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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축하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 6건을 문화재로 등록한다.
국가등록문화재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축하문」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임시정부 주석이자 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인 김구 주관 하에 거행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관련 유물이다. 중국 측 인사와 서방 외교사절, 신문사 대표 등 참석자들이 서명한 서명문과 한중이 연합 항전하여 일본에 승리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는 축하문으로, 충칭 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과 외교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국가등록문화재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을 선전하여 항일 독립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기관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 취지와 활동 상황을 군사, 외교, 국제정치,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어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기관지 제목인 ‘光復(광복)’의 글씨를 한국광복군 총사령 이청천(또는 지청천)의 필체를 활용한 점도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국가등록문화재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은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훈련교재다. 일반강령, 기본정책, 본군의 정훈계획(학과훈련, 선전대강) 등 조국 광복의 최선봉을 담당할 한국광복군의 ‘강철 같은 정신 무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한국광복군이 중국군사위원회에 예속되어 있다가 중국과 끊임없는 교섭을 거쳐 마침내 1945년 5월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으로 바뀐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무장독립군을 이끌며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金佐鎭, 1889.11.24.-1930.1.24.)의 사회장(1930년 3월)에서 낭독된 약력서다. 그의 출생과 성장, 사망, 주요 활동과 사상, 가족관계 등을 연도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김좌진 장군의 전 생애를 알 수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현암리 일원/22,768㎡)」은 1930년 장항선 판교역 철도개통과 함께 근대기 서천지역 활성화 중심지가 된 곳으로, 양곡을 비롯한 물자의 수송과 정미, 양곡, 양조산업, 장터가 형성되어 한국 산업화 시대에 번성기를 맞다가 2008년 철도역 이전으로 본격적인 쇠락을 거친 근‧현대기 농촌 지역의 역사적 흐름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또한,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 안에 있는 정미소, 주조장, 방앗간, 극장, 구 중대본부 등은 근대생활사적인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어 별도의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이들 6건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것이다.
한편,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되는 「순천 동남사 사진기 및 확대기」는 순천에서 설립된 동남사(1952∼1976)가 제작·판매한 사진기(4종)와 확대기(2종) 등이다. 1948년부터 정부의 수입금지 조치와 국산장려운동이 전개되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사진기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동남사는 국내 기술로 사진기 국산화를 시도하였고, 이렇게 제작된 총 4종의 동남사 사진기를 통해 근대 사진기 제조업 발달사를 확인할 수 있어 문화재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 예고되는 1건에 대해서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항일독립유산과 근대역사문화공간 등 다양한 근현대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등록하는 적극행정을 추진하여 문화재의 가치를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1. (등록)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 문화재명: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 제작연대: 1940년
□ 수량/규격: 1건 1점 / (세로x가로, cm) 55.0×84.5
□ 소 유 자: 독립기념관
□ 등록 사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임시정부 주석이자 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인 김구 주관하에 거행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관련 유물이다.
서명문은 전례식에 참석한 중국 측 인사 및 서방 외교사절, 신문사 대표들이 서명한 원본 방명록으로, 충칭 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과 외교 활동 및 언론 창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2. (등록)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축하문」
□ 문화재명: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축하문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 제작연대: 1940년
□ 수량/규격: 1건 1점 / (세로x가로, cm) 132.5×63.5
□ 소 유 자: 독립기념관
□ 등록 사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축하문’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임시정부 주석이자 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인 김구 주관하에 거행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관련 유물이다.
내용은 한중이 연합하여 일본에 대한 항전에서 승리하자는 의지를 담은 것이며, 이제심 등 10명의 작성자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3. (등록)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 문화재명: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 제작연대: 1941년 ~ 1942년
□ 수량/규격: 1건 6점 / (세로x가로, cm) 25.3×16.7 등
□ 소 유 자: 독립기념관
□ 등록 사유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을 선전하여 항일 독립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1941년부터 1942년까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기관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독립운동 취지 및 활동 상황을 군사, 외교, 국제정치, 경제,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 및 대외팽창정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어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기관지 제목인 ‘光復(광복)’의 글씨를 한국광복군 총사령 이청천(또는 지청천)의 필체로 활용한 점도 역사적 의미를 더하는 자료이다.
4. (등록)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 문화재명: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 제작연대: 1945년
□ 수량/규격: 1건 1점 / (세로x가로, cm) 18.0×12.7
□ 소 유 자: 독립기념관
□ 등록 사유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은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발행한 소책자 형태의 훈련교재로, 조국 광복의 최선봉을 담당할 한국광복군의 ‘강철 같은 정신 무장’을 강조하고 있다. 내용 구성은 일반강령, 기본정책, 본군의 정훈계획(학과훈련, 선전대강) 등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의 활발한 독립운동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 교재의 발행은 한국광복군이 이전까지 중국군사위원회에 예속되어 있다가 중국 측과 끊임없는 교섭을 거쳐 마침내 1945년 5월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소속으로 변경되어 그 통할을 받게 됨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 있어 역사·사료가치가 높다.
