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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06월14일(금요일) 운악산 산행일정
산 : 운악산
[운악산(雲岳山)
경기 가평군 조종면과 포천시 화현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솟아 있는 산.
높이 : 934.7m
명물 : 현등사, 무우폭포
광주산맥의 여러 맥 가운데 한북정맥에 속한 산으로, 북쪽으로 청계산·강씨봉·국망봉 등과 이어져 있으며 북동쪽에는 화악산(華岳山:1,468m)·명지산(明智山:1,267m) 등의 명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매봉·명지산, 서쪽으로는 관모봉이 보인다. 가평군 현리로부터 약 6km 지점에 있으며, 동쪽 계곡의 물은 조종천을 이루고 서쪽과 북쪽 계곡의 물은 농경지를 형성하면서 포천천으로 흘러든다. 경기의 금강(金剛)으로 불릴 만큼 산세와 기암괴석, 계곡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주봉인 망경대를 중심으로 봉우리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우뚝우뚝 치솟아 있고 주변에는 뾰족봉·편편봉·완만봉 등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서쪽 계곡의 거대한 암벽에서 맑은 물이 떨어지는 무지개폭포(홍폭)는 궁예가 이곳으로 피신하여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산이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봄에는 4월 중순에 자목련, 5월경에 진달래와 산목련이 계곡과 바위마다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고사리·취나물이 많으며, 가을에는 상봉에서 붉게 물든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겨울철에는 서쪽 계곡의 폭포가 얼어붙어 빙벽등반의 훈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운악팔경(雲岳八景)의 제1경은 등산로 중턱에 있는 백년폭포로서, 백년 동안 변함없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2경은 6·25전쟁 당시 오랑캐들이 은거하였다는 다락터 오랑캐소로, 소의 물이 복더위 중에도 얼음같이 차다고 한다. 제3경은 운악산 중턱에서 오른쪽 계곡 쪽에 있는 사람 눈썹모양의 눈썹바위이고, 제4경은 현등사 오른쪽 계곡에 있는 코끼리바위이며, 제5경은 망경대이다. 제6경은 무우폭포(舞雩瀑布)에 있는 민영환 암각서로, 구한말 민영환 선생이 이곳을 찾아 기울어가는 국운을 탄식하였다고 하는데 1906년 나세환 외 12명의 뜻에 의거하여 각서한 것이며 ‘민영환바위’라고도 부른다. 제7경 큰골내치기 암벽은 큰골계곡에 있는 삼각형태의 80m 암반절벽이다. 제8경은 하판리 노채계곡에 있는 노채애기소로, 규모가 작아 애기소라 한다.
가평군 조종면에서 운악산을 오르면 무우폭포가 있고, 남동쪽의 산 중턱에는 고찰 현등사(懸燈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사찰은 신라 법흥왕 때 인도의 승려 마라하미를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재건하였다. 경내에는 하판리3층석탑, 현등사3층석탑, 7층다보탑, 보광전, 부도 등과 극락전의 아미타불상 후불탱화, 관세음보살상, 범종 등이 있다. 하판리 동구 언덕에는 조병세·민영환·최익현의 신위를 모신 3층단이 있다. 운악산은 화악산·관악산(冠岳山:629m)·감악산(紺岳山)·송악산(松嶽山:489m)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산수가 가장 수려한 곳으로는 운악산의 망경대가 꼽힌다. ‘운악산(雲岳山)’이란 이름은 망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산행코스 :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백년폭포~출렁다리~눈썹바위~병풍바위 전망대~미륵바위~망경대~운악산 東峰(청학대)~운악산 西峰~운악산 東峰(청학대)~남근석 전망대~코끼리바위~운악산 현등사~무우폭포~출렁다리~백년폭포~금강막국수~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 (약 10km)
산행일 : 2024년06월14일(금요일)
날씨 : 청명한 날씨 [가평군 조종면 최저기온 17도C, 최고기온 29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5시간48분 소요)
05:40~06:15 연신내역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3가역으로 가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청량리역으로 이동 [35분 소요]
06:15~06:18 청량리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청량리역환승센터(1번승강장) 정류장으로 이동 [172m]
06:18~06:25 청량리역환승센터(1번승강장) 정류장에서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으로 가는 1330-44 버스 승차 대기
[청량리 출발 1330-44 버스의 6시~8시 출발시각 : 6시25분, 7시5분, 7시25분]
06:25~09:03 1330-44 버스를 타고 청량리역환승센터(1번승강장) 정류장에서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으로 이동 [2시간 38분, 104개 정류장 이동]
09:32~09:57 경기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에서 산행출발하여 운악팔경(雲岳八景) 중 제1경인 백년폭포를 거쳐서 운악산 출렁다리로 이동
[백년폭포는 운악산이 품은 20미터 길이의 폭포이다. 45도 경사바위 위로 흐르는 폭포가 백년을 두고 변함없이 흐른다고 하여 '백년폭포'라고 한다. 백년은 단순히 숫자 100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오랜 세월을 뜻한다. 구한말 민영환이 자주 찾아와 나라 걱정에 한 숨을 지었다는 이 백년폭포는 무우폭포와 함께 운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다.]
