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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三角山(北漢山)과 山城에 대하여 ....
1. 산이름이 三角山인가? 北漢山인가?
- 고려사 서희전(徐熙傳) : 서희가 성종에게 아뢴 말 중 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고 한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삼국시대 이래 부아악이라고 불리어 오던 산명이 고려시대부터 삼각산으로 불리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확고히 자리를 차지한 듯...
-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북한지] [대동지지] 등의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
: 모두 한결같이 삼각산(三角山)으로 기록하였고,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三)개의 뿔(角)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지리서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화산(華山) 화악(華岳) 또는 중악(中岳)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는 삼각산의 별명으로서 삼각산이라는 본명과는 구별된다. 기록이나, 비봉(碑峰)의 진흥왕 순수비에 새겨진 '북한산주(北漢山州)'라고 새겨진 것 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 14년(BC.5)에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의 한산마을을 '북쪽 한산'이란 의미로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어 마을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즉, 북한산은 산이름 보다는 지명으로 쓰인것 같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으르렁대며 영토확장에 혈안이 되었을 당시에는 개차산, 열야산, 진악산, 삼년산, 마시산 등 '산'이 붙은 이른바 고을 이름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 '산'은 고구려계 땅이름이 달(達), 홀(忽), 골(骨) 등과 함께 고(高) 또는 성읍(城邑)을 뜻하는 땅이름의 접미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문헌을 눈여겨보면 산을 이야기할 때는 '삼각산'이라 하였고 한성부의 옛 고을 명칭을 이야기 할 때는 '북한산'이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왕조 시대에는 주로 삼각산으로 부르다가 일제시대 들어와서 주로 북한산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 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니 북한산은 217 건이 나오고 삼각산은 407건이 나온다.
[운학(雲鶴) 의견] * "北漢山"이라는 명칭은 신라시대에 사용된바 있으나 산이름이라기 보다는 마을이름으로 사용된 의미이고 "三角山"은 고려시대부터 불리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확고히 되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 사학자가 "북한산"으로 불러 현재까지 북한산으로 불리고 있다.
* 북한산국립공원은 남북한 8대 명산에 들어가는 도봉산까지 싸 잡아서 북한산으로 명명하며 삼각산과 도봉산 보다도 더큰 의미로 북한산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삼각산국립공원과 도봉산국립공원으로 분리하여 관리하여야 한다고 본다. * 삼각산에 산재되어 있는 고찰들을 보면 모두 삼각산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때 일제시대 이전에는 삼각산으로 불리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마을이름으로 불리던 "북한산"이 아닌 산이름인 "삼각산"으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2. 백운봉인가? 백운대인가?...또, 만경봉인가? 만경대인가?
- 북한지(北漢誌)의 산계(山溪)편 : "삼각산은 인수봉(仁壽峰), 백운봉(白雲峰), 만경봉(萬景峰)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서서 깎아 세운 듯한 세 뿔과 같다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인데, 일명 화산(華山) 또는 화악(華岳) 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운학(雲鶴) 의견] * 백운봉은 삼각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당시에는 백운봉 또는 백운대로 불리었으나 현재는 백운대로 불리고 있지만 대라는 의미는 봉보다 작은 의미이므로 봉으로 불림이 맞다고 본다.
* 백운봉 아래에 위문(衛門)이라 불리는 暗門이 있는데 원래 백운봉암문이었으나 일제시대에 위문으로 붙였다하여 근래에 산성중 유일하게 문패를 없앤 곳인데 이제 백운봉암문 명칭을 복원하여 문패 붙이기를 원하는 바이다.
3. 三角山의 山城과 城門은?
