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은 1396년(태조5년)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보(補),초명은 호(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이었다. 부인은 정역의 딸 예 성부부인으로 그녀와 슬하에 6남 1녀, 측실에게서 1남 1녀를 두었다. 효령은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한 때 자신이 세자 자리를 넘겨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에 책봉되자 머리를 깎고 입산출가하였다. 그는 1407년(태종8년)에 효령군에 봉해졌고 1412년에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었다. 이 후 출가한 뒤에는 불도에 전념하여 1435년 회암사 중수를 건의하였으며 원각사 조성도감도제조로 활 동하기도 했다. 1465년엔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언해하고 그 해 '원각경'을 수교하기도 했다. 그는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여섯 왕을 거치며 91세까지 살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여섯 왕의 연고존친으로서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았으나 불교를 숭상하고 선 가에 적을 두면서 많은 불사를 주관하였기 때문에 유생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왕들의 보 호 아래 꾸준히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시호는 정효이다. 그의 조부인 태조이성계의 원찰 회암사에서 사리친견법회를 열었을때 사리가 방광하자 사람들은 효령대군의 기도 원력에의한것이라 평했고, 그의 형 양녕대군이 방탕하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아 사람들이 충고하자 양녕대군이 한말로도 그의 성품과 행을 알수있다."살아서는 임금의 형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인데 누가나르뭐라고 할것인가?"효령대군은 그 당시 생불로 추앙받던 사람이다.그러나 그런 그도 역사의 거센파도를 피해갈수없는 한사람의 인간이었다. 유년시절 태종 이방원이 두차례에 걸쳐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를 도륙한 참상을 목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형 양녕대군의 폐위,조카 문종의 요절,조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단종폐위 사사 또 다른 조카인 안평대군 금성대군의 죽음,세조의 장자인 세자(후에덕종으로추증)의 요절과 예종의 즉위 예종의 갑작스런 죽음,예종의 아들이아닌 예종의 조카 그것도 둘째조카 성종의 즉위를 그는모두 지켜보아야했다.또 그의 사후 얼마되지않아 그 자신과 할아버지 태조이성계의 원찰이었던 회암사는 유림세력의 끊임없는 도발에 마침내 무너져 폐사되었다. 회암사를 꾿꾿이지켜오던 버팀목도 결국은 효령대군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