[2023년 7월 중순에 개통된 운악산 출렁다리는 길이 210m, 폭 1.5m 규모로 조성됐으며, 다리 양쪽에는 전망대도 있다. 50m 높이 다리 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폭발적인 인기다. 출렁다리를 건너려면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서 약 1.5km를 걸어 올라가야 하며, 이용 요금은 무료다. 2년여의 공사 끝에 1차로 출렁다리가 설치된 가운데 내년 상반기에는 2차 사업으로 마을안길 확장, 광장조성, 농산물판매장, 간판 교체 등 산 아래 운악리 일대를 관광 체험 마을로 조성할 계획에 있어 관광객 발길이 더욱더 증가할 것으로 기대가 되고 있다.
앞서 군은 등산객 외에 관광객 확보가 어려워 침체 상태에 있던 운악산 산악관광의 재탄생 돌파구로 출렁다리 설치 등 관광마을 조성을 통해 신규 관광객 유입에 나섰다. 특히 과거 일반적인 관광자원 조성의 경우 관 주도의 정책 수립으로 자칫 지역주민의 삶과 동떨어진 관광산업을 육성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민관 협업을 이뤄 나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역량 강화 용역을 통해 스스로 마을공동체를 조직·운영할 수 있도록 기본 교육을 실시하고 직무교육을 통해 브랜드 개발, 축제 및 상품 개발, 홍보 마케팅, 시설물 운영에 대한 역량을 강화해 왔다.]
[운악8경
운악팔경(雲岳八景)의 제1경은 등산로 중턱에 있는 백년폭포로서, 백년 동안 변함없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2경은 6·25전쟁 당시 오랑캐들이 은거하였다는 다락터 오랑캐소로, 소의 물이 복더위 중에도 얼음같이 차다고 한다. 제3경은 운악산 중턱에서 오른쪽 계곡 쪽에 있는 사람 눈썹모양의 눈썹바위이고, 제4경은 현등사 오른쪽 계곡에 있는 코끼리바위이며, 제5경은 망경대이다. 제6경은 무우폭포(舞雩瀑布)에 있는 민영환 암각서로, 구한말 민영환 선생이 이곳을 찾아 기울어가는 국운을 탄식하였다고 하는데 1906년 나세환 외 12명의 뜻에 의거하여 각서한 것이며 ‘민영환바위’라고도 부른다. 제7경 큰골내치기 암벽은 큰골계곡에 있는 삼각형태의 80m 암반절벽이다. 제8경은 하판리 노채계곡에 있는 노채애기소로, 규모가 작아 애기소라 한다.]
09:57~10:02 사진촬영
10:02~10:35 운악팔경(雲岳八景) 중 제3경인 눈썹바위로 이동
[옛날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선녀의 치마를 훔쳤다. 치마가 없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선녀는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총각은 치마를 내주었고, 선녀는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선녀의 말을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총각은 그대로 바위가 되었고, 눈썹모양을 닮았다 하여 눈썹바위라 불린다. 긴 세월 동안 인기척이 날 때마다 선녀가 아닐까 지긋이 바라보며 기대와 실망을 거듭했을 눈썹바위가 측은해 보인다.]
10:35~11:15 병풍바위 전망대를 지나서 미륵바위로 이동
[운악산 병풍바위 풍경은 애국가 배경 영상에 나왔을 정도다. 한때 애국가 배경 영상에는 백두산, 한라산을 비롯해 전국의 유명산 30여 개가 등장했다. 운악산은 비경으로도 전국 ‘30대 명산’에 꼽힌 셈이다.
