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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느냐 떨어지느냐?
주 요 한
"떨어지느냐? 붙느냐?"
중이 염불하듯 무의식중에 자꾸 되풀이해 중얼거리고 있는 자신을 철규는 발견했다.
중학교 교정은 인파로 흐늑흐늑했다.
수험생들뿐 아니라 부모 형제 자매 친척들, 남녀 노소 모두 다 긴장한 모습으로 응성거리고 있었다.
시험장 안으로 아들 수남이를 들여보낼 때까지는 온 정신이 자기 아들 하나에게만 팔려져 있었기 때문에 어른들도 꽤 많이 왔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마다 수험표를 단 학생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자 보호자 수가 수험자 수보다도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하기는 철규 자신도 애 업은 아내까지 데리고 온 것이 사실이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수험생의 가족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도 다 몰려나온 것처럼 보이는 축이 수두룩했다.
일전에 본 일이었다. 어떤 고둥 학교 교기를 단 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 달리는 것을 그는 보았었다. 학생들이 단체로 소풍을 가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옆 사람 말을 들으니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졸업생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3학년 생도들이 대거 출동한다는 것이었다.
철규는 일정 때 전문학교 입시에 합격된 경험의 소유자였는데, 그 당시에는 입시 응원이라는 것이 없었었다.
『응원』하면 운동 경기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학 입시장과는 달리 중학 임시장에는 출신교 학생들 대신 학부형 모자매들이 거의 통틀어 응원하러 온 것이었다.
시험이 시작되자 첫째 시간분인 국어·자연 고사 문제가 게시판에 나붙었다.
모두들 게시판으로 몰려갔다.
철규는 깜짝 놀랐다. 신문면 만큼이나 큰 시험지 여섯 면이나 되는 거창한 문제인데, 고사 시간은 단 60분간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얼른 쭉 훑어보니 『자연』난(欄)에 가서는 냉장고, 시험관, 도표, 라이터 등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들 중 철규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물건은 라이터 하나뿐이었다. 라이터는 그가 몇 해째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사용해 온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 시험 훈제인 『라이터의 불이 켜지는 이치』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가 알아볼 생각을 해 본 일도 없었고 지금 갑자기 생각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는 라이터를 꺼내 들고 잠시 노려봤다. 담배에 라이터 불을 대는 그는,
"우리 수남이가 이런 것까지도 배웠을까?"
하고 혼자 물어 봤다.
그는 다시 국어 문제 나붙은 것을 들여다보면서 풀어 보기 시작했다. 답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에 동그라미를 치는 시험이란 그에게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떠듬떠듬해 보니 열네 문제 중 그가 통 모를 문제가 열두 개나 되었다.
저절로 한숨만 나왔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무엇인지 앞을 다투어 사고 있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몇이 등사판에 찍어낸 시험지 비슷한 것을 팔며 돌아다니는데, 날개돋힌 듯이 팔리는 것이었다. 한 장에 30환. 올바른 대답을 표시한 답안을 등사해 판다는 것이었다. 얼결에 철규도 한 장 샀다.
첫시간 시험이 끝나자 수험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 시험지를 그냥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답안지만 감독 선생에게 바치고 시험지는 각자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수남이를 골라잡는 일이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수험생들 모두가 다 나이가 비슷하고 복장도 같고, 생김새도 모두 영리하게 보였다 ― 이 영리한 어린이들 중 절반만이 붙고 나머지 절반은 떨어지기 마련이라니, 그것 참 ― 하고 생각하는 철규는 수남이가 꼭 붙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을 잃었다. 겨우 찾아낸 수남이를 붙들고,
"잘 치렀니?"
하고 묻는 철규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저 그렇지요."
하고 대답하는 수남이의 태도가 신통치 않았다.
바로 옆 수험생 하나는 그의 아버지의 물음에,
"아주 쉬웠는걸, 뭐."
하고 자신 만만한 대답을 하는데.
가정 교사인 듯한 젊은이들은 자기네가 맡아 과외 지도한 수험생을 붙들고 딴 데로 가서 시험지를 펴 놓고, 시험장에서 대답한 대로 표를 해 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수남이의 손에는 시험지가 쥐어져 있지 않은 것을 철규는 발견했다.
