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하나로도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아침 햇살이 아직 덜 퍼진 시간, 나는 베란다 한켠에 놓인 물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해 전 처가에서 얻어온 어린 가지 하나가 이렇게 자라, 이제는 아파트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만큼 커졌다. 더 이상 둘 수 없어, 나는 조심스럽게 목을 잘라 작은 물병에 담아 새 삶을 준비시키려 했다.
그런데 그만, 길쭉한 잎 하나가 툭 부러지고 말았다. 식물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다시 떠올렸다.
잠시 후 아내가 다가와 말없이 그 잎을 들여다보더니, 어디선가 반창고를 하나 가져왔다. 그리고는 부러진 잎맥
한가운데를 살포시 이어 붙였다. 사람의 피부도 아닌, 나뭇잎 한 장에 붙인 반창고. 그 모습이 어딘지 우스워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눈을 떼기 어려웠다.
반창고(絆創膏)라는 말은 ‘묶을 반(絆), 상처 창(創), 연고 고(膏)’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라 한다. 상처를 묶고
보호하는 약. 단순한 물건이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를 아끼고 지키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1920년대, Johnson
& Johnson의 한 직원이던 Earle Dickson이 자주 다치는 아내를 위해 만든 것이 오늘날 반창고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도, 결국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다친 곳을 가만히 감싸주는 작은 손길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나무, 혹은 행운목이라 불리는 이 식물은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꽃을 피우면 좋은 일
이 생긴다고들 말한다. 예전에 안락동에 살 때, 이 나무가 꽃을 피웠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공기와 기분이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지금 우리 집 물나무는, 반창고를 붙인 채 물병 속에서 조용히 서 있다. 잎맥이 다시 이어질 리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흉하게 부러진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끝내 한 번 더 붙잡아 준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완전하지 않은 모습으로, 때로는 부러지고 금이 간 채로. 그러나
누군가가 건네는 작은 반창고 하나로 다시 하루를 버텨내고, 또 조금씩 자라난다.
언젠가 이 물나무가 다시 뿌리를 내리고, 긴 시간을 지나 꽃을 피우는 날이 온다면, 그 꽃은 단순한 식물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기록일 것이다. 다친 잎 하나에도 반창고를 붙여 주던 그 마음이, 결국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