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음이 되지 않아 달리는 차 내에 잡음이 많은 중고차,
시속 80km가 넘으면 오른쪽 조수석에서 깃발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 차,
올해로 11년 된 중고차에서 듣는 음악은
소싯적 시골 장터에서나 들어볼 수 있는
목이 컬컬한 어느 남정네의 육자배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항상 그랬던 것 처럼 아들 학원 데려다 주고 오늘 길
습관처럼 클래식 방송을 듣고 있었드랬다.
이름도 잘 모르는 클래식 곡이 흘러 나오고 소개된 곡이 [명태] 였다.
구성지게 부르는 오현명씨의 [명태]와 함께
그리운 옛친구 땜시 배시시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오늘은 빵빵한 차에서 깃발 날리는 소리없이 고상틱 하게시리 폼 잡고.
그러니까 그때가 대학원 시절이었으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었나보다.
그 친구가 이 [명태]란 노래를 멋드러지게 잘 불렀던 친구였다.
[쇠주를 마실 땐 으~음 허허허허허]
하고 웃는 이 대목에 이르면 모든 사람이 다 웃는다.
그런데 이 친구는 살짝 미소만 지울뿐 여유있게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부러운 놈이었다.
방송 사회자의 소개에 의하면
이 곡의 작곡자는 [변훈]씨 인데,
이분이 1951년 6.25 내전 당시 연락장교로 근무하던 시절에
해군 정훈음악대에 있었던 오현명씨를 찾아가
오현명씨를 위해 작곡했다며 던져주고 간 악보뭉치가 바로 [명태 ]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곡이 1953년 초연 될 당시 유명한 평론가로부터 지독한 혹평을 받았으며
이때 충격을 받은 변훈씨가 작곡 생활을 접고 외교관 생활을 하였다고 소개하였는데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 후로도 작곡된 곡이 수십곡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다.
하여튼 평론가든, 정치가든, 과학자든 누구든 말 조심해야 하는 것은 태고의 진리이다.
이곡이 지금은 우리 가곡사에서 빼어 놀 수 없는 수작이지만
그 당시 변훈씨의 곡 [명태] 혹평을 생각하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오버랩된다.
변훈씨의 곡은 다수가 조국 분단의 아픔과 동족 상잔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 의식 때문인지 그는 유일하게 금지곡을 가졌던 클래식 작곡가이기도 하다.
김광림 시인의 시에 가락을 붙인 '쥐'는 군부 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6·25 전쟁의 시기를 살아가던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순이야'는 반미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군사 정부시절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시를 쓰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던 시인이 짝짝 찢은 명태를 입에 넣기 위해 집어든 순간,
갑자기 그의 눈앞에 동해의 푸른 바다가 출렁거리고 명태가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지만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려 어느 덕장에서 눈발과 햇살에 살갑게 말라가는 명태….
미라가 된 북어를 마주하고 있지만 이 미라를 통해 명태의 싱그러웠던 과거,
예컨대 검푸른 동해바다, 사랑하는 짝들과의 유희, 어진 어부와 원산항을 부활시켜야 한다는데...
여러분도 아래 요리 방법대로 북어 강정을 만들어 놓고
좋은 사람과 마주하고 쇠주를 한 잔 하시면서
크~흐 허허허허
크게 한 번 웃으시면서 부활시켜 보시라요
그 무엇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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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양명문 시/변훈 곡/오현명 노래
감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켰을 때 내사랑 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몸은 없어 질지라도
내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의 헛 명태라고 헛 이세상에 남아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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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 박주택
돌을 물에 던지자 풍덩, 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마음에 연못이 있다는 소리 나무의 수많은 잎사귀들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을 때 그것은 마음의 어떤 곳을 꽃밭으로 바꾸는 일 제주 공항, 검은 옷을 입은 사내와 여자가 보따리를 들고 대합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반바지와 선글라스의 왁자한 틈 사이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보따리 틈에서 삐죽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명태 사내와 여자는 둥글게 말려오는 더운 땀을 닦아낸다 이윽고 바람이 서식지를 잃은 듯 주름을 늘리며 다가올 때 그 뒷모습을 보며 망막을 다치는 일은 풍겨 오르는 죽음의 냄새를 맡는 일 혹은 여행의 기분을 검은 옷과 바꾸는 일 애써 마음의 어떤 곳에 파도를 세우는 동안 반바지와 선글라스들이 버스에 오르고 사내와 여자가 들뜬 틈 사이로 스며들자 나무의 수많은 잎사귀들이 팔랑거렸다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2005년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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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 김기택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다
모두가 머리보다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벌어진 입으로 쉬지 않고 공기가 들어가지만
명태들은 공기를 마시지 않고 입만 벌리고 있다
모두가 악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다만 입만 벌리고 있다
그물에 걸려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입을 벌렸을 때
공기는 오히려 밧줄처럼 명태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
헐떡거리는 목구멍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숨구멍 막는 공기를 마시려고 입은 더욱 벌어졌을 것이고
입이 벌어질수록 공기는 더 세게 목구멍을 막았을 것이다
명태들은 필사적으로 벌렸다가 끝내 다물지 못한 입을
다시는 다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끝끝내 다물지 않기 위해
입들은 시멘트처럼 단단하고 단호하게 굳어져 있다
억지로 다물게 하려면 입을 부숴 버리거나
아예 머리를 통째로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린 명태들은 간신히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고기보다는 막대기에 더 가까운 몸이 되어 있다
모두가 아직은 악쓰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입은 단지 그 막대기에 남아 있는 커다란 옹이일 뿐이다
그 옹이 주변에서 나이테는 유난히 심하게 뒤틀려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2.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VDQTFAZnMy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U3LmpwZy50aHVtYg%3D%3D%26filename%3D157.jpg)
양명문(1913-1985)
호는 자문.평양 출생
1942년 일본 도쿄센슈 대학 법학부를 졸업.