"넌 시험질 어떻게 했니?"
철규가 물었다.
"그까짓 건 들고 나와 뭘 해?"
하고 수남이가 톡 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서는 부아가 끓어올랐으나 꾹 참았다. 그가 샀던 답안지를 보이면서 그는,
"그럼 여기서 맞는 걸 골라 보려무나."
하고 달랬다.
"싫어."
하면서 아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분을 참느라고 입을 악물었다.
둘째 시간분인 사회 생활과 산수 문제가 게시판에 나붙은 것을 ˙보니 부피가 첫째 시간분에 비해 적어 보이지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더구나 누구나 다 어렵게만 생각하는 수학 문제가 서른 개나 되니 이 짧은 시간에 철규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수남이가 산수에는 재주가 있다는 말을 아내에게 누차 들어오기는 했지만.
강사 일 때문에 철규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가 밤 늦게야 돌아가곤 했었으므로 수남이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드물었덩 것은 사실이었다. 6학년생이 될 때까지는 말이다.
수학 문제를 풀어 보려고 철규는 애썼으나 정신이 산란해진 탓인지 문제 자체의 의미조차 얼른 포착할 수가 없었다.
“야, 시험지 받아들 때 덤비지 말구 침착하게 해야 한다."
하고 아들이 시험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가 한 번 더 주의해 줄 때 수남이는,
“골백번도 더 들었어요. 알아요. "
하고 대답했었다. 그렇지만 이렇듯이 문제가 까다로운 인쇄물을 받아 드는 수남이가 과연 침착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적이 의심 되었다. 철규 자신도 이렇게 떨리기만 하는데.
둘째 시간분 시험이 끝나자 철규는,
"산수 다 풀었니?"
하고 아들에게 다급하게 물어 봤다.
"시간이 모자라서 세 문제 못 했어요."
하고 말하는 수남이는 울상이었다. 아버지의 가슴은 철렁했다.
"산수는 다 했어요."
"반도 채 못했어요. "
"어려워요."
"쉬워요."
"학교에서 배워 주지 않는 문제가 난 걸 어떻게 풀어요?"
등등 여러 수험생들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멀리서 들려 왔다. 남이야 어쨌든 간에 수남이만은 잘 치렀으면 하는 생각에 철규의 마음은 사로잡히고 말았다.
수험생을 포위한 가족들이 교문이 메일 정도로 나가기도 하고, 교정 여기저기에서는 마치 피크닉이나 온 양 점심 보자기를 펴고 마호병 마개를 열고 기울이기도 했다.
철규는 수남이와 아내를 데리고 점심 사먹으려고 교문 밖으로 나섰다. 마침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 몇이 지나가다가 그중 하나가 수남이의 가슴에 달린 수험 번호 카드를 보고는,
"흥, 사팔뜨기구나!"
하고 흉보고 자나갔다.
이 사팔(48)을 가지고 바로 어제 철규는 아내와 말다툼한 일이 있었다. 수남이가 받아 온 수험표가 48번인데, 그것은 사사사(死死死), 죽을 사(死) 자가 세 번이나 겹친 것이어서 크게 불길한 징조라고 아내가 호들갑을 떠는데 대해 철규가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던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는 수남이가 지원하는 중학교에 수험 신청서를 낼 때 신청 번호가 땡이라고 기뻐 날뛰었던 그녀였다.
"학문은 도박이 아니야. "
하고 그는 아내에 게 호통쳤었던 것이었다.
꼭같은 48을 아내의 해석과는 또 달리 해석하여 멀쩡한 수남이를 눈 병신이라고 놀리고 지나가는 학생 뒤에다 대고 철규는,
"흥, 숫자풀이에는 모두들 천재인 족속이야."
