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공주 키우기
어떤 일이든지 미루거나 지연시키는 예진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예진이는 세수도 미루고,
양치도 미루고 손 씻기도 미루었지요.
“쫌 있다 할게.”
“금방 할 거라고!”
그렇게 ‘해야 할 일’들을 미루는 예진이는 행동도 느려서 식사 시간에도 느릿느릿, 밥 먹는 것도 느릿느릿 먹었어요.
“그렇게 느려가지고 언제 밥을 다 먹겠니?”
엄마가 걱정을 하시면 예진이는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어요.
“아니다. 얘야, 느려도 괜찮으니 밥을 다 먹으렴.”
“정말?”
“그럼, 정말이고말고.”
“엄마는 나가 있을 테니 맘 편하게 천천히 밥을 다 먹으렴.“
그때부터 예진이가 밥 먹을 때면 엄마는 밖에 나가서 예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식사 때마다 바깥에 나가서 우두커니 서 있는 엄마를 본 이웃집 아줌마가 물었어요.
“왜, 밖에 나와 서 있는 거예요?”
“우리 예진이가 밥을 다 먹게 하려고 그래요.”
“어머, 댁의 예진이도 밥을 느리게 먹는군요. 우리 아들 용석이도 느리게 먹는답니다.”
용석이 엄마도 용석이가 밥을 먹을 때면 예진이 엄마처럼 밖에 나와 기다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예진이는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 예진이는 연초록의 숲속으로 걸어갔어요. 숲속의 키 작은 나무들을 둘러보는데
한 나뭇가지에 동그란 새 둥지가 있었어요. 둥지 안엔 조그만 알이 한 개 들어있었어요.
“무슨 알일까? 산새 알일까, 물새알일까?”
예진이가 신기한 눈빛으로 알을 들여다보는데 알껍데기가 깨지면서 작은 아이가 나왔어요.
“아이 깜짝이야!”
“알 속에서 나온 아이는 예진이를 보곤 깜짝 놀랐어요.”
“놀랐니? 나도 놀랐다 얘. 그런데 너는 누구니?”
“나는 네 몸속에 있는 긍정적인 아이야.”
“그래? 그런데 너무 작다.”
“걱정 마. 네가 날 키워주면 너만큼 클 수 있어.”
“정말?”
예진이는 너무나 신기해서 작은 아이에게 ‘엄지공주’란 이름을 지어줬어요.
예진이는 유일하게 관심을 끄는 대상이 생겼어요.
엄지공주는 예진이에게 옷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래, 내가 옷을 준비해 줄게.”
다음 날 예진이는 인형의 옷상자에서 엄지공주의 옷을 골랐어요.
그런데 어디에 놓아둬야 꿈속에서도 그 옷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요.
‘책상 위에 놓아둘까, 침대 위에 놓아둘까?“
곰곰이 생각하던 예진이는 엄지공주가 숲속의 나뭇가지 둥지에서 태어났다는 데 생각이 미첬어요.
“그래, ‘꿈의 정원’을 만들어야겠어.”
예진이는 4절지에 꿈에 본 숲속을 그리고, 그 안에 인형 옷을 담아서 숲속에 놓아뒀어요.
그날 밤 꿈속에서 예진이는 엄지공주와 함께 꿈의 정원에 가 보았어요.
그랬더니 정말로 인형 옷이 있었어요.
예진이는 인형 옷을 엄지공주에게 입혀줬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엄지 공주는 무럭무럭 자라나질 못했어요. 얼굴은 비쩍 마르고 몸도 가늘었지요.
“엄지공주야, 네가 너무 못 먹어서 몸이 자라지 않는 것 같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봐.”
“응. 나는 아침 이슬을 좋아해.”
“그렇구나! 그렇다면 내가 아침이슬을 받았다가 갖다 줄게.”
다음 날 예진이는 이른 새벽에 눈을 떴어요.
