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일 시골에 내려갈 수 있어?'
'내일은 어버이날이잖아요?'
하면서 아내는 자꾸만 시골 가는 것을 뒤로 미룬다.
함께 내려가야 할 아내한테 또 말하기도 싫고.
봄철 농사는 이제는 거의 다 포기했다. 건달농사꾼인 나만 답답할 뿐이다.
내 텃밭 속에는 어떤 꽃들이 피어 있을까 궁금하다.
시골 다녀온 지도 벌써 여십여 일이 훌쩍 넘었기에.
지하전철을 타고 양재동꽃시장에 나가서 묘목과 화초류를 구경했으면 싶다.
묘목은 자동차에 실어야 하는데 차는 끌고 가기는 싫고. 그냥 눈으로 구경이나 해야 할 터.
무게가 가벼운 외국 화초는 살 수도 있겠다. 아파트 베란다 위에서 키우고, 번식시키고 싶으니까.
십여 일 전에 성남모란시장에서 사 온 더덕.
껍질 벗겨 먹어야 하는데도 시골에 가서 밭에 심을 궁량으로 물을 이따금 부어주었더니만 뇌두에서 새 싹이 나와서 큰다.
식재료로 팔리던 더덕은 횡재한 셈이다. 3 ~5년 더 오래 살 수 있기에.
이 글 쓰는데 아내는 핸드폰에 뜬 5월 9일 여행정보를 나한테 보여주었다.
나는 속으로 화를 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땡큐' 하면서 얼굴이 활짝 펴진 아내와 달리 나는 살짝 눈물이 난다.
아내가 여행 다녀온 뒤에 내가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을 돌본다고 해도 이제는 너무 늦었다.
올해에도 봄철 농사는 벌써 틀려버렸다. 봄철에 씨앗 뿌리고, 김 매고 등을 하면서 초기에 집중재배해야만 1년 농사가 제대로 되는 게 순리이다.
두릅, 엄나무의 순도 다 억세졌고, 씨앗 파종 시기도 늦었고, 포기 나누기와 이식시기도 벌써 늦었다.
풀은 억세게 번질 터이고...
퇴직한 뒤에 나는 시골로 내려가 늙은 어머니와 함께 몇 해 살았다. 나는 텃밭 가꾸고, 꼬부랑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느리적거리면서 꽃잎을 땄다. 그 엄니 너무나 늙어서 먼 세상으로 훌쩍 떠난 뒤에 나는 서울에 올라왔다.
겨울철에는 춥다는 핑계로, 봄 여름 가을철에는 또 다른 구실이 생기어서 서울에서 머무는 시간이 자꾸만 늘어만 간다.
내가 정말로 못났다. 자동차를 몰고 혼자 훌쩍 시골로 떠나고 싶은데도 꾹 참는다. 내 농사보다도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 할 터.
텃밭 세 군데. 1,600평이 훨씬 넘는 텃밭 속의 과일나무, 조경수, 화초 들은 또 제멋대로일 게다. 주인이 없는 텃밭에는 고라니, 멧돼지가 내려오고, 새들이 날아오겠지. 그들의 세상인 양.
마을회관을 낀 내 텃밭을 보고는 동네 늙은이들이 손가락질을 하겠지.
나는 요즘 이원수(李元壽) 작사(고향의 봄), 홍난파(洪蘭坡) 작곡의 동요를 속으로 흥얼거리면서 휘파람을 분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
방금 전 대전 누나는 충남 서산군 해미, 태안, 대천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을 거쳐서 친정집인 내 집에도 들렸다고.
친정집 들려보아야 열쇠로 대문을 담궜으니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마당과 텃밭만 둘러보았단다. 비는 내리기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두릅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했기에 알맞은 크기의 순을 조금 밖에 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 그 많은 두릅 순은 억세어서... 땅두릅도 억세어졌을 터. 텃밭 여기저기에 있는 머위 순을 조금 잘랐다고 한다. 머위도 첫순은 엄청나게 컸을 터.
물앵두가 많이 달렸다고 한다.
