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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제야(除夜)-2.
매천집 제3권 / 시(詩)○무술고(戊戌稿)
섣달 그믐 밤에 동파의 시에 차운하다 3수 〔除夕次東坡詩 三首〕
한 해 저무는 골목엔 쌓인 눈이 깊고 / 歲暮雪巷深
시름을 말하려니 곁에 사람 아무도 없네 / 話愁無人佐
이러한 때엔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 此時一跫音
갑절 가치의 보화처럼 귀한 것이라네 / 可敵兼金貨
하물며 음식까지 가지고 왔으니 / 況復勤饋遺
물품은 작으나 의의는 큰 것이네 / 物細誼則大
비록 보답하는 일 다소 귀찮기는 해도 / 縱有報謝勞
높이 누워 있음 방해한다 혐의하지 않는다네 / 不嫌妨高臥
천진난만한 촌 고을 선생이 / 爛熳村夫子
엎어질 듯 뛰어나와 안으로 모셔 들이네 / 顚倒爲虛座
우리 집엔 살진 새끼 양도 있고 / 我家有肥羜
쓰윽쓰윽 칼도 새로 갈았다오 / 霍霍刀新磨
잠깐 앉았다 가는 걸 사양하지 마오 / 勿吝坐須臾
함께 먹으며 오늘 저녁을 보내 보세나 / 共飽今夕過
이 정도이면 충분한 인정일 것이니 / 卽此足人情
누가 나더러 보답이 적다고 하리 / 孰謂余寡和
궤세(饋歲)
한 해가 항상 이렇게 가 버리니 / 一年常如此
백 년인들 어찌 다시 더디 가랴 / 百年寧復遲
금단이 반드시 없는 것은 아닐 터이나 / 金丹未必無
젊은 시절은 되돌아가기 정말 어렵지 / 少壯諒難追
사람을 전송하는 저들을 보면 / 睠彼送人者
뒷모습 안 보이면 물가에서 돌아오지 / 望斷返自涯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은 / 人生歡樂日
술 마실 때가 그러한 때라네 / 莫如飮酒時
궁벽한 촌마을에도 세모의 맛이 있으니 / 窮村猶歲味
안줏거리 집집마다 풍성하구나 / 肴核家家肥
얼근하게 취하여 곤드레가 되었는데 / 薰然醉爲泥
세월 흘러감이 슬픈 줄을 어찌 알랴 / 焉知流年悲
내 허연 수염은 차마 볼 수가 없구나 / 霜鬢難自見
잔 이르면 그대는 사양치 마오 / 盃到君莫辭
우리들은 모두 이미 늙었으니 / 吾曹俱已老
불그레한 얼굴이 술 깨면 곧 노쇠한 모습일 거야 / 紅顔醒便衰
별세(別歲)
마음만 고생했지 일을 이루지 못했으니 / 心勞不濟事
발을 그리면 결국엔 뱀이 아닌 것이지 / 畫足終非蛇
세월 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 歲去豈容守
마치 눈에 안경을 걸치는 것과 같은 거라네 / 如眼以鏡遮
분명히 알겠네 고인의 말씀도 / 定知古人語
어찌할 수 없는 데에서 나왔다는 것을 / 亦出無奈何
늙어 갈수록 아이들이 싫어하고 / 漸老童穉厭
홀로 앉으니 누가 나랑 얘기할까 / 獨坐誰與譁
혈기 쇠한 늙은이라 깜빡깜빡 잘 졸아서 / 血衰眠易警
오똑 앉아 회초리 걱정을 하는 듯하네 / 兀若戒捶撾
비유하자면 마치 저 등잔의 등불 같으니 / 譬彼盞中燈
기름 줄면 돋우어도 다시 기울지 / 油減挑還斜
만사는 모름지기 일찍 서둘러야 하네 / 萬事須及早
고개 돌리는 잠깐 사이에 문득 어그러지는 것이라 / 回首便蹉跎
세속의 사람들에게 말 전하노니 / 寄謝紅塵子
소년 시절이 어찌 뽐낼 만한 것이랴 / 少年安可誇
수세(守歲)
[주-C001] 무술고(戊戌稿) :
무술년(1898, 광무2)에 지은 시이다. 매천이 44세 때이다.
[주-D001] 동파(東坡)의 시 :
소식(蘇軾)의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歲)〉 시 서문에 “한 해가 저물 때에 서로 음식물을 가지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라 하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서로 불러 함께 마시는 것을 별세라 하고, 섣달 그믐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라 한다. 촉(蜀) 지방의 풍속이 이와 같다. 내가 기하(岐下)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세모에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있었지만 갈 수가 없어서 이 3수의 시를 지어 자유(子由)에게 부친다.” 하였다. 자유는 소식의 아우 소철(蘇轍)의 자이다.
[주-D002] 발자국 소리 :
《장자》 〈서무귀(徐无鬼)〉에, 서무귀가 여상(女商)에게 말하기를, “유배된 월나라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겠지요. 본국을 떠나서 며칠이 지나면 아는 사람을 만나면 기쁘고, 본국을 떠나서 열흘이나 한 달이 지나면 일찍이 본국에서 얼굴 한번 본 적이 있는 사람만 만나도 기쁘며, 본국을 떠나서 일 년쯤 되면 본국 사람과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만 보아도 기뻐하게 됩니다.……인적이 없는 산골짜기로 도망쳐 홀로 사는 사람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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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3권 / 시(詩)○기해고(己亥稿)
섣달 그믐에
진간재집》의 운자를 뽑아서 짓다〔除夜拈陳簡齋集韵〕
젊은이들은 습관처럼 한 해를 보내지만 / 少年慣送歲
나이 들면 해 넘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네 / 垂老却難能
답답하고 서글퍼서 술을 자주 홀짝이고 / 黯黮頻嘗酒
아쉬운 마음으로 등잔불만 바라보네 / 依遲但見燈
세월은 귀밑털을 재촉하여 희게 하고 / 年華催鬢雪
봄기운은 처마 끝 고드름을 깨부수네 / 春氣碎簷冰
근심은 말이 없는 곳에 있으니 / 愁在無言處
쓸쓸히 혼자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고 있네 / 寥寥臥復興
[주-C001] 기해고(己亥稿) :
기해년(1899, 광무3)에 쓴 시의 모음이다. 기해년은 매천이 45세 때이다.
[주-D001] 진간재집(陳簡齋集) :
남송 진여의(陳與義, 1090~1138)의 문집이다. 진여의는 자는 거비(去非)이고 호는 간재(簡齋)이다. 시풍(詩風)이 두보(杜甫)와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종 때에 간행하여 보급하였다는 기록이 《연려실기술》, 《용재총화》 등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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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3권 / 시(詩)○경자고(庚子稿)
세모에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짓다〔歲暮懷人諸作〕
창강 김택영〔金滄江澤榮〕
문장은 진귀한 보석과 같아서 / 文章類珍瑰
아무 눈에나 띄는 것 아니라네 / 不許魚目識
세상 사람들은 양자운이 / 世見楊子雲
허연 머리에 창 잡는 벼슬로 마친 것만 보았지 / 白首終執戟
누가 알았으랴 천 년 뒤에 / 誰知千載下
《태현경》이 《주역》과 대등할 줄을 / 太玄能配易
신숭에 상서로운 새가 있어 / 神崧有祥禽
그 깃이 오색을 갖추었다네 / 毛羽具五色
그러나 온 사방에 가을바람만 쓸쓸하여 / 四海秋蕭瑟
대나무 열매를 구할 수가 없었지 / 竹實不可得
높이 날다가 한 번 고개 숙여 쪼았다가 / 飛飛俛一啄
마침내 그물에 잡히고 말았네 / 竟爲羅者獲
부러워라 주나라 언덕의 오동나무여 / 羨彼周岡梧
따스한 봄바람이 왕국에 가득했으니 / 春風滿王國
단농 이건초〔李丹農建初〕
저잣거리에서도 물들지 않았고 / 城市不爲汚
산림에 있어도 고결함만 찾지 않았네 / 山林不爲潔
유희도 못하는 것이 없었으나 / 游戲無不可
세상의 협소함이 늘 큰 근심이었네 / 世迮堪愁絶
사람을 만나면 술값을 떠넘기고 / 逢人責酒錢
옛사람을 업신여기매 문장이 유창했지 / 侮古筆有舌
키는 작은데 재주는 어찌 그리 좋은가 / 身短才何長
지은 글이 많아서 무릎 높이를 넘었네 / 著書高過膝
홀로 남명의 사책을 끌어안고 / 獨抱南明史
계산의 달을 보며 길이 휘파람 불었지 / 長嘯桂山月
어찌 유독 올해에만 몸이 얼었으랴 / 豈獨今歲凍
평생 이불이 쇳덩이처럼 차가웠네 / 一生衾如鐵
상상해 보면 원안의 대문 앞에 / 想見袁安門
눈을 쓸어 준 이가 아무도 없었던가 보네 / 無人爲掃雪
하정 여규형〔呂荷亭圭亨〕
재주가 많으면서도 겸손하기로 / 才多欲其少
그대 같은 이가 다시 또 있을까 / 有否如君者
순식간에 종이 백 장을 휘몰아 쓰면서 / 頃刻掃百紙
두 손으로 쓸 수 없음을 유감스러워하였네 / 恨不雙手寫
얼근하게 취하여 눈을 크게 번쩍 뜨고 / 酒酣閃大眼
세상 만물을 슬프게 바라보네 / 萬彙困悲咤
사자가 잠시 한가하지만 / 獅子暫時閒
으르릉 일어나면 사람을 놀라게 할 거야 / 奮驤使人怕
세상이 바야흐로 인재 찾기가 급한데 / 世方急才俊
이 사람이 어찌 버림을 받았나 / 此君胡見捨
먼지 누런 속세에서 이십 년을 살면서 / 黃塵二十年
다 떨어진 모자에 비쩍 마른 말을 타네 / 弊帽從羸馬
참으로 운명이 곤궁한 탓이겠지만 / 端應命途窮
또한 알아주는 이가 적어서가 아니랴 / 亦非知者寡
양강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집이 있는데 / 楊江有先廬
하필 종남산 아래에 살 일이 뭐람 / 何必終南下
무정 정만조〔鄭茂亭萬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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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4권 / 시(詩)○신축고(辛丑稿)
