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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슬그머니 물러났다.
안개는 축축하고 고요했다.
햇살보다 먼저 찾아온 안개가 오랫동안 내려앉았고
이렇게 적막한 날에는 삶은 어김없이 긴 물음표를 남긴다.
'남들과 다르다는 어리석음~'
이제는
물음에 대한 막연한 것들은 정리가 되고 객관화될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저 하기 쉬운 말로 불쑥불쑥 중얼거리기나 할 뿐이니 ~
한국 방문 후 마음을 다잡지 못해
재작년 이만쯤 긴 글로 한 달여의 생활을 소개했던 Achigan을 다시 찾아 열흘을 머물렀다.
여러 가지 아쉬웠지만 재작년의 고생했던 경험이 있으니 조금 편안한 마음이고자 했던 바람은 얼마만큼 이룬 셈이어서 오두막을 빌려준 친구 잭이 고맙다.
되돌아오는 길
변한 모습이 까맣고 꺼칠하여도
광활한 들판은 깊고 파아란 하늘은 맑아서 더 높았다.
숲은 진한 녹색으로 물들어 두 눈이 편안했고
하루 이틀 차이를 두고 들판의 풀을 깎는지
어제 깎은 풀은 노란 띠를 이루고
오늘 깎은 풀은 부드러운 연두색을 띠어
아직 덜 깎은 곳은 투명할 만큼의 초록빛을 뽐내고 있으니
부드럽게 어울려진 조화로움이 어느 화가의 작품보다 빛났다.
잔잔히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이어서
어지럽히지 않은 자연아 귀하다.
이 들판의 조용하고 담백한 모습처럼 통념적인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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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
죽어 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 온
어버이는 술이 취해 뉘우치고
애비 없는 애기를 밴 처녀는
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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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 산 일번지 - 부분 발췌)
되돌아온 날 오늘 저녁
아내가 틀어놓은 티브에서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신경림 시인은
유일하게 몇 편의 시릃 암송할 수 있는 시인으로
교과서에 소개 되었던 시인을 제외한다면 처음으로 직접 시를 찾아서 읽었던 시인이었으며
고단했던 민중의 삶을 담았다는 70년 중후반의 시를 특히 좋아했다.
신경림 시인을 알게 된 까닭이 나의 첫사랑이었던 연유도 있다.
티브 뉴스속의 사람 좋아 보이는 유순한 모습의 시인을 애도하며
아랫글은 신경림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던 사연이 포함되었기에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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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비 뿌리더니 이웃집 정원의 끝 무렵 조금 남았던 라일락이 모두 졌다.
6월의 마지막이니 라일락도 이젠 시들 때가 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올해도 내 집 뜰의 라일락은 활짝 피질 못했고
초순경에 조금 피우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지고 말았다.
아내는 거름이 부족하고 해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작년과 올봄에도 고사한 두 그루를 솎아낸 뒤여서
두어 그루 남았는 나무의 꽃을 기대했지만 탐스럽게 피질 못했다.
보살피지 못한 나의 게으름과
화초를 못살게 구는 진딧물과 벌레들 탓만은 아닌
어쩌면 피고 지는 세상일을 따르는 섭리일지
이제는 기억 너머 흐릿하게 남아있는 옛 추억을 흘려보내라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단지 한그루 꽃이 지는 것에서
이제는 새로운 만남과 인연의 추억을 만들기보다는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이 편하고 익숙해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라일락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화초이기에
라일락이 져버린 6월을 보내는 아쉬움이 크다.
淑
1.
맑은 날 활짝 핀 꽃을 보는 것은 자연이 준 귀한 선물로
고운 빛깔의 자태와 바람결에 흩어지는 향기는 감미로워 행복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늦은 밤에 은은히 뿌려지는 향기 또한 아픔 있는 아름다움이다.
유월의 늦은 밤,
집 주위의 라일락 향이 그윽하여 앞뒤 뜰을 서성인다.
오래전 집을 짓고 서넛 그루 이식을 한 묘목이
올려볼 정도의 거목으로 성장하여 이렇게 물들이고 있다.
