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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들의 박수와 함께 등장)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 서서 얘기해볼 기회가 없어서 많이 긴장되고 떨리기도 하는데… 잘 해봐야죠. 교육원에서 저에게 오늘 강의에 대해, 크게 '체험적 작가론'을 다루는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었습니다. 저는 작품을 구상할 때 작품의 주제, 의미는 그렇게 크게 생각을 안 하는 편입니다. 제가 신인 작가였을 때는 내가 쓰는 드라마를 통해 어떤 주제와 의미를 전달할까에 대해 굉장히 많이 천착했던 것 같은데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재미있게 쓰고, 말이 되는 드라마를 하면 그 작품의 주제와 의미는 시청자들이 알아서 새길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작가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강의할 게 아니라, 제가 방송일을 시작한 지 13년 정도 됐는데 지난 시간동안의 제 경험을 아주 편하게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릴 테니까, 저의 작가론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서 새겨들으시길 바랍니다. 또 그렇게 하실 거라고 믿고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93년도에 MBC 베스트공모를 통해 방송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게 제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특별한 재주도 없었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이십대 10년을 거의 백수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군 복무기간 2년 빼고, 1년 6개월 동안 반월, 인천지역의 작은 공장들에서 일한 기억을 빼면 나머지는 그냥 백수로 지냈습니다. 막연히 백수였던 것은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제가 갖고 있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아주 막연하게나마 '나는 크면 글 쓰는 일을 하며 살 것이다.'라는 생각은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게 드라마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고, 이십대 내내 제 바람이 있었다면 좋은 소설을 한편 쓰는 게 꿈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늘 무엇을 쓸 것인가만 고민하다가 소설을 한편도 못쓰고 이십대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나이 서른을 맞으면서, 서른이 된다는 의미가 저한테는 굉장히 복합 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이뤄놓은 게 없고, 특별한 재주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먹고 사는 일부터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방송을 보다가 베스트공모 광고를 보게 됐고 극본을 한 번 써봤습니다. 그게 제 인생에 처음 써본 대본이었는데, 소 뒷발에 쥐 잡는다고, 덜컥 공모에 당선이 됐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면 드라마 공부하는 분들 중에 속상해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 대신 그렇게 공모에 당선되고 나서 꽤 힘든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공모로 한 해에 뽑는 작가들이 방송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 당시 MBC에서 뽑은 작가들이 7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선되고 나서 다른 당선자들을 만나보니까 대개는 교육원을 통해서 오랫동안 드라마공부를 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공모에 당선된 작가들한테 방송국에서 월 50만원이 채 안 되는 아주 적은 돈을 주고 1년 동안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때는 작가 1명한테 연출자 1명을 연결해서 붙여주고, 의사소통 하게 하고, 작품을 유도해서 작품이 좋으면 직접 방송할 수 있도록 했었는데, 저는 그 1년을 굉장히 힘들게 보냈습니다. 한 달에 한편씩 작품을 써내기를 요구했는데, 저는 1년 동안 한편밖에 못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쓴 글이… 제목도 '어둠의 저편'인가 (웃음), 탄광촌을 소재로 다룬 거였는데 그걸 냈더니, 보통은 PD들이 다들 돌아가면서 읽어주길 바라 고 쓰는 글인데, 제 기억에는 아마 제목만 보고 아무도 안 읽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누구 한명이 읽었는지 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충고처럼 얘기해주기를 '글이 너무 어둡다. 그리고 너무 무겁다.'라는 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방송 동네에서 글이 무겁고 어둡다는 말은 '너 글 못쓴다.'는 말의 아주 완곡한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저는 공모에 당선된 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 생각하고, 제 나름대로는 꽤 열심히 매달렸는데 결과는 그랬고, 1년 전에 부풀고 기대에 찼던 상황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당시 방송국에선 그 7명 중에 2명을 다시 재계약 했습니다. 월 50만원의 돈을 조금 높이고 '너는 MBC가 이제 지켜볼 작가다.'라는 걸 인정해주는 거였죠. 나머지는 원점으로 돌아가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물론 1년 동안 숙제도 제대로 못 냈던 저는 당연히 제외 대상이었죠. 암담했지요. 이젠 또 뭘 먹고 사나, 내가 드라마를 계속 해야 되나 그런 기로에 서있을 때 어떤 연출자로부터 '드라마 한편을 준비하는데 좀 도와주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메디컬드라마를 준비하는데 그걸 쓰기로 한 작가들이 무척 바빠서 드라마 준비가 제대로 안 되고 있으니까, 저보고 메디컬드라마를 전제로 한 기획안을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아주 고심을 해가면서 만들어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한테만 부탁을 한 게 아니라, 저하고 비슷한 상황의 아주 여러 명한테 부탁을 해서(웃음) 기획안을 받았던 모양인데, 어쨌든 제가 고민했던 기획안이 맘에 들었는지 저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부탁을 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가 제작되고 방송되려면 앞으로 6개월 남은 시점이었는데 병원상황에 대한 취재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니가 날 도와주고, 나중에 방송이 잘되면 한 달에 한편정도는 너에게 쓸 기회를 주겠다.'