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정’이 당시 젊은 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첫 번째로 이전까지처럼 서로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의 정략결혼이라는 전근대적 혼인 방식이 아닌 연애에 기초한 혼인을 최초로 서사화하고 더 나아가 민족 계몽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였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 쓰여진 작품 중에 최초로 구도덕의 표상인 영채와 신여성인 선형 사이에서 갈등하는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작품에서의 단어선택도 대부분 순우리말을 사용하고 운문체의 탈피와 구어체를 통한 언문일치를 확립하였고 ‘그녀’와 ‘그’의 구별 없이 모두 ‘그’로 통일하여 표현한 것도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물의 성격 창조와 심리 묘사가 개성적이고 등장인물들은 당시 청년들의 실제 모습이며 당대 사회의 풍속적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는 유교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자발적인 행동이나 남성과 동일한 교육환경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김선형’, ‘김병욱’ 같은 신세대 여성과 ‘박영채’ 라는 진취적 여성의 등장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2. 이광수의 작품을 찾아보면 34년간 소설을 중심으로 60여 편의 시가, 평론, 수필 등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하였고 그 중 그의 대표적인 평론이자 초기의 작품인 ‘문학의 가치 (1910)’와 ‘문학이란 하오 (1916)’ 등이 있습니다. 이는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가 드러납니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이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는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게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광수의 논설은 항상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됩니다.
3. 김중식 교수님과 첫 수업을 한 소감은 이광수라는 작가의 생애를 기반으로 작품의 줄거리, 작품의 의의, 평가, 작가의 경향 등을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억지로 암기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과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강의를 복습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