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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시리즈 1-2
본문 요지
한국은 지금 두 종류의 공기업이 병존하고 있다. 하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식 공기업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들이다. 이들 두 종류의 ‘공기업’ 관리체계는 완전히 다른 원리에 입각하여 운영되는데, 한국의 공기업 관리체계 ‘이원화’의 본질은 다름 아닌 재벌지원 체제라 할 수 있다. 재벌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잠시 국책은행이 그 기업을 맡아 관리하면서 부채탕감, 신규 자본 투입, 노동자 정리해고 등으로 정상화를 추진한 후 다시 ‘주인 찾기’ 명목으로 다른 재벌에게 넘겨준다. 이원화된 공기업 관리체계는 이를 위한 ‘임시관리 체계’이자 보조 장치이며 민중 수탈기제이다. 한국은 이제 국가가 적극 나서 산업은행을 통한 ‘금융적 국유화’를 넘어 ‘실질적 국유화’를 추진해야 할 때이다.
점차 부상하는 ‘기간산업 국유화’ 요구
1. 민주노총 하반기 총파업, 투쟁과제 1번― ‘기간산업 국유화’
2. 불신 자초한 산업은행의 워크아웃 처리 방식
3. 한국의 ‘2원적’ 공기업 관리체계 - 공식 공기업과 ‘음성적’ 공기업
4. ‘금융적 국유화’가 아닌 ‘실질적 국유화’를
- ‘전문적 공기업 관리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3. 한국의 ‘2원적’ 공기업 관리체계
― 공식 공기업과 ‘음성적’ 공기업
한국은 지금 사실상 두 종류의 공기업이 병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공운법’)에 따라 지정된 공식 공기업이다. 2006년 제정된 공운법에 따르면 공기업은 직원 50인 이상, 자체수입액이 총수입액의 2분의1 이상인 공공기관 중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의미한다. 이 규정을 받는 공기업은 현재 모두 36개 이며, 그중 주식시장에 상장된 것이 8개이다.
▲ 산업은행
또 다른 종류의 공기업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같이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서 관리하고 있는 구조조정 중에 있는 기업들이다. 이 역시 본질상 공기업에 속한다. 왜냐하면 100% 국가 소유인 이들 정책은행들은 주채권은행 신분으로 인사•재무•사업을 총괄하는 등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과 같이 실제 단순 채권자가 아닌 최대주주로 이미 전환한 경우도 있다.
참고로 OECD <공기업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면, 형식이야 어떻든 정부가 실제 최대주주 신분으로 소유권을 행사하는 기업은 모두 ‘공기업’으로 간주한다. 유럽연합의 공기업 규정도 “공권력이 소유권, 재무적 출자 또는 관련 규정을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1)
경제개혁연구소가 2015년 8월20일 기준으로 산업은행이 채권을 보유한 99개 구조조정 기업의 재무상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법정관리가 진행된 곳이 각각 43곳(43.4%)이고, 13곳(13.1%)은 자율협약 절차를 밟았다. 아래 표2와 표3은 이 같은 음성적 공기업의 현황을 보여준다.
* 주: 2017, 2018년 자료는 데이터 집계 부족으로 자율협약에 의한 공동관리 기업은 제외 됨. 자료: 신호철, 2017년9월, , 감사원 감사연구원, p36에서 재인용.
이렇듯 두 종류의 공기업이 존재함에 따라 한국의 공기업 관리체계 역시도 이원화되어 있다. ‘공운법’에 따른 정식 공기업 관리체계와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관리체계가 그것이다. 이들 두 종류의 ‘공기업’ 관리체계는 완전히 다른 기준에 입각하여 운영된다.
