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부복(俯伏)하는 마음 전직 대통령 부인 재판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의아하고 실망스럽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보고 들은 게 다 거짓이거나 심하게 부풀려진 걸까? 판사 말대로 검사의 기소가 잘못됐고 증거가 불충분해서 그렇게 판결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같지 않은 걸까? 대통령 파면 판결문을 들을 때는 물 흐르듯 잘 따라갔었던 걸 보면 법 지식은 부족해도 비상식적인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그가 사치를 좋아하고 공인이 지녀야 할 품격에 대해 무지해서 그랬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치와 무지가 그렇게 큰 죄는 아니니까. 그런데 개인의 죄보다는 그 부부를 둘러싼 이들의 죄가 더 큰 거 같다. 그들이 그런 줄 알면서 선택하고, 2-3년 동안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땅을 파서 비밀 통로를 만들고 불법으로 골프 연습장을 짓고 그걸 또 나무로 가리고 거기에 계엄을 모의 공모한 죄다. 어처구니가 없게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고, 지금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순교자라도 된 거처럼 생각하는 거 같다. 보이지 않고, 맞서기 두려운 거대한 사회적 죄스러움을 느낀다.
그건 오늘날만이 아니라 옛날에도 그랬고, 하느님이 뽑은 사람도 그랬다. 이스라엘의 성웅 다윗 임금도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서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부하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가졌다. 성경은 그것을 감추거나 변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도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원죄에 물든다는 교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이 죄스러운 건 당연하다. 하느님이 사람이 돼서 들어오신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다. 시메온 예언자 말대로 그분은 태어나실 때부터 이미 사람들에게 반대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다.(루카 2,34) 그분이 십자가 형벌을 받은 건 그분, 원죄에 물들지 않은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아들이 겪지 않을 수 없는 의인의 운명이었을 거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첫 번째 느낌은 죄스러움이고, 그 반응은 부복(俯伏), 즉 땅에 엎드림이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하며 하느님을 부르고 곧바로 죄스러움 고백한다. 그 고백은 내가 나쁘거나 사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여건만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죄로 떨어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고 인정함이다. 제대와 십자고상 앞에서 깊은 절을 하고, 부복하는 마음이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가져야 할 마음 자세다. 하늘나라는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이 씨를 뿌리고 하느님이 자라게 하고 하느님이 수확하신다. 어두운 땅속에서 씨앗이 발아하고 밤에 자고 낮에 보면 어느새 자라있는 곡식처럼 죄스러운 우리는 신성한 하늘나라에 아무것도 할 게 없고 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건설한다는 기도 말은 하늘나라 계명을 따르라는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이 죄스러운 세상에서 탈출하고, 여건만 만들어지면 그 즉시 죄로 떨어지고야 마는 이 나약한 육체에서 해방되는 그날까지 하느님 앞에서, 십자고상 앞에서, 성체 앞에서 부복하며 지극히 겸손하게 지내야 한다.
예수님, 성인들이 왜 마음에서 세상을 버렸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저 바람뿐입니다. 주님의 자비와 용서가 없으면 제겐 희망이 없습니다. 오늘도 섭리하시는 주님 손에 이 죄인을 맡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시끄러운 세상을 더 시끄럽게 하지 않게 예 또는 아니오만 말하며 살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