밖으로 나간 예진이는 초원으로 가 보았어요. 초원의 풀잎엔 이슬방울들이 조롱조롱 달려 있었어요.
예진이는 요구르트 병을 깨끗이 씻었어요. 예진이는 깨끗이 씻은 요구르트 병에 아침이슬을 담아서
꿈의 정원에 갖다 놓았어요.
그날 밤 꿈속에서 예진이는 엄지공주와 함께 꿈의 정원에 가 보았어요. 그랬더니 있었어요.
꿈의 정원엔 아침이슬이 담긴 요구르트 병이 있었지요.
“엄지공주야, 이거 아침이슬이야. 먹어보렴.”
엄지 공주는 아주 기뻐하면서 요구르트 병에 담긴 아침 이슬을 맛있게 먹었어요.
“아유, 이제 살 것 같다. 그 동안 너무나 배가 고팠거든.”
“그래? 다른 음식은 먹고 싶은 거 없어?”
“있지.”
“뭐가 먹고 싶은데?”
“민들레꽃이 먹고 싶어.”
“그렇구나. 내일은 민들레꽃을 준비할게.”
예진이는 다음 날 밖에 나가서 들에 피어 있는 민들레꽃을 따다가 ‘꿈의 정원’에 놓아뒀어요. 그날 밤도
예진이는 꿈속에서 엄지공주를 만났어요. 예진이는 엄지공주에게 민들레꽃을 줬어요. 엄지공주가
민들레꽃을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예진이의 정성 때문인지 엄지공주는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엄지손가락만 했던 엄지 공주가
예진이의 손바닥만큼 자랐으니까요.
엄지공주는 예진이가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달리기 운동을 하자고 했어요.
“준비, 달려!”
예진이는 엄지공주와 함께 아주 빠르게 달리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엄지공주가 이겼지만 점점 더 예진이가 빨라졌어요.
“이젠 정말 잘 달리는구나.”
엄지공주가 너무너무 기뻐했어요.
예진이는 다음 날 밤도 그 다음 날 밤도 꿈속에서 엄지공주와 함께 달리기를 했어요.
무럭무럭 자라나던 엄지공주는 입던 옷이 작아져서 옷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 후로 엄지공주가 자랄 때마다 예진이는 자신이 어릴 적에 입었던 옷을 꿈의 정원에 놓았다가
엄지공주에게 입혀주곤 했어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나던 엄지공주는 마침내 예진이만큼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 예진이와 엄지공주는 연초록 숲속에서 즐겁게 놀았어요. 그렇게 재미있게 놀던
엄지공주가 예진이의 양손을 잡으면서 말했어요.
“예진아, 지금도 무엇이든지 ‘해야 할 일’들을 미루거나 지연시키니?”
“응.”
예진이의 대답에 엄지공주가 말했어요.
“예진아, 나를 잘 봐.”
“응.”
그 순간 엄지공주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어요.
“엄지공주야, 왜 그래?”
“이제 나는 네가 될 거야.”
그 말을 남긴 채 엄지공주는 예진이의 눈앞에서 점점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어요.
그와 함께 예진이는 꿈속에서 깨어났어요.
신기한 것은 그날부터 예진이는 어떤 일이든지 미루거나 지연시키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손을 씻고요. 밥도 또박또박 꼭꼭 씹어 먹고요.
밥을 먹고 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양치했어요. 놀더라도 그날의 숙제를 마친 후에야 놀았지요.
하지만 그날 밤 이후엔 꿈속에서 엄지공주를 만날 수 없었어요.
예진이의 몸속엔 엄지공주가 있어서 긍정의 힘을 주었어요.
순발력도 좋아서 체육시간이면 달리기도 아주 잘 했어요.
예진이의 변화된 모습을 본 엄마 아빠는 너무나 기뻤어요. 엄마 아빠는 예진이에게 예쁜 옷을 선물했어요.
예쁜 옷을 입은 예진이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김경자(함초롬) 글. 그림.
한국문학인 2024년 여름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