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1편, 미사일보다 자전거가 무기인 나라, 네덜란드
세계 최초의 항공사 네덜란드 KLM의 미사일 트라우마
▲ 자전거 천국이라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전거를 탄다고 해지 않고 자전거와 함께 걷는다고 한다. 우리처럼 사이클 복장을 갖춰입고 타는 게 아니라 그저 일상복 차림으로 타고 있다. 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다. 사진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인 램브란트의 동상이 있는 암스텔강 옆으로 주말을 맞아 자전거를 즐기는 시민 .
우리나라 시간으로 2023년 9월 19일 밤 22시 50분. 인천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네덜란드 KLM(코닝크룰 루후트화트 마츠핫페이의 네덜란드어 약자. 영어로 Royal Aviation Company, Inc. 왕립 항공사)이 탑승 직전에 갑자기 운항이 취소됐다.
영문을 모르고 웅성대던 100명 이상의 승객들은 한참 뒤에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상했다. 다른 항공사 소속 여객기는 오늘 모두 이상 없이 출항한 터였는데 가장 늦은 시간에 출항하는 KLM만 취소됐으니까 말이다.
“그럼, 두 나라가 전쟁 끝내기까지 못 가는 거야?” 옆에 있던 승객이 탄식하듯 혼자 말을 했다. “아닐 겁니다. 항로를 조정하거나 다른 항공사로 대체해 주지 않겠어요?” 나는 자못 의젓한 척 그에게 기다려보자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항공사 직원들이 승객 전원을 입국 절차를 밟게 해서 공항을 나오게 한 뒤 인근 호텔에 투숙시켰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나는 갑자기 몇 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 인근 법원에서 298명이 숨진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 재판이 네덜란드에서 시작됐다는 기사가 떠올라 노트북을 열었다.
2014년 7월이었다.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보잉777 여객기 MH17편이 동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아 격추됐다. 당시 동부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를 등에 업은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의 내전이 한창이었는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민간여객기가 변을 당한 거였다.
조사결과 러시아제 버크 미사일에 격추된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는 공격 배후설을 꾸준히 부인해 왔다. 하지만, 기소당한 러시아인 3명과 우크라이나인 1명은 모두 러시아 측 분리주의 무장 세력과 연관돼 있었다.
그렇다면 왜 재판을 말레이시아가 주도하지 않고 네덜란드일까? 그것은 당시 298명의 희생자 가운데 3분의 2가 네덜란드인이었고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그제야 나는 네덜란드 항공사의 운항 취소가 당시 미사일 공격을 받아 자국민을 잃었다는 정신적 충격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오전까지도 오리무중이었던 운항 계획은 다행히 두 나라가 휴전에 합의했다는 소식과 함께 정확히 원래 떠나야 할 날짜보다 24시간 뒤인 밤 10시 50분에 재개되었다. 그런데 항공기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상공을 피해 옛날 동서양 실크로드 상공으로 돌아서 가고 있었다.
코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추적해 보니 확실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네덜란드를 포함해 서유럽 국가 항공기가 모두 러시아 상공을 피해서 다녔다.
13년 만에 조선을 탈출한 네덜란드 선원들 처럼...
모니터를 보다 깜박 잠이 든 나는 네덜란드가 좁은 국토를 벗어나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로 바다로 나아가 세계 최강의 해상무역국으로 이름을 날렸던 17세기로 돌아가 있었다.
▲ 물의 나라 답게 항해술과 조선술이 뛰어났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좁은 국토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바다로 진출했다. 17세기 세계 최강의 해양 강국이었던 시절에 활동했던 동인도회사 소속의 대형 범선의 모습.
1653년(조선 효종4년) 1월 10일, 조선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항을 떠난 포겔 스트루이스(Vogel Struuijs)호가 네덜란드의 서인도 회사가 있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바다비아로 향했다.
네덜란드는 열악한 국토, 자원, 인구 등을 극복하기 위해 1648년 스페인과의 80년 독립전쟁 이전부터 바다로 눈을 돌렸다. 1602년에는 유대인들의 투자를 받아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인도, 아시아, 동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에 진출했고 1609년에는 세계 최초의 증거거래소를 암스테르담에 열었다. 그리고 1612년에는 뉴욕의 전신인 뉴 암스테르담을 건설하기도 했다.
