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월 중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요즘 새롭게 우리의 시야를 반겨주는 예쁜 꽃과 연록의 잎들이
참 싱그럽고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삼십팔 년 동안 앓고 있는 가련한
병자의 치유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이 병자는 자신이 분명 그 연못에 먼저 들어갈 수 없음에도
낫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연못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육신 못지 않게 마음의 상처 또한 깊었을
것입니다. 아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고
치유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으리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을 외면하실리 없으시지요?
“건강해지고 싶으냐?”고 말씀하시며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들도 삶 속에서 많은 시련으로
포기하고 싶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예수님께서 함께 하여주시고 낫게 하여주시리라는
희망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위안을 받습니다.
그런데 진정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룩한 사순시기!!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부딪치고 깨어지고 부서진 마음들이
제 자리를 찾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새롭게 이웃과 가족을 더욱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를 살리러 오신 예수
-허찬란 신부-
요한 복음사가는 수학자 같습니다. 요한 복음은 전반부에 “세상을 살리러 오신
예수님”, 후반부에 “그 살리는 방법으로 사랑을 택하심”으로 나뉘며 전반부
예수님의 활약상은 유다이즘에서 완전을 뜻하는 일곱 가지 표징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모든 일들이 다 놀라운 일이지만, 요한 복음사가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일곱 가지 사건을 배치하는데 그 세 번째가 베짜타 못가의 병자를
살리심을 알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병자가 양의 문 옆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아서 연못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38년을 앓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질병과 오랜 병고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그만큼
깊었음을 얘기합니다. 또한 요한 복음사가의 전형적인 인간 심리 분석 방법인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만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모르는 인간 실존의 비참함을
얘기하면서 예수님이 바로 구원을 바라는 인류 안에, 가장 보잘것없는 이,
바로 38년이란 오랜 세월, 매일의 일상 속에서 버려진 불쌍한 인간,
바로 내 자신을 살리러 오심을 얘기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에
자리하는 세상 속의 하느님 나라를 알면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방향상실, 매일 이어지는 공허한 삶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등에 업고 베짜타 못가로 향하고 계십니다
첫댓글 예수님은 오늘도 저를 살리시기 위해서 못가를 거닐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