제야에 대숙륜의 시에 차운하다〔除夜次戴叔倫韻〕
문득 시름을 자아내는 것 같아 / 便覺動愁思
쓸쓸한 등잔을 가까이 하지 못하네 / 寒燈不可親
종 치기 전 가는 해를 잡으려는 밤 / 鐘前留歲夜
거울 속엔 늙어 가는 사람이 있네 / 鏡裏向衰人
버티려고 하면서도 깜박깜박 잠이 들고 / 假寐依遲境
지금의 신세 나지막이 읊어 보네 / 微吟現在身
눈 밑으로 졸졸대는 소리 들리니 / 淙潺聞雪底
샘물줄기는 벌써 봄을 알리네 / 泉脉已知春
[주-C001] 신축고(辛丑稿) :
1901년(광무5), 매천이 47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
[주-D001] 대숙륜(戴叔倫)의 시 :
대숙륜은 당(唐)나라 중기의 시인이다. 용주 자사(容州刺史) 등을 지냈다. 시는 당시 농촌의 생활상과 변경의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애환을 잘 묘사한 것이 특징으로, 백거이(白居易)가 제창한 신악부체(新樂府體)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운한 시는 그의 시 〈제야숙석두역(除夜宿石頭驛)〉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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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4권 / 시(詩)○임인고(壬寅稿)
제야에 병든 아우를 떠올리며〔除夜憶病弟〕
객지에서 안정된 거처도 없이 / 客土無定居
그저 어떻게든 살아 보려 하였지 / 但計生理完
아홉 색깔 깃털 가진 한 쌍의 봉황은 / 九苞雙鳳凰
그래도 다시 낭간을 쪼아 먹네 / 猶復啄琅玕
세모에 강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 歲暮江南北
형제의 그림자 모두 홀로이네 / 兄弟影俱單
내 등을 쓸어 줄 사람 없는데 / 無人拊我背
오늘 밤은 또 날씨조차 춥다네 / 今宵天又寒
먼 곳에서 닭 우는 소리 이어지는데 / 裊裊遠雞唱
북두성은 난간에 가깝게 드리웠네 / 北斗垂闌干
집안사람이 사방에 등불을 켜고 / 家人燃四燈
왁자지껄 웃으며 떡 쟁반을 차려 내네 / 喧笑羅餠槃
밝고 밝은 두 번째 심지에서는 / 晃晃第二炷
불똥이 뭉쳐서 금단을 이루었네 / 結灺成金丹
내년에는 정말 병이 나을 것이니 / 明歲病正瘉
널 위해 내 밥을 더 먹으려네 / 爲汝加我餐
멀리 오봉루 짓는 솜씨를 생각해 보니 / 遙指五鳳樓
시 짓고도 네게는 보이기 두렵구나 / 詩成畏汝看
[주-C001] 임인고(壬寅稿) :
1902년(광무6), 매천이 48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
[주-D001] 아홉 …… 먹네 :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시문을 지어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한 쌍의 봉황은 매천 형제를 가리키고, 낭간(琅玕)은 봉황이 쪼아 먹는다는 죽실(竹實) 혹은 경실(瓊實)인데, 보통 아름다운 문장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D002] 형제의 …… 홀로이네 :
부모를 여의고 홀로 되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매천은 38세 되던 1892년(고종29)에 부친상을, 이듬해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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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4권 / 시(詩)○갑진고(甲辰稿)
섣달 그믐날 《방옹집》 시에 차운하다〔除夕次放翁集〕
사고와 나정 소리 집안에 가득한데 / 蜡鼓儺鉦殷屋椽
노인은 잠이 없어 찬 담요를 덮어썼네 / 老人無睡守寒氈
천하의 무궁한 일 부질없이 근심하고 / 謾憂天下無窮事
인생의 지난날들 다시 점검해 보네 / 更檢人間已過年
부녀자는 부엌 신 공경하여 등불 밝혔고 / 婦敬竈祠燈晃朗
동자는 향복에 바빠 걸음이 분주하네 / 童忙響卜屐蹁躚
하늘에서 세월을 살 수 있다면 / 光陰如可從空買
오늘밤 한 시각이 만금의 값이리라 / 一刻今宵直萬錢
[주-C001] 갑진고(甲辰稿) :
1904년(광무8), 매천이 50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
[주-D001] 방옹집(放翁集) :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문집인 《검남시고(劍南詩稿)》를 가리킨다. 육유의 자는 무관(務觀)이고, 호는 방옹(放翁)이다. 진사시에 실패하고 지방관과 말직을 전전하는 등, 불우한 일생을 보냈다. 일생 동안 1만 수(首)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시를 남겼다. 금(金)나라의 침입을 받는 현실과 전장의 비애를 잘 담아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한가로운 전원생활의 기쁨을 당시풍(唐詩風)의 서정으로 담아내기도 하였다.
[주-D002] 사고(蜡鼓)와 나정(儺鉦) :
의식에 쓰이는 북과 징으로, 사와 나는 모두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신들에게 농사의 작황과 그 밖의 여러 일들을 고하는 제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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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4권 / 시(詩)○정미고(丁未稿)
제야〔除夜〕
다난했던 한 해가 또다시 저무는데 / 艱難又到歲除天
올해의 이 밤은 지난해와 다르다네 / 此夜今年異往年
곳곳에서 원충이 눈 속에서 얼어 죽고 / 幾處猿虫僵雪裏
교외마다 시호가 사람 앞에서 일어나네 / 千郊豺虎起人前
하늘 향해 화내 봐도 끝내 아무 소용없고 / 向空怒罵終無補
땅을 치며 노래해도 자신만 가련할 뿐이네 / 斫地狂歌只自憐
상상하기 싫어라, 닭이 운 뒤에 / 設想不堪鷄唱後
정월 봄소식이 갈수록 아득할 것을 / 王春消息轉茫然
[주-C001] 정미고(丁未稿) :
1907년(융희1), 매천이 53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
[주-D001] 원충(猿虫) :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을 말하는 것으로,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후집(後集) 권37에, “주나라 목왕이 남쪽으로 정벌할 때 일군이 모두 죽으니, 군자는 원숭이나 학이 되고, 소인은 벌레나 모래가 되었다.〔周穆王南征 一軍盡化 君子爲猿爲鶴 小人爲蟲爲沙〕”라고 하였다.
[주-D002] 시호(豺虎) :
교활하고 사나운 승냥이와 호랑이를 말하는 것으로, 소인배 또는 강한 적군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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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5권 / 시(詩)○기유고(己酉稿)
제야에 창강을 추억하다〔除夜憶滄江〕
누가 강회 땅이 멀다고 하였던가 / 誰謂江淮遠
아침에 동쪽 출발해도 저녁이면 서쪽인걸 / 東隣朝發西隣宿
누가 창강이 늙었다고 말하는가 / 誰謂滄江老
만리 길 오고 가길 기러기처럼 하는 것을 / 萬里來往如鴻鵠
가면 오지 말 것이고, 오면 가지 말아야지 / 往可不來來不往
달인이라 개의치 않고 장난하듯 하네 / 達人無係類謔浪
문장은 신묘하여 헤아리기 어렵고 / 文章有神故難料
필력은 날개 달고 표표히 나는 듯하네 / 筆力翼身飛飄飄
그대 그리며 지도를 더듬어 보니 / 憶君試按輿地圖
통주도 또한 하늘 한 모퉁이에 있네 / 通州亦在天一隅
그대는 극구 말했지, 풍토가 아름다워 / 聞君盛說風土好
사람 좋고 물산 많아 노년을 보낼 만하다고 / 民淳物豐堪終老
중원에는 일부러 태음력을 쓰니 / 中原故用太陰歷
오늘 밤이 여기처럼 제야란 걸 알겠네 / 定知今夕同除夕
동국의 역법은 새롭게 바뀐 탓에 / 東方歷日無復舊
관청의 새해는 지난 지 이미 오래일세 / 公家獻歲已云久
민간에선 여전히 시헌법에 익숙하여 / 民間習用時憲法
힘써 축월을 섣달로 삼는다네 / 力以丑月爲終臘
섣달 삼십일 밤 삼경에는 / 臘三十日夜三更
아녀조차 떠들썩한 웃음소리 전하지 / 兒女猶傳喧笑聲
노인은 잠이 없고 다시 짝도 없으니 / 老人無睡更無伴
외론 등잔 아래에서 찬 그림자 벗하네 / 寒影相守孤燈畔
홀연 창강이 내 곁에 있는 듯한데 / 忽似滄江在我傍
고개 들어 보아도 망망한 하늘뿐이네 / 擧眼不見天茫茫
그대의 편지 읽고 근황을 알겠으니 / 因君寄書識君狀
일가의 광경을 멀리서 상상할 수 있네 / 一家光景遙可想
아들은 모친 따라 수세할 수 있을 테고 / 喜郞隨母能守歲
사위는 장인 위로하며 술잔을 권하리라 / 岳壻慰翁陳酒醴
그대는 한잔하고 흰 수염을 쓰다듬고 / 君飮一盞捋白髭
쓰러져 누워 나지막이 제석시를 읊겠지 / 倒臥微吟除夕詩
시 짓걸랑 부디 기러기 편에 보내 주소 / 詩成幸寄歸鴻翼
진한이 점묵 같다 말하지 말고 / 莫道辰韓如點墨
[주-C001] 기유고(己酉稿) :
1909년(융희3), 매천이 55세이던 해에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주-D001] 강회(江淮) :
중국의 양자강(揚子江)과 회수(淮水) 유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지금의 강소성(江蘇省)과 안휘성(安徽省) 일대가 해당된다. 여기서는 김택영이 망명해 있던 곳을 일반적으로 표현하였다.