이맘때면 한창 철이니 퇴근길의 늦은 밤에 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너무 진한 듯해서 한 걸음 옮기면 그윽하기도 하고,
어쩌면 싸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향기는 이종 누이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오래전의 모습만 생각나는 누이는
제집 뜰에 핀 라일락의 향기를 푸른 기운이 도는 쌉쌀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2.
입학을 했으니 서울의 세 분 이모께 인사를 빠뜨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이모들께 차례로 인사차 들린 길에서 이종 누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모부는 이혼 후 나의 이모와 재혼을 했고,
누이는 이혼한 어머니와 시골에서 생활하다 나처럼 서울로 진학하게 되어
아버지 (나에게는 이모부) 집에서 생활하게 된 신입생.
단정한 모습에 사투리가 인상적인 누이는
자기 생일이 몇 개월 늦다며 오빠라고 나를 불렀다.
아릿한 이름 'O 숙'이다.
이모부 댁에서 가까운 회기동의 ㄱ 대학은 타교 학생들의 학생증 검사를 하지 않았기에
ㄱ 학교 도서관은 우리가 밤늦도록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고,
응용미술을 공부하는 누이를 따라 이천 도자기 공방을 같이 다니기도 했고,
젓가락이 없을 땐 물감이 묻은 붓 뒤쪽으로 라면을 같이 먹기도 하며
우리는 늦도록 함께 했었다.
당연히 양가에서는 걱정이 큰 근심으로 변했고,
학년 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상경하여 추궁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해 초,
나는 유신 정부의 ‘녹지계획’ 이라는 학생들을 솎아내는 생소한 정책에 따라
졸지에 전방으로 끌려가게 되어
양가에서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했지만,
지금 늦은 밤이야
대문간에 핀 라일락의 향이 진한데 묘한 느낌이네
늦은 밤의 향기는 푸르고 쌉쌀한 느낌으로 다가와
너무 진해서 혼자 맡기가 아까워
이 봉투에 한 아름 담아 보낼게
이런 잦은 편지는 결국
'저놈들 그대로 두어서는 큰일 나겠습니다'라는
이모부와 아버지의 근심을 더욱 깊게 했다.
3.
김화읍 신수리엔 아담한 저수지 한곳이 있다.
작은 개울은 백골 사단 사령부가 자리 잡은 산자락을 돌아 나와 위병 초소를 거치고
띄엄띄엄 놓여있는 시골집을 가로질러 저수지에 다다라서는
개천 주변을 갈대밭으로 우거지게 했고,
그해 가을엔 저수지 방죽 길 위로 코스모스를 지천으로 피어 올렸다.
이모부께서 면회를 왔다.
원치 않는 일이지만 예상했던 일이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모부께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함께 오신 이모 세 분께서는 서둘러 나의 손을 잡았고,
누이는 뒤쪽에서 얼굴을 잠깐 내밀기만 했다.
어색한 만남이고 난감한 시간이다.
이모부께서는 거듭 술잔을 건넸지만,
머릿속은 말갛게 비워져 오고 이러다 갑자기 취해 버릴 것 같아 양손을 힘껏 움켜쥐며,
영외로 나올 때 수없이 되뇌었던 생각을 떠올린다.
이모들까지 나서서 다짐을 받으려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이모부께서는 끝내 말없이 술잔을 건넸고 이모들도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무언의 압력이 몇 마디의 말보다 무겁다.
둘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듯 어른들은 자리를 비켜 주었고,
잽싸게 따라나선 누이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안타깝게 퍼져 나가고 있다.
어때?
.....
내년 초에 제대하는 거지?
....
집에서 많이 서둘러, 오빠 제대하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어쩌면 좋아?
....
제발 뭐라고 한마디 좀 해봐, 응!
....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진다.
이 조그마한 저수지 방죽 길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누이는 떠날 것이고,
나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어른들은 짐짓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고 또한 다짐을 받지도 않았는데
나는 '한마디'를 정녕하지 못하는가.
움켜쥔 손마디를 펼쳐 보여야 하는 안타까움이
싸한 소리를 내고 저릿한 아픔이 등줄기를 탄다.