동인도회사가 성공하자 1621년에 서인도 회사를 설립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점거한 네덜란드는 일본의 나가사키에 있는 상관(商館)을 거점으로 일본과의 무역을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
포겔호 선원들은 서인도 회사에서 휴식을 취한 뒤 스페르베르호로 갈아타고 대만의 신임 총독을 임지에 데려다주는 임무를 완수한 뒤 상부의 지시를 받고 네덜란드 상관(商館)이 있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출항했다. 당시 쇄국(鎖國)정책을 폈던 일본은 네덜란드에게만큼은 문호를 개방해 1641년부터 1859년까지 무역과 교류를 허락했다.
▲ 바다 보다 낮은 땅에 물이 고이면 풍차 펌프를 이용해서 바다로 물을 퍼올렸다. 오늘날 풍차는 현대식 모터로 바뀌었지만 관광객을 위해서 일부 풍차가 관리 운영되고 있다.
스페르베르호는 그러나 나가사키에 도착하기도 전에 심한 풍랑을 만나 64명의 선원 가운데 28명이 익사했고 나머지 생존자 36명은 제주도로 표류해 상륙했다가 한양으로 호송되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56년 3월 전라도로 옮겨졌다.
그동안 14명이 죽었고 생존자 22명은 여수 · 남원 · 순천으로 분산, 수용되었다. 잡역에 종사하면서 때로는 구걸에 나서며 고난의 억류 생활을 계속한 이들은 1628년(인조 6)에 역시 배가 표류하여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Weltevree, 박연)를 만났으나 동포를 만난 감격도 잠시, 고통스러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이들 중 포수(砲手)였던 하멜이 억류 생활을 한 곳은 전라도 여수 좌수영이었다. 다행히 그는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해 먹을 것을 구하느라 부근의 섬들을 내왕하면서 조수와 풍향 등을 잘 알게 되어 탈출을 꿈꿨다. 탈출 직전까지의 억류 생존자 수는 모두 16명이었다.
이들은 탈출 비밀이 탄로가 날까 두려워 전원이 같이 탈출하지 못하고 1666년(현종7) 9월 4일 야음을 틈타 8명만이 탈출에 성공해 일본의 나가사키를 거쳐 2년 뒤인 1668년 7월 암스테르담으로 귀환했다. 탈출에 가담하지 않았던 나머지 8명은 조선 정부의 인도적인 배려로 석방된 뒤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귀국선에서 서기(書記)를 맡았던 하멜은 그들이 억류당했던 이야기를 썼는데-이 원고는 그가 13년 이상 밀린 자신의 봉급을 동인도 회사에 요구하느라 귀국하기도 전인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3개 출판사에 의해 동시에 출간되었다.
하멜이 되돌아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하루 반 만에 겨우 도착
사위가 희붐한 새벽 5시 반, 우리가 탄 KLM 868 항공기는 용케 마시일 공격(?)을 피해 조선을 탈출했다가 13년 만에 돌아온 하멜 일행의 귀국선처럼 인천공항에서부터 13시간 반이 넘는 길고 고단한 장거리 비행의 짐을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활주로에 덜커덩 부려놓고 있었다.
▲ 1919년 창립한 세계 최초의 민간항공사인 네덜란드KLM 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네덜란드 암스텔담 스키폴 공항.
간접 구금(拘禁)이나 진배없이 밀폐된 공간에서 48시간 가까이 보낸 데다 불면의 고통까지 겹쳐 심신이 파김치가 된 우리는 면세구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항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초콜릿 크로와상을 12유로 90센트를 주고 사서 카페에 딸린 파라솔 의자에 앉아서 마시며 긴장을 풀어야 했다.
그때였다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뭐지? 고개를 돌려 카페 창을 보니 아뿔싸! 무수한 빗방울이 맺혀 벌레가 지나간 자국처럼 유리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뭐야 이거, 지금 여기 비가 오잖아, 이런 젠장, 하루를 까먹은 것도 속이 상한데 업 친 데 덮친 격이네. 비까지 내리다니 이거 자전거를 취해하러 온 우리는 망한 거 아닌가,” 하여 나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김 PD, 비가 오면 사람들이 자전거를 안타잖아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자 김 PD도 애처로운 듯 나를 보고 비가 내리는 창밖을 응시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무슨 방법이 있겠지요.”라고 위로했다.