5. (등록)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 문화재명: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 제작연대: 1930년
□ 수량/규격: 1건 1점 / (세로x가로, cm) 23.7×192
□ 소 유 자: 독립기념관
□ 등록 사유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는 1930년 1월 만주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사회장(1930년 3월)에서 낭독된 약력서이다. 김좌진(金佐鎭, 1889.11.24.-1930.1.24.)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무장독립군을 이끌며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한국독립운동사의 무장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본 약력서는 그의 출생과 성장, 사망, 주요 활동과 사상, 가족관계 등을 연도별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김좌진 장군의 전 생애를 순차적으로 알 수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6. (등록)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
□ 문화재명: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
ㅇ「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930년 장항선 판교역 철도개통과 함께 근대기 서천지역 활성화 중심지로 양곡을 비롯한 물자의 수송과 정미, 양곡, 양조산업, 장터가 형성되어 한국 산업화 시기의 번성기를 맞이하였고 2008년 철도역 이전으로 본격적인 쇠퇴의 과정을 거친 근‧현대기 농촌지역의 역사 흐름과 흔적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 일대
□ 등록 대상 :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22,768㎡/93필지)
□ 등록 사유
ㅇ 서천 판교 구 동일정미소
- 1970년 건축되어 동일주조장 원료공급 및 지역 쌀 유통의 주요 산업시설로 역할을 하였고 건물의 기본적 건축형식과 원형뿐만 아니라 내부 정미설비도 함께 잘 보존되고 있어 근대기 판교 마을에서 나타난 생활문화의 변화 과정과 특성을 담고 있는 건축물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서천 판교 구 동일주조장
- 판교의 산업시설 중,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주조장으로서 원형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역 양조산업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설로 과거 판교 지역의 근대기와 번영기를 대표하는 역사적, 상징적 산업시설로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서천 판교 근대상가주택1
- 1932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2층으로 건축되어 독특한 외관과 공간구성을 가진 목조건물로 판교 장터의 중요한 진입부에 자리하며 현재까지 장터거리 내 대표건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건축형식은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2층 목조 상가 건축물의 공간구성과 특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서천 판교 구 삼화정미소(오방앗간)
- 판교를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지역 쌀 유통의 주요 산업시설로 자연목을 주로 활용한 복잡한 절충식 목조구조체와 정미용 설비가 잘 조화되며 기능적 공간을 구성하였고 현재 기본적 건축형식과 원형뿐 아니라 내부 정미설비도 작동 가능한 상태로 잘 보존되고 있어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서천 판교 근대상가주택2
- 판교역 전면도로에 면하여 옛 중심도로에서 이루어졌던 상업시설들의 양태 등을 확인할 수 있고 1931년 최초 건축된 후 주변 상권발달에 따라 근대기 생활문화를 반영하여 점포가 증축되면서 주거기능의 누적된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서천 판교 구 중대본부
- 1964년 당시 판교면사무소 바로 옆에 건축되어 구 판교면사무소와 함께 지역의 대표적, 상징적 관공서 건물로 역할을 하였고 현재 기본적 건축형식과 건축원형의 보존상태도 전체적으로 양호한 시설로 판교의 근대기 행정시설 배치와 마을공간의 성격변화를 증언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서천 판교 구 판교극장
- 근대화, 활성화되었던 판교지역에서 1960, 70년대 또 다른 근대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대표적 건물로 근대기 판교가 번성하였던 상황을 잘 증명해 주는 귀중한 현장 사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문화시설로서 원형 대부분이 지금까지 잘 유지하며 현존하고 있어 문화재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1. (등록예고) 「순천 동남사 사진기 및 확대기」
□ 문화재명: 순천 동남사 사진기 및 확대기
□ 종 별: 국가등록문화재
□ 소 재 지: 전라남도 순천시 중앙로
□ 제작연대: 1950~1970년대
□ 수량/규격: 2건 13점 / 사진기 (앞)13×11.5cm (뒤)22.8×20.5cm 등 확대기 (기둥~바닥)79.5㎝ (확대기)63㎝ 등
□ 소 유 자: ㅇ ㅇ ㅇ
□ 등록 예고 사유
‘순천 동남사 사진기 및 확대기’는 순천에서 설립된 동남사(1952∼1976)가 제작·판매한 사진기와 확대기 등으로 총 2건 13점*이다. 1948년부터 정부의 수입금지 조치와 국산장려운동이 전개되면서, 수입에 의존하던 사진기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내의 기술로 제작된 것으로, 근대 사진기 제조업 발달사를 파악할 수 있는 등록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다.
* 2건 13점 : 사진기 등 11점(사진기 4점, 필름 홀더 3점, 삼각대 2점, 스탠드 1점, 셔터 1점), 확대기 2점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