하고 소리 질렀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6·25동란 때 일만 보더라도 그 해가 단기 4283년이라고 하여 국민 학교 학생들까지도 그 숫자를 거꾸로 부르면서 이 해에는 3·8선이 이사를 가니까 통일이 된다고들 떠들었었다. 이 숫자풀이가 엉터리였었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자, 소위 ≪정감록≫ 권위자로 자처하는 늙은이들은 그 책에 사천팔왕(四天八王)이라는 문귀가 있는데 그것을 파자(破字)하면 4288(四二八八) 년에는 일토 (一土)가 된다는 뜻인 만큼 그 해에는 통일이 틀림없다고 예언하는 것을 철규 자신이 직접 들은 일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미신의 허위성을 직접 발견한 철규는 온갖 미신에 대해서 불신 정도가 아니라 적개심을 품어 온 것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동네방네 소문난 관상장이 겸 점장이었다. 그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돈을 자꾸 벌고 있었으나 그와 한방에서 사는 철규는 할아버지의 속임수를 샅샅이 궤뚫어 알고 있었다. 어린 소견에도 남을 속여 돈을 버는 할아버지가 밉기 그지없었다.
그가 중학교 재학 시절, 옆집 젊은 여자에게 무당이 내렸다. 아침까지 멀쩡 했던 여인이 갑자기 솔가지를 들고 무어라고 외면서 춤을 추며 돌아가는 꼴을 보는 철규는 놀라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그 여인에게 정말로 무당이 내리는 줄로 생각했었다. 이 새로 내린 무당은 여기저기 매일같이 잘 팔렸다. 그러나 며칠 못가서 무당놀음은 순전한 연극이라는 것을 철규는 간파했던 것이다.
재래적인 미신에 반감을 가진 그는 예수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 년이 채 못 가서 그는 예수교와도 절교하고 말았다. 어떤 장로가 안수 기도로 병을 고치노라고 하며 나서자 교회당은 삽시간에 불구자·병신·환자들의 집합소로 돌변하는 것을 그가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환멸을 느낀 그는 모든 종교, 모든 미신에 대해 거의 광적인 적개감과 반발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어제 오후 일이었다.
"수험생에게는 시험 치르는 날 아침 엿을 먹여 보낼 것이요. 미역국을 먹여 보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하는 충고를 여러 사람들에게 받았다. 말 같지 않아서 실소(失笑) 하면서 그는 그 자리를 물러났다.
다방에 들른 그는 석간신문을 사 읽었다. 소위 십만 선량을 꿈꾸는 입후보자들 덕분에 요새 관상장이·점장이·사주장이들이 돈 더미 위에 올라앉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더구나 해괴한 것은 KNA 비행기로 납북된 사람들의 가족들도 점장이 집을 뻔찔나게 드나들었다는 기사가 나 있는 것이었다.
"흥, 꼴 좋다. 점장이가 그렇게 용하다면 비행기가 납북되리라는 것은 왜 예언하지 못했노!"
하고 중얼 거리면서 일어섰다.
반발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일부러 시장에 들러 미역 한 타래를 샀다. 멋도 모르는 점포 주인은,
"축하합니다. 아드님 인가요, 따님 인가요?"
하고 말하면서 싱글벙글하는 것이었다.
"애기난 것이 아니구 내일 시험 치르러 갈 아들놈에게 끓여 먹여 보내 어디 미끄러지나 보려고 그러는 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 않고 그냥 미역을 들고 점˙포 밖으로 나왔다.
집에 다다르자 아내와 일대 정면 충돌이 있었다. 아내가 엿을 사 왔기 때문이었다.
시험공부 마지막으로 하는 수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들 부부는 뒤 언덕 위로 올라가 승강이를 했다. 결국 미역국도 엿도 먹이지 않기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셋째 시간분인 실과·음악·보건 미술 시험 문제는 철규를 더한층 당황케 했다. 여러 가지 기발한 문제들 중 특히 책꽂이 만드는 문제는 그 문제의 뜻부터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거 뭐, 목수 시험을 보는 건가?"
하고 그는 투덜거렸다.
그리고 또 악보! 오선지에 그린 콩나물! 음악이란 감상도 제대로 못 하는 그는 손만 아니라 발까지 번쩍 들고 말았다.
어느 날 밤 일이었다. 술이 대취해 가지고 통금 시간 겨우 대서 집으로 돌아온 철규는 아들이 그냥 공부하고 있는 옆에 쓰러져서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는지 갈증을 느껴 깨 보니 그새 전등불은 나갔고 아들은 촛불을 켜 놓고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버지, 석전제는 어느 달 어느 날이야?"
하고 수남이가 묻는 것이었다.
"석전제가 무언데?"