[주-D002] 통주(通州) :
남통주(南通州)를 가리키며, 지금의 중국 강소성 남통시(南通市) 지역이다. 김택영이 이곳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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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선생문집 제2권 / 시(詩)
을사년 섣달 그믐밤[乙巳除夕]
내년 60년 전 병오년 이 바로 처음 글 배우러 갔던 해 / 來歲曾吾負笈初
지나온 생애는 곳곳마다 초가집 살림일세 / 生涯隨處一蓬廬
부르는 벗들은 모두 어초지만 늘 만족하고 / 漁樵喚伴常云足
나물과 거친 밥의 살림이나 다른 것 필요 없네 / 蔬糲成家不願餘
어렵고 험한 오늘 일을 탄식하지 말게 / 艱險莫歎今日事
내 의지할 곳은 고인의 글이 있네 / 依歸自有古人書
불쌍하다 명리에 바쁜 사람들이여 / 可憐名利場中客
한평생 허덕여도 마침내 무엇이 있는가 / 役役終年揔落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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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권 / 시(詩)
제야(除夜)
해마다 제야엔 역귀 몰아내기 좋아하여 / 年年除夜喜驅儺
아동과 섞여 앉아 담소가 떠들썩했는데 / 雜坐兒童笑語譁
객지 생활 흥미 없음을 이제야 알았네 / 始覺遠遊無興味
적막한 승탑에 불똥만 뚝뚝 떨어지누나 / 寂寥僧榻落燈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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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섣달 그믐날에
뭇 현사들은 병풍을 구중궁궐에 바치고 / 屛障群英進九重
오경엔 징과 북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네 / 五更鉦鼓振晴空
황문의 아동들은 소리를 서로 전창하여 / 黃門侲子聲相應
열두 신을 시켜 악귀들을 내쫓는구나 / 十有二神追惡凶
등간은 본디 불상스러운 걸 잡아먹거니와 / 騰簡由來食不祥
급히 못 가고 뒤처진 흉귀는 먹힐 뿐이네 / 諸凶急去後爲糧
명일 아침 대궐에 삼산의 수를 바치거든 / 明朝鳳獻三山壽
인풍이 사방에 움직임을 앉아서 보게 되리 / 坐見仁風動四方
[주-D001] 황문(黃門)의 …… 내쫓는구나 :
후한(後漢) 때에 납일(臘日) 하루 전날마다 대나의(大儺儀)를 거행하여 역귀(疫鬼)를 몰아냈는데, 그 의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10세 이상, 12세 이하인 중황문(中黃門)의 아동(兒童) 120인을 선발하여 이들을 금중(禁中)의 역귀 쫓는 아동으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서로 소리를 외쳐서 열두 신(神)의 이름을 불러 모든 흉악한 귀신들을 잡아먹게 하도록 했다고 한다. 《後漢書 禮儀志》
[주-D002] 등간(騰簡)은 …… 뿐이네 :
등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는 귀신 이름인데, 역시 중황문의 아동들이 외치는 말 가운데, “등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으라.……이상 열두 신으로 하여금 너희 악귀들을 뒤쫓게 하리니……너희들 가운데 급히 떠나지 못하고 뒤처진 자는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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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섣달 그믐날 밤샘을 하면서 당시(唐詩)의 운을 사용하여 짓다. 3수(三首)
백일은 잡아맬 길이 없거니와 / 白日無由絆
황하는 다시 돌아오질 않는다네 / 黃河不復回
덧없는 인생은 나는 새 같거니 / 浮生一飛鳥
절로 가는 게지 그 누가 재촉했나 / 自去更誰催
끊어진 줄은 이을 수도 있고요 / 絃斷猶能續
무너진 물결은 돌이킬 수도 있건만 / 波頹亦可回
세월은 머무르게 할 길이 없어라 / 無由駐光景
바삐바삐 모질게도 재촉을 하네 / 袞袞苦相催
막다른 음기는 한창 성하려 하고 / 窮陰方欲盛
봄기운은 또 돌아오려 하는데 / 淑景又將回
등잔불과 함께 쓸쓸히 앉았노라니 / 燈影共牢落
둥둥둥 북소리가 또 재촉을 하네 / 鼕鼕更鼓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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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2권 / 시(詩)
섣달그믐〔除夕〕
차가운 집에서 쓸쓸히 묵은 책을 마주하여 / 寒齋寥落對陳編
눈 덮인 고을 긴 밤 외로운 등불에 비춰보네 / 永夜孤燈照雪縣
부끄럽다 지난날 옛 학문을 포기하여 / 自愧向來拋舊學
백발의 나이에 공연히 또 새해를 맞이함이 / 白頭空復受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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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 제1권 / 시(詩)
섣달 그믐날〔除夕〕
날짜가 살같이 지나 / 二氣飛騰急
금년에는 더 이상 아침이 없구나 / 今年不復朝
점차 남은 날이 적어짐을 아니 / 漸知來日少
아득히 옛사람과 멀어지네 / 逾與古人遙
새벽 밝아 오니 별이 기울고 / 星影斜生曉
밤이 저물어 가니 등불이 어두워지네 / 燈花暗逗宵
흐르는 세월에 대한 감회를 까맣게 잊고 / 頓忘流歲感
어버이 곁에서 봄 술을 올리네 / 親側獻春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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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 제1권 / 시(詩)
섣달 그믐날 밤에〔除夜〕
나 홀로 매화와 누워 있으니 / 獨與寒梅臥
등불이 어두워졌다 다시 밝아지네 / 燈花暗復明
흐르는 세월 꿈결처럼 빠르니 / 流年劇似夢
오늘 밤 마음 가누기 어렵네 / 此夜難爲情
슬프고 기쁜 일들 생생히 기억나고 / 歷歷悲歡變
빠르게 늙어 감에 크게 놀라네 / 駸駸老大驚
차마 광릉의 땅을 보겠는가 / 忍看廣陵土
봄풀이 한 번 돋아났네 / 春艸一番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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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 제1권 / 시(詩)
제석. 헌릉의 재사에서 감회를 쓰다〔除夕獻陵齋舍書感〕
오늘이 저물고 나면 / 今日居然暮
금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 今年不復歸
몸이 선침 가까이에 의지하고 있으니 / 身依仙寢近
마음은 꿈에 고향으로 날아가네 / 夢入故園飛
백발이 되었는데도 도를 듣는 것이 더디고 / 白髮遲聞道
누런 먼지 옷에서 떨어내지 못하네 / 黃埃未拂衣
외로운 등잔 아래 근심하다 베개에 기대니 / 孤燈愁倚枕
북두칠성의 별빛이 희미하네 / 星斗影依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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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夜〕
어리석음 남김없이 팔아치우고 / 賣他癡騃盡
도소주(屠蘇酒) 따른 술잔 손에 잡으니 / 仍把屠蘇杯
묵은해는 밤중에 모두 지나고 / 舊歲宵中去
새봄이 자정 지나 도래하누나 / 新春子後來
일천 집이 떠들썩 노름 불 밝히더니 / 千門呼博燭
오경(五更) 되자 잿더미 두드려 불씨 끄네 / 五漏打堆灰
감라(甘羅)가 나를 보고 비웃으리니 / 將使甘羅笑
나이를 헤아리면 부끄럽네 못난 이 몸 / 算年愧不才
또〔又〕
수세(守歲)하며 집집마다 뜬눈으로 지새지만 / 守歲家家人不眠
어찌 정말 삼시신(三尸神)이 하느님께 고하리오 / 三彭上訴豈其然
아이들 맘은 본디 설맞이를 기뻐하니 / 童心自有迎新喜
내일 아침 먹을 한 살 웃으며 축하하네 / 笑賀明朝得一年
[주-D001] 섣달그믐 밤 :
본서의 편차 순서와 내용, 곧 감라(甘羅 전국 시대)와 자신을 비교한 말로 보아 작자가 12세로 접어들던 1751년(영조27) 섣달그믐 밤의 작품이다.
섣달그믐 밤에 행하는 어리석음 팔기, 도소주 마시기, 노름 놀기, 불 밝히기 등의 풍속을 묘사하고, 성취 없이 나이만 늘어가는 데 대한 자괴감을 읊었다.
함련(舊歲가 宵中에 去하고, 新春이 子後에 來하네)과 경련(千門에서 博燭을 呼하고, 五漏에 堆灰를 打하네)에 대우법을 썼다. 수련에서는 섣달그믐 밤의 풍속을 말하여 ‘除夜’라는 제목을 파제(破題)하였고, 함련에서는 해가 바뀌는 과정을 서술하였고, 경련에서는 수세(守歲)를 마치는 정경을 묘사하였고, 미련에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자괴감을 읊어 마무리하였다.
평성 ‘灰’운으로 제2구(杯)ㆍ제4구(來)ㆍ제6구(灰)ㆍ제8구(才)의 운을 맞추었고 제1구의 제2자(他)가 평성인 평기식 수구불용운체 오언율시이다.
[주-D002] 어리석음 남김없이 팔아치우고 :
섣달그믐 밤의 풍속 중 하나이다. 송(宋)나라 오(吳) 지방의 풍속에, 섣달그믐 밤에 어린아이들이 거리를 누비면서 “바보 멍청이 사려. 바보는 천 꿰미, 멍청이는 만 꿰미요.〔賣癡獃 千貫賣汝癡 萬貫賣汝獃〕”라고 외치며 다녔다고 한다. 《平江紀事》. 원문의 ‘癡騃’는 ‘癡獃’와 같다.
이러한 풍속을 읊은 작품으로 송나라 범성대(范成大, 1126~1193)의 〈바보 멍청이 파는 노래〔賣癡獃詞〕〉와 조선 장유(張維, 1587~1638)의 〈바보 멍청이 팔기〔賣癡獃〕〉 등이 있다. 《石湖詩集 卷30 賣癡獃詞》 《谿谷集 卷25 賣癡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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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夜〕
어느덧 겨울철 석 달이 모두 지나 / 倐忽三冬遽已盈
날이 새면 별안간 새해가 닥치겠네 / 新年斗覺在天明
집집마다 새봄 맞는 춘첩이 나붙었고 / 延祥萬戶帖金字
고을마다 역귀 쫓는 폭죽 소리 울리누나 / 逐厲千村爆竹聲
수세(守歲)할 젠 참으로 짧은 초〔燭〕가 유감이니 / 守歲苦嫌銀燭短
시를 읊고 병 기울여 맑은 술을 따르노라 / 哦詩仍瀉玉壺淸
한 해 동안 지은 시가 몇 편이나 되려나 / 囊中多少勞神句
술과 포(脯)로 가도(賈島)처럼 제사를 올리네 / 酒脯恭將學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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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스스로 한탄스러워〔除夕自歎〕 내 나이가 금년 19세이다.
한가한 때 다 보내고 어느덧 섣달그믐 / 三餘送盡已除夕
나이를 헤아리다 오경에 이르렀네 / 默算行年到五更
열아홉이 되었건만 너무도 녹록하니 / 十九堪嗟眞碌碌
두각을 드러냈던 옛일 어이 이루리오 / 由來錐末事何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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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붓을 갈겨〔除夜走筆〕
백결선생은 거문고로 절구 소리 냈다는데 / 百結先生琴作杵
나도 따라 하고프나 거문고가 내겐 없네 / 我欲效之本無琴
아침이면 바뀔 해를 가만 앉아 기다릴 제 / 坐看明朝歲將改
눈 날리는 북풍에 끝판 추위 기승이네 / 北風吹雪肆窮陰
춥다고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 / 稚子號寒復索飯
너희들은 어이하여 내 마음을 흔드느냐 / 爾獨胡爲攪我心
더구나 여기는 분진(汾津)에서 백여 리라 / 況是汾津百有里
부모님 그리는 맘 가눌 수가 없거늘 / 岵屺陟陟情不任
잡초 무성한 오솔길을 쓸쓸히 오갈 뿐 / 寂寂逃踉蓬藋逕
한 해가 저물도록 기쁜 손님 없는데 / 終年未喜跫然音
기러기는 그물에 놀라 높이서 빙빙 돌고 / 遠鴻廻翔驚塵網
까마귀는 저문 숲에 돌아가 반포(反哺)하네 / 寒鴉反哺歸暮林
내 나이 어느새 스물일곱 살이니 / 得年居然二十七
부끄럽네 부질없이 세월만 보냈어라 / 自慙歲月空駸駸
인간 세상 덮어주는 인자하신 하늘이여 / 上天至仁臨覆下
세월 감이 아까운 내 마음도 봐주소서 / 願言照此愛日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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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두보의 오언율시 〈두위의 집에서 수세하며〔杜位宅守歲〕〉의 운을 사용하여〔除夜 用老杜五律中杜位宅守歲韻 賦七律〕 칠언율시를 읊었다.