먼저, 공운법에 따른 공기업 관리체계는 비교적 엄정하다. 공기업을 포함하여 공공기관으로 정식 지정된 기관은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관리 대상이 된다. 이들은 모두 동법 제11조의 경영공시, 제12조의 통합공시, 제13조의 고객헌장과 고객만족도 조사, 제14조의 공공기관에 대한 기능조정, 그리고 제15조의 공공기관 혁신 등의 규정이 적용 된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특히 공기업은 상기한 사항 외에도 이사회, 임원 임명 및 구성, 예산회계, 경영감독 등 공운법 제16조에서 제52조의 6에 이르는 규정을 받는다.2)
이렇듯 ‘공식 공기업’은 사회의 준엄한 감시 및 국정감사를 받으며, 공운법에 따른 내외적 지배구조가 작동되어 사업 집행, 재무적 운영 상황 등을 상세하게 공시하게 되어 있다. 임원들의 인사 및 보수 관리도 내부 통제과정과 경영공시를 거쳐야 한다.
이와 비교할 때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관리하는 ‘음성적 공기업’은 관리가 상대적으로 느슨해 자의성이 개입할 소지가 많다. 이들은 위의 공운법에 따른 경영공시 및 제반 의무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사실상 밀실 관리 상태에 있다.3)
최근 코로나사태로 인해 기간산업안정기금이 산업은행 산하에 설치되었다. 이 경우 그것은 국가재정법상의 기금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국회에 보고할 필요가 없어 ‘외부통제’를 피할 수 있게 된다.4)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설치와 운영과 관련하여 새로 개정된 한국산업은행법에는 이른바 ‘면책특권’이 신설되었다. 이로써 산업은행은 자신이 결정한 구조조정과 매각에 대해 면책을 받게 된다. 이 법 41조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업무 처리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조항이 신설된 배경은 소위 ‘변양호 신드롬’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추진했던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것을 계기로 공무원들이 논란이 될 만한 정책은 손대지 않고 기피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5) 이에 따라 산업은행의 행보는 더욱 거칠 것이 없게 되었다.
산업은행에 의한 구조조정 기업 관리체계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들 기업들 중에는 한국의 기간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많은데 일단 그들이 산은의 관리체계로 들어간 후에는 주로 ‘금융적 논리’에 입각하여 관리된다는 점이다. 다음 인용문은 그 같은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주 채권단으로서 대기업 구조조정과 매각 작업을 진행하면서 특성상 재무적인 판단만 한다. 달리 말하면 기업 구조조정에서 산업은행은 오직 재무적 차원의 구조조정만을 집행하는 기구다.……여기서 재무적 구조조정이란 재무제표에서 비용은 줄이고 수익은 늘려 기업의 수익성 제고를 최고의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을 말한다. 수익성을 내기 위해 필요한 자본금 총량, 부채비율, 수익률, 비용 등 재무적인 문제만을 기업 가치로 삼고 있다. 매각이나 통합에서도 빌려준 자금을 어떻게 하면 회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6)
여기서 산업은행이 앞서 왜 자신의 관리 하에 있던 아시아나항공이나 두산중공업 등에 대해 상식에 어긋난 처리방식을 고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재무적 구조조정’의 논리를 따를 경우 산업은행의 최대 목표는 기껏해야 ‘주인 찾기’나 ‘본전 회수’가 된다. 이런 것들 보다 더욱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국가의 산업정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010~2016년 조선업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그 같은 문제점이 잘 드러났다. 당시에도 국책은행이 포함된 채권단이 성동조선 등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는데, 그 결과 대부분의 중형 조선소들은 파산 절차를 밟거나 조선업종과 상관없는 업종으로 전환되었다. 산업은행이 지나치게 채무상환이라는 금융적 안목에서 사안을 다루었기 때문이다.7) 그 때문에 한국 조선업을 받쳐주던 중형조선소들이 몰락함으로써 대형조선소만이 남게 되었고, 이로 인해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은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전형적인 금융기관 주도의 단기적 안목의 ‘산업구조조정’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지금 ‘기간산업안정기금’ 관리주체로서 산은의 문제점은 과거 국책은행의 부실기업 관리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본질상 거의 동일하다. 양자 모두 공식적인 공기업화를 최대한 회피하고, 일시적 ‘재무적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회생 절차를 밟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들 부실기업의 회생 절차가 늦어짐에 따라 산업은행 등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채권을 출자전환하여 대주주로 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산업은행에게 있어서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한 기업 지원과 부실기업 관리 양자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존재하며, 양자는 상호 전화할 수 있는 관계에 있다. 즉 국책은행에 의한 일시적 자금지원은 한국적 상황에선 장기적인 기업 관리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8) 그 때문에 양자는 산업은행의 관리상 문제점 또한 공유한다. 어느 경우이든 ‘재무적 구조조정’이 일차적 목적이 되며,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15년 전 산업은행이 자신이 관리하던 워크아웃 기업인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처리하던 방식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산업은행은 ‘주인 찾기’라는 명목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에게 자금을 지원해 줌으로써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두 회사를 인수토록 했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을 먼저 인수 한 후, 다시 그것을 지렛대로 시중자금을 모집해 2008년에는 대한통운마저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무려 10조원의 자금이 동원되었는데, 산업은행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돈을 빌려주면서 소위 ‘뒷배’ 역할을 했다.9)
