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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8장 31-39절
(2) 이 단락의 진짜 의미를 찾기 위한 고된 여정!
4) 최종적인 해석 - 은혜로 깨달은 이 단락의 참 의미!
● 이 견해에 대한 반론과 그에 대한 답변
이 단락에서 바울이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말한 이유는 구원받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환난 중에도 인내하는 성도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도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긍정적으로 독려하고 권면하기 위해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현재 잘하고 있어도 일부는 훗날 배교하거나 타락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이지요! 그래서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이 모두 타락하거나 배교하지 않고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 확실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칼빈의 주장이 옳은 것 아니냐?"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반론에 대해 답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설명을 잘 들으십시오. 그러면 반론에 대한 답을 얻을 뿐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 칼빈의 5대 교리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바울이 이 단락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정상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고, 고난 중에 인내할 뿐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음 구절의 "우리"가 누구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주석가들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우리"가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 전체를 뜻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 중 구원받고 정상적으로 신앙생활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택함받은 성도들만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제 말을 듣고 많은 분들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바울이 '우리'라고 했으면 당연히 로마서의 발신자와 수신자인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이지, 어떻게 그 성도들 중에서 택함받은 자들만 뜻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강하게 반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안에 "우리"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대신 "그들"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특정한 대상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과 구원계획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입니다. 즉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은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모든 참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사실입니다. 그 후, 31절에 비로소 "우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바울은 29-30절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진술했고, 31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이라는 말로 그 객관적인 사실을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누구겠습니까? 29-30절과 일치하는 사람들이지요. 즉, 미리 아시고 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교회 성도들 전체가 아니라 그들 중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한 자들만을 뜻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구절도 그것을 확실히 뒷받침합니다.
로마서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그러므로 바울이 이 단락에서 택함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37절의 "우리"는 바울과 로마교회 성도들 전체가 아니라 그들 중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로마교회 성도들이 모두 선택받은자들일까요? 아니지요!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가라지도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나 곡식뿐 아니라 가라지 같은 교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전교인이 다 택함받은 자일 수는 없습니다.
또 생각해보십시오. 로마교회 성도들이 다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일까요? 물론 그 시대엔 박해가 심했고, 지금처럼 쭉정이가 약 80%나 되는 시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참 신자의 비율이 높고 명목상의 신자가 외식하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을 것입니다. 그렇긴 해도 분명히 명목상의 신자나 외식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추론이지요!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우리"에는 택함받은 자 외에 그런 자들이 포함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은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요 10:16)라고 하셨고,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예정된 사람들에게 사역의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은 예정된 사람들을 구원하고, 그들 중 하나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고 보존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9장과 11장에서 예정에 대해 자세히 쓴 바울이 이것을 몰랐을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지만, 로마교회 성도 전체가 아니라 그중 선택받은 자들을 생각하며 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의 목표도 로마교회 성도 전체가 아니라 택함받은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당연하고,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실이 심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이 단락에서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한 이유는 구원받고,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환난 중에도 인내하는 성도들을 상대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도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긍정적으로 독려하고 권면하기 위해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현재 잘하고 있어도 선택받지 않은 사람은 훗날 배교하거나 타락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지요! 그런데도 바울은 현재 상태에 근거해서 그들의 궁극적인 구원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선택받은 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왜 많은 이들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이 단락에 그토록 강한 확신이 나타나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35-39절은궁극적인 구원의 확실성을 말하고 있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칼빈뿐 아니라 예지예정의 관점에서도 선택된 자들은 버림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견해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칼빈의 경우 절대주권에 의한 선택 때문에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지만, 예지예정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끝까지 올바로 반응할 것이라서 버림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받은 자가 모두 선택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 중에도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선택된 자보다 더 큰 집단입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하고 단지 구원받은 자들은 배교하거나 타락하여 버림받을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지예정에 의하면 그것이 그들이 택함받지 못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로 버림받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로마서 9장을 통해 예정의 원리를 오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선택받은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둘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선택받지 않은 자들 중에도 구원받는 사람이 있고 결국 배교하거나 타락하여 버림받습니다. 만약 이것을 입증하면 칼빈의 5대 교리 전체가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에게 입증해드리고자 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로마서 8장 32절과 37절에 근거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타락하거나 배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고 은혜로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 안전하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타락하거나 배교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요?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사람이 배교나 타락으로 버림받을 수 있다면, 선택받은 자와 구원받은 자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그 결과 절대주권에 의한 선택을 비롯해 칼빈의 5대 교리 전체가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구원받은 자가 타락하거나 배교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있지요. 그 결정적인 증거가 예수님이 말씀한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믿다가"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이 사람은 믿고 구원받은 자인데, 시련을 당할 때 배반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배교하여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배교에 의한 멸망을 경고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히브리서에 나와 있는 두 가지만 다루겠습니다.