는 얘기를 철석같이 믿고 다음날부터 바로 병원에 들어가서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방송 현실을 좀 알고 나니까 그 연출자의 약속은 별로 신뢰가 안 가는 얘기였습니다. 그 방송이 잘 나가면 왜 저같이 아무 경험도 없는 작가에게 기회가 돌아오겠어요. 그러나 그 때는 그 말을 굉장히 믿고, 지금의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들어가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병원에 취재 갔을 때 병원에서는 굉장히 경계를 했습니다. 원래 의사집단이 방송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인 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방송에서는 뭔가 부정적인 면만 노출하고 보도했기 때문에, 제가 드라마 때문에 취재를 한다고 하니까 탐탁지 않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아서, 레지던트를 총괄하는 어떤 의사 한 분이 '그 동안 제대로 모르면서 잘못된 시선, 선입견들로 의사세계를 제대로 못 다뤘으니, 니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두 달 동안 병원의 전 과를 일주일 정도씩 돌 수 있도록 굉장히 치밀한 스케줄을 짜주었고, 병원 전체에 적극 협조하라는 지시를 내려주었습니다. 첫날 흉부외과 수술실에서, 가슴이 열리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병원 취재를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아주 열심히 취재를 했고 방송이 아 주 임박해진 시점에, 그 드라마를 집필하기로 했던 작가들에게 사정이 생겨서 작품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준비하다 보면 이런 일이 다반사이긴 한데, 이것이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병원상황에 대한 아주 깊은 이해가 없이는 제아무리 능력이 좋은 작가라 하더라도 쓸 수가 없는 전문직 드라마여서, 기획 자체를 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연출자도 신인에 가까운 분이었고 이 작품이 큰 기회였는데 이렇게 엎어지면 안 되니까, 저보고 대본을 한번 써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웃음) 도저히 믿지 못할 놈한테 자신의 일을 맡겨야 하는 절박한 그 표정…(웃음) 그런데 그건 그 사람 심정이고, 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기 때문에 열심히 대본을 써서 그 대본을 의사들한테 보여줬습니다.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굉장히 재밌다며, 너무나 생생한 병원 현실을 절감한다구요. 저도 흥분을 했죠. 원고를 들고 방송국으로 가서 연출자, 책임 프로듀서, 조연출들에게 복사한 원고를 나눠주고 그걸 읽는 동안 옆에서 표정을 지켜봤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 있을 겁니다. 자기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처음 읽을 때 그 표정을 지켜본 경 험. 그런데 세 사람 모두 굳은 표정으로, 심지어는 고개까지 절래절래 저으면서 읽고 나더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했습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저는 의사들만 재미있어 하는 대본을 썼던 거죠. 드라마는 의사들만 보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시청자들이 보라고 만든다는 것을 그 때 느꼈습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그 때 겪었든 오류들을 겪기가 쉽습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몰두해서 취재하고 집필했는데, 그 대본이 아주 제한적이고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고 재미있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시청자들에게 재미가 있는 드라마를 써야 합니다. 다행히 한 번 다시 써보겠냐는 기회가 주어져서, 깨달은 바를 생각하면서 대본을 쓰게 되었고, 그것이 어쩔 수 없이 기획을 엎을 수는 없기에 방송을 타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이 서른 전까지는 저의 게으른 품성 때문에 인생이 잘 안 풀리고 어렵게 살았지만, 서른에 방송일을 시작하면서 그 이후에는 제가 생 각해도 방송운이 좀 좋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종합병원'같은 주간단막극이 자리를 잡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방송 3사를 통틀어 지난 3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주간단막극 포맷의 드라마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드라마는 또 많지 않을 겁니다. '종합병원'은 운이 좋아서 반응이 빨리 왔고 안정적으로 방송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방송작가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우연히, 운 좋게, 쉽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종합병원을 1년 6개월 동안 73회 정도 썼습니다.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메디컬 상황을 끊임없이 찾아내 써야 하는 어려움에 지쳐서 그만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한때는 꽤 반응이 좋았던 시청률도, 연기자들이 이탈하면서 하향곡선도 그리게 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돼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1, 2년 더 그 작업을 했었으면 좋았을 걸 합니다. 김정수 선생님께서 전원일기를 10년 쓰셨습니다. 주간 시추에이션을 경험해 본 저로서는 선생님께서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신 거라 생각합니다. 전원일기라는 한 드라마로 10년 동안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 주는 따뜻한 드라마로 만드신 것은 김정수 선생님의 위대한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훌륭한 선배를 방송작가로 둔 것은 우리의 행운입니다.