하고 철규는 아들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 학교 생도인 아들이 일정
때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밥벌이하기 20년도 더 된 아버지에게 물어 보는 낱말을 그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해 되펴물어 보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들이 집에서 숙제 공부하고 있는 옆에 함께 있어 본 일이 아주 드문 그였으나, 이렇게 되물어 본 일은 수백 번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수남이는 으레 했던 버릇대로,
"아버진 참, 그것두 몰라. 공자(孔子)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이 석전제야."
하고 말했다.
―석전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도 용한데 그 날짜까지 기억해야 할 필요는 어디 있을까 하고 철규는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수남에게 알려 주지는 못했다.
"글쎄, 날짜는 나두 모르겠다. 모를 건 꼭 표해 두었다가 내일 학교 가서 선생님께 물어서 꼭 외도록 해라."
하고 그는 말했다.
"꼭 표해 두었다가 내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물어서 꼭 외도록 해라."
하고 수남이에게 그가 말한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도록 많았었던 것을 회상하는 그는 ― 국민학교 선생이 되려면 백과사전이 돼야겠군 ― 하고 다시금 생 각했다.
마지막 시험까지 끝내고 나온 수남이에게, 『그래 자신 있게 치렀니?』 하고 묻고 싶은 색각을 굴뚝 같았으나 그는 그것을 꾹 참았다. 수남이의 대답을 듣기가 무서워서였다.
그러나 그가 지나간 일 년 동안 수남이에게 사 준 시험 준비용 서적 부피가 그의 눈앞에 아련히 나타났다.
’학력 수련장, 전과 지도서, 실력 공부, 입학 시험문제집, 예능·보건·실과 완성, 방학 공부, 하기 완성, 모의 시험 문제, 모의고사 등등, 또 그리고 수남이가 매일 밤 한 시 두 시까지 앉아서 동그라미치고 × 자 긋고, 써 넣고, 지워버리고, 계산하고 하던 수십 권의 『4291년 중학교 입사를 위한 필답 고사 예상문제집』, 부피가 두꺼운 책, 얇은 책, 책, 책, 책, 수남이의 책상에 쌓이고 쌓인 책들은 을지로 1가 건물들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또 그리고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 5학년용 교과서 공부를 다시 해야 된다고 해서 아내가 인근 친척 집들을 싸돌아다니며 5학년 교과서 빌려 오느라고 고생 고생하던 일!
또 그리고 밤마다 집에서 붙들고 씨름해 온 숙제, 숙제, 숙제!,
"다 못 해 가면 선생님 한테 매맞아."
하고 우겨대는 수남이는 모의고사와 숙제가 겹치는 날마다 밤을 새우다시피 했었다.
수남이의 얼굴은 노래가고 신경질이 날로 늘어갔다.
국민 학교 5학년까지는 계산에 넣지 않고 6학년 일 년 동안만 수남이의 머리 속에 간직해 놓은 수십 억 낱말을 가지고는 물론 자신 만만하게 시험을 치렀겠지 하고 철규는 스스로 위로했다.
아버지는 수남이의 눈치만 살폈다. 명랑한가? 우울한가? 어찌 보면 우울해 보이고 어찌 보면 명랑해 보이기도 하여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 다다르자 수남이는 곧장 자기 책상께로 갔다. 책상 위에 겹겹이 쌓여 있는 참고서 모의 시험 문제집, 실력 공부 책들뿐 아니라 ¨교과서까지 전부 포개서 한 아름 가득 든 그는 문 밖으로 나갔다. 책 한 아름 들고 뜰 아래 변소로 들어간 그는 쉿쉿 소리를 지르면서 책들을 깡그리 변소 속으로 내동댕이치는 것이었다.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저렇 게 발광까치 할까? 쯧쯧쯧!"
하고 철규는 혀를 찼다.
이튿날 아침 늦잠 자는 수남이를 깨우지 않고 철규는 상점으로 나갔다. 수남이를 데리고 학교로 면접하러 가는 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이 상점 저 점포들에서는 모두 중학교 입학시험 이야기뿐이었다.
"우리 딸년은 아마 백육십 점쯤 딴 모양이더군요."