히브리서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물론 칼빈주의자들은 이들이 명목상의 신자라고 줄기차게 우겨댑니다. 그러나 "다시 ...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가짜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당연히 참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가짜 회개를 해야 하는데 회개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때문에 이 구절의 "회개"는 당연히 참된 회개입니다. 그런데 "다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한 회개도 참 회개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진짜 구원받은 자들임이 분명합니다!
또한,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이라는 말에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앞에서 열거한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은 다시 회개할 수 없고 다른 이들은 회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일종의 자격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그 경험들이 거짓된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자격 혹은 조건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들은 참 회개를 한 자들이고 진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타락했고 버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여기서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나오는 "아는"은 헬라어로 "에피그노시스"로 "지식, 인식"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목회서신에서 '에피그노시스 테스 알레데이아'("진리를 아는 데", 즉 진리에 대한 지식)(참조: Dibelius)라는 문구는 거의 항상 그리스도교 신앙으로의 개종을 설명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2) 딤후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3) 딤후 3: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4) 딛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5) 히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참조: W. Hackenberg)"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역시 진짜 구원받은 것을 뜻합니다. 또, 히브리서 6장에 나온 "다시"라는 단어가 이곳에도 나옵니다. 또한,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거룩하게 할 수 있는"이 아니라 "거룩하게 한"(하기아조-동직설 과거 수동 3인 단수)이라고 했습니다. 시제가 과거이므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타락하거나 배교하면 버림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배교에 의한 멸망을 경고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 구원받은 사람이 배교나 타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꾸어 말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배교하거나 타락하여 버림받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또, 이것은 구원받은 자와 선택받은 자가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선택된 자들은 결과적으로 한 사람도 버림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칼빈의 교리가 예정부터 견인의 교리까지 송두리째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31-39절은 결코 칼빈의 견인 교리의 근거가 아닙니다.
끝으로, 구원받은 자들뿐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도 버림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사도로 선택받은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또, 바울은 선택받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6장과 8장과 11장에서 버림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에게도 버림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버림받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 위험성을 알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사명을 감당하려고 힘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칼빈과 저의 견해의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물론 칼빈뿐 아니라 우리도 선택받은 자들은 버림받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그 점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예정하셨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고 보지만, 우리는 예지예정이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고 봅니다. 바꾸어 말해서, 바울처럼 버림받을 수 있는 위험을 알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사명을 감당하려고 힘쓰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고 봅니다.
제 말을 이해하려면, 예지예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성취 가능한 계획을 세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도덕적인 질서와 공의의 원칙 그리고 자신의 통치원리와 성품에 위배되지 않는 성취 가능한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거짓말하실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성품을 부인하는 그런 일들을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 6:18, 딤후 2:13). 그래서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임의로 택한 것이 아니라 예지예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뿐 아니라 끝까지 반응할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회개나 믿음 혹은 믿음에 따르는 순종이 은혜로 받는 구원과 모순되지 않듯이, 은혜로 되는 택하심과 조금도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지예정입니다!
그런데 예지예정은 선택받은 자를 포함해서 누구에게나 버림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에 바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택함받았기 때문에 타락하거나 배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끝까지 바르게 반응할 것이라서 택함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으나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버림받는 이유 역시 하나님의 유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끝까지 바르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자의 사명은 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버림받을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여, 선택은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예지예정에 의한 것이므로 택함받는 자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설교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의 선지자들을 비롯해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모두 구원받은 자도 버림받을 수 있다고 외쳤고,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저와 여러분 차례입니다.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