저는 종합병원을 쓰다가 다른 드라마를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방송국에 요청했고, 미니시리즈를 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종합병원을 그만 둔 지 6개월 정도 되는 시점에 미니시리즈 한 편을 썼습니다. 그것은 제가 제목을 말해도 여러분들의 대부분은 기억을 못할 실패한 작품입니다. '그들의 포옹'이라는… 기억 못하시죠? 캐스팅이 너무 안돼서 형편없는 배우들과 드라마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영애, 김승우, 최민식, 안재욱….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탄성과 놀람) 그게 96년에 방송됐는데 그 시점에는 방금 얘기한 그 분들이 모두 신인이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방송됐던 '아이싱'이라는 드라마는, 서로 하겠다는 젊은 청춘스타들을 선별해서 캐스팅 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들의 포옹'은 저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공부하게 한 작품입니다. 저의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그 상황을 조금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 연출자를 만났고, '뭘 하고 싶냐.'는 연출자의 물음에 어떠어떠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는 며칠 후에 두 달 동안 독일연수를 다녀와야 하니까, 그럼 그 동안 드라마 준비를 제대로 해봐라.'며 독일로 떠났습니다. 그 때 제 기획은 '돈' 얘기를 해보는 거였습니다. 지하경제에서부터 수천억이 움직이는 금융권의 외환딜러나 펀드매니저까지,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는 모든 돈 얘기를 드라마를 통해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 기획안이 만들어져 방송국 간부들에게 결제까지 된 상태였는데, 그것이 두 달 후 돌아온 연출자의 연출관과는 조금 안 맞았던지. 방송이 임박했는데 기획안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당혹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모든 얘기를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돈' 얘기가 '법' 얘기로 바뀌었습니다. 방송을 두 달 앞두고 첫 대본을 썼습니다. 두 개 쓰고 나니 방송이 임박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제작 여건상 미니시리즈 같은 경우, 아주 많이 쓰는 사람들은 방송 전에 8개정도 쓰고 시작하지만 보통 많으면 4개 정도 쓰고 시작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저는 아주 안 좋은 상황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그 때 제 생각은 방송기간이 두 달이나 되니까, 써나가면서 스토리들을 풀어나가고 얘기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면서 매주 2편의 대본을 끊임없이 써내야 하는데, 뒤의 스토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풀리지가 않는다는 것을 그 때 아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방송은 계속 나가야 하는데, 드라마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한 줄도 쓸 수 없는 상황의 막막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합니다. 당시 저는 MBC 작가실에서 작업을 했는데, 그 때 건물의 특성상 밤 11시, 12시가 되면 외부출입이 안되도록 셔터가 내려졌습니다. 그럼 저는 나가지도 못하는 작가실 5층에 혼자서 매일 밤을 새야 했는데, 지독하게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은 그런 제 자신이 너무 무서워서, 잠자는 경비아저씨를 깨워 일단 밖으로 나 와 버렸던 기억도 납니다.
