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순천 선암사~달성 도동서원
순천 선암사 1 : 산사의 미학 – 깊은 산, 깊은 절
-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 조경적 의미를 지닌 산사의 얼굴이다. 약 반시간 걸리는 이 오릿길 진입로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속세와 성역을 가르는 분할공간이자 완충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사에는 반드시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진입로가 있다. 오대산 월장사의 전나무숲길, 하동 쌍계사의 십리 벚꽃길, 합천 해인사의 홍유동계곡길, 장성 백양사의 굴참나무길, 영월 법흥사의 소나무숲길, 부안 내소사의 전나무 가로수길, 영주 부석사의 은행나무 비탈길, 조계산 송광사의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우러진 길..
- 선암사의 제1경이라 할만한 승선교-작은다리와 큰다리로 구성된 디귿자로 이루어진 길과 다리의 드라마틱한 구조가 새로난 찻길로 인해 제맛을 상실함
- 삼인당 연못-인간의 시각적 습관은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눈이 많이 감. 하나의 공간에 나타난 물체는 또다른 공간을 창출해 낸다. 삼인당에 섬이 있어 못이 더 커 보이고 깊은 공간감을 갖게 된 것.
- 선암사는 절집의 배치가 매우 독특한 경우. 우리나라의 산사는 그 위치와 건물구조에 따라 네가지로 구분. 1.강진 무위사처럼 소박한 절집 2.부안 내소사처럼 규모를 갖춘 화려한 절 3.구례 화엄사처럼 궁궐 같은 장엄한 절 4.영주 부석사처럼 장대한 파노라마의 전망을 가진 절. 그러나 선암사는 이도저도 아닌 동네 같은 절. 실제로 선암사는 어느 한 시점의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은 절이 아님.
순천 선암사 2 :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옛 가람
- 선암사에서 제일 먼저 손꼽을 것은 아무래도 저 아름다운 나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000종의 나무가 있다고 한다. 그중 우리가 궁궐이나 정원에서 대할수 있는 나무는 100종 정도 된다고 하는데 선암사에서는 그 모두를 볼수 있다.
- 선암사로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문화재는 진입로 길가 언덕에 널찍히 자리잡은 승탑밭. 승탑이란 고승의 사리탑. 이 절에 주석했던 스님이 열반에 들면 다비를 하고 수습한 사리를 모신 것으로 승탑은 신라 말부터 유행. 나말여초의 승탑은 대부분 팔각당 형식으로 경내 뒤쪽에 사당처럼 모셔짐.(한때는 이 승탑을 부도하고 해서 애매한 이름으로 불렀고 문화재 명칭에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승탑이라고 해야 그 의미가 확실하고 학계에서도 이렇게 용어를 통일해 가고 있음)
- 태고종은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 자율에 맡길 뿐이지 대처승이 곧 태고종의 스님을 말하는 것은 아님. 실제로 태고종 스님중 3분의 1 이상이 비구. 우리나라 불교계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 이른바 27개 종단이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종무실에서 파악하기로는 그 수가 100여개에 이르지만 어떤 종단은 사찰 한두 곳에 스님 서너명으로 되어 있으니 그 숫자에는 허수가 있음.