“빗속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있을까? 이거 취재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치 않는데 네덜란드 자전거 취재를 못하는 건 아닐까?” 항공기 운항을 하루 취소시키더니 비까지 내리는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고...나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져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 비오는 날에도 자전거로 출근하는 암스테르담 시민들,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하나로 생활화되어 있기 때문에 날씨에 관계없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진은 암스테르담 중앙역 뒷편의 자전거도로. 굵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우였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가 탄 택시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반도로로 진입하자마자 우리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아, 저거 봐! 김 PD,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아! 비가와도 이 나라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나봐”
그때서야 우리는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는 듯이 “으흠~ 역시 네덜란드는 달라,”라고 하면서 즐거워했다. 암스테르담의 자위트(Zuid, 영어로 South라는 뜻임)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어 놓자 마자 무섭게 우리는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숙소를 뛰쳐나왔다. 그때가 아침 8시 무렵이었다.
제7-2편, 가을비 내리는 암스텔담, 자전거는 쉬지 않았다
숙소 근처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출근자들은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비옷 차림이었다. 간혹 무릎까지 내려오는 색깔 판초우의를 걸치기도 했지만 이들은 모두 헬멧을 쓰지 않은 채, 폭 2미터, 바닥을 붉게 칠 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시속 20km정도로 제법 굵은 빗줄기를 뚫고 나갔다. 내 앞 자전거도로를 지나는 자전거 숫자는 얼추 손가락으로 꼽아 봐도 2분에 1~2명은 되는 듯 했다.
▲ 암스테르담 시 남쪽에 있는 자전거도로로 출근하는 시민.. 오른쪽으로는 차도가 있고, 그 옆으로 트램이 다니는 철도가 있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트램 보다 더 높은 통행권을 누리고 있다. 비가 와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
“야, 비켜 xx야~” 네덜란드에 와서 자전거도로 위에 서 있다가 욕이 분명한 소리를 듣고 불쾌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네덜란드에선 자전거 도로에서 어정거리면 안 된다고 귀띔했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인 나라, 특히 이 나라의 수도인 인구 82만 명의 암스테르담에서는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이 보행자를 우선적으로 지켜줘야 하지만 자전거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 오죽하면 “자전거에 치이는 것 빼고는 안전하다”고 말하겠는가.
우리는 트램(전차)과 지하철을 이용해 암스테르담 중앙역 운하와 선착장에 와서야 사람들이 왜 암스테르담을 세계의 자전거 수도라고 하는지 알아 차렸다. 우중에도 운하 건너편 재개발지역을 오가는 배를 타기 위해 자전거 핸들을 붙잡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선착장이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 바다와 연결된 암스텔담 운하 건너편에서 바라본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모습.
한 조사에 의하면 이 역을 이용하는 승객의 45%는 자전거를 타고 역 지하주차장에 자전거를 보관하고 열차를 이용해 여행한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 뒤편 선착장에서 운하 건너편 재개발 지역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를 휴대하고 배를 타고 있는 시민들. 배삯이나 자전거 운임은 무료.
▲ 운하 건너 재개발 지구 선착장 입구에 셀 수 없이 많은 자전거들이 주차되어 있는 모습
배를 타고 운하를 건너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배를 탄 사람 가운데 절반가량인 30~40명은 자전거를 휴대하고 서 있었다. 예방접종을 하러가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는 20대 중반의 한 젊은이는 우리의 질문에 “자전거를 타면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고 교통정체가 없어 좋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를 탔다는 그는 노란색 판초우의를 입고 있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열차에 자전거를 휴대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귀띔까지 해 주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30대 회사원인 남성은 “우크라이나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빨라서 자전거를 안 탈 수 없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암스테르담에선 자동차로 20~30분 걸리는 거리가 자전거로는 1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는 “네덜란드에 와보니 자동차를 사려면 높은 세금을 내야 하는 등 탄소절감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자전거를 타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 우크라이나에서 온 30대 회사원은 “암스테르담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빠르다. 자동차를 사려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데 탄소 절감을 위해 정책적으로 자전거를 타도록 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유럽에는 여러 나라의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 코스, 유로 벨로(Euro Velo)가 17개가 있다. 마침 스위스의 안데르마트에서 로테르담까지 1,233km의 15번 코스를 여행하는 네덜란드와 호주의 두 젊은이들을 만났다. 친구 관계라고 밝힌 두 사람은 “같이 휴가를 얻어 여행을 시작했다”면서 “휴대용 텐트에서 잠을 자며 이곳이 6일째 인데 불편하거나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고 환한 미소를 짓는 이들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넘쳐났다.
