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Clayderman - Wild Flower(야생화)
[Richard Clayderman(리처드 클레이더만)]은 일찍부터 피아노를 만질 수 있었다. 피아노 선생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어린 나이일때 부터 피아노를 가르쳐서 훗날 그 아들이 성공을 이루는 기초를 다져 주었다. 6살때 그는 모국어인 불어보다 악보를 더 능숙하게 읽었다고 한다. 12세에 파리 국립 음악학교에 들어갔고 16세에 수석 졸업하며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놀랍게도 얼마후 클래식 음악 훈련과정에서 현대 음악으로 전환하게 된다. '나는 무엇인가 좀 다른 것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락 그룹을 만들었다. 그 때가 정말 힘들고 고달픈 기간이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악기 구입에 급급하였고 샌드위치 먹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17세 나이에 위궤양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그 아들을 경제적으로 뒷 바침해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반주자로 또는 세션 뮤지션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그 일이 참 즐거웠고 수입 또한 그 때로선 꽤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 지금의 내가 될수 있었던 탄탄한 기반이었음에도 그것을 떠나게된 것이다'. 그의 재능은 곧 눈에 띄어 연주 요청이 쇄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1976년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의 유명한 레코드 제작자이며 훗날 동업자가 된 [Paul de Senneville(폴 드 센느빌)]로 부터 였다. [Paul de Senneville]은 갓 태어난 딸 [Adeline(아드린느)]에게 바치는 발라드를 작곡해 그것을 녹음할 연주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23세의 [Philippe Pages(필리페 페이지: 본명)]는 다른 20명의 신청자와 함께 오디션을 치루었고 결국 그 일을 따내고는 그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그에게 반했다고 [Paul de Senneville]은 말한다.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그 부드러운 건반 터치는 참으로 매혹적이었고 잘 생긴 외모 또한 [Olivier Tousaint(올리비에 투세인트)]와 내 맘에도 들었다. 우리는 주저없이 그를 선택했다. [Philippe Pages]란 이름은 [Richard Clayderman]으로 바뀐다.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그의 증조 할머니의 성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의 싱글은 상승세를 타서 2천 2백만장이 38개국에서 팔려 나갔다. 그것은 바로 [Ballade pour Adeline] 이었다. '나는 그와 계약하면서 우리가 만장만 팔 수 있어도 만족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디스코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발라드가 승산이 있으리란 기대를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대 히트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 [Olivier Tousaint]는 말한다.
들에 피는 야생화(野生花)가 아닙니다.
밤에 만 피는 야생화(夜生花)도 아니고요,
夜生花는 밤에 도 피어 있는 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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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호 님습니다 감사드리며
맑고 고운 피아노 멜로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
언제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