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은 러시아 평원에서의 공격이 직면할 지리적,기후적 어려움을 잘 가늠하지 않은 채 러시아 침공을 결정했다. 그는 1812년 봄에 대규모군대를 다시 모았다. 12개의 국어나 방언을 말하는, 전유럽에서 모인 65만여명의 군대에 맞서는 러시아 군 23만 명은 쿠투조프가 지휘했다.
1812년 6월 24일, 대(大)군대가 러시아에 침공했다. 대국대는 그 이질성으로 말미암아 곧 통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어떠한 결정적인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군은 점차 무한한 러시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고 비텝스크(7월 29일),프몰렌스크(8월 18일)를 장악했다. 후퇴하던 쿠투조프는 1812년 9월 7일에 모스크바를 구하기 위하여 보로디노 전투를 벌였다. 나폴레옹은 승리했으나 러시아 군 4만5,000명과 프랑스 군 5만 명이 전사했다.
1812년 9월 15일에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 입성했으나, 그 주민들은 피신했고 러시아 군의 주력은 언제나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황제가 거느렸던 병사는 11만 명을 넘지 못했다. 대군대의 병력은 녹아버리듯이 줄어들었다. 사실상 정복한 도시에 수비대를 주둔시켜야 했고, 게다가 질병,불량한 보급,군기의 해이로 말미암아 매일 5,000~6,000명의 병사가 줄어들었다. 러시아 군은 수도를 초토화시켰다. 3붕의 2가 파괴된 모스크바는 겨울을 나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10월 19일, 나폴레옹은 스몰렌스크로 후퇴를 명령했다.
후퇴는 추위(11월 5일에 섭씨 영하 10도, 11월 29일에 섭씨 영하 30도),기아, 특히 카자흐 족의 집요한 공겨으로 혹독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네가 지휘하는 후위군의 병력은 6월에 3만6,000명에서 11월 21일에 600명으로 줄어들었다. 얼음이 얼지 않은 베레지나 강의 도하는 비극적이었다. 12월에 겨우 빌나에 도착한 것은 굶주리고 누더기를 걸친 군대였다. 전체적으로 대군대는 38만 명의 병사를 잃었다(사망,탈영,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