- 산성 : 백제 개루왕 5년(132년)에 고구려 남진정책에 대비하여 방어를 목적으로 시작한 토성이었는데 임진왜란(1592년), 병자호란(1636년) 이후 왕실의 이녕과 별궁으로 사용하고자 숙종37년(1711년) 부터 약3년여 걸쳐 높이 7m, 길이 8km 규모의 석성(石城)으로 증.개축한 것이다. (고려때는 중흥성(重興城)으로 불림)
- 성문 : 산성 내외부에는 현재 총 13개 성문이 남아 있으며 그중 암문(暗門)이 7개, 대문(大門)이 6개이며 암문은 가사당 암문, 부왕동 암문, 청수동 암문, 보국문, 용암봉 암문, 백운봉 암문, 시구문... 대문은 대동문, 대서문, 대남문, 북문, 중성문, 대성문이 있는데 이중 북문은 예로부터 대(大)자를 붙이지 않는 관습에 따라 그냥 북문이라고 함
*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는 산성을 쌓는 역사가 시작되고 삼군영(三軍營: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의 군사들이 상주했기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백제나 고려를 제외하더라도 3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인 것이다. 이제 국립공원 내의 환경보호를 위해 이 곳 마을은 폐쇄되고 주민들은 산성입구로 이주했다.
* 마을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승병이 강제 해산되자 사찰들의 폐사됐고, 1907년 이곳에 주둔하던 삼군영의 병사들이 일제에 의해 쫓겨나면서 더욱 피폐해졌다. 한 술 더 떠 의병의 근거지가 될 만한 건물은 모두 파괴하고 일본 헌병까지 이곳에 주둔하였다. 하늘도 무심해 1915년 홍수에 이어, 1925 년 을축년 대홍수까지 겹쳐 산성과 마을은 극도로 피폐해졌고 쓸 만한 건물은 남아나지 않았다. 6.25를 맞으면서 또 한 번 초토화되었다. 1.4후퇴 당시 중공군이 몰려오자 UN군은 방어라인을 수색, 연희고개, 녹번에 구축했는데, 텅 빈 산성에 인민군들이 진을 치자 연합군은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어 1,000 명이 넘는 인민군이 죽거나 부상당한 치열한 전투지역이기도 했다. 축성을 마친 후 조정에서는 이 산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고민하였다. 해결방법으로 절을 지어 승려를 머물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삼군영의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진국사, 봉성암, 원효암으로, 승려(승군) 360명과 삼군부 군사 1000여 명이 지키게 하였다. 여기 승군의 총대장을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이라 불렀고 전국 승려를 거느리는 역할을 맡겼다.
[운학(雲鶴) 의견] 성문은 외부 산성과 내부산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부산성은 의상봉(義湘峰)~용출봉(龍出峰)~ 용혈봉(龍穴峰)~증취봉(甑炊峰)~나월봉(羅月峰)~나한봉(羅漢峰)~문수봉(文殊峰)~ 만경봉(萬景峰)~백운봉(白雲峰)~염초봉(염초봉-원래는 靈鷲峰)~원효봉(元曉峰)으로 이어져 있고, 내부 산성은 北漢洞, 白雲洞, 靑水洞, 扶旺洞의 최후 방어진지로 白雲峰~龍出峰으로 이어져 있다.
외부산성에는 13개 성문이 있었으나 계곡에 있던 수문이 1925년 8월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되어 없어져 현재는 12성문만 남아 있는데 대서문, 가사당 암문, 부왕동 암문, 청수동 암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봉 암문, 백운봉 암문, 북문, 시구문이다.
내부산성에도 2개 성문이 있었으나 계곡에 있던 수문이 외부산성의 수문과 같이 유실되어 없어지고 현재 중성문(中城門)만 남아 있다. 중성문 옆에 소문이 하나 있으나 별도의 문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중성문의 부속문으로 보인다.
-- 2011.10.15 운학(雲鶴) --
※ 산성의 공식명칭 : 북한산성 - 국가지정 사적 제162호(1968.12.05 지정)
작년 12월에 첫종주를 한 후 올해 또 종주를~~ 산성입구 정자에서 바라보니 산성전체가 흑구름 속에... 마음이 조급.... 07:27 오후 3시이후에 비가 오면 좋겠는데~~
계곡에 수문이 없어진 곳... 현재 남아 있는 열두성문 종주를 여기서부터 시작을~~ 07:54
첫번째 성문 [대서문]...08:06 이른 아침이라 행인들이 보이지 않고...