신라법흥왕(514년) 때 인도에서 온 스님 마라가미가 운악산에 와서 병풍처럼 펼쳐진 채 막아 선 바위에 정신이 아찔하고 몽롱하여 포기하려다,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코 바위 오르길 시도했으나 번번이 미끄러졌다. 마라가미 스님도 못 넘어간 바위가 바로 병풍바위이다.]
11:15~11:20 사진촬영
11:20~12:00 운악팔경(雲岳八景) 중 제5경인 망경대를 거쳐서 운악산 최고봉인 청학대(937.5m, 포천시에서는 동봉으로 부름) 정상으로 이동
[가평군이 설치한 정상석에 비로봉으로 표기된 운악산 최고봉 동봉은 일명 ‘청학대’라고도 불린다.]
[경기 금강산에서 이열치열…가평 운악산
이두용 차장|사진 양계탁 기자
아웃도어뉴스 기사 승인 : 2015.08.11. 17:45
여름의 중심에 드니 더위가 숨을 턱턱 막는다. 공기가 손에 잡힐 리 만무한데 허공에 손을 움켜쥐면 열기가 잡힐 듯 무게감이 대단하다. 하지만 드디어 휴가의 계절! 손가락셈을 하며 기다리던 시즌이 드디어 찾아왔다.
뜨거운 햇살보다 더 핫한 여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느냐가 추억 만들기의 관건이다. 해외에서 영화 같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꿈같은 일,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조차 즐길 여유가 없다면 수도권 명당 가평으로 떠나자. 도내 최고봉 화악산(1468m)에서 축령산, 유명산을 비롯해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운악산이 하늘길을, 국내 수상레저의 중심인 북한강과 청평호반이 물길을, 용추계곡과 도마치계곡을 끼고 다양한 땅길이 펼쳐지니 수도권에 여름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만만치 않은 더위 그놈!
아무리 시원한 그늘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다 해도 7월 여름 더위가 만만할 리 없다. 산행 당일, 가평으로 향하기 전부터 자연스레 더위와의 전쟁(?)이 걱정됐다. 최대한 가볍고 시원한 옷을 골라 입고, 옷 밖으로 노출된 피부엔 꼼꼼하게 자외선차단제를 발랐다. 저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도 하나씩 챙겨왔다. 그제야 ‘이만하면 되겠지’ 싶어 차에 올랐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운악산 들머리. 차 문을 열기가 무섭게 열기가 달려든다. 햇볕이 여간 얄밉지 않다. 산행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숨 쉴 때마다 더운 기운이 폐까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침인데 벌써 이러면 오늘 엄청 덥겠는데요? 쉬엄쉬엄 올랐다가 빨리 내려와야겠어요.” 여기자가 둥그런 모자를 눌러쓰며 한 마디 꺼냈다.
일행은 평소보다 물을 한 병씩 더 챙겨 배낭 양쪽에 꽂아 넣고 분주하게 산으로 향했다. 시간을 지체하면 기온은 더욱 올라갈 테니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입구에 늘어선 식당을 지나면 과거 매표소였다가 입장료가 사라지면서 지금은 안내소로 바뀐 건물이 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안내소를 통과하니 한자로 큼지막하게 운악산(雲岳山)이라고 새겨진 시비가 반긴다.
운악산(雲岳山) 만경대(萬景臺)는 금강산(金剛山)을 노래하고
현등사(懸燈寺) 범종(梵鐘)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百年沼) 무우폭포(舞雩瀑布)에 푸른 안개 오르네
누구의 시인지 알 수 없지만,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운악산의 운치를 떠올려 보기에 더 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안내소를 지나면서 그늘에 들어서인지 더위도 가신 느낌이 들었다.
금강산에 견주는 아름다운 산세
시비 앞에서 고개를 돌리니 눈앞으로 현등사 일주문이 보인다. 한글로 ‘운악산 현등사’라고 쓰여 있다. 이제껏 한자로 새겨놓은 현판만 보다가 한글로 쓰인 것을 보니 왠지 친근감이 든다. 일주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운악산은 경기도 가평군과 포천군에 솟아오른 골산으로 관악산·화악산·감악산·송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으로 손꼽힌다. 산 곳곳에 우뚝 선 바위들은 저마다의 형상으로 능선을 따르고, 능선을 떠받들며 군락을 이룬 노송들은 한 폭의 고즈넉한 수묵화를 이룬다. 덕분에 운악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산행 방법도 여럿이다. 가평군과 포천군에서 오르는 길이 있는데 가평군은 하판리에서, 포천군은 운주사 입구에서 출발한다. 보통은 산행의 재미가 깊고 코스가 다양한 가평군 코스를 이용한다. 가평군에서 오르는 코스도 세 가지나 되는데, 모두 안내소에서 출발해 정상으로 향한다. 일행은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2코스로 올라 1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다. 입구에서 큰길을 따르다가 눈썹바위로 빠져 암릉을 거쳐 병풍바위~미륵바위~만경대를 거쳐 정상에 올라 남근석 바위를 통해 절고개~코끼리바위~현등사~원점회귀 하는 코스다.