▲ 유럽의 여러 나라에 국경을 넘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 코스(유로 벨로)가 17개 있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은 주로 텐트에서 잠을 자고 다니는데, 마침 암스테르담 중앙역 대합실에서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독일과 호주의 두 젊은이를 만났다.
우리는 그들의 젊음과 용기를 부러워하면서 부두 옆 상가 건물 1층에 있는 사이공카페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월남국수 2그릇에 32유로, 국물이 짜고 면발이 거칠고 투박하다고 툴툴대던 우리는 지난해 2월에 오픈했다는 부두 지하-수중-자전거 주차장에 들어갔다가 개운치 않은 음식 맛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1~2단으로 주차된 자전거의 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전부 자전거 맞습니까?”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어리벙벙한 우리에게 폴란드 출신인 관리인은 능청스럽게 “그렇다”고 웃었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대중화는 이런 주차장, 특히 전국 기차역마다 만들어진 대규모의 자전거 주차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에 자기 의견을 덧붙였다. 물론 그의 말은 맞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 주변에는 크고 작은 자전거 주차장이 여럿 있지만 시설이 부족해 올해 7천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운하와 같은 높이의 수중 자전거 주차장까지 만들었다.
자전거를 주차하기 위해 이곳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1단과 2단으로 지지대를 설치해 놓은 이곳은 7천대가 넘는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신장보다 높은 2단 주차대는 지지대를 끌어당겨 발로 밟아 낮춘 다음 자전거를 들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힘 있는 남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1단 주차 대를 여성에게 양보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주차중인 한 미모의 여성은 얼굴 촬영을 거부했지만 “베를린에 갔다가 다음 주 월요일에 돌아올 예정”이라면서 “이런 주차장이 있어서 역에서 회사까지 편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1, 2층 주차대로 이뤄진 자전거 주차장에는 자전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빈 공간을 찾기 어렵다. 베를린으로 업무차 간다는 한 여성이 빈 주차대를 찾고 있다.
네덜란드 국토부의 자료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전체 106개 철도역 자전거 주차장에 50만 대가 넘는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지만, “2025년까지 10만 개의 보관대를 추가로 만들겠다,”고 2억 유로를 자전거 주차장 시설 확장예산으로 배정했다.
이들 자전거 주차장은 절반이 자동으로 운영되고, 나머지 절반은 안전요원이 관리하고 있다. 우리가 들어와 있는 수중 자전거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암스테르담 시는 6.500만 유로를 투자했다.
부두나 역사(驛舍)뿐만이 아니다. 버스 터미널, 쇼핑센터 등 거의 모든 공공장소에는 지상 혹은 지하에 자전거 주차장 시설이 있어서 매주 평균 열차 승객의 40%인 40만 명 이상이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왔다가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네덜란드 역시 자전거와 열차 두 가지 교통수단을 하나로 연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역사(驛舍)에서 집을 이어주는 짧은 구간을 어떻게 연결할지가 고민이었다. 네덜란드는 결국 이 구간을 버스가 아닌 자전거로 연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자전거 주차장 시설은 필수적인 연결고리라고 보았다.
▲ 네덜란드 국토부에 따르면 네덜란드 전체 106개 철도역은 50만대가 넘는 자전거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하다며 2025년까지 10만개의 주차대를 더 만들 예정이다.
철도역 자전거 주차장은 네덜란드 전역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자전거 이용자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에 탑승할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카드를 긁어 보관소에 들어간 후 사용 가능한 주차 대에 가서 자전거를 얹으면 된다.
역사(驛舍)의 자전거를 보관료는 첫 24시간은 무료다. 그 후에는 안전요원이 근무하는 역의 경우 하루 1.35유로, 자동으로 운영하는 역에서는 하루에 0.55~0.65유로를 받는다. 연간 자전거 보관권도 끊을 수 있는데 약 80유로다. 주말과 휴일에 통근용 자전거를 보관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역에 있는 주차시설에서는 자전거수리 점도 같이 운영한다.
▲ 자전거의 주차 보관료는 첫 24시간은 무료다, 그 이후에는 하루에 0.55~1.35 유로를 받는다. 연간 이용권은 80유로.
자전거를 찾아 나갈 경우에도 카드를 스캔하면 된다. 보안이 확보된 장소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한 경우 철도회사는 최대 750유로를 배상한다. 주차요금 등으로 시설 운영비용을 충당하지만 간혹 적자가 나면 철도회사와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해 지원한다.