저희 어머니 연세가 내년이면 팔순이십니다. 아들이 방송작가라고, 그 연세에 지금도 드라마를 아주 다양하게 많이 보십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고급 시청자이십니다. 그런 어머니께 '종합병원' 3회를 쓰고 나서 조심스럽게 전화 드려서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고, 그런 어머니의 반응이 기분 좋았습니다. 그 이후에 '그들의 포옹'에 대해 어땠냐고 물어보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웃음) 드라마가 이러면 큰 문제가 있는 겁니다. 드라마는 영화처럼 어떤 공간에 들어와서 끝날 때까지 다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보기 싫으면 채널도 돌아가고, 상황에 따라서는 몇 회 건너뛸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하고도 재미있게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드라마여야 합니다. 대개 성공한 드라마들은 그런 조건이 다 맞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포옹'은 몇 회 빠지면 이해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보다가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도 이해 못하겠다고…(웃음) 좋게 얘기하면 굉장히 밀도 있는 구성 때문에(웃음) 그럴 수도 있다 싶지만, 드라마 집필에 있어서는 아주 위험한 겁니다. '그들의 포옹'을 통해, 경험 없는 신인작가 시절에 쓰게 되는 미니시리즈는 반드시 풀스토리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들어가야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는 준비 덜 된 것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또한 드라마의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복합적이어도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드라마를 아주 몰두해서 보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구성이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겠지만, 뒤늦게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는 사람들은 몰입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최근에, 제가 아주 좋아하는 선생님, 정성주 선생님께서 쓰신 '변호사들'이라는 아주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는 마니아들도 많았는데 시청률은 기대만큼 썩 좋지 못했었습니다. 정성주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요인 중 하나가 '그 드라마 재밌더라.'는 얘기를 듣고 뒤늦게 추가로 보기 시작한 시 청자들이 드라마의 인물관계와 스토리를 좇아가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나중에 '허준' '상도' '대장금'을 연출하신 이병훈 감독을 만나서 배우고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드라마는 가급적 단순하고 힘 있는 구조가 좋다. 최대한 쉬워야 된다.'입니다. 물론 이것은 작가 개인차에 따라서 달리 생각하시는 분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여러분들도 앞으로 집필하시면서 그 선택은 자유입니다. 조금 어렵게 가서 본인이 좋아하고, 또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한정된 시청자라 할지라도 그런 드라마를 쓰겠다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작업을 하시면 됩니다.
'그들의 포옹' 다음 작품이 '간이역'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고, 나중에라도 꼭 써보고 싶은 포맷의 드라마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제가 습작 없이 공모에 당선될 수 있었던 큰 원인 중 하나는 30년 세월동안 TV 중독자일만큼 드라마를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봐온 드라마들 중에 제 기억에 남고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그것 중 하나가 '월튼네 사람들'이라는 미국 드라마입니다. '간이역'을 쓸 때 제 심정은 그런 '월튼네 사람들'같은 따뜻한 가족드라마를 한 번 써보는 거였는데, 저의 작가적 연륜과 경험, 능력으로는 터무니없는 욕심이었습니다. 그 외에 잘못 설정된 캐릭터들과 드라마 전개 방식에 대한 아쉬움 등 여러 가지가 아쉽습니다. 그런데 그 작품을 아주 호감 있게 본 연출자들로부터 '드 라마 재미있게 잘 봤다.'는 개인적인 연락이 왔습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연출자들의 그런 전화는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시청률 면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작가인 제 개인에게는 그렇게 손해가 되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그 후 KBS 주말연속극 '야망의 전설'이라는, 처음으로 긴 호흡의 연속극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드라마에 대해서도 참 할 말이 많은데,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으로는 시청률이 4%로 시작해서 51%로 끝난 드라마였습니다. 그 굴곡을 겪는 동안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기간을 보냈어야 됐고, 작가를 그만 두고 시골에 내려가 작은 형이 하는 주유소에서 기름 넣으며 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간단막극, 16부작 미니시리즈, 60부작 주말연속극… 이렇게 작업을 하면 할수록 저 스스로 이런 긴 호흡의 드라마도 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겼습니다.
1년 동안 '야망의 전설'과 또 한편의 드라마를 전혀 쉼 없이 하고 심신이 지칠 대로 상태에서, 사극을 해보자는 이병훈 감독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서른 넷 정도? 저도 언젠가는 제가 사극을 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신도 없었죠. 사극하면 먼저 떠오르는 그런 풍속사에 대한 이해도 없고, 언어의 문제 등 여러 가지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병훈 감독은 10년 넘게 '조선왕조실록'을 연출하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극 연출자죠. 그런 분이 저에게 '그런 두려움 갖지 마라. 현대물처럼 써도 상관없다. 내가 알아서 다 하겠다.'라며 저를 꼬셨습니다. 저는 두 달 동안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차피 할거면 이렇게 사극에 대해 굉장히 많은 노하우를 갖고 계신 분한테 배우는 게 낫겠다' 싶어서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의 모든 사 극에 대한 연구로 대학원 석사논문까지 쓰신 분입니다. 사극에 관심 있는 분들은 나중에 그 논문을 구해 보시면, 모든 사극이 망라되어 있어 좋을 겁니다. 또한 어느 시대, 어느 공간을 다뤄야 시청률이 가장 높을 거라는 통계들까지도 갖고 계십니다. 그런 치밀한 분석과 통계로, 폐비 윤씨·연산군 시대의 얘기가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월탄 박종화 선생님의 '금삼의 피'라는 원작 소설을 놓고, 저는 이병훈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장하고 내세울 아무런 밑천도 없으니까. 