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향의 「후남 언니」 평설 / 김학중, 강민숙
후남 언니
김선향 견디다 견딜 수는 없어 하루에 다섯 대까지 아편을 맞았다지 일본 군인들이 자신의 몸을 짓밟든 말든 자신의 영혼을 갈가리 찢든 말든 말문이 닫힌, 병든 검은 새는 아편만 찾았다지 쓸모가 없어진 그녀를 일본 군인들은 만주 벌판에 내다버렸다지 낮밤으로 들리던 그녀의 울음은 까마귀 울음과 닮았다지 풀이 보리순처럼 피어오르는 고향의 들판을 엄마가 지어준 검은 뉴똥치마 입은 소녀를 죽어가는 그녀는 떠올렸다지 철조망 너머 까마귀가 날아와 그녀를 파먹었다지 한겨울 만주 벌판의 밤 몇 조각 뼈만 빛났다지 돌아오지 못한 여자를 모질게 살아 돌아온 여자가 기억한다지 ―시집 『F등급 영화』 삶창, 2020 ........................................................................................................................................................ 이 시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기억은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공동의 기억을 증언으로 재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암시하는 부분이 시의 말미에 있다. “한겨울 만주 벌판의 밤/ 몇 조각 뼈만 빛 났다지// 돌아오지 못한 여자를/ 모질게 살아 돌아온 여자가 기억한다지”가 그것이다. 만주 관동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끌려온 소녀들은 몸과 영혼을 착취당했다. 그 고통을 맑은 정신으로 감내하기 힘들었기에 “아편”에만 의지했다. “자신의 영혼을 갈가리 찢든 말든/ 말문이 닫힌, 검은 새는 아편만 찾았다지”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녀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서 어떤 탈출구도 찾을 수 없었기에 “말문”을 닫고 자신을 포기한다. 일본 군인들은 이러한 소녀의 고통에 어떤 감응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망고집’―이 표현은 김정한의 미발표 소설 「잃어버린 산소」에서 등장한 표현이다. 남방군도에서 일본군은 위안소를 ‘망고집’으로 부른다. 망고나무 숲 근처에 위안소가 있어서 쓴 표현이지만 일본어에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단어와 발음이 같아 은어로 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망고집’은 일본군이 위안소 여성을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했음을 반증하는 증언적 표현이다. 이 부분은 하상일의 「식민지의 연속성 비판과 동아시아적 시각의 확장-김정한의 미발표작 「잃어버린 산소」와 일제 말의 ‘남양군도’를 참고했다. -에서 소녀를 만나 육체적으로만 취할 뿐이기에 그녀들의 고통과 고난의 말을 들을 귀가 없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검은 새”인 소녀는 “일본 군인”에 의해 몸과 영혼이 완전히 짓밟히고 훼손되어 결국 버려진다. 은폐되고 사라졌어야 할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우리 앞에 역사로 돌아온다. 그 역사는 증언의 역사이며 죽음을 넘어 현재에 도착한 목소리이다. 오늘날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신식민주의자들도 이러한 증언에 귀를 막고 이를 부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역사가 단순히 역사 엘리트들이 다룰 수 있는 기록이 아니라 현재적인 증언이며 생동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계간 《청색종이》 2023년 겨울호, 부분 발췌 ----------------------- 김학중 / 200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창세』 『바닥의 소리로 여기까지』, 청서년 시집 『포기를 모르는 잠수함』, 소시집 『바탕색은 점점 예뻐진다』.
2017년 9월 개봉한 영화 「귀향」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영화는 영화를 넘어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생생한 증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20만 명의 평균 나이가 16세의 소녀들이 대부분 이국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중 238명만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제작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후남 언니’도 일제치하에서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의 한명입니다. “병든 몸이 되어 / 하루에 다섯 대까지 아편을 맞”고도, “병든 검은 새는 아편만 찾”으며 고통으로 죽어갑니다. 그리고 “철조망 너머 까마귀 날아와 그녀를 파먹”고, “한겨울 만주벌판의 밤 / 몇 조각 뼈만 빛났다”고 합니다. 김 시인은 위안부 한 명의 생애만 쓰고자 한 것이고 아니고 어쩌면 20만명의 모두를 한명씩 이름을 불러주며 따뜻하게 품고 싶었을 겁니다. 헤진 영혼을 안고 살아 돌아온 이가 겨우 238명이라니 그러면 20만 여명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이 시는 우리의 처절한 역사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돌아오지 못한 여자를 / 모질게 살아 돌아온 여자만 기억할 뿐” 딴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역사 한 페이지를 돌아보는 것도 우리에게 큰 양분이 될 것 같습니다.
-------------------- 강민숙 / 1962년 전북 부안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 졸업.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채석강을 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