제야의 밤 등불 아래 집 생각이 갑절이라 / 除夕孤燈倍憶家
처마 아래 서성이다 매화 보며 애써 웃네 / 巡簷強笑共梅花
먼 바다의 기러기는 향수로 서글프고 / 睽離海遠酸征雁
깊은 숲의 까마귀는 반포(反哺)하러 급히 가네 / 歸哺林深急暮鴉
아침이면 당연히 해〔歲〕 바뀔 줄 알면서도 / 已判明朝星曆換
오늘밤 기울어진 북두 자루〔斗杓〕에 놀라누나 / 還驚此夜斗杓斜
겨울 가면 봄이 오는 필연의 이치 속에 / 窮陰理必回陽泰
새 시를 읊고 나니 생각이 끝도 없네 / 吟罷新詩意靡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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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세밑〔歲暮〕
집집마다 세찬(歲饌) 물목(物目) 관아에 바치니 / 家家歲饋走官書
꿩과 돈과 생선 같은 물품이라네 / 錦雉靑蚨又海魚
늙은 나는 관아의 진휼을 기다리니 / 老夫坐待開倉賑
임금님 은혜가 내 집에도 이르기를 / 惟有君恩到破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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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夜〕
오경(五更)이 되도록 잠들지 못해 / 五更眠不着
온갖 일로 부질없이 머리만 긁적이네 / 萬事首空搔
묵은해가 금세 가버림은 어쩔 수 없고 / 蛇壑知無柰
세상에 나가려는 몸부림은 수고로울 뿐이네 / 蜂窓只自勞
권세가에 붙좇는 건 내 뜻 아니니 / 追隨非我志
아이들이 놀려도 개의치 않네 / 遊戲任兒曹
아무튼지 봄바람 따스해지면 / 稍待春風暖
서호(西湖)에 조각배를 띄워보련다 / 西湖理小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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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우연히〔除夕偶吟〕
한밤중에 홀로 앉아 한숨만 자꾸 나니 / 中宵塊坐默嘆頻
평생을 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하네 / 點檢平生百感新
어이하랴 세상 풍속 따르지 못함을 / 無柰不能隨俗套
술과 포(脯)로 시신(詩神)에게 제사나 지낼 따름 / 強將酒脯賽詩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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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우연히〔除夜偶吟〕
마흔아홉까지의 잘못은 / 四十九年非
이미 지나 어쩔 수 없지만 / 已往不可諫
앞으로는 바로잡을 수 있으니 / 庶幾來可追
세월이 늦었다 말하지 말자 / 莫云歲旣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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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夕〕
세월은 오늘처럼 짧기만 한데 / 忽如今日短
그 누가 말하는가 해〔年〕가 길다고 / 誰道一年長
태양의 운행은 막을 수 없고 / 磨蟻無容已
세밑은 너무 바삐 지나버리네 / 壑蛇有底忙
마침내 모든 일이 허사 됐으니 / 居然成濩落
어이하랴 학문에 정채(精彩) 없는걸 / 無柰失文章
갑자기 아이들이 부러워지네 / 却羨兒童輩
해지킴 마당에서 떠들썩 노는 / 喧呼守歲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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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 시(詩)
제석 고사〔除夕記故事〕
해는 자리 다하고 별자리 하늘 도니 / 日窮于次星回天
이제 새해를 맞고 묵은해 보내겠지 / 將迓新年餞舊年
구멍에 들어가는 뱀처럼 막을 수 없으니 / 無那壑蛇難繫尾
희화가 태양을 빨리 몰아가는 게 얄미워라 / 生憎羲馭太揚鞭
종소리 울리기 전에 금계 울까 두렵고 / 先鐘響畏金鷄唱
자정 되어 술잔에 분세주 따르니 서운하네 / 分歲杯愁綠蟻傳
소고 두드리면서 초라니 뽑아 구나하고 / 選侲驅儺鼗鼓際
부엌문에 술찌끼 바르고 조마를 붙였네 / 抹糟帖馬竈門邊
예의 갖춰 송년하되 형편대로 하고 / 禮遵餽別收隨勢
가는 세월 붙잡고자 잠 안 자고 지키네 / 愛欲縶維守不眠
다과와 강정 접시에 아이들 달려들고 / 餳果飣盤兒輩競
도소주는 새벽 되자 소년이 먼저 마셨네 / 屠蘇待曉少年先
진중에선 쌍륙 던지며 오백을 환호하고 / 秦遊賭博歡呼白
한나라에선 제비 감춘 손 맞추며 놀았네 / 漢戱藏彄鬪弄拳
폭죽 소리 벽력같아 악귀들 놀라게 하고 / 爆竹雷霆驚惡鬼
화로에 불 지펴 상서로운 연기 피어올랐네 / 燒盆暖熱靄祥煙
부엌에 등잔 밝혀 허모를 내쫓고 / 點燈厨戶消虛耗
겨릅대를 태워 들녘을 밝혔네 / 然炬麻䕸照野田
맘껏 재를 두드리며 재물 복을 빌고 / 如願打灰潛祝貨
돈 받지 않고 골목 누비며 바보 팔았네 / 賣癡繞巷不須錢
당나라 궁궐의 화촉은 선약을 굳힌 것이고 / 唐宮畫燭凝仙樂
수나라 전궁의 침향은 갑전을 태운 것일세 / 隋殿沈香熾甲煎
금박 입힌 그림에 신연이 오묘하고 / 金薄圖來神燕妙
붉은 인장 찍은 곳에 귀환이 선명하네 / 朱泥印處鬼丸鮮
매화꽃 새로 피니 풍광이 산뜻하고 / 梅迎新蘂風光稍
도부 새로 바꾸니 절물이 바뀌었네 / 桃換舊符節物遷
하룻밤에 나이 먹는 아이들은 기뻐하고 / 添齒一宵童喜甚
천리 먼 고향 생각하는 나그네는 처연하네 / 思鄕千里客悽然
양 잡고 장고 친 일은 정말로 즐겁겠지만 / 羊羔拊缶眞堪樂
술과 포로 시를 제사 지낸 일은 가련하구나 / 酒脯祭詩却可憐
외양간 말과 숲 까마귀는 저물녁에 날뛰고 / 櫪馬林鵶騰暮景
산초꽃과 잣잎 술이 잔치 자리에 난만하였네 / 椒花栢葉爛華筵
임금 송축한 조송은 술 올리길 먼저했고 / 祝君曹子先擎酒
벗 이별한 소식은 흐르는 냇물 슬퍼했네 / 別友蘇翁悵逝川
절기 바뀌어 얼굴 늙는 것 암암리에 재촉하고 / 氣改顔衰催暗裏
별 기울고 촛불 지는 것 술통 앞에서 보았네 / 斗斜燼落覘樽前
같고 다른 풍속 모두 기록하기 어려우나 / 異同風俗難幷記
슬프고 기쁜 마음은 각각 절로 끌린다네 / 憂樂人情各自牽
옛날부터 그믐밤을 이렇게 보내왔으니 / 終古光陰如許度
장난삼아 언 붓으로 시를 지어 보누나 / 戱拈凍筆遂成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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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夜〕
어리석음 남김없이 팔아치우고 / 賣他癡騃盡
도소주(屠蘇酒) 따른 술잔 손에 잡으니 / 仍把屠蘇杯
묵은해는 밤중에 모두 지나고 / 舊歲宵中去
새봄이 자정 지나 도래하누나 / 新春子後來
일천 집이 떠들썩 노름 불 밝히더니 / 千門呼博燭
오경(五更) 되자 잿더미 두드려 불씨 끄네 / 五漏打堆灰
감라(甘羅)가 나를 보고 비웃으리니 / 將使甘羅笑
나이를 헤아리면 부끄럽네 못난 이 몸 / 算年愧不才
또〔又〕
수세(守歲)하며 집집마다 뜬눈으로 지새지만 / 守歲家家人不眠
어찌 정말 삼시신(三尸神)이 하느님께 고하리오 / 三彭上訴豈其然
아이들 맘은 본디 설맞이를 기뻐하니 / 童心自有迎新喜
내일 아침 먹을 한 살 웃으며 축하하네 / 笑賀明朝得一年
…………………………………………………………….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夜〕
어느덧 겨울철 석 달이 모두 지나 / 倐忽三冬遽已盈
날이 새면 별안간 새해가 닥치겠네 / 新年斗覺在天明
집집마다 새봄 맞는 춘첩이 나붙었고 / 延祥萬戶帖金字
고을마다 역귀 쫓는 폭죽 소리 울리누나 / 逐厲千村爆竹聲
수세(守歲)할 젠 참으로 짧은 초〔燭〕가 유감이니 / 守歲苦嫌銀燭短
시를 읊고 병 기울여 맑은 술을 따르노라 / 哦詩仍瀉玉壺淸
한 해 동안 지은 시가 몇 편이나 되려나 / 囊中多少勞神句
술과 포(脯)로 가도(賈島)처럼 제사를 올리네 / 酒脯恭將學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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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에 든
입춘 날에 절구 4수 〔又題四絶 帖之四窓〕 사방 창문에 붙였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무탈하여 즐거웁고 / 俱存無故樂乎而
자연을 읊조리는 생활 또한 한가롭네 / 弄月吟風又有之
맑은 새벽 붓 주위에 푸른 기운 피어나니 / 淸晨繞筆靑霞起
새봄 들어 첫 번째 시를 쓰는 중이라네 / 爲寫新春第一詩
가난하여 부모님께 기쁨 드릴 것 없으니 / 家貧無以爲親歡
올봄엔 급제하여 금의환향할 수 있길 / 金榜來春佇錦還
분곡(汾曲)의 부모님께 달려가는 기쁨은 / 試看汾曲趨庭喜
격문(檄文)에 기뻐했던 모의(毛義)보다 더하리라 / 何似廬江奉檄顔
과거 공부 나쁘지만 그만둘 수도 없어 / 擧業壞人不得已
세태 따라 분주하게 매달린 지 몇 해런가 / 緇塵奔走幾居諸
바라노니 금년에는 이 일을 끝마치고 / 惟願今年了此事
차분히 《주역(周易)》을 연구하게 되었으면 / 從容尋玩韋編書
청운(靑雲)과 한강에 넘치는 맑은 기운 / 靑雲洛水溢佳氣
알괘라 봄 신이 오늘 아침 오시었네 / 知是東君第一朝
남쪽 처마 나앉으니 봄 햇살이 따스해 / 移榻南榮春日暖
웃으며 바라보네 눈이 모두 녹은 모습 / 笑看舊歲雪全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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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붓을 갈겨〔除夜走筆〕
백결선생은 거문고로 절구 소리 냈다는데 / 百結先生琴作杵
나도 따라 하고프나 거문고가 내겐 없네 / 我欲效之本無琴
아침이면 바뀔 해를 가만 앉아 기다릴 제 / 坐看明朝歲將改
눈 날리는 북풍에 끝판 추위 기승이네 / 北風吹雪肆窮陰
춥다고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 / 稚子號寒復索飯
너희들은 어이하여 내 마음을 흔드느냐 / 爾獨胡爲攪我心
더구나 여기는 분진(汾津)에서 백여 리라 / 況是汾津百有里
부모님 그리는 맘 가눌 수가 없거늘 / 岵屺陟陟情不任
잡초 무성한 오솔길을 쓸쓸히 오갈 뿐 / 寂寂逃踉蓬藋逕
한 해가 저물도록 기쁜 손님 없는데 / 終年未喜跫然音
기러기는 그물에 놀라 높이서 빙빙 돌고 / 遠鴻廻翔驚塵網
까마귀는 저문 숲에 돌아가 반포(反哺)하네 / 寒鴉反哺歸暮林
내 나이 어느새 스물일곱 살이니 / 得年居然二十七
부끄럽네 부질없이 세월만 보냈어라 / 自慙歲月空駸駸
인간 세상 덮어주는 인자하신 하늘이여 / 上天至仁臨覆下
세월 감이 아까운 내 마음도 봐주소서 / 願言照此愛日忱
………………………………………………………….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두보의 오언율시 〈두위의 집에서 수세하며〔杜位宅守歲〕〉의 운을 사용하여〔除夜 用老杜五律中杜位宅守歲韻 賦七律〕 칠언율시를 읊었다.