그런데 당시 KBS에서 정하연 선생님의 '왕과 비'가 진행 중이었고 원래 어느 시점에서 끝나야 할 드라마였는데, 얻은 정보에 의하면 저와 이병훈 감독이 계획하는 그 시점까지 연장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소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일명 '이병훈 파일'에는 사극으로 접근 가능한 소재가 대략 30개 정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걸 봐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결국 마지막으로 얘기 나온 것이 '허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허준은 이미 흑백TV 시절인 70년 후반에 김무생 주연의 '집념'이란 제목으로 했었고, 이순재 주연의 영화도 있었고, 90년 초반에 서인석 주연 드라마 '동의보감'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이미 여러 번 만들어진 드라마를 왜 내가 하나?'하는 갈등이 있었지만, 그렇게 다뤄진 건 스토리가 재미있으니까 그랬을 거라는 생각에 갈등이 오래가지는 않았고, 사극을 처음 하는 저로서는 비빌 언덕인 원작이 있는 여러모로 유리하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또한 원작을 전혀 새로운 틀로 각색해보리라는 도전과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사극을 공부하려는 분, 그리고 원작과 드라마의 함수관계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제 작품이라 민망스럽긴 하지만, '허준'과 '상도'를 원작과 비교해서 한 번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많은 공부가 될 겁니다. 원작은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고 작가에게 틀림없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게 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이 드라마화 될 때는 아주 많은 창의적 시도와 노력들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고, 필요합니다. 그 이후에 '상도' '올인' '폭풍속으로' 등 좀 과다하게 많은 일을 하면서 현 시점까지 왔습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여러분들 질문에 다 들어 있더라구요. 조금 후에 더 많은 얘기를 하기로 하고… 지금, 이 강의를 마무리 지으면서 제가 여러분들의 선배로서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입니다. 머리로만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열거했던 드라마들을 방송 동네에서는 '전문직드라마'라고 합니다. 그 '전문직드라마'를 '최완규가 좀 쓰나 보다.'라는 평가를 해주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몸으로 부딪히고 발로 뛴 만큼, 그리고 공부한 만큼 드라마의 밀도가 높아지고 시청자들이 받아들이는 재미도 더 커질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감각과 머리로만 드라마를 쓰려고 하면 그 반응이 제한된다는 겁니다. 물론 천재적인 감각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천재적인 시인은 있어도 천재적인 드라마작가는 없 다.'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작가는 어느 정도 자기가 살아왔던 인생의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지만 좋은 드라마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살아낸 인생의 경험들이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그런 부분들을 해소하고 넓혀나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해야 할 노력들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 노력하지 않고, 현재 갖고 있는 감각과 머릿속의 느낌들만으로 드라마를 쓰려고 하면 대개는 고만고만해지는 느낌의 드라마들이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처럼 자기의 색깔을 갖고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작가가 되고자 하신다면, 더 노력하고 공부하시기를 바라면서 이 강의를 닫고… 미리 받은 질문을 보니 아주 많던데 그걸 가지고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박수)
조금 전 강의에서도 말씀하셨는데, 사극에 대해 질문이 많았기 때문에 사극에 관한 얘기를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과정이나, 역사적 사실과의 접목방법, 취재 및 자료조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등 사극을 쓸 때 어떤 특별한 작업 과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제가 했던 사극이 '허준' '상도'라는 작품이었고, '해신'의 기획과정에 참여했었고, 내년 초에 MBC에서 방영될 '삼한지', 이것은 현재 대외적으로 표현되는 제목이지만 아마 '주몽'이라는 제목으로 바뀔 것 같은데, 이 모든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이 지극히 작다는 겁니다. 몇 장 안 되는 또는 몇 줄 안 되는 제한적인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50, 60부작의 드라마를 해야 하는데, 원작이 있는 작품도 원작에서 차용할 수 있는 양은 15% ~ 30% 정도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꿔 나가야 되는 거죠. 장단점이 있는 게, 역사적인 기록이 많은 소재로 드라마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죠. 역사적인 기록이 적은 경우 기록에 얽매이는 요소에서 벗어나 작가적인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사극의 소재는 가급적 역사적 자료가 적은 쪽을 선택해서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소재로 접근하려 합니다. 이것은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기준이 아닙니다. 작가의 개인적인 취향이겠죠.
돌아가신 이은성 선생님께서 허준을 소재로 드라마 '집념'을 하시면서, 그 드라마를 바탕으로 소설 '동의보감' 작업을 하셨고 결국은 허준의 풀스토리를 완성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 작업이 드라마작가로서 해야 할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허준'에서 실제로의 역사적인 사실은 몇 개 안됩니다. '허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허준이 내의원이 되었다. 허준이라는 사람이 동의보감을 썼다.' 이 정도가 역사적 사실이고 그 많은 얘기는 이은성 선생님이 뼈대를 만들어 놓은 픽션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감동 받은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들은 개연성 있는 픽션이라는 얘깁니다. '대장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김영현작가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허준'처럼 원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금이가 있었다.'는 기록만으로 그런 작업을 해낸 겁니 다.
