을 깨뜨릴 것이다. 바다 속으로 수장하고 말 것이다” 라고 경고했다.
장보고는 해적들 소탕(掃蕩)에 ‘궁(弓)의 전술’ 을 적용했다. 활은 실을 당기지 않으면 일자형태로 유지한다. 활을 당기면 V자형이 된다. V자형은 모든 바다, 바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다 안으로 끌어 들어서 자신이 지배하에 두고, 항해하게 하겠다는 ‘청해진 궁술전법(弓術戰法)’ 을 적용했다. 이것은 장보고는 ‘장진(張鎭), 보진(保鎭), 고진(皐鎭)’ 전략으로 바다를 지배하며 활발한 무역을 추진했다.
장진은 청해진이라는 진압하고 물건을 둔 진(鎭)을 통해 ‘확장(擴張)’ 에 나섰다. 보진은 청해진이라는 지키고 편안하게 하고 돕는 보(保)를 통해 ‘보호(保護)’ 에 나섰다. 고진은 청해진이라는 임금의 신하로서 법을 세우고 형벌을 제정하며 감옥(監獄) 만드는 고(皐)를 통해 ‘고요(皐陶)’ 에 나섰다.
‘궁(窮)하면 복(福)이 온다.’ 장보고는 자신의 본명인 궁복(弓福)을 빗대 궁하면 복이 온다고 말한 것은 ‘궁한 중에 작은 금전이 들어온다’ 처럼 곤궁한 상황에서 소소한 성과(成果)나 작은 복(福)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해 됐다. 이것은 교만(驕慢)하지 않고 섭리(燮理)에 순응하면 복이 들어온다는 조언이다.
그는 궁복전략으로도 청해진의 진을 활발하게 나아가게 했다. 장보고는 “나의 사전에는 굴복(屈伏)은 없다” 며. 그 굴복은 ‘궁복(弓福)’ 임을 보여줬다. 궁복의 복은 절대 굴복의 복이 아니라면서 궁복의 궁을 일에 다하는 다할 궁(窮), 일을 끝내는 다할 극(極), 목표에 도달하는 과녁 적(的)의 궁극적으로 여겼다.
●청해진 무력은 무역의 무력(貿力)으로
장보고는 청해진의 무력(武力)을 교역의 힘 ‘무력(貿力)’ 으로, 권장의 힘 ‘무력(務力)’ 으로, 왕성해진 힘 ‘무력(茂力)’ 으로, 무성한 힘 ‘무력(楙力)’ 으로 하게 했다. 장보고가 행하는 무력은 사람을 헤치려는 무력보다는 질서를 잡으려는 무력으로 하면서, 그 무력은 무역의 힘 ‘무력(貿力)’ 이 되게 했다.
무력(武力)이 무역(貿易)이 되는 청해진의 물결은 춤을 춘듯했다. 하나의 교역에서 물결을 치면, 그 여파는 깊은 곳까지 미치는 파동이 컸다.
장보고가 노린 과녁은 사람의 가슴이 아닌 무역 상대의 장소였다. 그는 물건으로 포물선을 그으며 목표지점에 낙하하게 했고, 물건은 정확하게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했다. 폭발 없는 조용하고 잔잔한 장보고 무기를 발사했다.
장보고는 활 선수처럼 정확하게 한 중앙에 명중시켜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명중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정확성.심중성을 기했다는 것이다. 나은 기술, 좋은 재질로 다뤘다는 얘기다. 물건을 어떻게 어느 곳으로 어떤 방식으로 교역(交易)할 것인가에 연구하여 진행했다.
장보고는 진압군(鎭壓軍)이지 폭력군(暴力軍)은 아니었다. 청해진의 법 규정에는 ‘폭력은 절대 행사하지 않는다’ 라는 조항을 세웠다. 권력은 폭력이 아닌 관계의 설득을 통해 공고해 진다라는 것을 잘 보여준 것으로, 그는 힘으로는 오래 갈 수 없다. 관용(寬容)과 포용(包容) 없이 자신의 힘을 과시한 규칙을 깨고 폭력을 남용하며 질서를 무너뜨리면, 결국 고립된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사실을 지켰다.