늦은 오후 신수리의 하늘은 높기만 해서 그리도 푸르렀고,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 넘어,
방죽 길 위론 지천으로 늘어선 코스모스가 무시로 흔들렸다.
4.
제대 한 달 전 그해 겨울
이모부는 졸업이 채 몇 개월도 남지 않은 누이를 서둘러 결혼을 시켰고,
네 이놈, 집안 말아먹을 놈,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던 아버지의 노여움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5.
이종 남동생 (누이의 이복동생) 이 몇 년 만에 듣게 되는 누이의 소식을 전했다.
첫아이 출산 후 누나의 시력에 이상이 생겼는데,
둘째 아이 출산 후에는 명암을 겨우 가릴 정도로 악화되어 갓난아기와 아직 병원에 있다고 했다
형, 누나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은 병원에 가보아야 할 것 같은데
....
어떤 병인지,
치료법이 왜 없다는 말인지,
노여움 같은 뭉글거림은 입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
나는 병원 이름과 병실 번호를 되뇌기만 했다.
6.
이모부의 회갑 잔치라고 한다.
누님이 나의 눈치를 슬쩍 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 말이다.
긴 망설임 끝에 참석한 자리
번잡한 출입구 안쪽에 누이가 홀로 벽에 손을 기대고 서 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이전의 단정한 모습 그대로인데,
벽을 더듬으며 다가오는 누이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어머,
오빠
오빠가 왔네.
반가운 누이의 음성이 흔들렸다.
내민 두 손을 힘주어 움켜쥐었더니
초점 흐린 눈이 날 보려 애쓰는 듯하다.
응,
그래, 나 왔다.
겨우 한마디를 건네고는
딱딱해진 입술은 짧은 말이 뚝뚝 끊겨 목 안쪽의 통증이 아릿하게 아파 오는데
가만히 나의 뒤쪽에 바짝 붙었던 아내는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눈치다.
외가 친척들의 불편한 시선은 견딜 수 있지만,
아내와 누이에게는 못할 짓이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되돌아 나오는 길.
오랫동안 말없이 걸으며 아내는 나의 팔을 꼭 껴안았다.
아내는,
언젠가 간략하게 들려준 이종 누이의 이야기를 새삼 떠 올리며
이렇게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껴안은 팔에서 전해오는 아내의 감촉,
이 부드럽고 따스한 체온은 나에 대한 믿음이고 사랑이지 않은가.
오지 말아야 했다,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누이야,
가여운 누이야,
너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리석은 나는 무엇을 보려 했을까.
7.
새삼스러울 만큼 오늘 밤엔 라일락 향이 그윽하다.
저 꽃이 지면 이 진한 향기도 조만간 사그라질 테니,
푸른 기운의 쌉쌀한 느낌으로 되살아 나는 이종 누이의 생각도 멀어질 것이다.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누이는 책 두 권을 두고 갔다.
신경림 시인의 농무
박경리 적가의 시장과 전장.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고 샅샅이 살펴보기도 했지만,
남겨진 두 권의 책이 무얼 뜻하고자 했는지 나는 여태 알지 못한다.
이제는 그저,
두고 간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시인의 이름,
그 시인의 최근작인 시 한 편이
어쩌면 지금 그 아이가 생각나는 이 밤에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낙타' 전문)
첫댓글 그분의 詩 '목계장터' 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목계나루를 찾아가 보기도 했구요.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라는 싯귀가
가장 좋았는데... 가셨군요.
사람은 가도 시는 오래 남아있겠지요.
그랬군요
목계장터도 아마 시인의 초창기 시일듯 하지요
물 흐르는 듯한 서정이 일품이더만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고픈지 민중시라고도 하데요
89 세,세상을 떠나셨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달밤의 라일락은 위 묘사처럼
묘한 운치가 있습니다.
단편 소설이네요.
몇 번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또 좋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소로처럼 움막에서.
단풍님은 뭘 하셨을까나.
