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아주 옛날에 언저리만 몇 번 가보았다.
구례를 가면 화엄사를 자주 들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그곳에 사시는 분의 안내로 화엄사 계곡을 따라 노고단 가는 길 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고, 그 때문에 나는 그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지리산은 해발 1500미터 정도의 산인줄 알았다. 그 때문에 지리산의 높이에 관해, 이야기 중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는데,
-선생님, 아니에요. 지리산은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에요,
라는 소리를 듣고 직접 검색해 그때서야 지리산의 높이를 제대로 알았다. 그게 불과 2-3년 전이다. 나는 그저 놀라웠다. 경험의 한계라는 게 이런 것인가? 생각마저 했으니까.
그런 기억의 지리산을 가기로 했다. 심야 시외버스를 타고서.
동서울 터미널에서 자정쯤에 떠나는 산악회 버스를 타고 2016년 10월 말경에 설악산을 갔다. 수없이 많이 다녀본 산이지만 그때까지도 대청봉을 올라본 적이 없어서 감행한 일이었다. 차에서 몇 분간 잠이 들었었는지 모르지만 새벽 세시에 문을 여는 오색 등산로에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의 불 빛에 의지해,
너무 많은 인파에 밀려가며,
앞 사람 꽁무니만 따라 오르기를 4시간,
7시에 대청봉에 도착했고, 거기서 아침을 맞았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측은하다 싶을 만큼 핼쓱해 보인다.
그날은 날이 흐려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살아 생전 한번은 해봐야 할 일인것처럼 여겨지는 일을 해내, 좋은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는 심야 버스를 타고 산을 오르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유명한 산을 심야 버스를 타고 가보자는 제안을 지금까지 거절하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번엔 덥썩 제안을 받았다.
참고로 나는 산을 좋아하고, 일년 내내, 비 내리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주 산을 오르는 사람이다. 산을 오르는 모임이 있고, 그 모임의 대장이다. 나는, 걷기모임이자, 등반 모임인 모임을 하며 사람들이 나를 대장 이라고 부를 때, 내가 살아오면서 들은 많은 호칭 중에 가장 인상적인 호칭이어서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밤 동행과 집을 나섰다. 밤 10시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터미널이 너무 낡고 후져서 깜짝 놀랐다. 리모델링 같은 건 한적이 없어 보였다. 왜 이러나? 궁금했다. 색이라도 칠하던가....
10시 50분. 지리산 행 특별 벼스에 올랐다. 그리고 네시간 동안 잠이라곤 1분도 잘 수 없었다.
난, 그래도 밤이고, 늘 잠을 자던 시간이니까, 버스에서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나 바람은 이루저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루한 4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시는 이런 야간 산행을 하지 말아아쟈 생각했다. 2시 50분경 예정되었던 시간에 버스에서 내렸다. 5월 중순이니, 반팔 티에 얇은 바람막이, 여름철 등산바지를 입고 성삼재에 내리자 몸이 움찔할 만큼 싸늘한 기온에 꽤나 긴장했다. 몇 번인가 추운 날씨에 복장이어울리지 않는 산행을 하다 근육이 수축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어쨋든 어둠 속에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