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 김기택
기어코 오고야 말았구나
삶과 시간이 낱낱이 새겨진 주름살을 이끌고
앳된 미소를 거칠게 우그러뜨린 표정을 덮어쓰고
비누와 향수도 단번에 삼켜버리는 제 구린내와 시취를 마시며
심장의 일용할 양식인 노심초사와 불안을 품고서
웃음과 농담 사이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와 덮치는 암과 교통사고를 피해서
친구와 지인의 죽음을 다 지나야 하는 여기까지
이빨 없는 잇몸으로 삭을 때까지 씹는 질긴 나물을 지나서
침 흘리며 쭈그리고 앉아 존경받는 경로석을 지나서
도둑이야 소리쳐 쫓아내고 보니 아들이었다 치매를 지나서
엉덩이 밑에 개가 깔려 있는지도 모르고 앉았다는 몸무게를 지나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물가물한 졸음을 지나서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벗었는지 입었는지 쌌는지 싸야 하는지 헷갈리는 순간들을 지나서
엄마보다 먼저 죽은 자식의 차디찬 얼굴이 각인된 손을 지나서
썩은 음식물 냄새를 맡고 눈과 귀로 몰려드는 파리들 모기들을 지나서
똥냄새와 밥냄새의 경계가 흐릿한 코를 지나서
똥오줌이 제멋대로 드나들어도 멍하니 벌어져있는 괄약근을 지나서
이미 죽었는데도 여전히 눈이 떠지고
밥알이 들어오는 아침과 저녁을 지나서
오고 싶어도 아무나 올 수 없다는 여기까지
<감상> 육체는 결국 '이빨 없는 잇몸', '똥오줌이 제멋대로 드나드는 벌어진 괄약근'으로 스러진다. '9988'도 좋지만, '정신'을 잘 건사해야 한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매일 밤, 작년과 재작년의 일기를 읽고 오늘의 일기를 쓴다'고 한다. '수행자'는 죽을 때 자신이 죽는 것을 알고 죽는다. 정신 차리고 죽는 게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다. (시인 김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