여러분도 역사 속에서 재미있는 인물과 상황을 가지고 작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런 스토리를 구상하고 만들어낸다면, 드라마작가로서 오랫동안 남게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건 사극에 관심을 가지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여러 모로 유리할 거라 생각합니다. 방송사 편성상 사극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극을 집필할 수 있는 작가는 아주 제한적입니다. 그 동안은 대부분 사극을 집필하신 분들이 남자 작가였는데, 지금 남자 작가분들이 굉장히 적은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김영현 작가를 시발로 여자 작가들도 사극을 쓰게 되었고, 그것이 아주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저나 김영현 작가도 그랬지만, 사극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책 몇 권만 읽 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사극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구조에서 안정적인 기회를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말씀하셨는데 드라마작가 중에서 남자 작가가 적은 편이죠. 교육원도 그렇고. 희소성의 가치랄까 득을 보는 점이 있습니까?
(웃음) 전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 능력으로 지금까지 밥 벌어 먹고 산 것은 제가 남자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워낙 여자 작가분들이 많다 보니까, 능력과는 별개로 성향에 따라 남자 작가와 일하기 원하는 PD들이 꽤 있습니다. 그게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보기에도 남자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여러분들은 이 동네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면에서는 조금 유리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전작에 비해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는 치열함이나 캐릭터 구성 등 모든 부분에서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스타일이 굳어지신 건 아닌지?
(웃음) 스타일이 굳어졌을지도 모르고… 그 작품을 하고 여러 가지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느끼신 것처럼 많은 문제가 노출됐던 작품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타성에 젖어가는 저의, 작가로서의 문제도 있었고, 모든 면에서 덜 열성적이었고 덜 진지했던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드러난 시청반응이 아니라, 정말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러운 점이 많은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 경험을 기회 삼아서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해야겠죠.
그런데 제가 그 작품에 대해서 치사하게 변명을 하나만 하자면, 원래는 16부작 전체를 미국에서 제작하기로 하고 제작팀이 미국에 갔습니다. 저와 같이 작업을 했던 작가들은 거기에 맞춰 스토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촬영팀으로부터 중간에 연락이 왔습니다. 도저히 제작비와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6부까지만 찍고 들어와야 했습니다. 촬영해야 할 모든 장소에서 다 쫓겨났답니다. 나머지 10부에 대해서는 전혀 스토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정말 급조해서 작업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작업한 것을 여기서 말하는 자체가 작가로서는 자기 얼굴에 침뱉기인 셈인데, 지금 우리 방송 제작 현실이 그런 일면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습작시절의 공부방법을 자세히 말씀해주세요'라는 질문이 있는데요, 역시 아까 말씀하신 '텔레비전 보기'입니까?
(웃음) 그거 아주 중요합니다. 텔레비전 보기. 저를 찾아오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제가 묻습니다. '요즘 드라마 뭐 보냐.'고.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드라마를 잘 안 본다고 얘기합니다. 속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너는 작가 안 되겠구나.'
드라마 많이 보는 것, 영화 많이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오랜 소망이 좋은 소설 한편 쓰는 거였는데, 소설을 못 쓰면서 고민했던 여러 흔적들이 드라마 작업하는 데에 있어 또 다른 습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권하고 싶은 습작의 방법 중 하나는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대본작업을 하라는 겁니다. 요즘엔 인터넷에 VOD로 볼 수도 있으니까, 그게 단막극이건 연속극 중의 몇 편이건 그걸 보면서 대본을 만들어 보십시오. 제 권유에 의해 효과를 본 후배작가들이 몇 명 있으니까요. 그렇게 대본을 한 편 만드는 데, 계속 리모컨으로 정지하면서 대사 쓰고, 지문 쓰는 작업을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립니다. 한 편, 두 편 하면 할수록 드라마의 구성과 대사의 감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진행자 :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대본으로 나와 있거나 책으로 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보면서 정지버튼을 눌러 가면서 대본작업을 다시 해보라는 말씀이죠?> 네, 그렇습니다.