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하, 그거 참 잘 치렀구만요. 그럼 댁 애기는 붙었소. 찰떡 같이 붙었어요. 그 끝수면 평균 팔십이 퍼센트나 되니까. 우리 녀석은 백 점도 채 못 딴 모양이던데."
하고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철규는 어안이벙벙 했다. 그는,
"아니, 몇 점 땄는지 어떻게 벌써 알아냈소?"
하고 겅둥대고 물었다.
"오늘 아침 신문 여태 안 읽었소?"
한 사람이 물었다.
"신문이라니 ?"
"자, 여기 있소. 이것 보슈. 고사 문제뿐 아니라 답안, 그리구 매 문제 점수까지 다 나지 않았소?"
철규는 신문을 들여다봤다.
"으음! 백구십오 점 만점이군요."
그가 말했다.
"그런가요? 아니, 난 매 과목 백 점 만점으로 보고 총 만점 사백점이라고 가정하고 우리 애 점수를 계산해 봤더니 이백 한 팔십 점 되던데요."
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사백 점 만점치고 이백팔십 점이라. 가만 있자, 그럼 칠십 퍼센트 가량 되는구먼요. "
"칠십 퍼센트면 붙을 수 있을까요?"
"글쎄, 아슬아슬하군요. "
"뚜껑을 열어 봐야 알지요, 그 전에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문제는 몇 점에서 끊느냐가 문제지요."
"오늘 신문을 보니 모집 정원은 이만 삼천 명밖에 안 되는데 지원자 수는 삼만칠천 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만 사천 명은 미끄러지는 것이지요."
"지원자 수가 정원에 미달되는 학교도 더러 있을 거라고들 하던데요."
"시골서 육천 명이나 올라왔다는데요."
"시골뜨기들은 왜 와 가지고 우릴 골탕먹일까, 내 원."
그 동안 신문을 들고 듣고만 앉아 있었던 철규는 신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자리를 떴다.
집에는 수남이도 아내도 맏아들도 없고 식모 혼자 있었다.
그는 기다렸다. 마음만 더 초조해졌다.
신문을 방바닥에 펴 놓고 들여다봤으나 글자들이 소리소리 아물아물할 뿐 의미를 포착할 수 없었다.
담배만 연이어 피웠다. 혀가 깔깔해졌다.
수남이와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철규는 신문을 수남이에게 보이면서,
"너 여기 이걸 보구 몇 점이나 땄을는지 계산해 보아라."
하고 말했다.
"그건 해 보면 뭘 해요? 이 점수 본다구 붙구 떨어지구 하나요."
"이 자식아, 애비 속 태우지 말구 한번 해 봐!"
"여기 해 봐야 소용없어요."
"에이, 망할 자식. 참 별 괴짜로군."
"괴짠 누가 정말 괴짜요. 당신이 괴짜지."
하고 아내가 가시를 올렸다.
"어째서?"
하고 철규가 고함쳤다.
"미역을 사 들고 오는 사람이 괴짜가 아니구 뭐요."
"듣기 싫어."
어느 새 수남이는 밖으로 나갔다.
"그놈 눈치가 어떻습디까?"
하구 철규는 목소리를 재간껏 부드럽게 해 아내에게 물었다.
"붙을 자신이 있길래 만판 천하태평이겠지요."
"붙을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자신이 통 없으니까 자포자기해서 그러는 건지 어떻게 아우?"
"구단위(區單位) 고사 성적은 꽤 좋다고 그러던데요."
"누가?"
"수남이가 그러지 누가 그래요."
"제기랄 것. 이차 시험 제도는 왜 갑자기 없애 놓구 남 애를 이처럼 태우게 할까?"
하고 탄식하는 철규는 재작년에 중학교에 겨우 입학한 맏아들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이차 시험은 없어도 특차가 있답니다."
하고 아내가 말했다.
"누가 그래 ?"
"모두들 다 그러지요. 수남이에게 엿을 못 먹이게 한 괴짜두 안심은 안 되는 모양이군. 안심 안 되면 호적 초본이나 빨리 한 벌 더 해 와요."
이튿날 아침 일찍 철규는 구청으로 갔다. 사람들이 득시글거렸다. 특히 여인네들이 절대 다수였다.