제야의 밤 등불 아래 집 생각이 갑절이라 / 除夕孤燈倍憶家
처마 아래 서성이다 매화 보며 애써 웃네 / 巡簷強笑共梅花
먼 바다의 기러기는 향수로 서글프고 / 睽離海遠酸征雁
깊은 숲의 까마귀는 반포(反哺)하러 급히 가네 / 歸哺林深急暮鴉
아침이면 당연히 해〔歲〕 바뀔 줄 알면서도 / 已判明朝星曆換
오늘밤 기울어진 북두 자루〔斗杓〕에 놀라누나 / 還驚此夜斗杓斜
겨울 가면 봄이 오는 필연의 이치 속에 / 窮陰理必回陽泰
새 시를 읊고 나니 생각이 끝도 없네 / 吟罷新詩意靡涯
……………………………………………………………………
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夜〕
오경(五更)이 되도록 잠들지 못해 / 五更眠不着
온갖 일로 부질없이 머리만 긁적이네 / 萬事首空搔
묵은해가 금세 가버림은 어쩔 수 없고 / 蛇壑知無柰
세상에 나가려는 몸부림은 수고로울 뿐이네 / 蜂窓只自勞
권세가에 붙좇는 건 내 뜻 아니니 / 追隨非我志
아이들이 놀려도 개의치 않네 / 遊戲任兒曹
아무튼지 봄바람 따스해지면 / 稍待春風暖
서호(西湖)에 조각배를 띄워보련다 / 西湖理小舠
[주-D001] 섣달그믐 밤 :
본서의 편차 순서와 이 시의 내용으로 보아 작자 나이 45세 때인 1785년(정조9) 섣달그믐 밤의 작품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뒤로 과거 공부에 매달려 온 지 12년이 지나고 13년째로 접어드는 밤에 잠 못 이루는 착잡한 심경을 읊고, 그러면서도 세상의 부조리에 영합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내용이다.
평성 ‘豪’운으로 제2구(搔)ㆍ제4구(勞)ㆍ제6구(曹)ㆍ제8구(舠)의 운을 맞추었고, 제1구의 제2자(更)가 평성인 평기식 수구불용운체 오언율시이다.
[주-D002] 묵은해가 금세 가버림 :
원문은 ‘蛇壑’이다. 연말에 묵은해의 남은 시간이 마치 골짝으로 달려가는 뱀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수세(守歲)〉시에 “끝나 가는 금년의 모습을 알고 싶은가? 마치 골짜기로 달려가는 뱀과 같도다.〔欲知垂盡歲 有似赴壑蛇〕”라고 한 비유를 원용한 표현이다. 《蘇東坡詩集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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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우연히〔除夕偶吟〕
한밤중에 홀로 앉아 한숨만 자꾸 나니 / 中宵塊坐默嘆頻
평생을 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하네 / 點檢平生百感新
어이하랴 세상 풍속 따르지 못함을 / 無柰不能隨俗套
술과 포(脯)로 시신(詩神)에게 제사나 지낼 따름 / 強將酒脯賽詩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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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섣달그믐 밤〔除夕〕
세월은 오늘처럼 짧기만 한데 / 忽如今日短
그 누가 말하는가 해〔年〕가 길다고 / 誰道一年長
태양의 운행은 막을 수 없고 / 磨蟻無容已
세밑은 너무 바삐 지나버리네 / 壑蛇有底忙
마침내 모든 일이 허사 됐으니 / 居然成濩落
어이하랴 학문에 정채(精彩) 없는걸 / 無柰失文章
갑자기 아이들이 부러워지네 / 却羨兒童輩
해지킴 마당에서 떠들썩 노는 / 喧呼守歲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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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섣달그믐 밤에 우연히〔除夜偶吟〕
마흔아홉까지의 잘못은 / 四十九年非
이미 지나 어쩔 수 없지만 / 已往不可諫
앞으로는 바로잡을 수 있으니 / 庶幾來可追
세월이 늦었다 말하지 말자 / 莫云歲旣晏
[주-D001] 섣달그믐 밤에 우연히 :
작자 나이 49세 때인 1789년(정조13) 섣달그믐 밤의 작품이다.
50세에 접어들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잘못을 바로잡으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내용이다.
거성 ‘諫’운으로 제2구(諫)ㆍ제4구(晏)의 운을 맞추었고, 제1구의 제2자(十)가 측성인 측기식 수구불용운체 오언절구이다.
[주-D002] 마흔아홉까지의 잘못은 :
원문은 ‘四十九年非’로, 50세가 되자 49세 때 저지른 잘못을 알았다는 거백옥(蘧伯玉 거원(蘧瑗))의 고사(《淮南子 原道訓》)를 원용한 표현인데, 여기서는 50세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전 49년 동안의 잘못을 모두 합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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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4책 / 시(詩)
제야에 서글퍼〔除日悵然有作〕
올해도 오늘로 끝이니 / 今年止今日
예순셋도 무정히 가네 / 斷送六十三
내일이면 새해라 / 明日是明年
손꼽아보노라니 더욱 부끄럽네 / 屈指還自慙
사람들은 저마다 즐거움 누리며 / 衆皆樂其樂
태평성대의 은택에 감사하네 / 幸沾聖化覃
묵은해 보내고 새해 맞으며 / 餞舊復迎新
온 집안 화목하고 행복하네 / 室家和且湛
소를 잡아 삶고 구우며 / 屠牛供烹炰
술을 불러 얼근하게 취하네 / 呼酒賭醺酣
골목엔 곱게 단장한 여인들 북적대고 / 巷多靚粧女
거리엔 화려한 복장의 사내들 넘쳐나네 / 街溢炫服男
밤새도록 즐겁게 놀이를 하고 / 竟夜事娛戱
곳곳마다 담소 소리 시끄럽네 / 着處喧笑談
굿을 하여 귀신을 쫒고 / 驅儺陟驚鬼
해 바뀌는 건 말달리듯 빠르네 / 分歲迭騰驂
횃불 늘어놓고 백주(栢酒)와 초주(椒酒) 마시고 / 列炬爛栢椒
설날 상차림엔 부추와 감귤주 올랐네 / 飣盤雜韭柑
묵은해 보내며도부 바꾸길 기다리고 / 餽別待換桃
윷놀이 하며 남미주 들이키길 재촉하네 / 博塞催傾藍
이날의 풍속을 모두 말하기 어려우니 / 俗習難具論
유풍을 누가 참으로 알까 / 流風孰眞諳
역옹이 홀로 우두커니 앉았노라니 / 櫟翁獨塊坐
가물거리는 등잔이 작은 초당에 적막하네 / 殘燈寂小菴
도소주 늦게 마시며 / 屠㢝且後進
문장과 역사 탐독한 지난날 추억하네 / 文史憶曾耽
가는 세월 어이할 수 없고 / 逝川知無奈
가난과 병도 달가워라 / 貧病却自甘
어찌 어울려 다니는 것을 일삼아 하랴만 / 誰能事追隨
조정의 하정례에는 참여하고 싶었지 / 猶擬趁朝參
고금에 세상과 맞지 않은 이 많고 / 今古嗟枘鑿
의리는 쇠털과 고치처럼 세밀해라 / 義理劇牛蠶
기박한 명이기에 묵묵함을 지키고 / 跡畸守拙默
노쇠한 몸으로 이치 탐색 부끄럽네 / 顔衰愧賾探
옛사람 제석에 지은 제시 있거니와 / 昔人曾祭詩
따라 지으려도 감당치 못할까 두려워라 / 欲效恐不堪
[주-D001] 제야에 서글퍼 :
63세에 지은 작품이다. 평성 담(覃) 운을 압운한 오언고시이다. 18운 36구의 중단편으로, 환운 없이 일운도저격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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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4책 / 시(詩)
제야 2수 〔除夜〕
홀로 삼경에 앉았노라니 온갖 감회 얽히는데 / 獨坐三更百感紆
대머리에 눈은 어두워 탄식만 길게 나오누나 / 頭童眼暗但長吁
외로운 등불 한 점만이 내 모습 알아주니 / 孤燈一點傍知狀
한 해 보내는 오늘밤에 너와 나뿐이구나 / 守歲今宵爾與吾
둘〔其二〕
가는 세월 이런 줄이야 잘 알고 있었지만 / 固知逝者自如斯
가만히 나이 헤어보니 문득 부끄럽구나 / 默筭行年便忸怩
한없이 좋았던 젊은 호시절 / 從前無限好時節
어물어물 무얼 하며 보냈던가 / 泛泛悠悠何所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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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6책 / 시(詩)
정묘년 제석〔丁卯除日〕 이해 12월은 30일이다.