작품 소재를 어떻게 찾으시는지, 또 주로 어디서 찾으시는지… 소재가 굉장히 다양한데 노하우가 있으신지?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작가가 기획하고 소재를 찾아서 연출자나 방송국에 어떠냐고 제안하는 게 있고, 반대로 방송국이나 감독이 '이런 소재로 해볼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우 '종합병원'은 감독이 메디컬드라마를 제안한 거고, '그들의 포옹'은 제가 돈얘기를 해보겠다고 했고, '간이역'은 가족드라마를 해보겠다는 제 뜻이 제작자와 맞았던 거고, '야망의 전설'도 한 가족의 얘기로 6,70년대의 현대사를 조명해보고 싶은 제 욕심이었고, '허준'은 방송국에서 해볼래였습니다.
'올인'은 SBS에서 실제인물인 최민수씨의 삶을 다룬 소설을 저에게 주고 드라마로 가능한지 검토해보라고 해서 봤는데, 제 결론은 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주인공의 삶이 프로 겜블러로서의 삶도 있었지만, 상당부분은 프로 바둑기사로서의 얘기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둑이야기를 드라마로 옮겨 놓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드라마로 한다면 몇몇 모티브만 가져오고 전부 다시 바꿔야 할 거다라는 제안을 했더니, 이것이 방송국과 의견이 맞아서 제작되게 되었습니다. '올인' 전체를 통틀어 원작에서 가져온 것은 제목과 두 개 정도의 에피소드뿐이고, 나머지는 새롭게 만들어진 얘기입니다.
제가 했던 상당수의 작업들이 원작이 있는 것들입니다. 작가에 따라서 '원작이 있는 것을 각색하는 게 무슨 작가가 할 짓이냐?'라고 저에게 얘기하시는 분도 사실 있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건 리메이크해놓은 작품이건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전방위적으로 안 가리고 작업할 생각입니다. 저는 그동안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나가는 구조가 아니라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는 쪽의 드라마들을 해왔기 때문에, 제가 무슨 대단한 천재도 아니고 그런 다양한 인생의 굴곡의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제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만들겠습니까. 문제는 각색할 좋은 원작을 찾기가 참 어렵다는 겁니다. 좋은 원작을 발굴해 내는 것도 작가로서 굉장히 중요 한 능력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MBC는 지난 10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그 시점에 나오는 국내외 모든 소설을 읽게 하고, 요약해서 그것을 자료화했습니다. 아주 방대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무수히 많은 작업을 10년 동안 해왔는데 사실 찾아낸 원작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요즘에는 만화나 여러 방면에서 찾고 하는데, 있는 얘기 구조 속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이 모여서 설립한 '에이스토리'가 최완규 작가님을 중심으로 있다는데, 거기에 대한 얘기라든지, 경영하시면서 느낀 해외드라마나 우리드라마의 시장에 관한 얘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종합병원'을 94년도에 시작했는데, 시작한 지 6개월 후에 미국에서 'ER'이라는 드라마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종합병원' 작가라는 게 자랑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잘 써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써낸 것 자체만으로 '이건 나니까 한거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전문직드라마를 매주 한편씩 작가 혼자서 써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나중에 'ER'이라는 드라마의 작가가 18명이나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집필능력이 합해진 나온 'ER'은 저에게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종합병원'이 부끄러울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갖고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안 되나 생각했습니다. 당연 한 겁니다. 우리는 시장이 작고, 'ER'은 전 세계 배급을 위해 경제논리로 그렇게 만들어서 많이 팔 수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우리 시장이 10년 전하고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류 바람이 불어서 중화권, 일본에도 우리 드라마가 비싼 값으로 팔리고, 지금 대한민국 작가가 쓰는 드라마는 최소한 20억명을 대상으로 쓰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 됐습니다. 저는 커진 시장 구조에 맞춰서 거기에 부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될 거라고 생각해서 '에이스토리'라는 작가 중심의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자리가 에이스토리 사업설명회를 하는 자리는 아니니까(웃음)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기는 그렇고, 어쨌든 그런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에이스토리'가 자리를 잘 잡아서 많은 신인작가들의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에이스토리'가 어떤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신인작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조만간 교육원에 협조를 요청해서 에이스토리의 신인작가를 모집하는 공고가 나갈 것 같습니다. 에이스토리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프로로서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선별 과정이 까다롭습니다. 그렇지만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도전을 한다면 여러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최완규 작가님은 드라마를 위해서 취재에 많이 몰두하는 작가로 소문이 나있는데, 취재에 관한 얘기를 해주십시오.