'물앵두가 맛 있는데...'하면서 언제쯤 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앵두가 완전히 익는 시기는 6월 3일 전후이다.
물앵두는 한꺼번에 익기에 며칠 사이로 설었거나 과숙하게 마련읻.
80여 그루의 매실에도 풋열매가 많이 달렸을 게다.
'왜 호박을 그렇게 많이 심었느냐'고 나한테 물었다.
'아니야, 씨 뿌렸어. 옮겨 심으려고.'
호박 모종이 빽빽히 올랐나 보다. 그거 벌써 전에 옮겨 심어야 하는데...
수퍼뽕나무, 산뽕잎이 어떨까 싶다.
꾸찌봉잎에도 하얀 실을 내뿜는 애벌레가 갉아 먹는가. 미국선녀벌레일 터.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 나이기에 외국의 곤충도 무척이나 많다. 바람에 날라오고, 지난해의 벌레도 알을 까고...
아쉽다.
서울에서 머물기만 하는 나.
3.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딱딱한 직업을 가졌고, 퇴직한 뒤로는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만 지었다.
시골집에는 컴퓨터도 없고, 신문도 없고, TV는 있으나 밤 9시 55분에 일기예보나 보았다.
다음날 농사 짓는데 필요한 날씨이기에.
나는 텃밭에서는 한 마리의 두더지였다. 흙이나 파기에.
이러던 내가 서울에 올라오면 할 일이 없다.
퇴직한 지가 10년이니 이제는 갈 곳도 그렇다. 등산하거나 인천 쪽 섬여행도 그렇다.
사교성이 적은 나는 홀로이기에.
컴퓨터 사이버 세상에 들어와서 인터넷 뉴스를 본다. 내 생활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사건 사고, 정치꾼들 소식만 가득 찼다. 그놈이 그놈인 정치판에 짜증이 나고.
문학카페에서 들락거리면서 남의 글을 읽는다.
詩는 글자 수가 적어서 금세 읽을 수는 있으나 때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이 든다.
더욱이 어려운 한자어, 틀린 단어, 띄어쓰기가 안 된 문구를 보면 나는 헷가닥한다.
뜻이 이해가 안 되기에.
남의 글에 댓글 달기도 겁이 난다.
흙 파 먹는 두더지인 촌늙은이가 남의 글에 대해서 댓글 다는 게 무척이나 꺼려진다.
그래도 내가 함께 하는 책에는 제대로 인쇄되었으면 뜻에서 남의 글에 살짝 댓글을 써서 무엇이 어색한가를 가리키는 경우도 더러는 있다.
그런데 이게 미움이 된다는 것도 알기에 이따금 침묵한다. 나중에 보면, 다달이 발간되는 문학지에는 영락없이 틀린 글자, 어색한 문구가 그대로 인쇄된다.
이런 책은 남한테 읽으라고 나눠주기에는 조금은 꺼려지게 마련.
오늘도 그랬다.
'일구월심 갈구하던' 이란 문구를 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야?
'망투하나'라는 단어도 보았다. 이게 무슨 뜻이야?
인쇄되는 글이라면 쉽고, 깔끔했으면 싶다.
첫댓글 저도 국보문학 5월호를 남편 동창 세무 변호사분께
드렸더니 읽었다면서 소설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나누었지오
소설은 허구지만 사실처럼 써야 한다는 이야기 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된다고 하네요
사실 조금 쓰다 관두었기에
담에 소설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부럽네요.
긴 소설을 쓰는 조 선생님이. 남편의 친구한테 책을 선물하셨다니 잘 했고요.
소설 내용은 허구이지만 때로는 사실일 수도 있지요.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의 줄거리도 되겠지요.
하나의 비빕밥처럼요.
늘 여행하고, 하나의 사물에도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소설 속의 내용에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조 선생님의 삶이 건실하겠지요. 남편 친구분의 조언이 맞으니까요.
조 선생님의 전남 순천 지방이 고향이기에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겪고 보았던 것을 이제는 글에 담을 수 있지요.
세월이 흘렀기에 잘 발효되고 걸러진 글맛이겠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시골에 내려간다면서도 아직껏 가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 내 잡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