결국 그 후유증으로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가 부실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년 후인 2009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물로 내놓아야만 했으며, 이것을 산업은행이 어쩔 수 없이 재인수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산업은행 관리체계는 이제 그냥 수수방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계속해서 방치할 경우, 자칫 그간 애써 쌓아 올린 한국 산업경쟁력 기반이 근저로부터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앞으로 코로나사태 후유증과 4차 산업혁명의 본격적 전개로 인해 한계기업 처리문제가 더욱 불거지게 된다. 한국경제 전반의 거시적 산업구조조정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공기업 관리체계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4. ‘금융적 국유화’가 아닌 ‘실질적 국유화’를
- ‘전문적 공기업 관리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논의 상 편의를 위해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본의 아니게 부실기업을 장기간 관리하는 경우를 ‘금융적 국유화’라 부르기로 하자. 이에 대비되는 것이 국가가 공식적으로 공기업을 관리하는 ‘실질적 국유화’이다.
그간의 경험을 보면, 한국적 현실에서는 처음 워크아웃, 채권단 자율협정 등 단순한 ‘재무적 구조조정’이 애초 의도와는 달리 출자전환을 포함한 ‘금융적 국유화’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우건설, 대한통운, 금호타이어, 대우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동부제철, 현대시멘트 등이 그러했다. 이 경우 여러 가지 폐단을 낳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앞서 지적한 바대로 금융기관인 국책은행이 관리함으로써 산업의 장기 전략이 방기되고 주로 재무적 측면에서 기업 관리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해당 기업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국가 경제기반도 함께 무너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한국의 유일한 발전설비 업체인 두산중공업의 경우 현재 자신의 주요 자산을 하나 둘씩 매각함으로써 경쟁력 기반 자체가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재무적 구조조정’ 조차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코로나사태 발발 직전 발생했던 2019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추진 역시 그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아직 EU 등의 최종 독과점 심사를 남겨 두고 있긴 하지만, 총 13조원 가까운 국민 혈세가 투여된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 재벌은 단돈 4천여억 원만을 투자하여 그 경영권을 장악하였다. 산은이 갖고 있던 49.5% 지분은 겨우 2조5천억 원 정도의 가치만 인정받았는데, 거의 10조원의 돈이 자취를 감춘 셈이다. 결국 국고만 낭비하고 ‘헐값매각’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정부는 ’97.11~’20.6월중 공적자금으로 총 168.7조원을 지원하였다. 그중 2020년 6월말 현재 117.2조원을 회수하여 회수율은 69.5%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략 1/3에 가까운 50조원이 회수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셈이다.10)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금융적 국유화’가 이처럼 폐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굳이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유학파 출신이 주류인 기획재정부나 경제 관료들 머리속에 신자유주의적 성향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매각 때도 그들은 언론이 ‘국유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매우 꺼려하였다.11)
하지만 그것만으로 ‘금융적 국유화’가 성행하는 한국적 현실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금융적 국유화’도 국가의 시장개입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원리와 배치된다. 경영위기에 처한 민간 기업에 산업은행이 개입하는 이유는 ‘청산가치’보다 ‘회생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시장 상황으로 인해 일시적 곤란을 겪는 기업을 국가가 개입을 통해 회생시킬 수 있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인데, 이는 시장 결정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신자유주의 신념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 관료들이 한편으론 신자유주의를 숭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금융적 국유화’를 감행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본질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기만적 술책’에 불과하다.