“안내도를 보니 암릉이 많고 암릉과 어우러진 풍광이 아름다워서 지난달 팔봉산과 비교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기자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덟 개의 봉우리가 저마다 빼어난 미를 갖췄던 홍천의 팔봉산과 금강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고스란히 닮았다는 운악산은 지역은 다르지만, 형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등사에서 기사회생
30분쯤 걸었을까. 일행의 말수가 줄었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배낭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코스를 바꿔서 현등사에 들렀다 가시죠. 기운이 없어서 소금이라도 얻어서 먹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사진기자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그렇게 해요. 물도 벌써 한 병을 마셨어요.” 사진기자의 말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찬성한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올라오는데도 덥긴 더웠나 보다. 여느 때와 달리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갑작스레 코스를 바꿔 현등사를 통해 1코스로 정상에 오른 뒤 2코스를 통해 하산하기로 했다.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하고 몸은 천근만근이니 기력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큰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니 현등사가 보였다. 천년고찰 현등사는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설화와 실화가 존재한다. 법흥왕(514년) 때 불교를 전하러 이 땅에 온 인도 승려를 위해 지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후 여러 번 폐사와 재건을 거치면서 현등사라는 이름을 얻고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큰길에서 절로 향하는 언덕에 다다르니 108개의 계단이 닦여 있다. 아마도 불교의 백팔번뇌(百八煩惱)에서 기인했으리라. 계단을 만든 사람은 누군가 한 계단 한 계단 이곳을 오를 때마다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온갖 번뇌를 내려놓기를 바랐을 것 같다. 지친 걸음을 계단에 맡기며 절 마당까지 올랐다. 그리고 사람이 있는 법당을 찾아 소금을 구했다. 다행히도 불자인지 법당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공양간으로 들어가 소금을 내왔다. “죽염입니다. 그냥 드셔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산 정상은 이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시면 돼요. 안전하게 산행하세요.”
손에 받아든 죽염보다 그분의 친절에 더 감동했다.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현등사를 떠났다. 몇 분 걸으니 오르막이 나타났다. 일행은 저마다 손바닥에 죽염을 조금씩 덜어서 입에 ‘탁’하고 털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빠져나간 염분이 채워지며 거짓말처럼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신기하네요. 이제 쌩쌩하게 산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지쳐 있던 여기자가 힘 있게 얘기하니 나머지는 자연스레 표정이 밝아졌다. 말 그대로 기사회생한 듯했다.
암벽에 숨어 사는 코끼리 한 마리
산행 초반에 진을 빼고 나니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 있었다. 일행은 마음을 다잡고 걸음에 속도를 냈다. 숲으로 접어들자 하늘은 닫혀 있는데 길은 암릉으로 바뀐다. 가파르다 싶으면 철 로프가 연결돼 있어 오르기에 어렵지는 않다.
산책로 수준의 길에서 녹다운됐던 일행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동작이 재빨랐다. 훈련에 나온 군인들처럼 일렬로 서서 발맞춰 걸었다. 절고개폭포를 지나니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다행이다.
“어? 저기에 코끼리가 있어요!” 막내 기자가 손가락으로 절벽을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정말 코끼리랑 똑같이 생겼네. 어쩜 저렇게도 닮았을까.” 바위를 올려다보며 다른 여기자도 말을 거든다. 눈을 돌려보니 그곳엔 정말 커다란 코끼리가 긴 코를 늘어뜨리며 서 있었다. 코끼리바위였다.