정치란 인간만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관계임을 알고, 그는 권력은 힘을 과시하는 데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존경과 신뢰를 넓혀가는 과정 속에서 지속된다는 사실도 생각하며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권력은 어떻게 써야한지, 폭력은 어떤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그는 알고 청해진을 통해 폭력이 아닌 자기 통제력으로 한 ‘폭력이 아닌 품위 유지가 승리한다’ 는 폭력 아닌 관계회복으로 임했다.
장보고는 비폭력 평화주의자(平和主義者)다. 그는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파괴적 무력을 갖춰야 한다는 혼돈(混沌), 대화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미움과 증오를 증폭시키려는 혼돈의 시대를 구현하지 않았다. 그는 파과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로지 대화적으로 풀려고 했고, 미움과 증오를 하질 않았다.
징보고는 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악)의 세력에게 더 큰 폭력을 가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서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보질 않았다. 폭력자에게는 선의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려 다시는 그런 폭력을 행사하지 않게 해주었다.
장보고는 “평화(平和)로는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다. 폭력(暴力)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라고 청해진을 설치하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평화는 단순히 폭력의 부재가 아니며,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격하될 수 없다” 라고 분명히 했다.
장보고는 폭력을 정의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고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폭력은 재앙(災殃)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니며, 지금껏 한 번도 그러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못할 것이다. “평화로는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다. 더 이상 폭력은 없어야 한다” 라고 장보고는 주저하지 않고 가장 약한 사람들이 취하는 ‘방어수단’ , 곧 평화주의를 선택했다. 비폭력(非暴力) 평화주의(平和主義)를 지향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할 때 무기와 군대는 평화를 지켜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부터 던지며 청해진을 진단했다. 그는 무기와 군대는 증오와 분노를 키운다는 것을 깨닫고, 전쟁에선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무기와 군대는 증오와 분노를 낳는 그런 일을 절대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무기와 군대는 평화를 위해 쓰고 존재하야 한다고 절대 함부로 무기를 쓰거나 군대를 동원시켜 질서를 파괴시키거나 불안을 조성에는 최소화하였다.
장보고는 신라 왕족계통이나 귀족들이 말하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닌 신라 백성을 억압한 폭력(暴力)과 사기(詐欺)를 신라에 확산시키자는 집권 좌파세력의 수작에 불과하다고 보고 그는 그런 세력을 단호하게 배척(排斥)했다.
●청해진은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청해진은 ‘진압하다’ 의 진(鎭)이라는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일의 역할을 띠었다. 신라 내의 혼란을 바로 잡아주거나. 혼란을 야기하는 분들을 처단했다. 그리고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해양질서를 바로 잡은 일에도 나섰다.
청해진은 유례없는 ‘정치.군사.경제’ 복합체였다. 그런 환경을 조성한 채 규모를 키우면서 바다를 정복했고, 신라 내에서 일어나는 불안정을 안정상태로 유지하게 해주었다.
장보고의 독재의 과(過)보다는 경제.군사 기적의 ‘공(功)’ 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일부에서는 장보고를 두고 당시대의 가해자, 일부에서는 피해자라는 프레임이다. 장보고는 지금까지 여러 고증을 통해 살펴, 서술한 것처럼 그는 절대 가해자는 아니었다. 군사를 동원해 물건을 약탈한 약탈자로 보며, 그를 ‘피해자(被害者)’ 로 몰아가는 일이 역사를 부정한다.
장보고를 지지하는 민주세력들은 왕족과 귀족 종속이라고 비난하고, 장보고를 못 마땅하게 본 보수 진영을 가해자(加害者)로 보고 비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