197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선진국으로부터 ‘중후장대’한 제조업을 이전 받아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 그것들은 지금 한국 재벌의 주력 분야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경기변동에 따른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상태에 놓여 있다. 세계적인 불황이 몰려올 때마다 거대 장치산업에 많은 고정자본이 묶여 있는 재벌 대기업들은 손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채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건설, 철강, 조선, 자동차, 심지어는 한국경제를 상징하는 반도체 분야까지도 그러하다. 요즘 들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하이닉스도 한 때는 애물단지로 채권단의 애를 썩힌 적이 있다. 최근 반도체 호황이 찾아오기 전까지 마땅한 매수자가 없어 10년 동안 세 차례나 주인을 바꾸어야 했다.
객관적인 경기변동 외에도, 주체적 요인 또한 한국 재벌 대기업의 부실화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이다. 한국 재벌은 하나 같이 ‘지분율 축소 경향’이라고 하는 고유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룹 자산이 날로 증가함에 비해 총수일가의 지분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가는 경향을 말하는데, 이는 다른 한편 ‘생산의 사회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총수일가는 이 때문에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일감 몰아주기’ 같은 편법을 통해 사내 이윤을 끊임없이 외부로 유출시킨다. 총수일가의 이 같은 행위는 장기적으로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그밖에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 또한 한국 재벌의 큰 약점 중 하나이다. 정작 해당 기업에는 별 문제가 없더라도 다른 계열사 채무보증으로 인한 동반 부실화가 종종 발생한다. 1998년 만도기계의 흑자부도, 최근 아시아나항공사 부실화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상 열거한 여러 취약성 때문에 한국 재벌기업은 수시로 경영위기에 내몰린다. 다른 한편 그들은 많은 부분 기간산업과 같은 국민경제의 중추를 담당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고용 및 기타 산업과의 연관, 국가경쟁력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재벌 대기업의 부실화는 필연적으로 정부 개입을 낳게 되며, 일단 정부가 개입하면 공적자금이 장기간에 걸쳐 투여될 수밖에 없다. 경기순환 주기가 바뀌어 기업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할 때까지 전적으로 국가와 채권단의 지원으로 버티게 되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이렇게 애써 회생 시켜 놓은 부실기업의 새 주인은 한국의 재벌경제 체제 하에서는 다시 ‘재벌’일 수밖에 없다. 회생과정에서 수천억 내지 수조 원의 자금이 들어간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주체는 재벌 빼놓고는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재벌체제가 계속해서 강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며, 재벌은 망해도 재벌체제는 강화된다는 말이 여기서 성립한다.
이렇게 볼 때 지금 한국 공기업 관리체계 ‘이원화’의 본질은 다름 아닌 재벌지원 체제이다. 한국 재벌체제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일종의 특혜장치이자, 민중 수탈기제인 셈이다. 재벌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잠시 국가가 그 기업을 맡아 관리하면서 부채탕감, 신규 자본 투입, 노동자 정리해고 등으로 정상화를 추진한다. 그 후 다시 ‘주인 찾기’ 명목으로 다른 재벌에게 넘겨주는데, 그를 위한 ‘임시관리 체계’이다. 재벌은 이렇듯 새로운 수혈을 받고 강해지지만, 그 피해는 전 사회와 대다수 민중이 지게 된다.
이제 국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먼저,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산하의 ‘음성적 공기업’을 ‘공식 공기업’ 체계로 편입시켜야 한다. 또 불공평한 현 ‘기간산업지원기금’ 규정을 개정하여 정부가 민간 대주주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경우 지체 없이 경영권을 행사토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행 ‘공기업 관리체계’ 역시 계속해서 혁신하고 완성시켜야 한다. 이는 한국사회의 기본 과제인 ‘재벌개혁’을 질서 있게 추진하는 길이기도 하다.
