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상청의 날씨 예보가 자주 틀린다.
기상청의 예보를 믿느니 할머니 무릅을 믿겠다는 조롱마져 듣고 있다.
얼마 전 서해안으로 올라 온 태풍 경로를 예상한 네 나라 기상대 중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라는 기사도 있었다.
당시 우리 기상대의 변명은 서북쪽의 찬 공기 세력을 잘못 계산했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날씨 예보를 보면 더 기가 찬다.
예보는 시간대로 나오는데 맞는 확율은 매우 낮다.
도무지 날씨 예보를 믿고 무슨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과학기술이 날로 발전해도 날씨 예보 하나 정확히 맞추기 힘든 모양이다.
그렇다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맞지도 않는 기상예보를 지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도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하는 것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다.
지역별로 발생하는 편차는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아주 않하는 것보다는 나은 경우를 우리는 간과하기 쉽다.
같은 환경이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우리는 종종 접한다.
농사를 짓다 보니 그런 경우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기상청 예보와 가장 흡사한 예측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대북 전문가들일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중구난방이라 어느 것이 사실인지 분간을 못하게 된다.
방송에서는 소위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봉사가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대북 전망과 예측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맞으면 다행이고 틀려도 그리 창피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에서는 그들을 불러 주고 있다.
미래는 그래서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예측대로만 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수 많은 조각들을 꿰어 맞추는 퍼즐놀이 처럼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미답의 절경과 같다.
인간의 지식이 완전하지 못한 것도 감사할 일이다.
모든 사물이 정해진 코스대로 만 운명이 결정된다면 인류의 발전은 정지되고 말았을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면 오늘의 진실이 내일의 진실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곡주가 소개한 농부의 말을 듣고 대숭의 작품을 찢어버린 마지절은 예술 작품을 소장할 자격이 없는 자이다.
사실과 예술을 구별하지 못하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눈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과 사실 또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사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말도 필요한 때가 있다.
더구나 글은 아는 것 만 쓴다면 아예 글을 쓰지 못한다.
글을 쓸 용기 자체가 나지 않는 것이다.
글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불문해야 생각나는대로 쓸 수가 있다.
틀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글을 쓰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마치 오랜 동안 공부하고도 영어를 못하는 원인과 다를 바 없다.
완전한 지식과 온전한 사실만을 고집하면 아예 글 쓰기를 포기해야 할런지 모른다.
글이란 어쩌면 그 자체가 끊임없는 습작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첫댓글 마지절의 이야기는 예술가적 심미안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자기만이 옳다고 하는 아집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옳은 말씀이다. 독선과 아집이야 말로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그래서 늘 자기 성찰이 필요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