전국에 동물의 형상을 닮아 이름 붙여진 바위 중에 이렇게 빼어 닮은 바위가 있을까. 코끼리를 염두에 두고 자연이 정교하게 조각이라도 한 듯 큰 바위를 몸통 삼아 코끼리가 머리를 절벽 밖으로 내밀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코끼리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바위를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
숨을 돌리고 다시 산길에 올랐다. 없던 기운까지 솟아나는지 일행 모두 화색이 돌며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단숨에 전망대까지 향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좌측에 남성성을 상징하는 남근석과 함께 산 아래 정면으로 능선을 따라 산이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가을이면 능선을 타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축제가 벌어지리라. 가을날 다시 찾아 운악산이 추는 춤사위를 따라 계곡을 지나고 능선을 타고 넘으며 산무(山舞)에 동참하고 싶다.
여름 산에서 만나는 조각공원
전망대에서 정상은 지척이다.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는 운악산 명성에 비해 정상은 심심하다. 너른 땅 위에 두 개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하나는 가평군에서 하나는 포천군에서 세운 것이다. (양 정상석에 937.5m라고 높이가 새겨 있는데 안내도와 책자에는 935.7m로 표기돼 있다. 나중에 군청에 확인해보니 두 표기 모두 틀리고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가지고 있는 934.7m라는 기록이 맞는다고 한다.)
오래 머물 것 없이 하산 길에 올랐다. 만경대에 오르니 하늘이 열리면서 사방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일행이 마치 구름에 올라선 신선 같다. 내리막은 가팔랐지만, 안전시설이 잘 갖춰 있어 등산화를 신은 사람이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을 정도다.
조금 내려가니 미륵바위가 떡하니 나타났다. 미륵이라는 이름은 가족의 건강과 함께 다산을 바라는 마음으로 남근석에 붙여진 이름이다. 의미를 알고 다시 보니 비탈진 암릉에 우뚝 솟은 모양에서 우리네 정서의 해학이 느껴진다. 운악산 명물로 손색없다.
조금 더 내려가니 좌측으로 여러 폭으로 시원하게 늘어선 병풍이 일행을 반긴다. 병풍바위다. 기암괴석이 형제를 이룬 듯 어찌나 조화로운지 감탄이 절로 난다. 규모야 비교할 수 없지만, 산세는 금강산 만물상을 닮은 듯하다. 운악산을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병풍바위는 전망이 좋은 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어 풍광을 조망하며 쉬었다가 가기에도 좋다.
이곳을 지나면 사람의 속눈썹을 그대로 닮은 눈썹바위를 지나 원점 회귀한다. 오늘은 코스를 변경해서 1코스로 올라 2코스로 하산했지만, 보통은 반대로 산행한다. 2코스가 풍광이 훌륭하고 오르는 맛도 좋으니 산행 전 체력이 괜찮다면 2코스~1코스 순서를 따르는 것을 추천한다. 날씨가 더워 초장부터 진이 빠졌던 터라 산행의 재미를 오롯하게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
운악산 정보
운악산은 가평 8경 중 6경으로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운악이란 이름 그대로 구름을 뚫은 기암괴석 봉우리가 절경을 이룬다. 천년고찰 현등사와 계곡을 수놓는 백년폭포, 무우폭포 등 몸과 마음의 휴식처로 손색없다.
가평군에서 오르는 등산 코스는 총 3개로 안내소~현등사~코끼리바위~절고개~남근석~정상인 1코스(3.35km)와 안내소~현등사~눈썹바위~병풍바위~미륵바위~만경대~정상인 2코스(3.06km), 안내소~백년폭포~절고개~정상으로 향하는 3코스(3.8km)다. 보통은 2코스로 올라 1코스로 하산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따른다.]