잘 읽었습니다.^^
저 한테는 전설속의 인물인데
따지고 보니 저랑 19년 차이가 나더군요
아고오~
그리고 좀 챙피해요
淑이를 너무 많이 울거 묵어서
단풍 니 너무 심하다. 엄청 울가 묵는다,라고 몇몇분이 댓글에서 그랬어요. 우헤헤헤~~~
@단풍들것네
여러 번 다,
제가 검색해서 읽었습니다.
처음 때는 제가 이 카페에
없었을 겁니다.
울궈 드신 게 아니란 말씀.
@지언 한 열흘 몬얻어 묵고 술만 진탕 마셔서 그렁가
양 무릎관절이 무척 아파 완전 깨라졌어요 ~~ 열도 욱씬욱씬 나고 무쟈게 아퍼요 ~ㅠㅠ 진통제만 먹고 있어유~
TV를 보다 자막을 통해서 신경림 시인 타계
소식을 접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단풍 님의 '淑'이란 글 읽고
눈물 흘렸던 생각이 납니다.
왜그리 슬프던지요.
감기몸살 좀 낫고 나면 찬찬히
또 읽어보렵니다.
이사 하셨다는 소식 보았습니다.
정리는 찬찬히 하더래도 건강 먼저 챙기셔야지요
이젠 해가 갈수록 몸의 상태가 눈에띄게 차이가 나는 연배들입니다.
@단풍들것네 이제 이사는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할 때까지 안 할랍니다.ㅎ
정리는 다 했는데
몸이 이제 그만 좀 쉬게해 달라고
데모를 하네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심더~!!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셨다는것만 알고 있습니다 .
시인은 떠나셨고 단풍님은 오랫만에 오셨습니다 .
단풍님의 오두막 생활이 (윌든)을 연상시킵니다 .
생각이 많으셨군요.
첫사랑 이야기는 예전에 읽었었기에
저는 라일락 꽃을 보면 단풍님 생각이 납니다 .
쌉싸름한 향기라 말하셨던가요 ?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 ㅎㅎ
반갑다니 저도 좋습니다.
근데요
오가 가고는 아니고 맨날 한곳에 있었어요. 여럿글에 댓글 다는게 부대끼고 내키지 않아 단지 모른척 했어요 ~ 우헤헤~
단풍님이 너무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무조건 반갑습니당
앞으로는 자주 오시면 좋겠어요
충성 우하하하하하
ㅎ
언제나 쾌할하신 태평성대님 고맙습니다.
저도 충성 우하하 ~
무엇보다,
단풍님 소식에 반가웠습니다.
내 개인적인 일로 중간에
스폰의 문자 알림이 까톡까톡 하다보니,
글을 읽다 말고 읽다 말고를... ^^
신경림 작가님이 돌아가신 것은 어제 알았습니다.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단풍님의 글과
신경림님의 글이 서로 얽혀서...
이제서야 ~
다시 읽었습니다.
자주자주 들리셔서
단풍님의 글 자주 보게 되었으면 합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까 걱정되네요.
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지요
자주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다녀오고 부터는 여러가지로 많이 심드렁해져서 조금 그렇습니다.
단풍님
첫사랑 애잔한 이야기와 라일락 향이 겹칩니다.
단풍님 글을 읽으며 절 첫사랑이라며 제게 결혼하자 졸라대던 순수했던 남자 지금은 세상을 떠났다는 사람 생각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인지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
그랬군요
모두애게 첫사랑은 애잔한 추억이지만
저 세상을 먼저 가신 분이라 더욱 그렇겠습니다.
근데요 제가 듣기에
남자들은 푼수처럼 첫사랑 첫사랑 ~ 연지곤지 듬뿍찍어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지만
여자들에게 첫사랑은 그냥 먼 이야기일뿐이라 카던데 맞는지 모리것어요 ~ 우헤헤
우왕 방가버라ㅎㅎ
선글라스 쓰시고 수염을 안 깎으시니 멋져 보여요.
카리스마, 라는 것을 고국에서 사가셨나요?
그게 보이네요. ^^
신경림 시인이 단풍님의 첫사랑과도 연결이 되는군요.
그 숙이씨 이야기는 매번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큰 시인이 떠나신 5월, 많은 이들이 서운해하네요.