전날 비가 와서 바위가 축축하여 미끄러워... 같이 간 친구가 꿈이 좋지 않다고 하여 더욱 안전에 신경쓰며 ...의상봉 정상 가까이 오르니 붉은 단풍이 반기고.... 08:35
義湘峰 08:54 여기까지 1시간 ...
두번째 성문 [가사당암문] 09:00 장삼가사를 입고 백운봉으로 날아볼까...
욜출봉에서 내려다본 국녕사... 대불 뒷모습이~
龍出峰 09:16
뒤로 돌아본 용출봉...화강암과 소나무 사이로 단풍이...안개는 휘휘 날으고...
龍穴峰 09:24
甑炊峰 09:31 증취봉 한자가 맞는지?..
세번째 성문 [부왕동암문] 09:39 저 문을 나가 내려가면 옛날 扶旺洞...
羅月峰 봉우리 가는 길을 막아 놓았네.
그다음 봉우리 羅漢峰은 팻말 미설치인지 못찾고...
성곽 위에 핀 구절초..청초함이 한잎 물어주고 싶네.
비는 오지 않아도 소나무 등껍질이 안개에 촉촉하게 젖고 가느다란 가지마다 이슬이 맺히는 날씨...
네번째 성문 [청수동암문] 10:25 靑水洞이 이 너머에 있었나보다..
文殊峰 의상능선에서는 가장 높은 곳..
오늘도 대남문에 단합대회 온 어느 기업사원들...
대남문 성문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나무틀로.. 성밖 안개가 짙어 가을은 더욱 깊어가고...
다섯번째 성문 [대남문] 10:36
보현봉으로 나가는 문...통제된 길이다.
만추의 길을 가는 친구...
여섯번째 성문 [대성문] 10:50
복원된 성곽이 안개사이로 꾸불꾸불 ~
보국문 가기전 단풍..올해는 단풍이 정말 예쁘네...
단풍시기를 제대로 맞춘 것인지...
일곱번째 성문 [보국문] 11:05 문패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덟번째 성문 [대동문] 11:16
용암문 직전 단풍이 .. .
아홉번째 성문 [용암문] 11:50
단풍이 천지...
露積峰옆을 지나 白雲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12:46
元曉峰과 염초봉(靈鷲峰)이...
열번째 성문 [백운동암문-위문] 12:56
白雲峰 올라가는 길..안개가 자욱... 백운봉에는 올라가지 않기로...
송추쪽으로 하산..
하산길도 단풍이...온통 단풍이야기~
大東寺 입구 문주로 들어가...
祥雲寺 千佛展을 지나...
열한번째 성문 [북문] 문루가 아직 복원되지 않았고...동서남북중 북쪽의 대문이지만 대(大)자를 붙이지 않는 곳...
元曉峰
원효봉에서 바라본 염초봉, 백운봉, 노적봉
열두번째 성문 [시구문] 원래는 서암문...
주욱 내려가...산성입구에 도착하니 14:35.... 총 6시간 40분 걸렸네요. 친구가 바위에 거부감이 많고 비까지 내려서 예상보다 40분이 더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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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글은 게으른 제가 종주해서 올린글이 아니고 저의 지인분께서 본인카페에 올려놓으신글을 제게 주셔서 올린글입니다^^
아항....저는 가셨다고....ㅋㅋㅋ 저 문 중에 하나 갔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조만간에 종주한다는데 끌려가게 생겼어요ㅋㅋㅋ.......저길 어떻게 다 도냐고요ㅠㅠ
속았네...나도 황상님이 다녀왔다는줄로..ㅋㅋ
요즘 황상님이 순례자의 길로 들어섰구만요.
ㅎㅎㅎ........저는 먹는 순례는 몰라도 저렇게 힘든 순례는 못해요ㅋ.........
12성문종주 하는데6시간40분 이면 축지법을 썼나보군요 우리친구들중에 산꾼 이라는친구들도 8시간은 족히 걸린다든데...
그렇군요.......저두 상당히 빡세다 느껴졌는데..........내일 함 물어봐야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