12:00~12:15 간식 후 휴식
12:15~12:25 운악산 서봉(935.5m, 망경대) 정상으로 이동
12:25~12:35 운악산 최고봉인 청학대(937.5m, 포천시에서는 동봉으로 부름) 정상으로 회귀
12:35~13:05 남근석 전망대를 지나서 운악팔경(雲岳八景) 중 제4경인 코끼리바위로 이동
13:05~13:10 사진촬영
13:10~13:40 운악산 현등사(懸燈寺)로 이동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가평 현등사
[불교신문 3743호/2022년11월22일자]
기자명 : 권중서/조계종 전문포교사
현정론으로 당당함 보인 함허득통 선사 보는 듯 …
“스님 역할은 법을 널리 펴서 중생 이롭게 하여
사람마다 스스로 착하게 하는 것”…‘현정론’ 지어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맹목적 비판’ 꾸짖은 선사
“고용하게 텅 비어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涵虛)
신령한 빛 밝게 빛나 온 누리 꿰뚫어 비추네(得通)”
자신의 호를 임종게로 설한 함허득통 기화 대사
현등사 200m 능선에 남아 부도로 가르침 전해
운악산(935m)의 아름다움 속에 묻혀있는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 마라가미 스님이 창건하고, 도선국사가 중건하였다. 이후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스님이 운악산을 유람하다가 불탑에 등불이 매달려 빛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현등사(懸燈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운악산은 얼마나 아득하고 먼 곳인지(雲嶽何) 깔려있는 노을 아침저녁으로 짙으네(霞日夕濃)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들 옥기둥 같고(群矗玉柱) 겹겹 산등성이는 성벽처럼 둘렀구나(疊岡環金墉) 절간은 숲속 안개 속에 아득히 멀어도(招提杳林靄) 몇 리를 나무꾼 발자취 찾아 갔더니(數里尋樵踪) 부처님의 등불 옛 탑에 매달려 있고(神燈懸古塔) 신령스런 울림 저녁 종에 실려 보내네(靈送晩鍾)” 운양 김윤식은 1869년 4월 부처님오신날 현등사의 설화와 운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고스란히 시에 담아냈다.
‘배불론’ 맞선 함허득통 선사 자취
현등사는 훼불(毁佛)이 난무했던 시절 <현정론(顯正論)>으로 속 시원히 불교의 당당함을 밝힌 함허당 득통(涵虛堂 得通, 1376∼1433) 기화(己和)대사의 자취가 있어 불자라면 꼭 가봐야 할 사찰이다. 기화대사는 무학대사의 제자로 양주 회암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1421년 세종의 청에 의해 개성 대자사(大慈寺)에서 세종의 어머니 명복을 빌고 왕과 신하들에게 법을 설하였다. 이후 효령대군 등 왕실과 교분을 맺으며 대승사, 관음굴, 불희사, 연봉사, 영감사, 현등사 등에서 불사를 일으켰다. 대사는 유학자들의 배불론(排佛論)에 굴하지 않고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맹목적 비판을 바로잡기 위해서 <현정론>으로 유학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논박하였다. 8600자 분량의 글에 유자(儒者)가 질문하고 유자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현정론>에서 “유학자들은 스님들은 무위도식하며 전혀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백성들이 빈궁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불교 때문”이라고 하자 기화대사는 반론하여 “스님의 역할은 법을 널리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하여 사람마다 스스로 착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 유학자들은 불교의 유해론(有害論)을 들고 나왔다. “불법(佛法)이 중국에 들어온 뒤로 세상이 차츰 야박해지고 또 흉년이 들면서 많은 백성은 살 곳을 잃고 전염병은 날로 심해졌다. 불교의 해로움이 또 크지 않은가” 하였다. 유학자의 억지 논리에 대사는 “공자 같은 성인도 양식이 떨어지는 것을 면하지 못했고, 안회(顔回)가 요절을 면치 못한 것도 불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하겠는가?” 하고 적극 불교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유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꾸짖었다.
당당함 보여주는 ‘팔각원당형’ 부도
함허당 득통 기화대사가 문경 봉암사에서 1433년 세수 58세(법랍 38세)로 입적하자 현등사는 봉암사, 정수사, 연봉사와 함께 대사의 부도를 모신 사찰이 되었다. 대사는 자신의 호를 임종게로 바꾸었는데 “고용하게 텅 비어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涵虛) 신령한 빛 밝게 빛나 온 누리를 꿰뚫어 비추네(得通)” 하였다. 기화대사의 부도는 현등사에서 약 200m 떨어진 능선 자락에 장명등과 함께 조성되었다.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팔각의 지대석과 2단의 대석(臺石)을 올리고 홈을 파서 둥근 몸돌을 끼워 넣었다. 지붕돌은 처마를 살짝 들어 지붕을 높게 올리고 그 위에 연꽃 봉오리 보주를 올려 안정감을 주고 있다. 전면 몸돌에 ‘涵虛堂得通(함허당득통)’이라 음각되어 있다. 대사의 부도를 참배하면 불교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독존 아미타불·회상도…수많은 성보
이와 더불어 현등사에는 많은 성보 문화재가 있다. 먼저 극락전에는 독존의 목조 아미타부처님(17세기 중반 조성)과 그 뒤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높은 대좌에 앉아 법을 설하는 아미타회상도(1759년)가 있다. 극락전에는 9개의 보령과 앞뒤 용머리를 한 용가(龍駕)가 서쪽 천장에 매달려 있어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사실감을 준다. 또 극락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봉선사명 범종(1619년)의 이어진 연꽃무늬는 역동적이고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등사에는 조선 후기 특이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있다. 좌측에는 대나무가 있고, 우측 기암괴석 위에 태극과 팔괘가 새겨진 정병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 있고 파랑새 한 쌍이 앉고 날고 있다. 위쪽에는 열 명의 백의관음이 천의를 날리며 금방 나타난 듯 생동감을 주고, 수월관음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사천왕이 중간좌우를 지키고 있어 특이하다. 제일 밑에는 해상용왕, 남순동자, 베쉬다라 거사 등 5인이 법을 청하고 있다.