모처럼 올리신 글 반갑고 감사합니다!
지저분하다며 욕 쳐백이로 들었는데
무신 카리스마는~
피부도 얼룩덜룩 몇군데 사정없이 벗겨졌다오~
맞아요
저에게도 개인적으로 무척 큰 시인 이었습니다. ~
아참 그리고 수필방 자리 많아요 제 옆자리도 비워있으니 오신다면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외출했다 돌아와서
단풍님의 글을 읽었는데 한 번 더
읽어야 제대로 이해가 되겠네요
다만 첫사랑 사촌누이와의(친사촌은 아니지요)
일들이 애절하게 다가오네요
라일락꽃의 고운 향기처럼..
단풍님 사진에 눈이 가요
멋지네요~
좀 쉬었다 다시 읽겠습니다
오잉~
어려운 내용이 항개도 없는데 두번을 읽는다구요 ?
모임 사진 보고서는
수필방에 미모의 젊은분 오셨다며 횐영일색이니 고마운 일입니다~~ 담에는 큼직한 인물사진 함 올려 주세요~~
반갑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고 5060카페 수필방 찾아오신 단풍님 어쩐지 요사이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하더니 단풍 님께서 오실려고 그랬나봐요.
갑자기 최명희 작가가 쓴 혼불에 강모와 강실이가 떠 올랐어요.
물론 강모와 강실이는 친사촌 였지만요.
깊은 속내를 진솔하게 드러내신 글을 보면서 참 잘 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시종일관 했어요.
단지 며칠 뜸했을 뿐인데
집나간 얼라 아닌데요~
혼불은 지금 태평양을 지나는 선편에 실려있습니다
한번쯤 읽고 싶어서 이번에 배로 부쳤습니다 ~ 다음달에는 도착 할것 같네요
가슴 절절한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네요.
누이가 지금도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계실까요?
치료가 잘 되어서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좋은소식이 기다려 집니다.
그분이 놓고간 신경림시인의 시집
그러니 어찌 신경림시인을 기리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단풍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심과
믿음을 보이신 사모님 훌륭하십니다.
회복 못하고 평생 세상을 뿌옇게만 보고 지내는 가여운 누이이지만
소식이나 왕래없이 그렇게 세월이 지나가고 았습니다. 그런데 기억은 아주 생생해요~
단풍이 그래서 신경림 시인을 알게 되었구요 ~
저는 '숙이'라는 그분의 이야기를
처음 접합니다.
단풍님의 덥수룩한 모습과 겹쳐
가슴이 옥죄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아... 그렇게 샘물처럼 이 시린 첫사랑
이야기가 신경림 시인과도 연결고리를 갖고 있네요.
이야기로 가슴은 아려왔지만
모처럼 오시니 반가운 마음이 커서
다 가려 졌습니다. ㅎㅎ
저는 시는 잘 몰라서 직접 사본 시집은 딱 한권, 이해인 수녀님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뿐입니다. 젊어서 샀는데 지금도 잘 가지고 다닙니다. ㅎ
심드렁함도 지우실 겸, 익숙한 자리
자주 오세요~
ㅎ 엄청 우라 묵어서 알만한 분들은 이제 식상타고 해요.
2주 안깎았는데 그나마 수염이 많은편이 아니라서 다행이구요
마음은 이전처럼 자주 다녔으면 하지만 저도 이제 칠순을 넘겼다며
어떤분이 슬쩍 눈치를 주길래 아차차~ 싶어서 자제하고 있습니다.
방가방가
오랜만에 소식 접하니 감사.
건강하고 별일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자주 뵙기로 하고 인사 드립니다.
그러게요 저 역시 반가워요 ~
긍금해서 찾아보았답니다.
여행방에 잠깐 보이시데요 ~~ 그래서 안심~
신경림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인데 아쉽습니다.
한 때 <갈대>를 좋아하여 암송하였는데,
이제는 암송도 못할 것 같습니다.
올려주신 신경림 시인의 <낙타> 감사합니다.
갈대 유명한 초창기 작품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낙타 시집이 마지막 시집인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