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부여, 사, 진, 해, 협, 목, 국, 백씨 등 백제 8대성이 백제의 최고 지배층이라고 역사서에 적혀있다. 그런데 중국 낙양의 고 미술가에서 백제와 관련된 주요 유물 한 점이 발견되었다. 비의 주인공은 예식진.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백제 웅진 출신의 최고 직위인 좌평을 지낸 백제의 유력가문 출신이다. 묘비에는 대당좌위위대장군, 백제웅천인, 좌평 집안이라는 예식진에 대해 알려주는 몇 가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예식진과 예식. 이 둘은 가문 출신지 직위 활동기간 등이 동일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일치한다. 약간씩 다른 이름은 단지 표기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사실이 사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예식진은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과 함께 있었던 웅진의 예식 장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최고귀족층이면서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흑치상지는 백제 패망 후 당에 들어와 예식진과 비슷한 좌위위대장군을 지낸 당나라 명장이다. 그의 묘지명에도 증조부부터 집안 내력이 적혀있다. 그런데 예식진 묘지명의 경우 그의 조부부터 시작했다. 그것은 예씨 집안이 조부 예다 때부터 중앙관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예식진은 백제에서 웅진성의 예씨 집안 고위 장군 출신이었지만, 당나라의 무장으로 출세하게 된다.
예인수의 묘지명에는 "선조의 어진 덕을 본받은 예식진은 당이 동쪽을 토벌할 때 명을 받아 그 왕을 끌고 고종황제에 귀의하게 되니, 좌위위대장군으로 내원부 개국공의 훈작을 받았다"고 적혀있다. 부하인 예식이 왕을 잡아서 투항했다는 의미이다. 부하의 쿠데타, 즉 하극상인 것이다. 예식진 묘지명에 나타나 있는 이 내용은 백제 멸망과 관련해 격동의 시대 민첩하게 주군을 바꾸는 예식진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의 항복 때문이 아니라 신하들의 배신에 의한 것이었다.
<구당서> '소정방 열전'에는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당시 백제의 장군이었던 예식이 의자왕을 데리고 와서 항복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소정방은 660년 11월6일 뤄양에서 당 고종에게 의자왕을 포로로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 예씨 가문이 서기 410년에서 420년 사이 중국 산둥반도에서 웅진(공주)으로 건너온 중국계 백제인 집단임도 밝혀졌다. 예식진의 형 예군의 묘지명에도 "선조는 중화와 조상을 같이한다"고나와 있어 예씨 가문이 중국 이주민임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