지난해 섣달은 작은 달이더니 / 除日前年月小盡
올해 섣달은 도리어 더디네 / 今年除日却遲延
멀리 떠나는 사람이 이별을 앞에 두고 / 恰似遠人將別際
하루를 지체해도 아니한 것보다 나음과 같네 / 縱留一日亦猶賢
또〔又〕
이웃집에 절구소리, 우리집엔 거문고소리 / 隣以杵舂我以琴
세월은 끝없이 끝을 향해 흐르네 / 光陰遒盡自駸駸
골짜기로 들어가는 뱀비늘처럼 붙잡지 못하고 / 壑赴蛇鱗嗟莫繫
벽 틈을 지나는 망아지그림자처럼 찾을 길 없네 / 隙過駒影杳難尋
이 세상 이 생애에 헛되이 늙었는데 / 此世此生空已老
올해 오늘이 또 저물려하네 / 今年今日又將沈
태평성대에 그럭저럭 왕화를 입었지만 / 升平聖代聊乘化
이 포부 아득히 저버린 것만이 한스럽네 / 只恨悠悠負是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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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6책 / 시(詩)
제일〔除日〕
이 날이 참으로 아까우니 / 此日足可惜
올해는 오늘만 남았네 / 今年止今日
오늘이 드디어 저물면 / 今日遂已暮
내일이면 해가 바뀐다네 / 明日改歲律
지난날은 되돌릴 수 없고 / 前日旣難追
훗날은 또 빨리 흐를 테니 / 後日亦又疾
하루 하루 한 해 한 해 지나 / 日日復年年
백년이 어찌 이리 빠른가 / 百年何卒卒
인생이 어찌 백년을 살 수 있으랴 / 人生豈百年
한 몸을 부질없이 지키지 못하네 / 一身空自失
사업은 논할 겨를 없고 / 事業遑暇論
포부도 끝내 이루지 못해 / 志意終未畢
아득한 천만 년 역사 살펴보매 / 悠悠千萬古
대인이나 소인이나 한결 같았네 / 大小捴如一
나도 또한 사람이어서 / 我亦均是人
나이가 이미 칠십 줄이니 / 得年已七袠
아침저녁도 보전할 수 없으니 / 朝夕且不保
먼 후일이야 기필할 수 있으랴 / 遐齡安可必
종전의 많은 세월을 / 從前幾日月
허송하며 아끼지 않아서 / 虛過曾不恤
독서하여 터득한 것 없고 / 讀書未有得
임금을 보좌함에 계책이 없었네 / 致君終無術
참으로 좀벌레와 같아서 / 信是同蠧魚
그저 지필묵만 소비하였네 / 但自費紙筆
얕은 소견을 토로하고자 해도 / 膚見縱欲攄
후세에 누가 서술해 주리 / 後世誰更述
오두막집에 태연히 살며 / 一任圭竇中
날마다 분주히 드나들면서 / 日入復日出
어찌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 極知無可奈
오히려 일을 분명히 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네 / 猶恐事未悉
세상 사람들 무슨 심정이기에 / 世人獨何心
놀면서 세월을 보내는가 / 遊戲送甲乙
이들이 도리어 현달하여 / 此輩還達觀
오히려 나의 지체됨을 비웃네 / 却笑我爲窒
아직도 후회할 마음 없으니 / 尙不知自悔
고지식함은 필적할 자 없는데 / 狷狹固莫匹
때로 평생을 되돌아보면 / 時時檢平生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네 / 不覺體自慄
이로부터 남은 생애에 / 從此迄餘年
허물이 적기를 바랄 뿐이네 / 庶幸寡過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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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3권 / 시(詩) 193수
섣달그믐 밤에 감회를 적다〔除夕書感〕
북두칠성 자루가 다시 동쪽 가리켜도 / 斗柄又東指
멀리 온 나그네는 남방에 남았어라 / 遠客在南方
올 한 해도 이 밤이면 다하니 / 此歲盡此夕
나를 절로 슬프고 아프게 만드누나 / 令我自悲傷
내 또한 무엇을 아파하며 / 我亦何所傷
내 또한 무엇을 슬퍼하나 / 我亦何所悲
먼 귀양살이도 슬퍼하지 않고 / 不悲遷謫遠
노쇠함도 아파하지 않나니 / 不傷年貌衰
늙고 쇠하는 건 참으로 당연한 이치요 / 年衰固常理
멀리 귀양 온 것 또한 내 죄지만 / 謫遠亦我罪
슬픈 건 세도가 어그러짐이요 / 所悲世道否
아픈 건 학업이 쇠퇴함이라 / 所傷學業退
비괘가 있으면 반드시 태괘가 있는 법 / 有否必有泰
칠일 만의 회복 어찌 더디랴 / 何遲七日復
쇠퇴한 것은 오히려 나아갈 수 있으니 / 退者猶可進
어찌 조금이나마 보탬이 없으리오만 / 何無尺寸益
미친 물결에 급한 세월은 / 狂瀾與急景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누나 / 一往不復廻
눈물 뿌리며 나랏일 돌이켜 봄에 / 揮涕顧宗國
나라의 기강은 나날이 무너졌어라 / 王綱日以頹
돌아보며 지난 잘못 헤아리자니 / 撫躬數前愆
오십의 나이 훌쩍 다가왔구나 / 五十忽已迫
음양에는 시들고 자라남이 있어 / 陰陽有消長
뒤섞이어 예측하기 어렵지만 / 錯綜莽難測
지극한 이치는 사람 마음에 있기에 / 至理在人心
돌이켜 구하면 부족함 없으리니 / 反求無不足
시절의 운세 참으로 어쩔 수 없다 해도 / 時運諒無奈
모름지기 내 책임만이라도 다해야지 / 唯須盡吾責
[주-D001] 비괘(否卦)가 …… 법 :
모든 일이 막히고 풀리지 않는다는 괘사(卦辭)를 지닌 것이 비괘이고, 만사가 형통한다는 괘사를 지닌 것이 태괘(泰卦)이다. 비괘는 상괘(上卦)가 곤괘(坤卦)이고 하괘(下卦)가 건괘(乾卦)임에 반해, 태괘는 거꾸로 상괘가 건괘이고 하괘가 곤괘로 이루어졌다.
[주-D002] 칠일(七日) 만의 회복(回復) :
칠일은 칠일래복(七日來復)의 준말로, 양(陽)이 나아가고 음(陰)이 물러나서 군자의 도가 자라나고 소인의 도가 소멸하는 상황을 말한다. 《주역》 〈복괘(復卦)〉에 “그 도가 반복하여 칠일에 와서 회복되니 갈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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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4권 / 시(詩) 146수
섣달그믐 밤에 당시를 차운하다〔除夜次唐詩韻〕
베개맡에 외로운 촛불 벗 삼으니 / 旅枕伴殘燭
적막해라 뉘 더불어 친해 볼까나 / 寥寥誰與親
철원의 오늘밤 나그네 / 東州今夜客
영암의 지난날 사람 / 南國去年人
무궁한 일 다 겪고 / 閱盡無窮事
의연히 이 몸만 남았구나 / 依然見在身
앉아서 아녀자들 놀이 보니 / 坐看兒女戲
하릴없이 청춘이 그리워라 / 空復憶靑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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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집 제5권 / 시(詩) 156수
섣달그믐 밤의 감회〔除夜感懷〕
오늘 밤 마음이 편치 않아 / 今夕心不夷
외롭게 앉아서 강개하노라 / 孤坐申慨慷
강개함은 또 무슨 일 때문인가 / 慷慨亦何事
이해가 곧 바뀌기 때문이라 / 迫此歲序更
지사는 저녁 해를 애석해하는데 / 志士惜暮景
하물며 나는 타향 나그네로다 / 況乃客異方
아스라한 동산 구름이여 / 迢迢東山雲
멀리 떠다니며 밝은 빛 막누나 / 飄絶限明光
슬퍼라 밝은 빛 어디쯤인가 / 明光悵何許
은하수가 층층의 성에 임했어라 / 河漢當層城
일어나 은하수 기운 걸 바라보니 / 起視河漢斜
북두칠성 문득 오르내리는데 / 斗柄忽低昂
감격스러워라 저 태을성이여 / 感彼太乙居
중천에서 홀로 빛을 뿜누나 / 中天獨煌煌
하토에서 멀다고 말하지 마라 / 不言下土遙
높아도 오히려 올려볼 수 있으니 / 高高猶可望
둘째 수〔其二〕
내 뜻 날마다 무너졌고 / 我志日已頹
내 나이 날마다 내달렸는데 / 我年日已馳
명성 없어 이미 부끄러웠으니 / 無聞旣云恥
선화 어찌 바랄 수 있을까 / 善化安可希
젊은 얼굴 시들어도 아깝지 않지만 / 不惜朱顏改
다만 학업 이지러질까 두렵구나 / 但恐素業虧
인생은 영지가 아니라서 / 人生非靈芝
길이 삼수시 탄식하는데 / 長嘆三秀詩
거문고 부질없이 갑 속에 들었으니 / 瑤琴空在匣
늘그막에 지음이 드물구나 / 歲晩知音稀
끊임없어라 나의 그리움이여 / 綿綿我所思
큰 바다가 그 사이를 막았구나 / 大海以間之
시 읊조리다 옛 책 덮나니 / 沈吟掩陳編
이 회포 누구에게 고해야 하나 / 有懷當告誰
한 치 마음만 있으면 / 唯有一寸心
만리도 이웃 같아라 / 萬里猶隣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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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2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섣달 그믐날 밤에 느낌이 있어〔除夜有感〕
물시계의 물방울이 밤을 재촉하니 / 水滴銅龍夜漏頻
세월은 정말로 새벽되어 새롭네 / 年華正逐五更新
옛 신하의 슬픈 원망 얼마이던가 / 舊臣哀怨知何許
교산에서 이미 두 번 봄을 맞이하네 / 已見橋山兩度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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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2권 / 시(詩)○어정(御定) 영은록(榮恩錄)
섣달 그믐날
밤에 상께서 남극노인성 그림 두 장을 하사하였는데, 이는 천신이 설날 아침에 기사로 들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삼가 절구 한 수로 감축하는 정성을 부쳤다〔除夕 上賜南極老星畫二張 蓋以賤臣用元朝將入耆社也 謹以一絶 寓感祝之誠〕
길러 준 하늘 사랑 이미 많이 받았거니 / 生成已荷上天慈
분수 밖 교송 장수 어찌 감히 기대하랴 / 分外喬松敢自期
신에 대한 임금 축수 신이 도로 드려서 / 君與臣齡臣反獻
남극성 빛을 돌려 궁궐을 감싸고파 / 願回南極護丹墀
[주-D001] 기사(耆社) :
기로소(耆老所)의 별칭이다. 70세가 넘는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해 마련한 기관이다.
