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사랑은 가고 친구도 가고 모두다~. 왜 가야만 하니….” 1988년 그룹 ‘사랑과 평화’의 히트작 ‘울고 싶어라’의 노래 가사다. 요즘 한국프로골프(이하 KPGA) 코리안 투어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마음이 바로 이 심정이다. 그들은 정말 울고 싶다. ‘가을방학’ 중인 KPGA 코리안 투어 KPGA 코리안 투어는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오픈 대회가 단 1개도 열리지 않는 9월 한 달’을 보낸다. 투어에 참가한 선수 아버지가 사비를 들여 지난 8월 창설해 같은 달 24일 막을 내린 ‘바이네르-파인리즈 오픈’ 이후 짧게는 45일간 ‘개점휴업’한다. 가을방학이다. 국내 사계절 가운데 골프 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9월 한 달 동안 대회가 없다. 지난 14년 동안 연간 대회수가 가장 적었던 해는 2004년이다. 당시 8개 대회가 열렸고, 그 중 2개가 9월에 편성돼 대회를 치렀다. 물론 어느 달에 대회가 열리고, 열리지 않은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KPGA 코리안 투어는 상대적 박탈감에 허우적대고 있다. 올 시즌 예정됐던 총 14개 대회 가운데 이제 4개 대회(미정 1개 대회 포함)만이 남아 있다. 이는 28개 대회를 치르는 국내 여자 대회와 비교하면 50% 수준이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남자 프로들 현재 KPGA 코리안 투어의 상금랭킹 30위권 밖 선수들은 처절한 생활고에 몸부림 치고 있다. 연간 투어 경비로 4,000만원 정도 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죽을 맛입니다. 아파트 전세금을 줄여서 그 돈의 일부를 대회 경비로 쓰고 있습니다. 작은 평형으로 이사하고 아내에게 3,500만원을 빌렸는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A선수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내 이름은 밝힐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아내가 너무 불쌍해진다”고 말했다. 기자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A선수는 “통장에 잔고가 줄어들수록 샷도, 스윙 크기도 점점 더 작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얘기를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쑥 “잔고가 얼마나 남았느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A선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잔고요? 얼마 안 남았어요. 남아 있는 대회는 겨우 치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대회당 경비가 얼마나 듭니까?” “정말 궁색하게 아껴 쓰면 150만원 정도 들고, 보통은 200만원 이상 들죠. 이 중에 라운드 당 투어 캐디 일당으로 20만원씩, 80만원은 줘야 합니다.” 특히 중하위권 선수들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남자 프로의 경우 메인 스폰서는 고사하고 서브 스폰서마저 외면하기 때문에 손을 벌릴 곳이 부모밖에 없단다. 골프에 입문해서 투어 카드를 손에 넣기까지 수 년씩 많게는 몇 억원을 쏟아 부었는데 대회 경비마저 부모에게 부담을 지워야 하는 것이다. KPGA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는 중 B선수는은 “‘지금 이 대회가, 지금 올 시즌이 내 골프 인생의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볼을 친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히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다시 정규 투어로 돌아온 케이스다. 그러나 마음 놓고 뛸 대회가 없다는 사실에 몸부림 치고 있다. 스윙을 교정하려다 슬럼프에 빠진 그는 2010년 투어 카드를 잃고 방황하다가 2, 3부 투어까지 추락했다. B선수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서 재입성을 했는데 9월에 나갈 대회가 없다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길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숙소와 먹는 것뿐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싼 방을 구하려고 한다. 7만원 수준의 방은 호텔급으로 생각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래서 단돈 1만원이라도 아끼려고 5~6만원짜리 방을 찾는다. 조금만 헤프게 쓰면 금방 파산하고 만다.” 그렇다. 지금 KPGA 코리안 투어는 살을 에는 듯한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다. 지난 C선수는 그 체감온도가 다른 선수들보다 2~3배 더 낮다. 군 전역 이후에 골프를 시작한 늦깎이 골퍼인 그는 우승 경력이 없는데다가 결혼을 했지만 아직도 분가를 하지 못한 채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다. C선수는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며 “이제는 짐을 좀 덜어드려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코리안 투어 무대를 더 걱정했다. “큰일이다. 남자 투어가 어려워지면서 젊은 선수들은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일본 Q스쿨에 도전하려는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정말 수십 명에 이른다.” 앞선 B선수도 “일본뿐만이 아니다. 중국 투어(차이나 PGA·미국 PGA가 직접 운영하는 체제로 PGA 2부인 웹닷컴 투어의 3부 격에 해당하는 투어)에 진출하려는 선수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D선수도 착잡한 심정이긴 마찬가지다. 내년 투어 카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대회가 많으면 반전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라도 있겠지만 샷이 더 위축되면서 터닝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남은 4개 대회가 정상적으로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원아시아 투어와 초청 대회 형식으로 치러지는 2개 대회는 최대 65명에서 78명까지만 출전한다. 때문에 이 외의 선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며 “하위권 선수들은 이래저래 사선을 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큰 고비라고 했다. “이러다가 투어 카드를 잃게 되면 이제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투어 무대를 떠나게 되면 무엇을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아카데미도 생각해봤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마추어 레슨을 하는 것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따뜻한 관심이 절실한 KPGA 국내 남자 골프는 수렁에 빠져 있다. 이미 투어 무대에 나선 일부 선수들 중에는 투어와 레슨을 병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직 상금 규모는 작지만 생계를 위해서 스크린골프대회와 정규 투어를 오가는 ‘온·오프형’ 투어 프로도 생겨난 지 오래다. 또 아예 스크린골프대회나 유사 골프 단체에서 개최하는 36홀 반쪽짜리 단발성 대회에 나서는 정회원 프로들도 상당수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E선수는은 아직 젊어서 그런지 긍정적이었다. 물론 그도 상금랭킹 70위권이어서 속마음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는 “우리 남자 프로들도 여자 선수들 못지않게 잘 할 수 있다. 젊은 선수들이 스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