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인가 포항제철에서의 지방살이는 결혼후
처음맞이하는 아내와 떨어져 지냈던 일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에
아내와 나는 그리움으로 쌓인시기였다
그리고 이일이 거의 정리될 무렵에 저는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은행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몇년있을것이라고 여겼지만 여기도 일년을 넘기기가 어려운처지였다
거의 마무리단계에서 저는 그날도 출근을 했다
토요일이라서 반나절만 근무하면 집으로 돌아갈수가 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유난히 피곤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들 밖으로 나가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때 일어서려고 하니 현기증이 났다
다들 나가고 나서 억지로 바깥으로 나와서 근처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점심식사하러 나갔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의사가 내배를 만져보더니만 큰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하는수없이 직장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한강다리를 건너서 큰병원으로 왔다
그때에 우리은행의 근무지는 잠실이었다
토요일인지라 일반환자를 받지 않아서 응급실로 들어갔다
바퀴달린 침상에 누워서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더니만 검사이후에
'요도결석'이라고 했다. 검사후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허기지기도 하였지만 시시때때로 오는 통증이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때마다
간호사는 들어와서 진통제같은것을 놔주고 같았다
아내에게 상황을 연락하였더니 저녁무렵에 찾아와서 그날 내베드옆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그리고 연락을 받았는지 일요일에 삼성병원의 의사인 동생이
찾아왔다. 심각한 병이 아니니 내일 삼성의료원으로 가자고 했다
갑짜기 병원에 오는 바람에 2인실에 있게되었다
오토바이사고로 거의 중상을 입은 다른집아들과 그의 보호자와 같은 병실에서
지냈다.
월요일 퇴원하고 동생이 있는 삼성의료원에 갔다
아주 묘한 사정이라고 한다 방광에 생긴 돌은 작은크기이기때문에
물을 많이 마시고 집에 가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돌이 자라면 그것을 깨어서 배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오후에 매형이 병문안오셔서 같이 나왔고 나는 직장에 출근했다
늦었지만 직장상사가 걱정할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이후에는 통증이 없었다.
아내는 하루종일 가게에서 옷을 팔았는데 그 지친몸으로 병원에 찾아와서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날 또 일하러 나가지도 못하고 월요일까지 나랑 함께있었다
의사인 동생은 토요일에 연락을 취했지만 병원손님인지와
함께 골프치러가느라고 오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날이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