1939년 27편의 시를 수록한 처녀시집 "화수원"을 발간하여 시단에 등단.
1 ·4후퇴 때 월남하여 종군작가로 활약하였다.
1960∼1965년 이화여자대학 교수
1965∼1979년 국제대학 교수
1981∼1985년 세종대학 초청교수를 지냈다.
작품에는 <송가>.<푸른 전설>.<화성인>...
시선집으로 <이목구비>.<묵시록>...
장편 서사시<원효> 등 다수가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2.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VDQTFAZnMy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U4LmpwZy50aHVtYg%3D%3D%26filename%3D158.jpg)
변훈(1926-2000)
원래 이 곡은 6.25사변중 국군으로 전투중이던 변훈님이 쓴 곡에
종군기자로 있던 양명문님이 가사를 쓴 당시로선 혁신적인 곡이였지만
1952년 초연 당시엔 지독한 혹평을 받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자유로울수 없는 젊은 영혼들을
명태에 비유해 역설적으로 신세를 한탄한 가곡 명태를
성악가 오현명이 구성지게 불러 심금을 울렸다.
1926년 함경남도 함흥 태생의 변훈(1926∼2000)은
주포르투갈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출신 작곡가로
함남중학교를 거쳐 연희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53년 외교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81년 5월 주 포르투갈
대리대사를 마지막으로 28년간의 외교관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또 작곡가로는 1947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금잔디」
윤동주 작시의 「무서운 시간」, 시인 김광섭의「차라리 손목잡고 죽으리」
등을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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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명(1924-현재)
吳鉉明씨가 한국 歌曲史 최고의 성악가로 뽑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의 생애 가 80년 한국 가곡사 혹은 民族史(민족사 )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만주땅 에서 출생한 그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 며 자라다
6세 때 현제명 성악곡집을 듣고 음악적 감화를 받았다.
형의 친구인 작곡 가 임원식씨로부터 목소리 좋다는 말을 듣 고 中 1때 교회
무대에 처음 섰고 「보리밭 」의 작곡가 윤용하가 만든 조선 합창단 단원으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징병을 당해 일본까지 끌려갔다가 거기서 조국해방을 맞이하였고, 만주로
되돌아가던 중 38선이 막혀 서울을 떠돌게 되었다.
그러다 극적 으로 현제명씨를 만났고 그 밑에서 일하다가 경성음악학교
장학생으로 입학, 평생의 스승 김형로씨를 만났다. 6·25 때는 좌익 학생들에 의해 납북되던 중 탈출하여 국군 정훈음악대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는 일생의 레퍼토리가 된 가곡 「명태」를 만났다.
"1951년 해군 정훈음악대에 있을 때, 연락 장교로 있던 작곡가 변훈씨가
날 위해 만들 었다며 던져주고 간 악보뭉치 속에 「명태 」가 있었지요.
멜로디보다 가사 위주로 가 는 생소한 방식, 해학적인 가사가 좋아 발표
했다가 당시엔 지독한 혹평을 받았어요.
작곡가가 낙담해 진로를 바꾸기까지 했으니까요.
1970년에 다시 불렀다가 유명해져서 어딜 가나
오현명 -명태...명태 -오현명 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blog.daum.net%2Fupload_control%2Fdownload.blog%3Ffhandle%3DMDVDQTFAZnMx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EvMTQ0LmpwZy50aHVtYg%3D%3D%26filename%3D14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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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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