[주-D002] 교송(喬松) :
전설 속의 신선인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의 병칭이다. 왕자교는 본디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晉)인데, 도사 부구공(浮丘公)에게 신선술을 배워 신선이 되었고, 적송자는 진(晉)나라 때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에서 도를 깨달아 신선이 되어 500년을 살았다고 한다. 《列仙傳》 《神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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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세모행〔歲暮行〕
소년 시절에 세밑을 만날 때면 / 少年値歲暮
한 살 먹는 게 아쉬워서 즐겁지 않았는데 / 惜添一齒心不樂
늙어 갈수록 세밑을 만날 때면 / 老去値歲暮
별수 없지 하며 한 해 버린 셈 친다 할까 / 置之無奈如棄擲
열흘을 명덕산에 높이 누워 있노라니 / 一旬高卧明德山
사립문도 안 보이게 자욱이 내리는 눈 / 雨雪漠漠掩松關
부로는 두메에 거하여 문후도 중단하고 / 父老奧居休問候
붕우도 잠시 왔다가 곧바로 돌아간다네 / 朋友暫訪旋歸還
바람 맞은 솔은 대낮에 덜그럭 갈기들이 뒤엉기고 / 風松晝戛紛鬐鬣
얼어붙은 샘은 한밤에 조르륵 옥구슬이 구르는 듯 / 氷泉夜墜鳴瑤環
이런 때엔 웅얼거리며 백발을 아쉬워하고 / 此時沈吟歎白髮
이런 때엔 앉았다 섰다 대궐을 그리워한다오 / 此時行坐戀丹闕
물어보세 이해가 며칠이나 남았는지 / 借問此歲餘幾日
십오 일 지나면 바로 정월 초하루인데 / 日過三五是元日
관복 입고 조정의 반열 따르기도 어려운 몸 / 簪珮難隨大庭班
매화는 종남산 골방을 고수하라고 충고하네 / 梅花敎守終南室
해는 서로 치달리고 물은 동으로 흐르는 법 / 白日西馳水東流
예로부터 이러한데 이 몸이 무얼 근심하랴 / 古來如此我何愁
산골 아궁이 한밤중에 장작불을 지피면서 / 山廚榾柮燒中夜
술 데워 권하노니 그대여 잠시 머무시라 / 暖酒勸君君且留
공연히 격호하며 한 곡조 노래할 것 있소 / 莫謾擊壺歌一曲
위대한 우리의 도 길이 유유할 텐데 뭘 / 大哉吾道長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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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7권 / 시(詩)○임단록(臨湍錄)
섣달그믐
밤에 꿈을 꾸니 홍근이 평일처럼 옆에서 모시고 있었다. 그래서 꿈을 깨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기록하다〔除夕夢弘謹傍侍如平日覺以泣書〕
서가는 스산하고 책상은 엎어졌나니 / 書架荒荒筆几顚
인간 세상 부자 사이의 짧은 인연이여 / 人間父子短因緣
이생에서 며칠이나 서로 만나 보았더냐 / 此生相見知何日
네가 죽은 지도 지금 이 년이 되는구나 / 汝死今將爲二年
지하에서도 세시를 기억할 수 있는지 / 地下歲時能有記
꿈속에 담소하는 모습 너무도 가련해라 / 夢中言笑絶堪憐
기가 쇠해 네 묘소에 곡하지도 못하는 몸 / 氣衰未哭靑山土
나의 한을 너의 외숙이 응당 전해 주리라 / 吾恨應須爾舅傳
홍근의 외삼촌을 보내 죽주(竹州)의 묘소 앞에 술 한잔을 올리게 하였으므로 시어(詩語)가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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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세모의 느낌을 시로 읊다〔歲暮感吟〕
가는 세월 못 막는다 말하지 말지니 / 休道年華去莫遮
명년에도 여전히 또 세월은 올 테니까 / 明年依舊又年華
어찌하여 군자는 청명한 기상을 지니고도 / 如何君子淸明氣
한번 늙으면 꽃 같은 얼굴 회복하기 어려운지 / 一老難回映肉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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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섣달 그믐밤에
당나라 절구시를 차운하다〔除夕次唐絶〕
일각의 남은 밤이 아까워서 잠 못 이루니 / 一刻殘宵惜不眠
사람이면 너나없이 생각이 똑같구나 / 賢愚少壯意同然
이 마음 미루어 부지런하라는 가르침 따른다면 / 推心儻服孶孶訓
오막살이에서 늘그막을 한탄하지 않으리라 / 免向窮廬歎暮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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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제석(除夕)에
동파(東坡)의 운을 사용하여 성화중(成和仲)에게 부치다. 2수
시절은 지금 제석이 되었는데 / 時律今除夕
나의 삶은 월동하는 뱀만 같구나 / 吾生似蟄蛇
술잔은 가져다 죽엽을 마시고 / 引杯嘗竹葉
붓은 집어서 초화송을 짓노라 / 拈筆頌椒花
해가 가느라 경주는 재촉하고 / 歲去更籌促
봄이 돌아오매 두병은 비끼었네 / 春回斗柄斜
해마다 어리석음이 안 없어지니 / 年年癡不絶
내일은 이것을 누구에게 팔거나 / 明日賣誰家
마판엔 공부의 말이 떠들어대고 / 櫪喧工部馬
구렁엔 자첨의 뱀이 내닫는구나 / 壑赴子瞻蛇
음식을 보내라 술잔엔 거품이 뜨고 / 餽歲杯浮蟻
봄을 맞아라 촛불은 환히 켜놓았네 / 迎春燭放花
대나무는 태운 뒤에 툭툭 갈라지고 / 竹聲燒後裂
매화 그림자는 고요히 비껴 있는데 / 梅影靜中斜
도부를 다 써서 마치고 나니 / 書罷桃符了
청담으로 온 집안이 떠들썩하네 / 淸談鬧一家
[주-D001] 죽엽(竹葉) :
술의 별칭(別稱)이다. 《주보(酒譜)》에 의하면, 창오(蒼梧) 지방에서 술을 빚을 때 청결(淸潔)하게 하기 위하여 죽엽을 섞어 빚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초화송(椒花頌) :
옛날에 신년(新年) 초하루가 되면 초주(椒酒)를 가장(家長)에게 올려 헌수(獻壽)하던 풍속이 있었으므로, 진(晉) 나라 때 유진(劉臻)의 처(妻) 진씨(陳氏)가 글을 잘하여 일찍이 신년 초하룻날 초화송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신년 축사(新年祝詞)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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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권 / 시류(詩類)
제석(除夕)
산중 밤에 작은 눈이 살살 내려라 / 小雪山中夜
적막한 한 해의 섣달그믐이로세 / 寥寥一歲除
매화는 나의 파리함을 나눠 가졌고 / 梅花分我瘦
등잔불은 그대 외로움을 짝하였네 / 燈影伴君孤
섣달 기분은 아직 술에 남았는데 / 臘氣猶餘酒
봄기운은 이미 도부에 가득쿠나 / 春光已滿符
두 해의 일이 유유하기만 하거니 / 悠悠兩年事
스스로 도소를 마실 만하고말고 / 自可飮屠蘇
[주-D001] 도부(桃符) :
옛 풍속에, 신년(新年) 원일(元日)에는 복숭아나무 판자〔桃木板〕 두 개에다 신도(神荼), 울루(鬱壘)라는 두 신명(神名)을 써서 문 양쪽 곁에 걸어, 사귀(邪鬼)를 물리쳤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도소(屠蘇) :
옛날 풍속에 설날이면 마시던 약주(藥酒)의 한 가지인데, 괴질(怪疾)과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장수(長壽)하기 위해 이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 술은 대략 길경(桔梗), 육계(肉桂), 방풍(防風), 산초(山椒), 백출(白朮) 등의 약재(藥材)를 넣어 빚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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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8권 / 시류(詩類)
제석(除夕)
궤세를 내가 어찌 일삼으리오 / 餽歲吾何事
등잔 아래서 한번 활짝 웃노라 / 靑燈一笑開
초화는 예전 송축에 전하거니와 / 椒花傳舊頌
백엽은 새로 빚은 술에 둥둥 떴네 / 柏葉泛新醅
섣달은 인시 전까지만 머무르고 / 臘爲寅前駐
봄은 자시 이후로부터 오는지라 / 春從子後來
천시와 인사가 / 天時與人事
이미 두 해의 재촉함을 입었구려 / 已被兩年催
[주-D001] 궤세(餽歲) :
옛날 서촉(西蜀) 지방 풍속에 세말(歲末)이면 이웃 간에 서로 음식을 보내서 문안하는 것을 말한다. 또 주식을 장만해서 서로 초청하여 노는 것을 별세(別歲)라 하고, 섣달 그믐날 밤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守歲)라 한다.
[주-D002] 초화(椒花)는 …… 전하거니와 :
옛날에 신년(新年) 초하루가 되면 산초로 빚은 술〔椒酒〕을 가장에게 올려 헌수(獻壽)하던 풍속이 있었으므로, 진(晉) 나라 때 유진(劉臻)의 처 진씨(陳氏)가 글을 잘하여 일찍이 신년 초하룻날 초화송(椒花頌)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신년 축사(祝詞)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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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8권 / 시류(詩類)
제석(除夕)
궤세를 내가 어찌 일삼으리오 / 餽歲吾何事
등잔 아래서 한번 활짝 웃노라 / 靑燈一笑開
초화는 예전 송축에 전하거니와 / 椒花傳舊頌
백엽은 새로 빚은 술에 둥둥 떴네 / 柏葉泛新醅
섣달은 인시 전까지만 머무르고 / 臘爲寅前駐
봄은 자시 이후로부터 오는지라 / 春從子後來
천시와 인사가 / 天時與人事
이미 두 해의 재촉함을 입었구려 / 已被兩年催
[주-D001] 궤세(餽歲) :
옛날 서촉(西蜀) 지방 풍속에 세말(歲末)이면 이웃 간에 서로 음식을 보내서 문안하는 것을 말한다. 또 주식을 장만해서 서로 초청하여 노는 것을 별세(別歲)라 하고, 섣달 그믐날 밤에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守歲)라 한다.
[주-D002] 초화(椒花)는 …… 전하거니와 :
옛날에 신년(新年) 초하루가 되면 산초로 빚은 술〔椒酒〕을 가장에게 올려 헌수(獻壽)하던 풍속이 있었으므로, 진(晉) 나라 때 유진(劉臻)의 처 진씨(陳氏)가 글을 잘하여 일찍이 신년 초하룻날 초화송(椒花頌)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신년 축사(祝詞)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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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0권 / 시류(詩類)
제야(除夜)의 입춘에
섣달 그믐날 밤이 입춘을 겸했어라 / 除夕兼春立
유유한 세시의 변천이 느꺼워지네 / 悠悠感歲時
한 해는 장차 다해가는 마당이요 / 一年將盡處
삼경 밤은 곧 다가오는 때이로다 / 三夜欲來時
은승은 머리에 꽂아 묵직하건만 / 銀勝簪頭重
도소주는 차례 기다리기 더디구나 / 屠蘇到手遲
어리석음은 그 어드메에 팔 건고 / 有癡何處賣
괜히 낭선처럼 시제만 지내노라 / 空祭浪仙詩
[주-D001] 은승(銀勝)은 …… 묵직하건만 :
은승은 은박지(銀箔紙)를 오려서 만든 채화(彩花)를 말하는데, 옛날 입춘일에 이것을 백관들에게 하사하면, 백관들이 이것을 머리에 꽂고 봄맞이를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도소주(屠蘇酒)는 …… 더디구나 :
도소주는 길경(桔梗), 방풍(防風), 육계(肉桂) 등의 약재(藥材)로 빚은 술을 가리키는데, 옛날 풍속에 이 술을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친다 하여 정월 초하룻날 이 술을 마셨던바, 이 술은 반드시 온 가족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부터 차례로 마셔 신년(新年)을 축복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제야야숙상주성외(除夜野宿常州城外) 시에 “궁한 시름으로 늙은이 건강과 바꿀 뿐이니, 최후에 도소주 마시는 건 사양하지 않노라.〔但把窮愁博長健 不辭最後飮屠蘇〕”고 하였다.
………………………………………………
사가시집 제22권 / 시류(詩類)
제석(除夕)
고인들은 오늘 밤을 중히 여겼는데 / 古人重此夕
지금 나는 병들고 가난까지 겸하여 / 今我病兼貧
빈객들의 방문이 전혀 없는지라 / 賓客絶相訪
처자식하고만 오순도순하면서 / 妻兒唯共親
삼경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 不成三夜睡
또한 두 해에 걸친 몸이 되었네 / 且作兩年身
명일에 도소주를 마실 적에는 / 明日屠蘇酒
응당 남에게 뒤지지 않으리라 / 知應不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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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0권 / 시류(詩類)
정미년 섣달 그믐날이 바로 납일(臘日)이다
납일과 섣달 그믐이 같은 날이라 / 臘日共除夕
시절이 느껍고 회포도 느껍구나 / 感時仍感懷
천지는 나를 늙도록 용납하는데 / 乾坤容我老
절서는 누구를 위해 재촉하는고 / 節序爲誰催
한 해 절서는 곧 다해 가지만 / 歲律行將盡
봄 경치는 반드시 돌아오고말고 / 春光恰得回
명일이 바로 삼원이거니 / 三元明日是
또 초주 잔이나 기울여야겠네 / 且可進椒杯
[주-D001] 삼원(三元) :
정월(正月) 초하루를 말한다. 연(年), 월(月), 일(日)의 처음이라 하여 이렇게 일컫는다.