저는 이전부터 드라마를 보면서 가졌던 불만 중 하나가, 그 드라마 속에 나오는 직업들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왜 직업 자체가 주는 재미도 표현 안 될 뿐더러 피상적인 데 머물까. 만약 내가 드라마를 쓴다면 그 재미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제가 드라마를 구상하는 데 있어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등장인물들의 '일'입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나갔을 때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에이, 말도 안돼.'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합니다. '종합병원' 쓸 때는 병원에서 2년 가까운 세월을 먹고 자고 했습니다. 그 외 작품에서도 끊임없이 직업에 대한 공부를 했고, 접촉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는 '종합병원'과 '허준'을 했기 때문에 양방, 한방 모두 명예의사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올인'이라는 겜블러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 카지노에 굉장히 많은 돈도 가져다 부었습니다.
전문 직업세계에 대한 여러분들의 구체적인 취재 노력이 있다면, 그런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면서도 더 쓰기 쉽습니다. 인간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감정을 다루는 드라마보다, 노력만 전제된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똑 같은 드라마를 하고 있는데, 색다른 드라마를 하고 싶다면 그런 쪽에 발상과 노력을 기울이시길 권합니다.
마지막 질문인데,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아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나로 묶어야겠습니다.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또 드라마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현실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끝으로 드라마를 공부하는 교육원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슬럼프는… 지금이 슬럼프인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제가 지난 5,6년 동안 조금 과다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연예인들이 얘기하는 '재충전'이 사실은 작가에게 틀림없이 필요한데, 그럴 여유나 겨를도 없이 보내면서 정말 심신이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럼 안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텐데, 지금 제 상황이 달리 어쩔 수 없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벌려놓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제 의지로 극복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정말 힘듭니다. 국내에서 생명력 길게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한다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습작하면서 공부하면서 많이 고생하실 텐데, 진짜 고생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작품을 하게 됐을 때부터가 진짜 고생이죠. 지금 공부를 하고 계신 여러분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소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글을 쓴다고 하는 것에 있어서 아주 안 좋은 일 중 하나가 '쉽게 포기가 안 된다.'는 거죠. 다른 많은 직업들은 하다가 잘 안되면 '내가 이 일하고 잘 안 맞나보다.'하고 포기가 되는데, 글 쓰는 일은 자기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포기가 정말 안 됩니다. 그래서 많은 세월과 정력과 정열들을 허비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후배작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이런 교육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상황 속에 서 다들 참 글을 잘 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말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 과정 거쳐서 배출되면 정말 글 잘 쓰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안정적인 대사, 흠잡을 데 없는 구성… 그런데 왜 그럼 밥 벌어 먹기가 힘들고 잘 안되냐. '재미있는 글'을 쓰는 그 차이인 것 같습니다. 자칫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데, 글은 아무런 하자 없이 잘 쓰지만 그 글이 재미있는 글인가에 대한 감각이 있나 없나를 말하는 겁니다.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재미없는 얘기를 잘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웃음) 내 발상이 재미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감각을 기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노력해서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일정 부분은 타고 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극적 본능'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래서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검증해봤을 때 글은 잘 쓰지만 '극적 본능'이 없다면 드라마작가를 접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안 그러면 정말 고생만하고 세월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게 보통 일이어야 계속 해보라고 권하죠.
그런데 극적 본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죠? 선생님께 가서 다 물어볼 수도 없고…(웃음) 주위 사람들의 평가?
뭐, 주위의 평가도 있을 수 있고, 에이스토리를 찾아오십시오. 제가 검증해 드릴 테니까.
요즘은 한국한의대보다 외국한의대를 나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 현실감있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그런데 외국한의대 입학을하고자할 때는 반드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는 정규 한의대(예를 들어, 경희대학교를 비롯한 한국 한의대, 미국 워싱턴 배스티르대학교, 써든크리스챤대학교, 중국 중의대)로 입학을 해야 일반대학에서도 인정하는 정규한의대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각 나라의 고등교육국(교육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는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일반 정규대학교에서는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학 강단에 서고 싶어도 정규교수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Chea,org 기구에서 두 개의 검색창(대학인증 검색창-상단창, 프로그램인증창 - 하단창)에 모두 이름이 나오지 않는 한의대는 비정규 한의대입니다. 대부분 미국 비정규 한의대는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아래부분, 프로그램 검색창에 학교 이름을 넣어 이름이 나오면 정규대학교라고 거짓홍보를 합니다. 반드시 두개의 검색창에 모두 나와야만 정규대학교로서 한의대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비정규한의대를 졸업했다고하면 모든 공직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학력 사칭범죄행위자로 간주하여 구속될 수도 있습니다.
각 국가의 고등교육국으로부터 인증을 받고 유네스코 등재 정규한의대를 나오면 서방 세계 어디에서나 절차를 거쳐 한의사, 혹은 자연의학 의사NHD로 활동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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