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살
'가로로 막은 살'의
'갈막이'가 변해
바다의 물새 '갈매기'와는
관계 없어
햇볕은 따갑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게 조금은 초가을 냄새가 난다.
아버지와 함께 백화점 일을 보고 나온 혁이는 배가 출출해서 음식점에 들르자고 했다. 아버지는 서양
음식이나 일본 음식보다는 우리 음식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한식 전문'이라고 간판이 붙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음식 이름들이 적힌 차림표가 붙어 있었다.
"혁이야, 뭘 먹을래?"
아버지니가 물으셨다. 차림표에 적힌 음식 이름들은 많은데, 그 중 몇 가지밖에 몰라 망서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갈매기살'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그러지 않아도 처음 보는 음식 이름이어서 그게 어떨까 했던 참에 처음 먹어 보는 고기이고 해서 좋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주문했다.
"아빠, 갈매기고기도 먹나요?"
"아하, 갈매기살이라니까 바다에 날아다니는 그 가인 줄 아는가보구나."
"갈매기살이 '갈매기의 살'이란 뜻이 아닌가요?"
"아니지. 돼지고기에서 '갈매기살'이라는 있거든."
아버지는 '갈매기'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차근차근 말씀해 주셨다.
요즘에 와선 새로운 음식들도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 이름들도 생소한 것이 많아졌다.
'갈매기'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언뜻 들으면 이 이름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로 알아듣기가
아주 쉽다. 그래서, '갈매기고기'를 먹으러 가자 하면 전에는 갈매기(새)의 고기 요리인 줄로 아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갈매기고기를 거의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도 꽤 많이 늘어났다. 서울의 마포나 성남시
여수동 일대에 이러한 음식점들이 꽤 많다.
'갈매기'의 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갈매기고기'인가?
사람이나 모든 짐승들에겐 몸 속에 횡격막이란 것이 있다. 숨을 쉴 때 허파를 죄었다 풀었다 하면서
숨쉬기운동(호흡작용)을 돕는 얇은 힘살막이다. 이 힘살막을 토박이말로는 '갈막이'라 했다. 허파 아래쪽에 가로지른 막이라 해서 원래
'가로막이'라 했던 이 말은 '갈막이(갈마기)'로 줄고 이것은 다시 '갈매기'로도 옮겨갔다.
일부 지방에선 '간매기'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간을 막았다는 뜻의 '간막이'가 변한 말로
보인다.
20여 년 전까지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자연과 생물 교과서에 인체의 그림에서 이 얇은 막이
'가로막'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횡격막'이라고 써 놓고 있다.
'갈매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정착된 말이다.
가로막이(가로마기)>갈마기>갈매기
그 갈매기(횡격막)의 살이 바로 '갈매기살'이고, 갈매기살로 요리한 고기가 바로 '갈매기고기'인데,
문제는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연상케 돼서 이름에 혼동을 안겨 주는 점이다.
사실, 횡격막이란 말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가로질러 막은 막'의 뜻이니 '가로막'이란 말은 누가
보아도 그 구실에 잘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가 있다.
알고 보면 '갈매기'라는 것은 어느 짐승들의 몸에나 있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갈매기살'이라고 하면
대개는 돼지의 가로막(횡격막) 살로 통한다. '갈매기고기'라고 해도 역시 돼지 가로막의 살로 요리한 고기로 통한다. 그만큼 돼지의 가로막 살이
요리로 중요하게 이용되기 때문이다.
전에는 갈매기고기란 것이 없었다. 도살장에서 이 부위는 따로 처리되어 짐승의 먹이 정도로나 씌었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에서 이 부위는 40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데다가 그나마 질깃질깃한 껍질로 덮여 있어 요리로 쓰질 않았다.
그런데, 한 여남은 해 전에 누군가에 의해 요리로 개발되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 갈매기구이는 날로
인기를 더해 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가로막'은 '가로'와 '막'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가로'라는 말은 '갈'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말에 '갈래', '가락', '갈림길' 등의 말이 모두
이 '갈'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원래 '옆으로 가닥져 나온'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갈'은 그 뿌리말이 '갇'이다. 그래서 '가닥',
'가다귀' 같은 말이 나왔다. '가다귀'는 참나무 따위의 잔 가지이다. 지금의 '가지(나뭇가지)'란 말도 원래는 '갇'에 '-이'(접미사)가
붙어서된 '갇이'이다.
갇+이=갇이>가디>가지
횡격막의 순 우리말인 '가로막'도 알고 보면 '갇'이 그 뿌리될 수 있다.