역사(驛舍)의 자전거 주차장 시설이 업그레이드되자 열차와 자전거 이용이 모두 증가했다. 철도 승객들이 자전거를 이용해 역으로 오는 횟수가 20년 전보다 2배 이상 많아졌고 이에 따라 열차 이동 횟수도 동시에 늘어났다.
철도 역 앞에 무질서하게 주차됐던 자전거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대신 그 자리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아 시민의 공간으로 되돌려주었다.
네덜란드의 자전거 주차장 시설에 자극을 받은 다른 유럽 국가들 가운데 벨기에의 루벤 시는 최근 약 1000개의 주차장과 수리 점을, 프랑스의 국영 철도 SNCF는 파리의 2000곳을 포함해 전국의 역에 2만 4000대를 수용하는 자전거 주차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락가락 하는 가을비를 맞으며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암스테르담의 중심지, 담(de Dam)광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암스테르담 중심부의 도로가 인도(人道); 자전거; 트램(tram); 차도(車道)의 비율이 1:1:1:1로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6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담( de Dam) 광장
▲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담 광장까지 600여 미터 대로의 모습, 이 큰 도로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일방통행 차선 하나 뿐이다. 그 차선 오른쪽으로 자전거도로가 있고, 왼쪽은 공공교통인 트램 복선 천로가 깔려있다. 맨 왼쪽에는 또 다른 자전거 길과 보도가 있다. 결국 도로는 각 교통수단에게 효율적이고 균등하게 분배된다.
나는 이것이 네덜란드가 말하는 공간 효율성이라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관련 근거를 수소문했지만 정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간척하고 댐을 쌓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돈을 내어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터이다-국가가 개입하기 이전의 치수사업이라는 게 그렇다. 그리고 간척지는 수로(水路) 혹은 운하(運河)를 파서 주변의 지하수를 모아 풍차로 양수(揚水)해 바다로 빼내야 한다. 그처럼 여럿이 힘을 들여 만든 땅을 나눌 때는 그들만의 균등한 분배 원칙이 있을 텐데 이 원칙이 도로에 적용돼 자동차나 자전거가 차지하는 도로 폭을 1;1로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다.
더구나 네덜란드의 지반(地盤)은 이탄과 점토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하철과 같은 지하 구조물을 건설하기에 적당하지 않았으니 자연히 지상 교통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전 관습대로 자동차에 넓은 공간을 차지하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동차가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면 여러 대의 자전거가 통행할 수 있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 자동차가 밀릴 수밖에 없었던 듯 했다.
▲ 취재팀의 숙소에서 내려다본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교차로의 모습. 붉은색 바닥이 자전거도로, 그 옆에 보도, 가운데에 편도 1차선 차도가 있다. 보행자를 포함, 모든 교통수단은 직진, 우회전, 좌회전 등 모든 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도로 위계질서는 보행자> 자전거>자동차 순이어서 자전거가 보이면 자동차는 무조건 멈춰야 한다. 자전거가 자동차를 피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도심 어디를 다녀 봐도 암스테르담은 자전거를 위한 도시이지 자동차를 운전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곳인 듯 했다. 자동차를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았고, 차선도 하나 뿐인 데다 일방통행이었다. 시 당국은 차를 몰고 시내에 들어오면 몹시 불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을 연구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라는 암묵적 압력이었다.
담 광장에서 만난 이태리 음식요리사라는 20대 후반의 남자는 “자전거 한 대가 120유로에서 150유로인데 자전거를 사면 20유로를 회사에서 지원해 주고, 자전거 출퇴근 수당까지 준다,”며 최근에 샀다는 3천 유로짜리 전기자전거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는 “자전거는 외부에 전부 노출되는 공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승용차는 내부 공간이 외부와 차단된 사적공간이 아니냐?”면서 “자전거라는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지원을 받고, 자전거 길을 자동차의 길과 균등하게 할애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말했다.
그칠 듯 하던 가을비는 오후 들어 가랑비로 바뀌더니 기온이 뚝 떨어져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어느 새 겨울 스키파커로 바꿔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갔다. 1년 내내 온화한 날씨라 하여 여름용 재킷만 입고 왔던 나는 몸살이 날 것처럼 덜덜 떨렸다. 빨리 숙소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가고 싶었다. 자전거의 도시, 암스테르담, 초가을 공기는 차가웠으나 서울의 공기보다 몇 배는 더 청정(淸淨)했다. 그게 다 자전거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