본문 주석
1) 은 “각국의 법률에서 사업체로 인정하는 모든 기업 실체 중 국가가 소유권을 행사하는 실체는 모두 공기업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한다. 여기에는 합자회사(joint stock company), 유한책임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 주식합자-파트너쉽(partnership limited by shares) 등이 포함되는데, 형식이야 어떻든 내용적으로 볼 때 “국가가 의결권 지분의 과반 수 이상을 보유한 최종 소유주이거나, 그와 동등한 수준의 통제를 행사하는 국가 통제 하의 모든 기업”은 공기업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OECD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 (2015 개정판)], p.14. 유럽연합은 유럽집행위원회 지침을 통해 공기업(public undertaking)을 “공권력이 소유권, 재무적 출자 또는 관련 규정을 통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이 같은 유럽연합의 정의에 따르게 되는 경우에도 「공운법」이 정하는 공기업(publiccorporation) 외에 다수의 기관이 공기업(public undertaking)으로 분류 가능하다. [공공기관 관리제도의 이해 1권: 개괄·정책],p9.
2) 이상 관련 규정은 <2018 공공기관 현황편람>, p19 참조.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세 가지로 구분된다. '21년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은 모두 350개 이며, 공기업 36개, 준정부기관 96개, 기타공공기관 218개가 있다.
3) “산업은행은 막대한 세금을 가져다 쓰면서도 얼마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어떻게 회수할지에 대해서는 경영공시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비밀에 쌓인 채 여전히 밀실에서의 협약으로 처리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를테면 대우조선해양에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얼마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김철, “산업은행의 관리실태 및 개선방안”, 사회공공연구원 이슈페이퍼, 2021-01호, pp4-5)
4) “기간산업 지원 40조 운용 감시체계 허술…기업만 배 불릴 우려”, 경향비즈, 2020년5월6일.
5) “[홍석만의 경제 매뉴얼] 산업은행이 손대면 재벌만 커진다”, 미디어오늘, 2021년1월2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149.
6) 홍석만, 위의 글. 인용문 중 굵은 글씨체는 인용자에 의한 것임.
7) 다음 지적 역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지난 해(2020년-주) 12월22일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한진중공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 컨소시엄에는 동부건설이 전략적 투자자(SI)로, 한국토지신탁 등이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다. 동부건설이 주축인 듯 보이지만 동부건설의 최대주주가 사실상 한국토지신탁이기 때문에 한국토지신탁이 주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도 알 수 있듯이 한진중공업의 부산 영도조선소는 폐업 수순을 거치고 그 땅에 부동산 개발을 하기 위해 조선업과 아무 관련 없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이 나섰다.”홍석만, 위의 글. 인용문 중 밑줄은 인용자에 의한 것임.
8)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불발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시아나항공 '국유화' 표현을 놓고 금융권 안팎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 딜이 최종적으로 무산되면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아시아나항공 대주주로서 경영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코로나19 등 사태가 진정되고 항공업황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매각에 나선다는 방향이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0/08/798992/
9) 홍석만, 위의 글 참조.
10) 2016년 시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성공률은 50%에 불과하다. 다음 인용문 참조. “실제로 산은의 구조조정 성과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재벌닷컴은 올 1분기 말 기준으로 산은이 지분 보유나 출자 등의 형태로 투자한 기업은 총 145곳이며, 이 가운데 장부상 평가 손실이 난 투자처는 모두 85곳으로 전체의 58.6%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회 정무위 채이배 의원(국민의당)도 국정감사에서 기업구조조정 평가손실 예상액 56조원의 절반인 29조원이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기업들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 지분 보유 회사 426곳 최초 공개...구조조정 성공률은 50%에 불과”, 시사저널, 2016.10.25.)
http://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460)
11) “ ‘아시아나 국유화' 표현이 불편한 산업은행”, 매일경제, 2020년8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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