현등사에는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탑이 있다. 자유로운 조각기법을 보여주듯 특이한 모습의 기단은 마치 사리 장엄구를 보는 것 같이 상·중·하 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운데 돌에는 면마다 둥근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고 위 아랫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지붕돌의 부드러운 처마 곡선 등 각 부분의 양식들은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눈 여겨 볼만한 삼성각 칠성불화
특히 삼성각에는 1861년 화계사에서 조성된 칠성불화를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무수한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북극성이 천재지변을 관장하고 재앙을 물리친다고 믿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라 하였다.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의 윤신(輪身)인 치성광여래가 흰 외뿔소가 끄는 금빛 수레에 앉아 오른손을 들어 법을 설하신다. 힌두교에서는 이 외뿔소가 수레를 끌고 한 바퀴를 돌면 1년이 지난다고 한다. 또 북극성과 함께 북두칠성은 일곱 부처님이 되어 중생의 길흉화복을 살펴준다.
치성광여래의 좌우측에는 보관 위에 태양을 표현한 일광보살이 여의를 들고, 달을 표현한 월광보살이 연꽃을 들고 서 있다. 아래 좌우에는 금관 위에 흰 별을 표시한 칠원성군 7요(曜: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는 요일이 되었다. 좌측 산처럼 불쑥 솟은 기이한 형태의 대머리 노인은 남극노인으로 이 별을 보는 사람은 오래 산다고 하여 수성(壽星)이라 불렀다. 옛말에 추분(秋分)에 남쪽 하늘에 이 별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고, 나타나지 않으면 병란(兵亂)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처럼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신과 해와 달과 별을 통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치성광여래라는 이름으로 중생들에게 복락을 주고 있다.]
13:40~14:00 사진촬영 후 휴식
14:00~14:15 무우폭포(舞雩瀑布)로 이동
[무우폭포는 물이 낙하할 때 물보라가 이는 모습이 안개처럼 뿌옇게 내리는 비 같다고 하여 무우폭포라 불린다고 한다. 무우폭포 상단의 바위에는 을사조약(乙巳條約) 체결을 개탄하며 반대하다 자결한 민영환(閔泳煥)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민영환이 생전에 바위에 누워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던 곳이라 하여 ‘민영환 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14:15~14:17 무우폭포 상단의 바위에 민영환(閔泳煥) 글자가 새겨진 운악팔경(雲岳八景) 중 제6경 민영환 바위를 사진촬영
14:17~14:25 출렁다리로 회귀
14:25~14:40 경기 가평군 조종면 현등사길 26-10 번지에 있는 금강막국수로 이동
14:40~15:12 금강막국수 식당에서 막국수로 식사
15:12~15:20 경기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으로 원점회귀하여 산행 완료
15:20~15:30 경기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에서 대성리역 정류장으로 가는 1330-44 버스 승차 대기
[가평 1330-44 버스의 16시~17시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 출발시각 : 15:30시, 17:00시]
[대성리역 정류장은 운악산.현등사입구 정류장에서 40번째 정류장이다.]
15:30~16:22 1330-44 버스를 타고 운악산입구 정류장에서 대성리역 정류장으로 이동 [52분, 40개 정류장 이동]
16:22~16:26 대성리역 1번 출구까지 도보로 이동 [4분, 165m 이동]
16:26~16:50 대성리역에서 신내역으로 가는 경춘선 열차 승차 대기
16:50~18:30 경춘선 열차를 타고 대성리역에서 신내역으로 가서 6호선으로 환승하여 역촌역으로 이동 [1시간40분 소요]
운악산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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