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섦
익숙하지만 낯선 것,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이 모순적인 말을 이해하기가 처음엔 어려웠다. 일단 내 주변에서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탐색해 보았다. 그러다 내 발을 보게 되었고, 내 발에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어쩌다 사람들이 신발을 신게 되었지?, 처음엔 모두가 맨발이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신발을 신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고 첫 번째 이유로는 당연히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로는 자신의 멋을 위해 꾸미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통해 내가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어 또 익숙해져 버렸다. 여기서 익숙한 것과 낯섦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발에서 시선을 옮겨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곧 주황색으로 물들 것 같은 옅은 푸른색과 희미한 구름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밝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곧 저녁이 되는구나’, ‘ 한 5시 반 정도 됐으려나’ 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7시를 살짝 넘긴 시간이었다. 그제야 나는 지금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태어나고 몇십 번의 계절을 넘겨왔으나 이렇게 하늘을 보며 이를 체감할 때마다 매번 낯설다. 계절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내가 한 계절의 시간만큼을 보내왔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날들을 내가 어떻게 보내왔고, 발전된 내가 보이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대부분은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이고, 후회스러운 날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생각 속에 자책할 때도 있지만 내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파악하고자 하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하지만 내가 잘해온 점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점을 찾아 나를 칭찬하기도 한다. 또한 다음 계절을 맞이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화된 나의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계절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의 이런 생각들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당연하게 살아오다가 시간이 이만큼 지나갔음을 느꼈을 때, 문득 하는 생각이라 더욱 낯섦을 느끼는 데 아닌가 싶다. 이렇게 환절기가 올 때마다 내가 그라데이션 위에 서 있는 듯하다. 겨울이 파란색이고 여름이 빨간색이라면,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가는 길들이 있는데 내가 마치 보라색에 서 있는 듯하다. 이는 과거의 부족했던 내가 더욱 발전된 나로 거듭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나로 해석을 했다.
하늘을 보다 보니 비행기가 떠올랐다. 비행기를 통해 이어지는 생각이 여행이었다. 요즘 코로나19로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해 자꾸 여행에 대한 욕구가 샘솟는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끝나게 되면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머릿속에 막 나열해 본다. ‘일본 나라 교토, 스페인 바르셀로나, 동남아,,,‘ 그러다가 문득 ‘여행’이라는 자체에 생각의 전환을 해보았다. 내가 지금 당연하게 살아왔던 일상도 어찌 보면 여행이지 않을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을 것이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은 없을 테니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 것조차 여행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낯선 삶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학교 안에서 땀 뻘뻘 흘리며 걸어서 다녔다면 전동킥보드를 타며 바람들을 만끽한다거나, 항상 사서 먹었던 밥을 서투르지만 집에서 요리해 먹는 방법을 통해 일상에 변화를 주며 소소한 낯섦을 느꼈다. 지금 이 시국에 어디로든 떠나가는 여행은 실현할 순 없지만, 이렇게 나의 마인드를 살짝 바꿔보면 어느 정도 해소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이런 신선한 주제를 통해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깊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있어서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었고, 생각의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인듯하다.
첫댓글 "내가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게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일 수 있겠지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신발을 신는 건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순간 아주 많은 것들이 뒤죽박죽되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면, 우리가 신발을 신고, 옷을 입으며, 무리를 지어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의 문화라는 것을 만들고 향유하면서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심사숙고할 수 있게 됩니다. 비행기, 코로나, 여행지... 그라디에이션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질문은 이렇게 미미하게 시작해서 우리 삶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