ㅡ맏놈 때에는 2차 시험 치르는 학교가 많아서 덕을 봤었는데, 이번엔 특차 학교 하나밖에 없다니 이거 큰일 아닌가! 그러나 그때에는 걔 담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공연히 내가 고집 피우기 때문에 1차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이번엔 담임 선생의 소건에 따랐으니까 염려 없겠지―하고 철규는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는 사람 하나가,
"매사는 불여 튼튼이지요. 그런데 그 무시험 입학이라는 것 때문에 금년에는 이런 혼란이 일어났지요.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구 말구요. 무시험 입학 때문에 시골 학교와 변두리 학교들이 과외의 덕을 입고 우리만 골탕먹구 있지요. 그런데다 그 무엇이라더라, 뭐 상관 회귀 곡선 (相關回歸曲線) 이라는 것 때문에 무시험 전형이 전적으로 불공평하게 됐대요."
하고 한 사람이 맞장구치는 것이었다.
"변두리 국민 학교에서는 수(秀) 하나에 삼천 환씩 주고 샀답데다. 시내 일류 중학에 무시험 입학하려고……."
이런 대화를 들으면서 줄지어 서 있는 철규의 머리는 더욱더 혼란해 지기 만 했다.
지원서 접수 마지막 날 오후에 철규는 수남이의 지원서를 특차 중학교에 제출했다.
지원자 수가 2천여 명에 달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탄식하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는 그였다.
합격자 명단 발표하기로 예정된 전날 밤, 철규는 몸을 뒤챌 뿐 잠을 들지 못했다. 아내도 잠 못 드는 모양이었다.
시험 치른 그 날 밤부터 수남이는 잠에 취해 있었다. 마치 지나간 1년 동안 밑진 잠을 한꺼번에 보충하려는 듯이.
철규는 그 날 새벽 일을 회상하고 있었다. 아직 동도 트기 전이었는데 수남이가 잠꼬대를 했던 것이었다. 제 잠꼬대에 가위 눌려 잠을 깬 수남이는,
"엄마야, 나아 떨어졌어!"
하고 말했다.
"아니야, 너 꿈꾼 거야. 꿈 해몽은 반대로 하는 법이니까 넌 꼭 붙었다."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꿈?"
하고 수남이는 의심난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그래, 네가 꿈을 꾼 거야. 그런˙데 꿈에 떨어지곤 어쨌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엄마랑 나랑 자꾸자꾸 울었어."
"아버지는?"
"아빠는 없었어."
철규의 가슴은 뭉클했다.
그날 오후 일이었다. 길 건너 상점 주인은 중학교에 아는 선생이 있어서 전화를 걸어 보았노라고 철규에게 말했다. 아직 채점이 다 끝나지 못했는데 밤 새워서라도 채점을 끝내고 이튿날 아침 일찍 뜯어 일람표를 만들고 커트라인이 결정되는 대로 곧 방을 붙인다는 말이었다. 시험은 예년에 비해 대부분이 잘 치른 셈이므로 커트 라인이 좀 높아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여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한 철규는 푸떡 잠이 깨이자 라이터 불을 켜 시계를 봤다. 오전 4시 3분 전. 통금 시간은 금방 끝날 것이다. 그는 후닥딱 일어섰다.
재작년 이맘때 방 붙이는 날 맏아들을 데리고 학교로 갔었던 생각이 났다. 처음 훑어 읽어 보고 제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 소년의 얼굴은 해쓱해졌었다. 숨을 죽이고 두 번 세 번 거듭 자세히 쳐다보는 그의 이마에 구슬땀이 쏴 내돋는 것을 철규는 봤었던 것이었다.
"오늘은 내가 혼자 가 봐야지."
하고 중얼거리는 그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옷을 갈아 입었다.
동이 아직 트기 전이었건만 교정에는 벌써 수백 명 남녀가 모여 서성거리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 하고 교정을 왔다갔다 하는 철규의 머리 속에는 십땡이니, 48이니, 미역국이니, 엿이니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풀이되고 있었다.
ㅡ그 날 아침 엿이라도 먹였더라면 ㅡ하는 허망스런 생각이 그의 신경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떨어 버리려고 그는 몸부림 쳤다. 갑자기 그는,
"시대 착오다. 시대 착오……."
하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햇볕의 선발대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떼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1958〉
2016년 11월 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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