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뉘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라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박두진, <박두진 동시집>, (예림당, 김병규 엮음,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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