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 - 윤시내
| 가사에 마우스 올리면 멈춤. ◇윤시내◇
윤시내는 80년대 'DJ에게' '열애' '공부합시다' 등의 히트곡을 낸 디바다. 특히 윤시내의 대표곡 '열애'는 1980년 TBC방송국이 개최한 ‘세계가요제’에서 처음 발표됐고, 그 후 TV와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국민 애창곡으로 불린 바 있다. 또한 윤시내는 흑인 헤어스타일과 터질 듯한 가창력, 격정적인 무대매너로 활동 당시 독보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윤시내 '열애' (1979) 1980년대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어떤 전형 한 순간,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는 예술인들이 있다. 요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또 지금도 존재한다. ‘열애’를 부르는 윤시내가 바로 그러했다. ‘뜨거운 연애’란 제목의 의미가 강조하듯, 노래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처럼 강렬하게 타올랐으며 다분히 신파적인 분위기조차도 감싸 안으며 그 뒤로도 끊임없이 기억될 명장면을 주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1979년이 끝나갈 즈음 처음 공개된 ‘열애’는 TBC 국제가요제 한국대표를 선발하는 자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고, 이듬해 본선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윤시내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명곡이다.
어느 곡에든 사연이 붙어 있기 마련이지만, 이 곡의 탄생비화는 그야말로 절절하다. 사실 노랫말은 투병 중이던 한 방송국 PD가 아내에게 보내는 애잔한 사랑의 서약이었다. 그가 죽은 후 아내는 작곡가 최종혁에게 노랫말을 보냈고, 그는 이 에피소드를 극적으로 포장하는 최선의 길을 알고 있었다. 세련된 팝 스타일에 장중한 오케스트레이션 선율이 부가된 희대의 노래는 그렇게 태어났다.
기실 윤시내의 분출은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모든 것엔 전조가 있기 마련이니까. 1978년 제2회 국제가요제에서 열창했던 ‘공연히’가 그 곡이었다. 날 바짝 선 사이키델릭과 재즈 록의 연주 사이를 뚫고 나오는 그녀의 불길한 목소리는 미래의 어느 날을 예고하는 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그것이었다. ‘열애’를 부를 때의 창법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영화 [별들의 고향]에 삽입된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를 불렀던 그녀를 떠올려보자. 세상에서 가장 순진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모두의 예측을 비웃듯 반대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와 ‘열애’를 동일인의 노래라 상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노래마다에 제각각의 색깔을 부여한 윤시내의 해석력이 돋보이는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열애’에서 윤시내가 토해낸 ‘인생의 순간’은 1980년대 드라마틱한 구조의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용과 이은하와 정수라를 비롯한 숱한 가수들이 ‘열애’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잊혀진 계절’을 비롯한 1980년대 초중반의 어덜트 컨템포러리는 ‘열애’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순한 순애보로 그칠 수도 있었던 노래는 기대 이상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가요계의 텃밭을 풍성하게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다.
‘열애’는 가요사에 새겨진 가장 애절하고 비범한 사랑 노래다. 나직하게 손을 뻗는 도입부의 내레이션, 서서히 감정이입을 촉구하는 중단부, 치밀하게 계산된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전성기 윤시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적 제스처까지. 한 편의 연극무대와도 같은 장엄한 구성은 동시대 주류 가요가 해낼 수 있는 극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녀가 선보인 신비롭고 진지한 무대 연출 덕분에, 갑작스런 그녀의 사라짐 역시 그 연출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로도 윤시내는 ‘공부합시다’, ‘DJ에게’, ‘그대에게 벗어나고파’ 등 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1980년대의 한 시점을 풍미했다. 그러나 후속곡들 중 어느 곡도 ‘계절의 폭풍’을 몰고 오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열애’의 충격이 대단했던 탓이었으리라.
이제 그녀의 노래들은 방송에서 들을 수 없다. 그녀가 운영하는 서울 근교의 카페를 우연히 방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녀가 활동하던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녀에 대한 후일담은 지금 예능 프로에서나 간혹 모창이라는 명목하에 근근이 재생되고 있을 뿐이다(최근 부활과 함께 한 ‘이별에서 영원으로’라는 곡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세월의 풍화작용도 ‘열애’가 남긴 자취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보편적 화두인 사랑은 위대하고, 사랑의 노래는 그보다 더 위대하므로. ‘열애’는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으로 여기 이렇게 남아있다.
이 곡은 실제로 사연이 있습니다. 이 곡을 발표할 당시 부산 MBC 음악 PD 배경모 선생님이 암투병중이실 때 아내분이 간호를 하는데 그 모습이 안스럽고 고마워서 시를 하나 쓰셨지요. 아내의 고마움과 사랑을 담은 시를 말이에요. 이 시를 읽고 아내분이 울었지요. 근데 남편분인 배경모 선생님은 이 시를 쓰시고 나서 얼마 안돼서 일어나질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거에요.
그래서 아내분이 이 시를 남편분이 생전에 친했던 작곡가 최종혁 선생님께 주시면서 "이 시, 남편이 죽기 직전에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시고 나서 쓰신 시인데 선생님이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주세요. 저희 남편의 뜻이 아마도 그럴꺼에요."라고 말씀하시길래 이 시를 가지고 노래로 만드시는데 시가 1절, 2절 나누어 진것도 아니고 그래서 만드시다가 앞부분 어느정도는 나레이션으로 설정해 놓으시고 그 다음 부분부터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만드셨는데... 가수를 누구로 하면 좋을지 고민 하시다가 본인이 키워 데뷔시킨 가수 윤시내가 창법이 혼을 담아서 열창하는 창법인데(불꽃 창법)
이 곡과 어울리겠다 싶어서 윤시내의 노래로 취입을 시키셨고 이 곡이 반응이 좋아지자 그 해에 동명의 영화주제가 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출처 :코리아윈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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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언제 들어도 감동을 주는 음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