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어째 이태선
이 여사는 아침을 먹으면서 아들의 눈치를 보았다. 왜냐면, 어제 저녁 아들에게 쏟은 말이 조금은 미안했기 때문이다. 아들인들 왜 장가를 가고 싶지 않겠는가. 속을 알면서도 자꾸만 부아가 난 것이다.
어저께만 해도 그랬다. 동창회에서 만난 숙자는 딸 셋을 시집보내 손자들의 재롱에 푹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며, 사위가 해주었다는 소눈깔만한 호박반지 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요사이는, 능력 없으면 장가도 못 간다고 하니 원 참” 위로 하는 척하며 속을 긁는 통에 이 여사는 참아내느라 머리꼭지가 도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여사의 아들이 동창의 사위보다 못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직장도 연봉을 더 받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아들이 삼십도 중반을 치닫건만 연애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으니. ‘무슨 놈의 세상이 잘난 아들을 셋이나 두고 이리 속을 끊일 줄이야’ 이 여사는, 남의 집 외동 며느리가 되어 아들 셋은 두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누누이 이른 시어머님의 말씀에, 고분고분 내리 아들 셋을 뽑은 자신이 등신 같다는 생각이 부쩍 고개를 든다. 이렇게 혼사가 늦을 줄 알았으면 숙자의 막내딸을 선보이자고 할 때 못이기는 척 보여나 볼 걸 하는 후회도 슬그머니 일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버스는 지났고. 하지만, 누가 아는 가 버스 지나고 나면 택시가 올 줄. 이 여사는 마지막 기대에 빳빳한 된풀을 먹였다.
마음이 심란하여 맛있는 점심이나 먹으면서 수다라도 떨 요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친구는 아침부터 어딜 갔는지 휴대전화도 되지를 않았다. '친구도 소용없어. 내가 그렇게 안달복달하는 걸 알면서 중매 한 번 써주지 않다니‘ 하는 수 없이 혼자라도 점심을 먹으려고 아침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데워 밥통의 밥을 푸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왠, 이 시간에? 전화를 받았더니 아들이었다. 미안하기도 하여 다정한 목소리로 “왠, 일이냐?“ “엄마, 괜찮은 옷 한 벌 있수?” “얘도 싱겁긴, 이제까지 벗고 살았냐” “아니, 이번 일요일에 상견례라는 것을 했으면 해서“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이 여사는 꿈이냐 생시냐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분명, 허벅지가 아팠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나도 상견례라는 것을 하게 되다니. 데워놓은 된장찌개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밥 풀려고 들었던 밥주걱을 구두 뒤축에 넣고서야 웃으며 현관문을 급히 닫았다. 눈썰미 있는 후배를 백화점에서 만나 자초지종 이야기를 나누고 꽤 괜찮은 원피스를 골랐다. 밖에 나오니 이미 날은 저물었다. 수고 했다며 저녁을 사려는데 후배는 밥 말고 근사한 찻집에서 차를 사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오늘은 좋은 일만? 비싸봐야 차 한 잔이지 설마 밥값 보다야 더 비쌀까. 오늘 따라 후배가 자꾸 예뻐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후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형님, 옷도 새로 샀으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분위기에 맞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요” “아니, 이건 그날 입어야지” “조심해서 입으면 되잖아요, 어떤가 보기도 하고” 듣고 보니 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새 옷으로 갈아입기로 하고 옷 갈아입을 적당한 곳을 찾았다. 늦은 시간이라 마땅한 곳이 없었다. 다시 백화점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리 걸어 와 버렸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던 후배가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은행의 현금지급기가 놓여진 곳이었다. 마침 밖을 가리는 기둥도 하나 있어 안성맞춤이었다. “형님, 아무도 없으니 옷을 벗어요. 벗은 옷은 제가 가방에 넣을 테니” 재촉하는 후배의 말에, 이 여사는 덥기도 하고 누가 올지도 모른다는 급한 생각에 분홍색 팬티만 남기고 홀랑 벗어 후배에게 던지고 새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역시, 사람은 옷이 날개야.” 벗은 옷을 넣은 가방을 든 후배는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날 저녁, 이 여사는 후배와 늦게까지 찻집바닥에 수다를 몽땅 털어놓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월요일, 아침 일찍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동 뜨는 음성이다. 상견례가 궁금하기도 하고 옷을 추천한 자기의 안목도 은근히 칭찬 받고 싶은 것이다. 달뜬 후배의 음성과는 달리 풀죽은 이 여사는 “이 사람아,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그 은행의 지점장이 처녀의 아버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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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점장이 현금지급기 카메라를
이유없이 확인하진 않을텐데 ᆢ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