[주-D002] 또……기울여야겠네 :
초주(椒酒)는 산초로 빚은 술을 이르는데, 옛날 풍속에 신년 초하루가 되면 이 술을 가장(家長)에게 올려 헌수하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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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보유 제2권 / 시류(詩類) 습유(拾遺)한 시
제석(除夕)
옛사람은 오늘 밤을 중히 여겼는데 / 古人重此夕
지금 나는 질병에 가난을 겸하여 / 今我病兼貧
찾아주는 빈객이 전혀 없는지라 / 賓客絶相訪
처자식하고만 서로 친할 뿐이네 / 妻兒惟共親
사흘 밤 동안 잠을 전혀 못 이루고 / 不成三夜睡
또다시 두 해의 몸을 이루었구나 / 且作兩年身
내일 아침 도소주를 마실 적에는 / 明日屠蘇酒
아마도 가장 뒤에 마시지 않겠는가 / 知應不後人
[주-D001] 내일 …… 않겠는가 :
도소주(屠蘇酒)는 길경(桔梗), 방풍(防風), 육계(肉桂) 등의 약재(藥材)로 빚은 술을 가리키는데, 옛날 풍속에 이 술을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친다 하여 정월 초하룻날 이 술을 마셨다. 이 술은 반드시 온 가족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부터 차례로 마시어 신년(新年)을 축복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소식(蘇軾)의 〈제야야숙상주성외(除夜野宿常州城外)〉 시에 “궁한 시름으로 늙은이 건강과 바꿀 뿐이니, 최후에 도소주 마시는 건 사양하지 않노라.[但把窮愁博長健 不辭最後飮屠蘇]”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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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재집 제1권 / 시(詩)
섣달 그믐날 밤에 벗들과 술을 마시다〔除夜與諸友飮酒〕
오늘 밤 계산의 객관에 묵노라니 / 今夜稽山館
쓸쓸한 심정 못내 떨칠 수 없는데 / 孤懷殊未開
우연히 동지들과 모임을 이루니 / 偶成同志會
모두들 다른 고을에서 찾아왔다오 / 俱自異鄕來
차츰차츰 하늘의 별이 옮겨가고 / 冉冉天星轉
두둥두둥 나례의 북소리 재촉하네 / 騰騰儺鼓催
흐르는 세월이 이와 같이 빠르니 / 流光有如此
동자들은 부디 잔을 멈추지 말라 / 童子莫停杯
[주-D001] 섣달 …… 마시다 :
이 시는 저자가 영동 현감(永同縣監)으로 있었던 1769년(영조45) 48세부터 1772년 7월 51세 때 부친상으로 인해 체직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계산’은 충북 영동(永同)의 옛 이름이다.
[주-D002] 나례(儺禮) :
음력 섣달 그믐날 민가와 궁중에서 악귀를 쫓던 의식으로, 고려 정종(靖宗) 때 처음 시작되었다. 섣달의 대나(大儺)는 광화문(光化門)ㆍ흥인문(興仁門)ㆍ숭례문(崇禮門)ㆍ돈의문(敦義門)ㆍ숙정문(肅靖門)에서 행하는데, 대체적인 의식은 다음과 같았다. 관상감(觀象監) 관원이 나자(儺者)를 거느리고 새벽에 근정문(勤政門) 밖에 나아가면 승지가 역귀를 쫓을 것을 계청한다. 왕의 윤허가 떨어지면 관원이 나자를 인도하여 내정(內庭)으로 들어가서 서로 창화(唱和)하며 사방에다 대고 부르짖는다. 마치면 북을 치고 떠들면서 광화문으로 나온다. 사문(四門)의 성곽 밖에 이르면 봉상시(奉常寺)의 관원이 미리 수탉과 술을 준비하고 있다가 나자가 문을 나오려고 하면 문 가운데에 신(神)의 자리를 펴고 희생(犧牲)의 가슴을 갈라서 신의 자리 서쪽에 제사를 지낸다. 끝나면 닭과 축문을 땅에 묻고 예가 끝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뒤에는 기생ㆍ악공의 춤과 노래를 곁들인 오락으로 변하였다. 《高麗史 卷64 禮志 季冬大儺儀》 《林下筆記 卷16 文獻指掌編 儺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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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9권 / 시(詩)○오언율시(五言律詩) 1백 23수
제야에 옥하관에서 동행들에게 보이다[除夜在玉河館示同行]
물시계 소리 밤새도록 듣고 / 聽盡蓮花漏
옥토향도 피워서 다하였는데 / 燒殘玉兎香
넘어가는 해에 손 된 것이 슬프고 / 逝年悲作客
먼 길에 창자가 꺾임을 느끼겠네 / 長路覺摧腸
옥이슬은 맑은 은하에서 내리고 / 璧露星河淡
먼 창공에는 달빛이 서늘하구려 / 瑶空桂魄涼
앞으로 만날 기약 응당 있을 테나 / 前期知有在
오늘 저녁의 회포를 감당키 어렵네 / 此夕更難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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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9권 / 시(詩)○오언율시(五言律詩) 1백 23수
병오년 섣달 그믐날 밤에[丙午除夕] 2수
나이 들어가니 감개가 많아지고 / 年侵多感慨
봄이 이르매 절로 걱정이 되네 / 春至自關心
벌써 도소주를 나중 마시게 되었으니 / 已後屠蘇飮
어찌 머리에 채승을 꽂아서 되랴 / 那宜綵勝簪
매화의 남쪽 가지는 꽃을 피울 것이고 / 南枝應弄色
북녘 뭍도 음지를 녹이려 하나니 / 北陸欲消陰
다만 일찍 돌아가 농사를 지어서 / 但願歸耕早
상마가 도처에 잘되기만 바라노라 / 桑麻在處深
이(二)
망울에선 꽃이 막 터져나오고 / 絳蠟花初拔
옥술잔엔 술이 다 되어가는데 / 瓊觴酒欲殘
새벽 재촉하는 북소리 듣기 싫고 / 生憎催曉鼓
춘반을 대하기도 견딜 수 없어라 / 叵耐對春盤
불우한 가운데 몸은 늙어만 가고 / 汨沒身將老
따르고 어김 속에 흥이 이미 다했네 / 從違興已闌
흐르는 세월이 이와 같나니 / 流光有如此
서로 만나서 우선 즐겨나 보세 / 相見且爲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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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12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99수
섣달 그믐날
감회를 읊어 동고에게 드리다[歲除感懷呈東皐]
경신년과 입춘일이 이미 다 지나가고 / 已度庚申與立春
또 다시 제석 만나 시름겹기 그만일레 / 又逢除夕更愁人
평소에 나그네살이 고달픔을 몰랐는데 / 平生不信覊游苦
오늘밤에 귀밑털 희어짐을 금치 못해 / 此夜難禁鬢髮新
쓸쓸한 외론 흉금 본디 절로 알지마는 / 落落孤襟元自識
유유한 뜬세상은 끝내 누가 참이런가 / 悠悠浮世竟誰眞
연화 속에 놀자던 금년 계획 못 이뤄 / 煙花辜負今年債
의욕 잃어 불완전한 몸이 된 게 부끄럽네 / 愧作龍鍾未了身
[주-D001] 경신년 :
원문의 표기가 잘못된 듯하다. 경신년은 광해군 12년(1620)으로, 동고 최립은 이미 8년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본 시의 전후 작품들이 다 선조 27년(1594) 겨울 연경의 사행길에 지은 시들이다. 원문의 경신년이 맞는 것으로 본다면 제목이 잘못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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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 제20권 / 시(詩)○칠언절구(七言絶句) 166수
정사년 섣달 그믐날 밤에[丁巳除夕]
작은 등불 앞에서 질화로의 향 다 탔네 / 土爐香燼小燈前
두메산골 오늘밤에 또 한 해를 보내는가 / 峽裏今宵又送年
괴로운 나그네 심사 아녀들이 어찌 알리 / 兒女豈知爲客苦
시새워 쌍륙 던지며 돈은 따지지 않네 그려 / 樗蒲爭擲不論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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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2권 /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세모(歲暮)
한 해가 가고 오매 기쁜 마음 줄어들고 / 歲去年來歡意減
한 해가 오고 가매 늙은 모습 늘어가니 / 年來歲去老容催
묵은 해 지나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데 / 不堪舊歲抛將去
새해 다가옴을 어이 견딜 수 있으랴 / 可耐新年逼得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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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2권 /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제석(除夕) 2수
노년에 저무는 한 해가 지나감을 슬퍼하니 / 老悲殘歲將辭去
돌아오지 못하는 정인을 전송하는 듯하여라 / 如送情人知不廻
등잔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잠 못 이루니 / 相守燈前難着睡
닭이 울 때에 이르러 눈물이 뺨을 적시네 / 鷄鳴時到淚霑腮
‘情人’이 어떤 본에는 ‘故人’으로 되어 있다.
소시엔 이내 몸 늙게 될 줄 알지 못하여 / 少時不識身應老
신년이 될 때마다 기뻐 어쩔 줄 몰랐는데 / 每到新年喜欲狂
문득문득 변해 가는 치아와 모발 보면서 / 忽忽漸看齒髮變
묵은 해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만 드누나 / 心中唯覺舊年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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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2권 / 시(詩)○석천록 상(石泉錄上)
제석(除夕) 3수
날마다 하루씩 제하여 제할 날이 없어지고 / 一日日除除會盡
해마다 한 해씩 늙으니 누가 영원할 수 있는가 / 一年年老老誰存
다만 오늘 같은 밤 붙잡아 두기 어렵나니 / 只如今夜難留住
세대를 건너 장생함을 다시 논할 수 있겠는가 / 度世長生更得論
사람은 늙으면 다시 젊어지기 어렵지만 / 人老皆知難再少
한 해 다하면 그래도 봄은 돌아온다네 / 歲窮猶見却還春
봄이 돌아와도 한스러운 세월은 마냥 흘러 / 春還只恨年仍往
머리에 점점 백발이 생기는 거라오 / 漸漸頭邊白髮新
일년 중에 고운 봄 경치 많지 않으니 / 歲內無多麗景春
인생에 소년 시절 어찌 오래이겠는가 / 人生寧久少年身
형체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변해 가니 / 形骸坐共流光變
흐르는 세월 대하여 자주 탄식할 뿐 / 只對流光歎惜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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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집 제4권 / 시(詩)○석천록 하(石泉錄下)
섣달그믐에 소회를 털어놓다
이내 몸 홀로 초췌하기만 하니 / 一身獨憔悴
만사가 더욱 가슴 아플 따름이네 / 萬事增傷憐
어떻게 오늘 밤을 넘긴단 말인가 / 詎可度今夕
석년의 생각만 쏟아지는데 / 唯多思昔年
둘
슬프고 슬프고 슬프고 슬프도다 / 怊悵復怊悵
눈에 선한 어여쁜 너를 잃다니 / 眼中失所憐
끝없는 그리움에 싸여 있는데 / 纏綿思不極
벌써 한 해가 지나가 버리다니 / 倏忽已經年
셋
일 년이 다하도록 아무런 의욕 없고 / 竟歲獨無趣
종일토록 내내 기쁜 일 드물구나 / 終朝常少歡
자식이 죽으면 그래도 아비가 묻지만 / 兒亡猶父瘞
아비가 늙으면 다시 누가 보살피랴 / 翁老更誰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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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제야(除夜)-2.끝.

첫댓글 除夜에 관한 자료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주 건강하십시오.
제야(除夜)에 관한
시편(詩篇)들을
살펴보고 갑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