- 그중 가장 큰 종단이 조계종, 그 다음이 태고종으로 2008년 기준으로 조계종은 2,444개 사찰에 승려가 1만3576명, 신도수는 2천만명, 태고종은 승려가 8,378명이고 신도는 480만명. 태고종은 사찰의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재가교역자 제도인 교임제로를 두어 출가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운영할 수 있어 사찰의 개념이 좀 다름. 전통 태고종 사찰로는 선암사 외에 서울 신촌의 봉원사, 완주 봉서사 등. 100여 종단에서 유독 조계종과 태고종 사이에 분규가 있고 그 분규의 상징이 선암사인 것은 한국불교사의 엄청난 사건이었던 1954년 법난때문이다. 선암사의 소유권을 놓고 벌인 물리적 다툼이 법정으로 옮겨진 이후 30여년이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고 대법원에 계류중. 지금도 법적관리권은 순천시장에 있음.(G-2022년 현재 태고종 승소 확정 판결로 완료)
- 고려말의 고승인 태고 보우스님(1301~82)이 당시 원나라에 가서 임제종의 법맥을 이어받아 불교계 5교9산을 단일 종단으로 통합할 것을 주장함. 이후 우리 불교는 임제종을 맥으로하며 태고스님을 종조로 받들어옴. 1911년 일제의 한일 불교통합에 맞서 범어사의 청년승려 한용운이 종정대리를 맡으며 임제종이라는 이름이 일본에도 있어 ‘조선불교조계종’으로 명칭을 바꾸며 한국불교의 법통을 고수.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불교계를 정화하겠다며 7차에 걸쳐 대통령 유시를 내리면서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규가 일어남
- 불교계의 정화를 위해 절집이 청정도량이 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대처승은 사찰을 떠나라”고 했던 것. 대통령 유시에 따라 선암사의 대처승들은 공권력에 의해 절에서 쫓겨나고 비구니 스님들이 들어옴. 1962년 4월 오랜 분규 끝에 비구측 스님들은 대한불교조계종을 발족. 이때 조계종은 기존 불교와 차별되는 새 종헌을 채택하면서 보조국사 지눌을 종조로 삼음. 한편 대처측 스님들은 1970년 태고 보우스님을 종조로 하는 한국불교태고종을 세움. 현재 조계종은 1994년 종헌 개정을 통해 종조로 신라시대 가지산문 도의국가, 중천조로 보조국사 지눌, 중흥조로 태고 보우스님을 예우함.
- 선암사 경내에는 석등이 없다. 선암사에 화재가 잦아 아예 불을 상징하는 것은 두지 않았기 때문. 대시주들이 석등을 시주해도 경내에는 들이지 않음.
- 우리나라 사찰 뒷간 중 압권인 선암사 대변소는 영월 보덕사 해우소와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뒷간. 선암사 뒷간은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인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아야 제맛을 알수 있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199p)
- 선암사 최고의 볼거리는 역시 꽃이다. 그중에서도 선암사를 대표하는 꽃은 매화이며 선암사 매화중에서 제일가는 것은 노매 20여 그루가 줄지어 있는 무우전과 팔상전 담장길의 매화다. 문화재청장으로 있을 때 전국에 있는 노매를 조사하여 네 그루의 매화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구례 화엄사 백매 그리고 선암사 무우전매
달성 도동서원 : 도가 마침내 동쪽으로 오기까지
- 도동서원은 현재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로 되어 있지만 옛날로 치면 경상우도의 우뚝한 유림의 고장 현풍에 있다. 도동서원은 도산(안동), 옥산(경주), 병산(안동), 소수서원(영주)과 함께 조선 5대 서원중 하나로 손꼽히며 그 권위와 명성은 한훤당 김굉필로부터 나온다.
- 김굉필은 무오사화때 점필재 김종직(1431~92)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가고 갑자사화 때 사사당한 사림파의 문인. 김굉필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근세도학지종”이라고 칭송한 퇴계의 말 그대로 우리나라 도학의 대종이다. 그리하여 중종 때부터 근 50년간의 논의를 거쳐 광해군 2년(1610)에 문묘에서 제향할 유학자로 동국오현이 결정될 때 한훤당은 오현중에서도 수현이 되어 그 순서가 한원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의 순이었다. 그것이 한훤당 김굉필의 도동서원이 갖는 역사적 사상사적 위상이다.
- 한훤당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중종 2년(1507)에 신원되어 도승지로 증직되고 선조8녀(1575)에는 다시 영의정으로 증직되고 광해군2년 문묘에 동국오현의 수현으로 배향되었으니 생전에 받지 못한 대우를 사후에 더 없는 영광으로 받은 셈. 선조는 한훤당의 외증손 정구가 세운 사원에 도동서원이라는 사액을 내려주었다. ‘도동’이란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로 도학이 한훤당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리는 이름이었다. 도동서원은 1865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47개 서원 사당만 남기고 모두 철폐할 때도 훼철되지 않아 조선 5대 서원의 하나로 꼽힘.
- 도동서원 앞에 당도하면 김굉필나무라고 이름지은 은행나무의 늠름한 자태. 외증손 정구가 도동서원을 세울 때 심은 것으로 수령이 400년 이상. 후대에 증축한 수월루는 서원의 모습을 더욱 장험하기 위한 뜻이었지만 이로 인해 서원에서 낙동강을 내다보는 시야는 답답하게 막혀버리게 됨. 강당 기둥머리마다 한지를 돌린 것은 이 사당에 모신 분은 문묘에 배향된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멀리서도 알아보게 한 것.(21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