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둠이 짓밟고 지나간 꽃밭이고, 태풍에 얻어맞은 창문이며, 피로 물든 손수건, 눈물짓는 나비, 깨지고 부서진 태양이다. 너는 눈물의 바다에 떨어지는 한 방울 눈물이며, 승리를 노래하는 웅장한 삼나무이고, 세상 사람들의 길을 비추는 햇빛이다”
프리다 칼로가 죽은 후 친구 카를로스 페이세가 보낸 편지에서...
프리다 칼로 만큼 자신의 예술작업에 있어 <자화상>에 할애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얘기를 듣고 그녀의 작품을 찾아 나선다면 마주치게 되는 대부분의 작품이 Self-Portrait, 자화상이다. 솔직히 유쾌한씨는 그녀의 작품에서 자화상을 제외하고는 바라보기 조차 힘겹다. 다른 작품은 끔찍하다 못해 처절하다. 유쾌한씨는 그런 그녀의 작품을 볼 자신이 없다. 그녀의 작품을 보기에는 유쾌한씨 자신이 너무나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편안한 그녀의 자화상을 주로 보게 된다. 근데 마음이 불편하면서 왜 보냐구? 위의 자화상을 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I paint self-portraits because I am so often alone. Because I am the subject I know best.”
- Frida Kahlo -
프리다 칼로의 작품 중 1/3이 넘는 수가 자화상이다. 자화상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주제에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그녀만큼 시간을, 열정을 쏟아 부은 예술가도 드물다. 그녀의 자화상을 보자. 유쾌한씨가 느끼는 감정은 남성성이다. 프리다 칼로는 그녀이지만, 그림 속에는 그가 있다. 세상을 삼킬 듯한 눈빛과 한 마리 나비를 연상시키는 눈썹, 이 눈썹은 나비라고 하기엔 너무 약하며 나방이라 하기엔 너무 사악하다. 독을 지닌 나비, 꼬옥 다문 작은 입술에 그것을 숨겨 놓은 것은 아닌지... 불그스레하게 그려진 양볼은 활활 타오는 화산, 그 밑에 수염은 이를 더욱 부채질 한다. 이를 보고 유쾌한씨는 프리다 칼로를 여성이라 부를 수 없다. 물론 남성이라고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그 경계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는데 [ Self-portrait with Monkey and parrot ]라는 작품은 라틴 아메리카 예술작품 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인 320만불에 팔렸다. (위에서 3번째 열 중 가운데 작품) 마돈나도 그녀의 작품을 소장한 열혈 팬이었다고 한다. 영화 <에비타>에 주인공역을 따내기 위해 앨런 파커 감독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던 마돈나. 마돈나는 왜 프리다 칼로를 좋아했을까. 힘, 힘을 느꼈을 것이다.
올해 59회를 맞는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작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다>이다. 이 영화가 제작되기 이전부터 많은 영화 제작자들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결국 신예 줄리 테이모어 감독의 손에 의해 영화화 됐지만 제작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몇 개 제작사가 제작을 추진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프리다 칼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더 얘기 하거나 덜 얘기 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프리다 칼로는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겪어 다리가 불편했지만 당당한 아이였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상당한 미인이었으며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였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최고 명문학교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그녀가 입학할 당시 2000여명의 신입생 중 여자는 고작 35명이었다. 하지만 신의 장난인가 프리다 칼로는 18세가 되던 해인 1925년에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했던 것이다. 심한 중상을 입은 그녀는 수차례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지만 자궁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수술로 복구할 수 있었지만 아이를 날 수 없는 여성의 순결성을 잃었다. 위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의 베스트 콜렉션에 속하는 명작도 아니고 완성된 예술품도 아니다. 스케치일 뿐이다. 하지만 유쾌한씨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만난 이 그림을 보고 한동안 멍해졌다. 이 그림은 그녀가 사고를 겪고 다음해에 노트에다 그린 그림이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알 수 없지만 이 그림에서 가득 슬픔이 베어 나온다.
“I paint my own reality. The only thing I konw is that I paint because I need to, and I paint whatever passes through my head without any consideration.”
“They thought I was a surrealist, but I wasn't. I never painted dreams. I painted my reality.”
- Frida Kahlo -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이 그림은 프리다 칼로의 [ The broken column, 1944 ] 이다. 유쾌한씨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좋아한다. 온 몸에 못이 박혀 있는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다. 얼굴에 못들 때문인지 다른 작품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을 얼굴에서 느낄 수는 없지만 머리를 풀어헤치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환하게 내비치는 그녀의 척추는... 그녀의 척추는 부서진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오니아 양식은 배흘림 기법으로 대표되는 도리스 양식에 이어 나온 기법으로 도리스 양식의 간소하고 힘찬 느낌에 비해 우아하고 섬세해 여성적이다. 파괴된 여성성이 프리다 칼로를 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위에 얹어진 그녀의 머리는 그저 담담할 뿐이다.
처절하고 비참하지만 담담한 표정의 프리다 칼로. 그녀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그녀와 마주하고 대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유쾌한씨는 그녀와 대화할 용기를 가지기 위해 오늘도 기다린다.
The last words in hers diary are a list of people she thanked, and the lines "I hope the leaving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